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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조기 총선 결과가 발표됐다. 보수당 318석, 노동당 262석, 스코틀랜드 독립당 35석, 자유민주당 12석 그리고 기타 22석이다. 보수당이 라이벌인 노동당보다 57석을 더 확보하며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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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BBC>


보수당의 승리다. 얼핏 보기엔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는 어느 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했느냐로 승패를 따질 수 없는 몇 가지 상황이 있다.


 

1.조기 총선의 배경


지난해 6월 24일,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 결과가 ‘찬성’이 된 후, 보수당은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유럽연합 탈퇴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영국은 환율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황이다. 데이비드 카메론 전 총리가 승부수로 내걸었던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결국 보수당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오세훈의 추억). 그렇게 여야의 기본적인 합의조차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던 새 총리는 또 다시 조기 총선 카드를 꺼내 들었다(링크).


국민들의 직접적인 선택을 통해 총리가 된 것이 아니라는 자격지심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그녀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 다시 한번 국민의 신임을 얻고자, 2) 강력한 새 리더쉽으로 보수당의 ‘하드 브렉시트’를 관철시키고자, 의회에 조기 총선을 제안했다.


 

2.투표 결과의 의미: 다수당? 지지율의 승리!


따라서 이번 투표에서 보수당은 단순히 다수당이 돼야함을 넘어 ‘강력한’ 총리를 만들어줄 만한 결과를 얻어야만 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기존에 보유했던 330석에서 12석이나 모자란 318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과반조차 넘지 못해 다른 당과 연정까지 해야 하는 실정. 영국 의회는 총선 실시 후 다수당이 존재하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해 아래의 링크와 같은 의회 법을 재정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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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arliament>

 

일반적으로 다수당이 없는 상태의 의회를 ‘Hung Parliament’라고 부른다. 벼랑 끝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는 뜻이라고. 이렇게 ‘Hung Parliament’가 되면 두 세 개의 당이 연합해서 과반이 넘는 의석수를 만들어 그중에 한 명을 대표, 즉 총리로 세운다. 따라서 연정을 했던 각 당에서 추구하는 바가 다를 경우 총선 공약 취사선택이라는 최악의 수까지 등장하게 된다. 실제로 데이비드 카메룬이 처음으로 총리가 되었으르 때도,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ic)과 연정을 했었다.


그렇다. 안정적인 과반의석 상황에서 괜히 조기 총선을 들먹였다가 강력한 리더쉽은 커녕 총리직 사퇴요구를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조기 총선은 보수당의 승리가 아닌 참패다.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다.

 

뿐만 아니라 각 정당이 획득한 지지율은 42.4% (보수) vs 40.0% (노동)으로 불과 2.4%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불과 한두 달 전만 하더라도 정당 지지율이 20% 가량 차이가 나던 것과 비교해 보면 보수당이 폭망한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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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YouGov>


어쩌다 이렇게 폭망하게 됐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인구 밀집 지역인 대도시들, 특히 런던을 비롯하여 맨체스터, 버밍험, 리즈, 쉐필드 등 영국을 대표할만한 대도시들은 모두 노동당 소속의 의원들이 당선됐다. 뿐만 아니라 지방의 대학도시들도 마찬가지. 따라서 선거 결과로 만들어진 지도를 보면 대부분 파란색(보수당)이지만, 사실 파란색으로 보여지는 곳들은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지역들이다. 결국, 대학을 다니고 소비를 하는, 상권이 발달하고 경제가 살아 움직이는,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의 사람들은 대부분 노동당을 지지한 것이다(한국과 오버랩된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진정한 승자는 노동당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실제로 노동당은 지난번보다 30석을 보태 총 262석에 20%대의 지지율을 40.0%까지 끌어올렸다).

 


3.노동당의 승리가 값진 이유: 회복


20여 년 전, ‘토니 블레어’(Tony Blair)라는 유능하고 잘생긴, 거기에 화려한 언변까지 겸비한 젊은 리더가 등장하면서 영국 노동당은 그야말로 절정에 다다른 인기를 누렸다. 총선 역사상 419석이라는 유례없는 압도적 지지로 영국의 총리가 된 그는, 실제로 일도 굉장히 잘했다. ‘제3의 길’의 주인공 ‘앤소니 기든스’(Anthony Giddens, 런던정경대 사회학과장)의 정치철학을 바탕으로 영국을 조금씩 바꿔 나갔던 그는, ‘모든 계급의 중산층화’라는 슬로건과 함께


1) 정치: 귀족 중심의 혈통적, 종신직 상원의원제도 개혁,

2) 노동: 최초로 최저임금제를 실시하여 간단한 파트타임 직업을 갖더라도 안정된 수입을 보장,

3) 지방분권화: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의 의회 설립 허가 및 독립된 자치제 확립,

4) 이민정책 완화,

5) 최초의 아일랜드 평화협정,


까지 이끌어냈던 인물이다. 


