지난 이야기
찌라시 따위가 설레발 친다면, 기사를 사서 밀어버리면 된다. 네이버에서 언론 코드를 받은 수백 수천의 ‘이름 없는’ 언론사들을 동원해 기사를 날리면 된다. N이 아무리 난리를 친다 해도, 기사는 밀려날 거다. 그쪽이 10개를 올리면, 이쪽은 100개를 사서 기사를 밑으로 내리면 된다. 10만원, 20만원에 기사를 올려줄 인터넷 언론사는 넘쳐난다. 이것들을 다 동원해서 기사를 밀어낸 다음 피날레로 중앙경제지의 심층 분석 기사를 때리면 된다. 그때 쯤이면 N의 기사는 화석이 돼 지하 3백 미터 천연암반수 사이에서 헤맬 것이다.
D기자. 그녀는 산업유통부 차장이다. 이 바닥, 그러니까 언론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실히 차지한 기자다.
“중국발 위기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A社 쪽도 매출의 70%는 중국 쪽이라고 들었는데...”
“동남아 쪽으로 판로를 다변화 하고 있습니다.”
“요즘 그쪽으로 많이들 가더군요. 어때요? 그쪽 분위기는?”
“가능성은 높죠. 기본적으로 한류도 있고, 아직 시장이 무르익지 않아서 주목 받진 못하고 있지만... 지금부터 다져놓으면 승산은 있을 거 같습니다.”
“예, 그쪽으로 연예인들 많이 가는 거 같더군요.”
“예, 저도 그쪽으로 프로모션하러 갔는데, 인기가... 예상을 넘어섰습니다.”
“A社 모델이면, K 아니에요? 그쪽에서 통해요?”
“(웃음) 그게, 통하더라구요. 프로모션 했는데, 컨벤션 홀이 미어터졌습니다.”
“그게 매출로 이어지면 좋을텐데...”
“기다려봐야죠.”
일상인 듯 일상이 아닌 대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영업이익 보고서는 왜 들고 오신 겁니까?"
왔다. 이럴 땐 직구다.
“섹션 전면 하나, 사회면 하나... 가격만 맞는다면, 증권면도 하나 사고 싶습니다.”
자료를 넘기던 D의 손이 멈췄다. 옆에 있던 김과장도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만약 정상가격으로 치면, 위기관리비용을 다 털어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
“A社 매출로 보자면 조금 무리 아닌가요?”
“가격 조정 해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D가 찬찬히 내 얼굴을 바라본다. 안경 너머의 D의 눈동자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잠시 그 시선을 받던 나는 김과장에게 시선을 돌린다.
“중국 쪽 사진 가져왔지?”
“아... 예!”
김과장이 허둥지둥 노트북을 열어 중국 매장 사진을 열었다.
“보시면 알겠지만, 썰렁하죠. 이건 세관 쪽인데... 며칠째 발이 묶여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지난 달에 있었던 말레이시아 컨벤션입니다.”
노트북 화면이 D의 앞으로 향했다. 천천히 고개를 내린 D가 화면을 넘기며 사진을 바라봤다.
약 스무장의 사진을 넘기는 시간 동안 회의실 안은 긴 침묵이 이어졌다. 마지막 사진까지 다 넘겼는지, D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문을 연다.
“이 정도면 심층 분석기사 감인데요?”
찌가 움직였다.
“정부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중국 바라보던 유통 업체들은 다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저희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언론이 나서주셔야죠.”
다시 침묵. D의 손이 보도자료 쪽으로 움직였다.
지금 나는 기사를 사려하고 있다. 아마 광고 집행은 한 달에 걸쳐 천천히 진행될 거다. 섹션 전면 하나 정도는 쳐 주면 된다. 조금 무리하면, 사회면 8단 칼라 하나. 증권면은 일단 질러봤지만, 가격절충이 없으면 어렵다. 최악의 경우... 광고를 사겠다는 말을 했지 광고의 크기를 말하진 않았다. 5단 흑백을 사진 않겠지만, 무턱대고 15단짜리를 치진 않을 거다. 절충해야 한다. D도 우리 회사 매출을 알고 있고, 한 번 우리 회사를 방문했기에 사정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고, 사정 봐가면서 요구할 거다. 내가 아는 B와 D는 젠틀하다.
(신문광고 단가계산이 크기로 정해진다. 1단이 3.4센치미터인데, 5단, 7단, 8단, 10단, 15단 식으로 구분돼 있다. 색상도 칼라와 흑백에 따라 단가가 다르다)
어쨌든 이쪽이 보도자료와 영업이익자료를 들고 와 광고를 사겠다는 건, 기사를 사겠다는 말의 다름이다. D가 문화부에서 어떻게 굴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산업유통부 차장으로 들어 온 이상 광고의 압박은 계속 느끼고 있을 테고, 난 그 압박을 일정부분 해소시켜 주면 된다. 이 양자 사이에 거래의 재료로 쓰이는 게 ‘기사’다.
