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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찌라시 한국사'는 재미난 역사적 사건을 대화체로 풀고 썰을 마구 첨가하여 남녀노소 상하좌우 친박반박까지 한국사를 생생하게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한 새 연재입니다.


찌라시만큼 흥미진진하고 쫄깃하여 찌라시인 것이지, 진짜 찌라시와는 무관하니, 맘 편히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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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30년이 지난 698년. 그 후손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발해'라는 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조선왕조 오백 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시간이었지만 발해가 우리 역사에 남긴 임팩트는 어느 왕조 부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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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로마역사에 대한 관심의 절반이라도 발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나 하는 의문에서 이번 글을 준비해 봤어.


일단 발해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졌던 나라인 건 알지? 중국은 물론 러시아 지역 일부까지 포함된 국경선을 가지고 있었어. 한국판 로마제국을 꿈 꿀 수도 있었는데 아쉬움을 떨칠 수 없어.


남녀 사이에서 어장관리 할 땐 몰랐는데, 남이 가지려고 하면 남 주기 싫을 때가 있다고 하지? 그때가 되어서야, 그 사람의 가치를 깨닫지만, 버스는 이미 떠나간 경우가 많아. 지금이 발해가 우리 곁을 떠나기 전에 잡아두어야 할 때야. 왜냐하면 중국이 발해에 대한 작업을 벌써 시작했기 때문이야.


중국은 이미 1980년대에 발해를 자기 역사로 편입 시켰어. 그리고, 우리 학자들의 발해 지역 탐사나 연구에 대해서 엄청난 방해를 하고 있다고 해. 러시아 학자들은 아직은 발해가 한국의 역사라고 인정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그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아. 중국이과 러시아라는 거대 강국이 발해를 탐내고 있는데, 우린 머하고 있지?


자 그럼 Yo!태지가 꿈꾸던 발해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가 보자고. 어떤 일이던지 기초공사가 튼튼해야 하는 법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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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698~926년) 300여년의 짧은 기간동안, 우리 역사에 한 획을 제대로 그었어. 요절한 천재 느낌이랄까? 하지만, 발해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알려지지 않아 신비로울 지경이야. 이름은 수 없이 들어 봤지만, 정작 발해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 회사에서 영어와 수학을 사용하는 사람은 극 소수인데도 불구하고, 영어 수학만 강조하고 역사 교육은 뒷전으로 내팽개쳐 놓은 결과이기도 하지.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 시킨 후 30년이 지나, 고구려 유민에 의해서 발해가 건국이 돼. 이렇게 발해는 통일신라의 위쪽에 자리 잡게 되는 거야. 지금 시대로 비유를 하자면. 남한(신라)이 북한(고구려)을 제압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초강대국 미국(당 나라) 에 협상을 제안하지.


“이봐 캡틴 당나라! 당신의 슈퍼울트라 파워를 빌려 우리가 통일을 이루게 된다면, 북한(고구려)의 푸짐한 광물자원과 싼 노동력은 당신의 몫이야. 어때? 군침이 당기지? 이번 제안 로맨틱? 딜 성공적?”


이런 거 없이 당시 초 강대국인 당 나라가, 신라에게 왜 협조를 했겠어? 백제를 멸망 시키고, 수 많은 전쟁 난민은 물론이고 의자왕이 끌려 간 곳도 당나라고, 고구려 멸망 후 2만 8천여 호의 유민들을 끌고 간 것도 당나라야. 백제, 고구려의 수 많은 전쟁 고아들이 통일 된 신라에 귀속 되거나, 보호 아래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당나라로 끌려 간 거야.


이런 배경 속에서 발해가 싹트기 시작했어.


캡틴 당나라는 통일 신라에 슈퍼 파워를 제공한 대가를 받아야겠으니, 고구려의 전쟁 난민들을 영주라는 곳으로 끌고 가. 여기엔 거란, 말갈 등의 다른 북방 민족도 함께 있었어. 현대전쟁에서도 제네바 협정이 유명무실한 판에, 천 년도 전에 전쟁포로들의 생활이 어땠겠어? 인권? 삶의 기본권 보장? 이런 건 지금 시대의 새로운 지구 발견만큼이나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였어.


