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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30. 화요일

편집부 챙타쿠








6월 23일,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OHCHR : Office of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서울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OHCHR 서울사무소(이하 유엔 북한인권사무소)는 한시적으로 운영되었던 유엔북한인권 조사위원회의 기능을 상설화한 단체로, 유엔의 인권 조사위원회(COI)의 권고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다. 북한 내 인권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인권침해 가해자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활동을 지원하는 게 주 업무다. 


유엔 북한인권사무소의 개소 소식을 접한 북한 측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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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28일 논설에서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서울에 둥지를 트게 됨으로써 북남관계는 최악의 파국을 맞게 되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27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보도에서도 “괴뢰패당은 매일과 같이 우리의 핵위협과 인권 문제를 떠벌이면서 미국, 일본 상전과의 군사적 결탁을 강화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며 “박근혜 패당이 지금과 같이 외세와 결탁하여 동족대결을 계속 추구한다면 전쟁 밖에 초래될 것이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라고 전쟁불사까지 외치는 모양이다.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불참을 통보하고 우리나라 국민 2명에게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하기까지 했다. 왜 우리 집에다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고 화를 내는 것 같다.


신입 (나부랭이) 기자가 이런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이 사무소가 얼마나 위험한 단체이기에 북한이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인가. 당장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주최하는 북한인권 정책 토론회인 <OHCHR 서울사무소에 대한 기대와 전망>에 잠입을 시도했다. 딴지 미녀 필진 김현진 작가와 사진 기자 좌린도 이 위험천만한 잠입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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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는 무난하게 입성했다. 최근 여당 원내대표가 호구가 되었다는 소문이 무성한 곳이다. 어디까지나 잠입이니까 딴지 기자임을 숨기리라 굳게 다짐했지만, 소속은 무슨, 그냥 들여보내줬다. 당당한 척 하는 걸음으로 정문을 지키고 있는 의경 오빠들동생들을 지나쳤지만, 놀라울 정도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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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넓은지 코끼리 버스 같은 차도 지나다녔다. 잠시 사파리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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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는 국가 기밀로 알려진, 태권브이가 나오는 국회 안에서 열리는 게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의원회관에서 열린다. 태권브이 취재는 다음으로 미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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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는 삼엄한 느낌으로, 의원회관에 들어가려면 짐 체크와 열 체크를 거쳐야 한다. 거기다 공항에서만 할 수 있다는 금속탐지기까지. 두 손에 면세품 가득 들고 출국하는 느낌이라 조금 설렜지만 공항과 다르게 출입증을 발급 받아야 한다. (길 잃은 애 같아서 보내준 것 같긴 하지만 화장실은 쉽게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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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신청서와 주민등록증을 제출하면 출입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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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회관 1층 맨 끝이 <OHCHR 서울사무소에 대한 기대와 전망>가 열리는 제2소회의실이었다. 이 사진을 찍고 입구에 우산을 놓고 왔다는 걸 알아서 힐 신고 입구까지 뛰어갔다 왔더랬다. 매력은 못 흘리면서 물건은 잘 흘리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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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걸음 한 게 억울해서 다과를 두 손 가득 챙겼다. 방명록에 이름도 쓰라고 하는데, 어디까지나 난 잠입취재이므로 잡혀가도 되는 김현진 작가만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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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자의 건망증 덕에 2시가 임박한 시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무래도 좋은 자리 잡긴 틀렸다 체념하던 차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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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정말 없다. 다들 너무 한다. 북한도 쫄게 만든 파워풀한 사무소의 앞날을 얘기하는 자리인데 파리도 몇 마리 안 보이다니. 입장 절차는 클럽 VIP룸 들어가는 것보다 빡세게 하더니 웬걸, 까보니 롤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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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가 조금 넘은 시각, 사회자가 토론회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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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변행사마냥 국회의원들이 메인인 것 같은 스케줄이다. 나경원의 이름이 보인다. 알고 오긴 했지만, 책자에도 올라와 있을 줄은 몰랐다. 나경원은 황우여와 다르게 진짜 올 모양이었다. (황우여도 처음에는 참석한다고 했으나 책자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 중간에 불참 의사를 표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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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의 사회자인 라종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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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제창 중인 헌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자꾸 출입문만 쳐다보는 내 맘을 아는 지 모르는 지 4번째로 연단에 설 나경원은 오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의례가 끝났다. 사회자는 개회사를 해줄 헌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연단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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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길었던 위원장 생활을 접는다고 한다. 살펴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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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국회인권포럼 책임연구위원


