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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청문회가 진행되면서 ‘위장전입’ 문제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문제가 왜 이토록 불거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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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경(링크)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3일, 국민성장 포럼에서 “병역 면탈 · 부동산 투기 · 탈세 · 위장 전입 ·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는 고위 공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해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반칙으로 얻은 특권, 그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득권, 여기서 파생된 불평등 · 불공정 ·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던 것. 


그런데, 정작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된 직후부터는 ‘반칙’을 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만한 인물들이 지속적으로 인사에 거명되기 시작했다. “깨끗한 척 혼자 다 해 놓고 왜 이제와서 딴소리냐”는 딴지는 그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특히 ‘위장전입 논란’은 한국의 전입/전출 시스템의 오랜 약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문 대통령이 5대 비리 척결 발표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다름이 아니다. 기득권 세력이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으로 불평등, 불공정을 만들고, 그 불공정한 구조에서 이익을 취하는 부정부패의 수단과 방법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말이 ‘5대 비리’지 사실상 기득권 층이 사용하는 방법들은 훨씬 다양하다. 문 대통령은 그 중 대표적인 5가지를 선정한 것 뿐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필자가 ‘위장전입’과 관련해 언급을 하려는 이유는 하나다. 한국에서 ‘위장전입’ 문제는 전출입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어 오해와 논란의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병역 면탈이나 부동산 투기, 탈세 그리고 논문 표절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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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트위터



지금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전입/전출 신고 제도는 온 국민을 위장전입자로 만들 수 있는 허점이 있다. 사실, 이번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면서 너도나도 SNS를 통해 위장전입 의 전적이 있음을 밝히는 이른바 ‘위장전입 커밍아웃’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단순한 ‘문통쉴드작전’이 아니다. 누구나가 한 번쯤 해 봤을 법한 위장전입, 이렇게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밝히는 사람의 수가 적지 않은 것만 봐도,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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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오마이뉴스(링크)



위 기사는 우리 나라의 전입/전출 신고 제도와 관련, 전입신고를 하지 못하는 전세 사례, 부동산 취득과 세금을 줄이기 위한 사례, 그리고 강남의 8학군으로 학교 배정을 받게 하기 위한 사례 등 다양한 위장전입 사례를 전한다. 

이렇듯, 우리 나라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위장으로 전입을 할 수 있고, 뜻하지 않게 위장전입이 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러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다양한 위장전입이 가능한 우리나라 전입/출 신고 제도와 비교하여 , 선진국에서는 어떻게 전입/출 신고가 이뤄지고 있는 알아보자. 



영국에서의 전입/전출 신고 제도


영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부동산을 ‘Property’ 혹은 ‘Residential’이라고 한다(예: ABC Property, Morgan Residential). ‘Property Manager’(PM)라고 불리는 영국의 부동산 중계업자들은 국가에서 공인하는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관련된 직종에서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시험도 매우 어렵고 과정도 까다롭기 때문에 아무나 PM 으로 일 할 수 없다. 


영국의 PM은 자신을 단순히 집 소개해 주고 중계 수수료를 받는 사람이라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필자도 영국에 거주하며 이사를 많이 다녀봤지만 부동산에 만난 PM 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이유는, ‘집’에 대한 인식이 한국과 영국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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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국대표 한인신문 코리안위클리(링크)



위 링크에서도 언급했듯, 영국인들에게 있어 집은 ‘거주의 수단’이 아닌, ‘내면의 성’ 혹은 ‘가장 안전한 피난처’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집과 정원 가꾸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때문에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이사도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흔한 이삿짐 센터가 거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영국인들 중에는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는 가족 및 친지들과 한 지역에서 평생을 거주하는 사람들까지도 다수 만났다.  한번은 어느 노부부의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아주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물건을 봤다. 이 집으로 이사를 온 게 언제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1940년이라고 답했다. 한 집에서 무려 70년이 살아온 것은 새것보다 오래되고 전통있는 골동품에 더 후한 점수를 주는 이들의 태도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영국인들에 있어서 집은 단순히 쉼을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선다. 자신의 삶이 녹아있고 추억과 함께 역사가 담겨 있는 곳이 바로 집이다. 따라서 영국인들은 집을 관리하고 이를 사고 파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과 그들의 직업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물론, 유학생이나 잠시 동안 영국을 방문하는 이들은 부동산 업자에게 사기 당한 좋지 않은 기억이 많을 수 있겠지만, 현지에서 거주하며 장기간 체류하는 이들은 부동산 업자가 단순히 ‘집 소개하는 사람’ 정도로 여겨지지 않음을 잘 알 것이다. 