지난 번 500만원짜리 섹션 기사 때에는 사장 인터뷰가 걸렸다. 그때는 칼자루가 내 손에 있었지만, 지금은 칼자루가 D의 손에 쥐여 있다. 그렇기에 일부러 광고를 세게 쳤다. 칼자루가 그쪽에 있다면, 칼날의 무게를 올려 균형을 맞춰주면 된다. 칼날이 무거우면, 쉽게 휘두를 수 없다.
물론, D에게도 생각이 있고, 곤조가 있을 거다. 그녀는 중앙경제지, 그것도 산업유통 차장이다. 살아온 세월이 있고, 헤쳐 나온 전장의 수가 다를 거다. 그렇기에 난 최대한 예의를 갖춰, ‘기사’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기자들에 대한 예우이며, 배려다.
“이번 달 저희 쪽 광고는 다 나간 걸로 아는데요?”
허세다. 지금 같은 시절에 광고가 완판이라고?
“천천히 하죠. 다음 달에 신제품 프로모션 할 거도 있고, 그치 김과장?”
“아, 예... XX가 발매됩니다. 그때 대대적으로 홍보할 예정입니다.”
공을 넘겼다. 광고는 언제든 집행할 수 있다. 당신이 원하는 타이밍에 광고를 쏴주겠다는 거다. 두고두고 아껴놨다 곶감 빼먹듯이 쓸 수 있는 카드가 3장이나 있단 소리다.
“저희야 B와 좋은 관계 유지한다면, 더 바랄게 없죠. 지금 대내외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아서, 어디 기댈 대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이럴 때 믿을 곳은 언론 밖에 없잖습니까? 도와주십시오.”
밀어붙였다. N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업계 사정이 급하죠?”
“급합니다.”
“매출만 봐도 알겠네요. 알겠습니다. 시급한 상황에 대해서는 저희도 대처방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은 심층기사를 쓰고 싶은데, 그때 취재협조 부탁드려도 되겠지요?”
“물론입니다!”
D는 거래를 수락했다. 지금 당장 기사 하나를 내 보낼 테고, 조만간 심층기사 형태로 연속기획을 준비하겠다. 그때 봐가면서 광고 집행 하자는 의미다. 그렇게 거래는 마무리 됐다.
D와 악수를 하고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김과장이 의아한 듯 질문을 던진다.
“팀장님, 광고국 안 가십니까?”
“왜?”
“광고계약 안 하십니까?”
“(피식) 조만간 D 차장이 연락 올 거야. 그때 하나씩 집행하면 돼.”
“예?”
내 예언은 30분 만에 적중했다. 회사에 거의 도착할 무렵, D의 문자가 날아왔다.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작년도, 재작년도 영업이익과 중국내 지점 증감률에 대한 자료를 달라는 거다. 자료는 핑계다. 내일 기사가 나간다는 묵시적인 통보다. 김과장이 자료를 보낼 거라고 답장을 보낸 뒤에 사무실에 들어가자 답장이 돌아왔다. 다음 주 섹션 광고가 광고주 사정으로 취소됐다는 내용이다. 친절하게 광고국 연락처도 남겼다.
“순진한데?”
“예?”
“아니... 그냥, 술 마시고 형님 동생 하면서 까놓고 거래하는 것도 좋지만, 이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무슨 말씀이신지...”
“됐고, D차장한테 자료 보내. 그리고 B 광고국 연락해서 오늘 중으로 광고 사.”
“얼마나...?”
“달라는 대로 줘."
아마도 1천 내외일 거다. 5백에 샀던 광고가 석 달도 안 돼 두 배로 튀어 오른다. 뭐 어떤가? 지금 급한 건 나고, 그 덕분에 난 B의 기사 하나를 총알로 확보했다. 이제 이 총알을 쏘기만 하면 된다.
전야(前夜)
B에서 돌아와 보니, 사무실 공기는 내가 떠난 직후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다들 긴장한 상태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N에서 연락 온 건 없어?”
“계속 연락오고 있습니다.”
박과장이 달려오더니, 자기 핸드폰을 내민다. H기자의 카톡들이 길게 늘어져 있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는 단어들이다.
‘무시’, ‘괄시’, ‘서운’... 문장으로 이어지면 더 가관이다. ‘한 번 해보자는 겁니까?’ 이 정도면 협박이다. ‘H부장님이 화가 나서 날뛰는 걸 겨우 말렸다.’란 대목에서는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기자들의 상상력이란 언제쯤 성장할까?
“됐어. 무시해.”
“......예”
“모두 주목! 다들 알겠지만, 오늘 내일 N과 한 판 붙는다.”