홍일표 국회인권포럼 책임연구위원이 개회사를 하고 있는데, 목록에도 없던 추미애 의원이 왔다. 추미애 의원의 등장에 홍일표 위원이 잠깐 당황한 듯 보였으나, 당황하지 않고 “추미애 의원이 왔네요.” 하고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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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온 줄 알았던 추미애 의원이 축사를 했다. 갑자기 온 게 아니었나. 
(혹시 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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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거친 생각과 추미애 의원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정대철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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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축사를 하는 정대철 새정연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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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말을 경청하는 아름다운 시간이 지나가고, 예정보다 10분 늦게 개회식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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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타임 후, 국회의원들과 기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분명 ‘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주최한 행사인데, 메인은 개회식이라는 느낌.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에서 중국이 블루스크린을 띄웠듯, 뭔가 엄청 하려다가 삑사리가 난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장대한 개회식이었다. 머릿수는 많은데 다들 한 마디는 해야겠고, 성대하게 치르고 싶은데 정작 알맹이는 없었던 멋진 개회식이었다. 이런 식의 행사는 북한이 잘하던데 아직 북한을 따라잡으려면 먼 것 같다. 다만 사람들을 마음대로 동원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체제 하에서 이게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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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사가 끝나고 토론회를 시작하기 전, 쉬는 시간에 떠나가는 국회의원들의 뒤를 밟은 건 아니고 따라갔다. 딴지일보 기자라고 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알아줄 테니까 굳이 명함은 들고 가지 않았다. 절대 까먹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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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작가가 정대철 새정연 상임고문에게 받은 명함.
올해의 명함이라고 뽑을 만큼 인상적이다. 그
래, 사람이라면 이런 명함 정돈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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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이 끝나고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개회사에 시간을 오바해서 사용한 터라 빠르게 진행한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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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가량의 발표와 토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자, 드디어 본 행사다. 무엇이 북한을 떨게 만들었나 확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국뽕을 잔뜩 맞은 듯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나는 배부된 책자를 펼치고 발표자들의 책읽기토론 내용을 따라가기에 여념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말았다. 


윤남근(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특별위원장) "유엔 북한인권사무소에 대한 기대와 전망: 국가인권위원회의 입장"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유엔총회에 북한인권보고서를 제출했으며, COI의 권고사항에 의해 북한인권 현장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한다. 북한인권사무소는 북한의 새로운 인권침해 사실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고 기록하기 위함이며,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것이다.

서울에 북한인권사무소를 설치한 것은 민주화와 인권신장을 위하여 획기적인 일이다. 북한의 반발도 북한 주민에게 영향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북한인권사무소가 중앙합동신문센터나 하나원의 탈북자들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경우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의 발표였다. 다들 안 읽을 거 안다.



한기홍(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 “기대와 전망-NGO의 시각에서”


NGO들은 북한인권사무소와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협력을 할 필요가 있으며, 북한인권사무소의 개소는 그 동안 진행된 국내외 북한인권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최근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탈북자들의 경험담이 널리 퍼지고 있다. 그러나 교차확인이 되지 않는 1인 증언도 의구심 없이 퍼지는 경우가 있다. 증언이 진실인지 아닌지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북한인권사무소와 탈북자를 연결해주는 곳이 주로 NGO이기 때문에 NGO와 운동가들은 활동 자세를 되돌아봐야 한다.


올타쿠나! 무릎을 탁 쳤다.

탈북자의 증언이 진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확인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알아서 잘들 하겠지.



조정현(국립외교원 교수) “UN 북한인권 현장사무소 설립과 북한인권 개선”

COI의 후속작업 중 가장 가시적인 성과가 북한인권사무소의 설치다. 북한인권사무소는 표현의 자유가 있으나, 한국의 법령을 준수할 의무도 있다. 북한인권사무소의 임무는 기본적으로 북한인권 활동을 포괄하고 있으며, 임무 간의 상호연관성을 고려해야 한다. 임무는 총 다섯 가지로, ‘감시 및 기록 강화’, ‘책임규명 보장’, ‘특별보고관 지원’, ‘국가 등 모든 이해당사자의 관여 및 역량강화 증진’, ‘북한인권 상황의 가시성 유지’가............