이처럼 거주지에 대한 남다른 인식을 하고 있는 이들의 전입/전출 시스템은 한국의 시스템과 다르다. 집의 이름이 주소인 것처럼 집주소를 관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영국의 우편제도를 살펴보면 각 주소와 우편번호의 효율성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영국에서는 부동산과 해당 지역의 ‘카운슬’(Council, 한국의 구청과 같은 기관)이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부동산을 통해 집을 구하게(월세 혹은 매매) 되면, 계약자와 가족 사항이 자동적으로 카운슬에 통보된다. 부동산을 통해 집을 계약하고 이사함과 동시에 계약자 본인과 입주자에 대한 정보가 관할 구청인 카운슬에 자동 등록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임의로 관할 구청에 주소를 등록하거나 등록해지 할 수가 없다. 사실상 부동산이 작은 주민센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렇게 부동산을 통해 한 가구가 한 주소에 등록이 되다보니 같은 주소에 여러 명의 이름을 전입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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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디언



영국에서는 반드시 납부해야 하는 ‘카운슬 텍스’( Council Tax, 지역주민세)도 위장전입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다. 부동산을 통해 집을 구해 입주를 했을 때 관할 구청에 주소가 자동으로 등록됨과 동시에 세납자가 되어 주민세(쓰레기 수거, 분리수거, 방범 및 기타 제반 비용)를 납부해야 한다. 이는 소득세와는 별도로 집과 주소 등과 관련된 관리 비용이다.  따라서 한 곳에 여러 세대가 동시에 거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위장으로 전입을 했을 경우에는 불필요한 주민세 지출을 감당해야 한다. 부당한 방법으로 여러 곳에 주소를 등록을 해 놓으면 ‘세금폭탄’을 맞게 된다.


따라서 영국에서는 내가 살지 않는 곳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전입신고를 할 수가 없다. 주소 등록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계획한 후, 해당지역의 부동산과 계약이 완료되어 해당 지역 카운슬에 등록이 되어야만 최종적으로 전출 신고와 주소 이전이 가능하다. 자녀의 학교 등록도 주소 등록이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집을 구하지 못하면 주소 또한 등록이 불가능하다. 영국은 위장전입이라는 것 자체를 할 수 없도록 시스템 화 해 두었다. 


참고로 부동산 및 주소 이전과 같은 사안에 대한 법령은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링크) 집을 매매할 때 필요한 절차와 각종 행정 절차, 그에 해당되는 법령이나 시행령 등도 법무부 홈페이지를 통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 국민의 편의에 맞게 정부가 제공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스스로 ‘5대 비리’라 명확하게 선정한 목적은 기득권을 유지를 하기 위해 사용된 반칙 그 자체와 이를 사용한 이들에 대한 경계일 것이다. 전입을 하기 전 불가피하게 전입신고를 했다면 문자적으로 ‘위장전입은 위장전입’이다 라는 공식이 성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위장전입’이라는 단어의 문자적 해석을 넘어, 인사 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을 다룬다면 이를 이용하기 위한 목적과 악용한 경위 등에 대한 판단이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문제를 삼아야 한다면 단순 주소지 변경이 아닌 부동산 투기나, 기타 다른 목적일 경우에 해당되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원칙은 지키되 현실성을 반영하겠다고 한 것도 이러한 측면을 살핀 것이라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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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위장전입의 논란이 단순히 상대 진영 인사를 깎아 내리는 것으로, 그래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청문회를 통해 새롭게 발견된 현재의 전/출입 신고 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직시하고 이를 개선하는 데까지 가야 한다고 본다. 


번외로, 영국은 국가의료체계를 갖추고 있어 아기가 태어나면 병원이 부모와 아이의 인적사항을 등록하고 이 정보는 영국등록청으로 자동으로 이송된다. 따라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더라고 국가는 국민 ‘+1’ 혹은 ‘+2’이 되었다는 소식을 알 수 있다. 물론, 개별적으로 출생신고를 해야만 하고, 2주안에 신고를 하지 않으면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한다. 반대로 누군가가 죽게 되면 병원에서 사망진단을 하고 이는 등록청에 자동 통보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영국은 태어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정부에서 책임 관리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게 된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영국의 제도를 모두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이번 위장전입 논란이 논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운영 시스템에 대한 재고로 이어졌으면 한다. 





BRYAN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