1994년부터 2007년까지 13년간 3번에 걸쳐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던 토니 블레어, 그러나 지금 토니블레어는 영국인들에게 ‘악마’ 혹은 ‘기회주의자’로 호칭된다. 부시와 함께 이라크 전쟁을 이끌었던, 그리고 퇴임 후에는 돈과 여자를 밝히는 인물로까지 폄하됐다. 실제로 블레어는 퇴임 후, 사우디아라비아의 모 석유회사와 비밀리에 수 억원의 연봉협상을 했다고(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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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토니 블레어가 점점 조롱거리가 되어가는 것도 문제였지만, ‘노동당’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당의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 열렬한 지지를 보여줬던 노동당원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고, 그렇게 노동당에 등을 돌린 이들은 쉽게 마음 문을 열지 않았다. 노동당은 ‘진보’라는 색깔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보수당에 정권을 넘겨준 지 10년 만에 노동당은 다시 부활했고 그들만의 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번 총선에서 35세 이하 청년 투표율은 지난 선거 때보다 12%포인트나 증가했고 청년층의 노동당 지지율은 전체 평균치보다 51%포인트 이상 높았다. 영국 가디언의 ‘카메론 피시윅’(Cameron Fishwick) 논설위원은, 이러한 수치는 영국에서 의회 정치가 시작된 이례, 처음으로 젊은이들이 정치참여가 실제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평가했다. 이름하여 ‘Youthquake’ (‘청년반란’ 혹은 ‘젊은이반란’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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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BBC>


다수의 청년층이 투표장에 등장함으로 노동당의 지지율이 상승했고, 지난 블레어 시절과 버금가는 수준의 지지율을 회복했다. 그렇다. 이번 선거 결과는 노동당 슬럼프 종결을 의미했다.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당이 아니라는 것이, 이번 ‘조기 총선’으로 증명된 셈이다.



4.노동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제레미 코빈


영국의 노동당 당수인 제레미 코빈은, 학력은 고졸에 가정은 이혼만 두 번(물론 가정 불화가 원인은 아니었지만), 허름한 옷 차림에 왠지 '영국 신사'라는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동네 아저씨다. 하지만 그는 1983년부터 자그마치 총 여덟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된 8선 의원이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 별볼일 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정치인으로서 극히 드문 순수함 그리고 사회정의를 향한 열정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특히 가장 중요한 ‘일관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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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빈은 처음 정치에 입문해 지금까지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며 정치했다.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고 철도 국유화를 외치며 노동당의 마지막 남은 사회주의자로 꾸준히, 일관된 목소리를 내왔던 그는, ‘영국의 여름혁명’을 통해 노동당 당수가 되었다.


처음 노동당 당수가 되겠다고 후보 등록을 할 때, 자신을 위해 지지서에 확인을 해 줄 35명이 없어 후보 등록조차 하지 못할 뻔 했던 그는, 블레어 이후 늘 20%대에 정체되어 있던 지지율을 40%까지 끌어 올렸다.


핵 폐기, 대학등록금 철폐, 철도국영화, 부동산 정책 등을 통해 최상류층,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되어 움직이는 나라가 아닌,  가치와 인권을 중요시하는 나라, 다수를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의 도전은 30여 년간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일관성은 영국을 영국답게 할 수 있는 자질로 손색이 없음이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야 비로소 제레미 코빈이 노동당을 ‘접수’했다는 이코노미스트의 보도는 센스가 있어 보인다(링크).

 


5.덧, 길을 잃은 보수


데이비드 카메론 전 총리는 총선 승리를 위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공약으로 내 걸었고 결국 사퇴했다. 테레사 메이 총리는 ‘하드 브렉시트’를 관철시키고 리더쉽을 굳건히 하고자 ‘조기 총선’을 선언했고 총선에서 참패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감행된 보수당의 정치적 도박은 결국 자기 발등 찍는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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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Guardian>

 

이로써 ‘브렉시트’ 문제를 시작으로 쟁점이 되고 있는 모든 현안들, 특히 대학등록금 문제와 핵폐기, 의료문제, 환경 문제 등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지난해 6월 24일, 브렉시트를 시작으로 또 한번 역사 속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자 했던 영국의 꿈은, 트럼프의 국수주의와 맞물려 전 세계를 자국중심주의로 이끌어 갈 듯 보였으나,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한풀 꺾인 셈이다(503호가 구속된 한국도 마찬가지). ‘Hung Parliament’로 대학등록금이 최고까지 치솟았던 지난 2010년을 기억한다면, 지금 영국의 보수는 길을 잃은 어린양이나 다름없다. 이제 보수당은 어떤 길로 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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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