아, 미안하다. 잠깐 딴짓하느라 뒤를 놓쳤다. 절대 발표 내용이 막연했던 건 아니다.



김수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OHCHR 서울 사무소에 대한 기대와 전망”

북한인권 현장조직의 역할은 ‘북한인권 상황 모니터링 및 기록 강화’, ‘책임규명 확보’, ‘모든 유관국·시민사회·기타 이해관계자와의 관여 및 역량 강화’, ‘홍보활동 등을 통한 북한인권 상황 가시성 유지’다. 북한인권사무소에 대해 북한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비난전과 행동을 동시에 표출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인권 현장조직이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증거를 축적해나가고 지속적으로 공론화를 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외교적 고립은 심화될 것이다. 다만 자료를 축적함에 있어 정보원에 제약이 있다는 한계가 있고, 정부 차원의 통합된 자료 축적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어? 방금 뭔가 중요한 얘기가 나왔던 거 같은데?

북한의 외교적 고립?


백범석(경희대 교수) “OHCHR 서울사무소에 대한 기대와 전망”

인권이사회와 총회 결의문은 북한인권사무소의 임무를 ‘북한 인권침해 실태 조사, 기록 및 문서화’, ‘개인의 형사책임 추궁’, ‘북한인권특별보고관 활동 지원’, ‘북한인권문제 국제사회 환기 그리고 이를 위한 관련국가·시민사회·이해관계자 협력 및 연대강화’로 규정한다.

북한인권사무소가 활동할 때 우리 정부를 고려해야 한다. 국내법과 정책들과 사무소가 활동하는데 충돌이 없는지 조율해야 하며, 통일을 준비하는 데 있어 사무소 활동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정책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북한인권사무소는 유엔의 기구이기 때문에 독립적인 조사 수행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질적 대응변화와 움직임이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을 위한 바람직한 변화인지에 대해 고민을 %$#@&!@#!


뜬금없이 특수기호 쳐놓은 걸 보니 내가 졸았나 보다.

잠입을 위해 숨을 죽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졸아버렸다. 이해해주시라.

토론이라 그래서 백분토론 같은 걸 생각하며 왔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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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으로부터 3~4개 정도의 질문이 나왔으나, 전문적인 영역이라 하나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신입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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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이었던 4시 반을 조금 넘긴 시각, 길었던 토론회가 끝났다. 처음 예상과는 다르게 의외로 제시간에 끝났다. 박수를 치고 싶었지만, 긴 토론에 너덜너덜해진 터라 그럴 수 없었다. 듣는 것만 해도 이렇게 지친다니 두 번 하라면 견딜 수 없을 만큼의 힘듬이었다. 아니, 그럼 발표자들의 체력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에너지 드링크를 여섯 병씩 드신 것 같은 경이로운 체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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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으로 에너지를 보충했던 나는 토론회가 끝나자마자 회의장을 나섰다. 그것도 무척 빠른 걸음으로... 이때만큼은 우사인 볼트 뺨을 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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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초점이 안 맞는 사진을 찍을 만큼 힘들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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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오고 싶지 않은 국회의사당을 뒤로 했다.


이렇게 신입 (나부랭이) 기자의 첫 잠입취재는 끝났다. 인정하겠다.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우며 돌아다니던 잠입취재는 부치는 체력 덕분에 패배로 끝났다. 기나긴 토론이라는 복병이 존재할 줄 몰랐다. 하지만 나의 패배가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을 염두에 달라. 인권위와 COI의 활동을 규탄하던 북한이 수면가루를 뿌린 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여러 사람이 수면을 호소한 증거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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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건진 게 없어 마치 국회나들이로 착각할 수 있겠으나 아무도 나를 눈치채지 못했으므로 '잠입'은 성공이라 자평해본다. 신입의 잠입 취재기니까 취재까지 성공하는 건 바라지 말자. '잠입'엔 성공했으니 반은 잘 한 거다. 이러다 언젠가 나도 잘하겠지 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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