그 곳에서는 당나라 관리들에 의해 지옥 같은 (포로+노예+난민) 생활이 30년 가까이 이어졌어. 이런 폭정 아래의 난민 자치지구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어.


먼저 일어난 건 거란족이었어. 참고로 이 당시 당 나라는 측전무후의 시대였어. 거란족의 항거는 1년 만에 진압이 되지만, 이를 이어 고구려 호랑이들이 드디어 일어나게 되는 거야. 이들이 누구야? 고구려의 후예들이야. 당나라의 포로로 끌려가 30년간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이들의 아픔을 가슴에 되새기며 전 개인의 스파르타쿠스화가 되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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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사람 3명만 있으면, 호랑이도 때려 잡는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어? 거란족의 반란은 실패로 끝났지만, 발해 호랑이들은 기세등등 여유를 부리며 도착한 당나라 정규군을 천문령 전투에서 박살을 내버려. 자 상상을 해보자고. 전쟁포로들이 1년간 준비한 무기가 얼마나 되겠어? 초강대국 당나라의 정규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건, 오직 살아남겠다는 깡다구와 고구려호랑이 정신 아니었겠어? 13척의 배로 일본함대를 몰살 시켜 버린 이순신 장군의 전투만큼 위대하고 대단한 승리야!


반란군의 캡틴 대조영은 천문령 전투의 대승 후, 무작정 당나라로 닥치고 돌격을 하지 않았어. 2보 전진을 위한 후퇴를 해. 최정예화된 투사들과 그 가족들을 이끌고 지리적으로 안전한 곳을 찾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장정을 시작해. 용맹과 투지만 믿고 당장 싸우기 보다 더 먼 미래를 그렸던 거지. 그런데 이 대장정이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고통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일 거야. 구급차를 대동하는 요즘의 국토대장정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겠지. 지금이야 국립공원에도, 걷기 좋은 둘레길이 닦여 있지만 이 당시에는 어디 평탄한 길이 있었겠어? 험난한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건 그래도 해볼 만해.


제일 심각한 문제가 머겠어? 샤워? 잠자리? 밥을 어디서 먹냐고! 농사를 지을 땅도 시간도 없어. 전투식량이 있는 것도 아니야. 굶주림과 강행군으로 인한 피로는 상상 조차 하기 어려워. 일행 중에는 갓난 아기를 비롯하여, 30년간의 포로생활 동안 늙고 병든 노인들도 있었겠지. 이렇게 그들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행의 시간을 보내고 동모산 일대를 수도로 하여 나라를 세웠어. 그리고 국호를 발해로 정하였어. 어때? 한 나라를 세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건 알지만 발해의 건국 스토리는 더욱 더 드라마틱 하지 않아?


사냥꾼에게 어미를 잃고, 남의 나라를 떠돌던 고구려의 호랑이 새끼들이 드디어 먼 길을 돌아 앞발을 치켜 들고 포효를 하며 일어난 거야. 발해! 하면서 말이야.


현대 역사로 치면 옷 한 벌 없이 짐승처럼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 미국에서 독립국가를 설립하는 정도의 어려움과 비견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숨 차게 달려 왔으니 잠시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아래와 같아.


- 패망한 고구려의 유민으로 당나라에서 포로생활 시작

– 30년간 당나라의 살인적인 압정을 견디며 전 국민의 검투사 화

- 노예 거주지 내 거란족의 봉기로 당나라 살짝 흔들렸으나, 결국 실패.

- 이후 고구려 호랑이들 일어남

- 대조영 지휘아래 천모령 전투에서 당 정규군에게 역사적 승리

-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2년간의 대장정 끝에 동모산 도착. 이 지역을 수도로 삼아 발해 건국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어. 이 당시 북방민족인 고구려는 지역 특성상 말갈족, 거란족 등이 포함된 국가였어.


발해 건국자인 대조영의 아버지 이름이 걸걸중상이야. 이름이 우리 정서랑은 약간 다르고 먼가 이상하지? 그럼 발해가 말갈족이 세운 나라야? 라고 질문할 수 있지만, 발해는 건국 후 당나라나 일본 및 기타 국가에 보낸 외교문서에 “우리 발해는 고구려의 기상과 정신을 이어 받아 그 틀 위에 세운 나라이다." 라고 명확히 밝혀. 따라서 발해는 지도층은 고구려이고 말갈 등 북방 민족이 포함되어 세우게 된 나라라고 볼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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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발해의 건국 스토리를 함께했어. 다음으로 200년의 짧은 역사지만 주변 강대국을 떨게 한 작은 나라 발해. G2 중국이 발해를 욕심내는 이유를 알아보자고.