‘한 판 붙는다’란 말에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본다.
“대단한 건 아냐. 그쪽 기사 올라 오는대로 바로 밀어낼 거다. 대행사 쪽에 오더 넣어놨으니, 그쪽에서 서치 하겠지만, 우리 일이니까 우리도 같이 살펴봐야 할 거야. N 홈페이지는 어쩔 수 없겠지만, 포털에 올라오는 기사 다 서치 해. 누구든 좋으니까 발견하면, 바로 K대행사에 전화 넣어.”
“예”
일제히 합창을 한다.
“좋아. 그리고 김과장!”
“예!”
“B 광고국 연락해서 광고 집행해. B 광고는 일임 할 테니까, 처리해.”
“예!”
“그리고 기사 뜨면, 우리 쪽 홈페이지에 링크 걸고.”
“예!”
“아무 일 없으면 좋겠는데, N에서 저렇게 나오면 우리도 참고 있을 순 없어. 오늘 내일 좀 빡셀거야. 다들 각오하고, 집에서도 스마트폰 붙잡고 포털 검색해. 알았지?”
“예!”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10만 원짜리 기레빠시 50개를 샀다. 기레빠시라고 하니 뭐 대단한 것처럼 들리지만, 아니다. 말 그대로 자투리다. 포털에 언론코드를 받고 언론사 흉내를 내는 수백 수천의 언론사가 있다. 이들의 주요 생계수단은 어뷰징이다. 히팅수가 곧 돈이기에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비슷한 기사를 쏟아낸다. 당연히 낚시질도 포함된다. 이렇게 연명하는 이들이기에 10만원짜리 기사라도 올려달라면 올려준다. 별 내용도 없다. 우리 쪽 보도자료를 그대로 올릴 수도 있고, 약간 손 봐서 올릴 수도 있다. 내용은 중요치 않다. N의 기사를 밀어낼 수만 있으면 된다. 내 사수와 동기들은 이런 10만원짜리 기사를 ‘기레빠시’라고 부른다. 기사로 쓸 수 없지만, 악의적인 기사를 밀어낼 때 딱 맞아 떨어진다는 의미다.
여기 와서 기레빠시를 살 줄은 몰랐다. 기업이 악의적인 기사를 밀어내겠다고 자투리 기사를 산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상황이지만, 이 나라에서는 이게 현실이다.
인터넷 언론사들도 먹고 살겠다고 하는 짓이지만, ‘먹고사니즘’이 모든 걸 용납하는 건 아니다.
“개새끼들... 한 번 붙어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계속하지만, 솔직히 나도 부담을 느낀다. N이 자신들의 기사가 밀려난 걸 확인한 다음 어떻게 나올까? 순순히 두 손 들고 항복을 할까? 그 가능성은 한 없이 0에 수렴할 거다. 내가 희망을 가지는 건 B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 다르게 분석한 두 기사. 한쪽은 악의로 넘쳐났고, 다른 한쪽은 선의로 가득하다. 아니, 있는 그대로 사실을 쓸 것이다.
누가 볼지는 모르겠지만, 기사를 쓴 사람은 느낄 것이다. 자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까놓고 말해 N이 아무리 악의적인 기사를 쓰든, 그게 일반 대중들에게 영향을 끼칠 확률은 지극히 낮다. 우리가 재벌도 아닌데, 우리 회사 영업이익의 변동에 관심이나 가질까? 재수없게 음주 운전한 연예인이 등장하면, 그 기사는 빛도 보지 못하고 묻힐 거다.
N이 자극적인 미다시를 달아서 내보내도 한계는 분명하다. 귀찮은 건, N이 작정하고 덤벼드는 경우다. 10번이고, 20번이고 악의적인 기사를 작성하고 때리는 경우다. 이 경우는 꽤 골치 아파진다. 처음 몇 번은 밀어낼 수 있겠지만, 밀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들이 전사적인 차원에서 우리를 손 보고, 우리를 뜯어먹겠다고 덤빈다면... 그때는 법무팀 동원해서 소송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니, 거기까지 가지 않을 거다. N의 H부장이 아무리 개차반이라지만, 그도 언론종사자다.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한다. 회사 차원에서 우리를 조지겠다고 덤벼든다면 모르지만, 그럴 확률은 낮다. 한 번 밀어내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든가, 아니면 아예 무시한다. 내 판단은 옳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추신
이 시리즈를 투고하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내부자의 안전과 비밀보장을 최우선시 한다는 딴지일보를 믿으나
이 연재가 중단되면 나에게 클레임이 들어왔거나 딴지 편집부가 쫄았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하시라.
언제나 그렇듯, 이 이야기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날리 없는 소설이라고 믿어주면 좋겠다.
지난 기사 언론이 기사와 광고의 교환을 요구할 때, 우리는 이렇게 움직인다 |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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