대조영이 피눈물로 세운 발해를 이어받은 무 왕은 예전 고구려 땅의 회복을 넘어 국경을 점차 넓혀 나가. 지리적으로 발해는 당나라와 흑수말갈 사이에 위치해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 이 둘이 몰래 사랑을 키우고 있었던 거야. 발해 입장에서는 흑수말갈이 배은망덕 하기도 하지만, 열만 내고 있을 일이 아니었어. 이러다 여차하면, 양쪽으로 협공 당할 심각한 상황인 거야. 우리 모두 어떻게 세운 나라인지 잘 알자나.


그래서, 발해의 무왕이 친히 친동생 대문예를 흑수말갈로 가는 사절단 대표로 임명했어.


“브라더! 너는 사실 말만 사절단이다. 군사를 거느리지 않은 것이지 선전포고를 하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에 가서 저것들한테 우리 발해의 기상과 위엄을 확실히 보여주고 와야 한다. 당나라와 함께 꿍꿍이를 부리는 날에는 뼈도 못 추릴 거라고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 와야하네.”


“저기... 형님. 아니, 전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좀 현실적으로 생각 하셔야지요. 우리가 이러는 걸 알면 당나라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지금 당나라의 뜻에 어긋나는 외교노선을 펼치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저는 전하의 외교노선에 반대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저 말고 다른 사신을 보내 주십시오.”


동생은 출발 전부터 징징거리더니, 국경근처에 도착하여 형한테 다시 한 번 재고해 달라고 전갈을 보내.


“전하... 아니, 형님. 오는 내내 제가 한 숨도 자지 않고 생각을 해 보았는데 이건 아닙니다. 자칫하면 이제 겨우 초석을 닦은 나라가 지도상에서 먼지처럼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제발 당나라에 고개 푹 숙이고 쥐 죽은 듯이 우리 세대만이라도 한평생 좀 조용히 살다가 갑시다.”


이에 무왕은 동생에게 급거 귀국명령을 내려.


“아, 그놈 진짜 더럽게 징징대네. 너 같은 놈은 나라를 대표할 사절단이 될 자격도 없다. 넌 그냥 귀국해서 안전가옥에서 잘 지내라.”


하지만 무왕과 대문예는 형제이기 전에, 왕과 신하의 관계잖아. 고로 대문예는 왕명을 거역한 거였어. 이에 무왕의 동생 대문예는 어이 없게도 발해로 돌아가지 않고, 당나라로 귀순을 해버려. 더 황당한 일은 대문예가 귀순하고 발생하는데, 당나라 행정부가 언론을 상대로 한 브리핑을 들어보자고.


“아아. 당나라 국민께 알려 드린다 해. 우리나라 모처에서 거주 중이던 발해의 세자가 어제 밤 심장마비로 사망을 했다 해. 그리고 유족이 싫어할 것 같아 부검은 실시하지 않고 바로 화장하여 고국의 품으로 돌려 보낼 예정이다 해.”


“여기 질문 있습니다. 아니 지난 주까지 공식행사에 건강한 모습을 보이던 젊은 세자가 갑자기 심장마비라니요? 그리고 이런 급사는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부검이 반드시 필요한데 유가족의 동의도 없이 너무 일방적인 처사 아닙니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서면으로 대처하겠다 해. 그리고 두 번째 발표를 이어가겠다 해. 발해의 세자 자리는 매우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한 시도 비워 둘 수 없기에 얼마 전 당나라의 품으로 날아 온 작은 새. 즉, 발해 무왕의 친동생 대문예를 차기 왕위 계승자로 지명한다 해.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다 해”


이로써 고국 발해를 등지고 당나라 품에 안긴 대문예는 발해의 다음 왕 계승 서열 1위가 되어 버렸어! 혹시 말이야 당나라와 대문예가 서로 모종의 딜이 있지 않았을까?


정황상 당나라는 흑수말갈과 몰래 사랑을 키울 때부터, 발해의 대문예에 대해서도 왕위를 보장하는 사전작업이 있지 않았을까? 왕위를 줄 테니 말 잘 듣는 사냥개가 되어 달라는. 무슨 퍼즐 맞추기처럼 모든 게 이런 시나리오에 착착 맞아 들어가잖아.


옛말에 발해사람 3명이면 호랑이도 때려 잡는다고 했잖아. 세자가 죽고, 동생이 나라를 등지는 판국에 발해가 칠푼이처럼 가만히 있었겠어? 그냥 숨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면 발해가 역사 속에서 지금처럼 반짝이지는 못했을 거야. 발해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실행에 옮겨. 당나라의 해군전초기지인 등주에 대해서 선제 공격을 감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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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면전을 하면 당나라와는 게임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건 발해 지도층도 알았어. 그래도, 지는 것이 뻔하다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가만히 맞고만 있으면, 당나라는 더 무리한 요구를 할 거란 것도 자명한 일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나라의 해군기지를 공격한 건 발해의 엄청난 기상을 여실히 보여 주는 거야. 우리 역사에 선제공격은 극히 찾아 보기 힘든 선례야.


등주 해군기지로 말하자면,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마다 그들의 해군이 출정하던 핵심 해군기지야. 그래서 등주 공격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어. 그리고 발해가 해동성국이라고 불린 이유 중에 하나가 해군력이 육군보다 더 강해서라니, 전략적으로도 적절한 선제 기습공격이었어.


발해는 훌륭한 전술과 발해타이거즈의 용맹함을 발판삼아, 당나라 해군기지를 초토화 시켜버렸어. 당황한 당나라 현종이 급히 보낸 원정병력이 등주에 도착했을 땐, 발해타이거즈는 이미 컴 백 홈!


당시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발해였어. 그 이후 발해가 큰 탈 없이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건, 당 헌종이 양귀비에게 빠져 국가정사에서 손을 놓아 버리고, 대신들이 당나라를 닭나라로 만들어 가느라 발해까지는 신경을 못 썼다는 후문이... Thanks to 양귀비!


발해의 역사는 요절한 천재의 삶과 너무나 닮았어. 어찌하여 이렇게 탁월한 나라가 서기 926년 거란족의 침입에 단 3일만에 항복을 하고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을까? 정확한 기록이 없기에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먼가 석연치 않은 점은 분명히 있어.


그렇기에, 최근에 발해의 멸망이 백두산 화산 폭발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서기 900년경 백두산에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건 확실하다고 해. 그런데, 엄청난 화산 폭발이 일어난 정확한 년도는 확인 불가능 하다고 해. 발해 멸망 전이다 발해 멸망 후다 말이 많나 봐. 명확한 역사기록이 없는 상황에서 1100년 전에 일어났던 화산 폭발의 연도를 정확히 밝혀내는 게 현대의 과학 기술로도 당연히 쉽지는 않을 거야. 그런데도 화산 폭발은 발해 멸망 후일 거라는 이론만이 정설로 취급되고 있다고 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역사적 사건을 인과법칙에 의거하여 과학적으로 설명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미스터리나 황당한 가설 아니면 음모론 따위로 몰아가는 경향이 너무 강한 거 같아. 그토록 강대하던 나라가 3일만에 함락 되었다는 것은 약간 의문스럽지만 전혀 억지스럽지 않은 이론이며, 화산폭발로 발해가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다는 가설은 영화 같으니까 미스터리 방송에나 나와야 한다는 취급을 받는 건 너무나도 일방적인 주장인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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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처럼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어도 백두산 화산 폭발로 발해가 혹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건 아닐까? 발해의 멸망 원인이 화산 폭발이라는 말이 아니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발해 멸망이 926년이고 마야문명이 사라진 시기가 900년경이야. 이 시기에 지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에게 너무나 매혹적인 이름 발해, 마야.


천 년 전의 일에 블랙박스에 남겨진 영상처럼 선명한 복원과 사실 확인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야. 그러니 눈과 귀를 열고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검토를 해보자는 거지. 지금이라도 발해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야. 우리 정치하는 분들이 중국으로부터 서해안 꽃게 뿐 아니라 우리 역사도 꼭 지켜주길 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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