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10만 원짜리 기레빠시 50개를 샀다. 기레빠시라고 하니 뭐 대단한 것처럼 들리지만, 아니다. 말 그대로 자투리다. 포털에 언론코드를 받고 언론사 흉내를 내는 수백 수천의 언론사가 있다. 이들의 주요 생계수단은 어뷰징이다. 히팅수가 곧 돈이기에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비슷한 기사를 쏟아낸다. 당연히 낚시질도 포함된다. 이렇게 연명하는 이들이기에 10만원짜리 기사라도 올려달라면 올려준다. 별 내용도 없다. 우리 쪽 보도자료를 그대로 올릴 수도 있고, 약간 손 봐서 올릴 수도 있다. 내용은 중요치 않다. N의 기사를 밀어낼 수만 있으면 된다. 내 사수와 동기들은 이런 10만원짜리 기사를 ‘기레빠시’라고 부른다. 기사로 쓸 수 없지만, 악의적인 기사를 밀어낼 때 딱 맞아 떨어진다는 의미다.
여기 와서 기레빠시를 살 줄은 몰랐다. 기업이 악의적인 기사를 밀어내겠다고 자투리 기사를 산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상황이지만, 이 나라에서는 이게 현실이다.
인터넷 언론사들도 먹고 살겠다고 하는 짓이지만, ‘먹고사니즘’이 모든 걸 용납하는 건 아니다.
“개새끼들... 한 번 붙어보자고”
점심시간이 다 지나도록 기사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들도 양심이 있었던가? 온갖 억지와 악의(惡意)로 뒤범벅이 된 기사를 내놓기에 그들도 부끄럽기에 내놓지 못하는 걸까?
하긴, 이런 기사들이 많다. ‘협박용’ 아니, ‘거래용’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들은 그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면 폐기된다. 그렇기에 거래의 성사율을 높이기 위해 이런 기사들은 밖으로 나오는 기사들보다 훨씬 더 ‘독하다’
나 혼자 열 낸 건가? 괜히 혼자 오바해서 치고 나간 덕에 B와 기레빠시 광고를 문 애들만 신난 게 아닌가란 생각을 했는데,
“팀장님! N에서 기사 띄웠습니다.”
'씨바, 고맙다 N아! 너희들의 양심 없음이 고맙게 느껴질 때도 있구나.
“대행사에 전화 넣어!”
전화를 넣기 전에 대행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O차장입니다.”
“K대행사입니다. 지금 N 기사 확인했습니다.”
“시작했나요?”
“예, 언론사 연락해서 광고... 아니, 기사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올라갑니까?”
“1차로 10개 올리고, 상황 봐서 2차로 나머지 다 털어 넣을 겁니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서둘러 기사를 확인했다. 『A社의 방만한 경영이 불러온 참담한 매출추락』, ‘비문 아냐?’란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무시했다. 초짜 기자들이 까는 기사를 쓸 때는 부사를 미친 듯이 쑤셔 넣는다. 신문기자라면, 지면의 제약 때문에 훈련이 됐겠지만, 인터넷 기자들은 그런 훈련이 덜 됐는지 부사나 접속부사를 남발한다.
기사 내용은 내게 날아왔던 것들과 대동소이했다. 바뀐 점이라면, 오탈자를 걸러냈다는 정도? 기사는 포털에서 점점 뒤로 밀려났다. 내가 산 기레빠시들이 착착 올라왔고, N의 기사는 순식간에 뒤로 밀렸다.
'한 숨 돌리는 건가?'
이 정도에서 마무리 되는 건가? 아니, 여기서 끝나진 않을 거다. 지금쯤이면 N도 눈치 챘을 테고,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 하고 있을 거다. 기사를 다시 올려 조질지, 아니면 연락을 해서 협박을 할지.
예상했다는 듯 박과장이 우물쭈물하며, 핸드폰을 들고 날 바라본다.
“N이야?”
“예”
“무시해.”
“......예”
요란한 진동음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내 핸드폰이 떨렸다. 진동이 옮겨 온 걸까? H기자다. H기자의 마음을 대변하듯 핸드폰은 요동쳤다.
“O차장입니다.”
“고의적으로 전화 피하시더니, 이제야 전화 받으시네요.”
“제가 전화를 피했는지, 아닌지 어떻게 증명하실 겁니까?”
“정말 해보자는 겁니까?”
“뭘 해보자는 거죠?”
“지금 기사 밀어내고 있잖습니까!”
“기사를 밀어내요? 언론사들이 기사 쓰겠다는 데 그걸 제가 어떻게 막습니까? N도 기사 올리겠다고 저한테 말하지 않았습니까?”
“휴... O차장님 일 어렵게 만들지 마시죠.”
“어떻게 하면 어렵게 만들지 않습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반론권 차원에서 기회도 드렸잖습니까?”
“반론권 차원에서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전달한 거 같은데요?”
“근거가 없잖습니까? 이쪽에 와서 충분히 설명을 하고...”
“설명할 게 없는데 뭘 더 설명하라는 겁니까? 대중 수출이 70%인 회사에서 사드 배치되고 나서 경색국면 들어간 거,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다 압니다. 그런데, 그 매출하락이 경영을 잘못해서 그렇다? 도대체 그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이러깁니까? 지금 우리 H부장 길길이 날뛰고 난리도 아닙니다. 그거 뜯어말리고, 지금 마지막 기회 드리는 건데”
“마지막 기회가 뭡니까?”
“......여기 오셔서 사과하시고”
“도대체 뭘 사과하라는 겁니까?”
“정말 이러깁니까?”
“기사 쓰겠다고 해서 우리 쪽에서 자료 보냈고, 자료 받아서 그쪽에서 마음대로 기사 썼는데, 뭐가 잘못이죠? 우리가 기사 정정해 달라고 했나요? 기사 올리지 말라고 했나요?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야지 사과를 하든 용서를 빌든 할 거 아닙니까? 안 그래요? 우리가 뭘 요구한 게 있습니까?”
“......”
“우리 회사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과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모르겠구요. 제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시든가, 아니면 용무 없는 걸로 알고 끊겠습니다.”
“O차장!”
전화를 끊었다. 팀원들은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다. 기자와 싸우다니...
“박과장”
“예!”
“핸드폰 꺼놔.”
“예?”
“핸드폰 전원 끄라고.”
“아... 예”
“지금부터 N 전화는 내가 받는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이것들 계속 기사 올릴지도 몰라. 인터넷 서치하다 N쪽 기사 올라오면 바로 보고해.”
“예!”
“김과장!”
“예!”
“대행사 연락해서 광고 더 사놓으라고 말해.”
“예, 몇 개 나...”
“일단 50개 더 준비해 놓으라고 해.”
“예”
N의 기사를 프린트해서 챙겨 들었다. 눈치 빠른 김과장이 나선다.
“어디 가십니까?”
“법률 검토는 해 놔야지.”
“고소하시게요?”
“상황 봐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법무팀에 들고 갈 사안은 아니다. 이런 경우 잘해봐야 언론중재위원회 정도다. 소송으로 가봤자 우리만 손해다. 물론, N이 끝까지 가보자고 기획기사를 준비하고 때린다면, 그때는 고민해 봐야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사무실을 나온 건 직원들 숨 쉬게 해주기 위해서다. 요 며칠 사무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팀장이란 놈이 칼춤을 추고 있으니, 고개 바짝 숙이고 숨도 나눠서 쉬고 있을 것이다. 이럴 땐 빠져줘야 한다.
N의 기사를 챙겨들고 난 회사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기사의 법률검토는 백날 해봤자 소용없다. 그저, 오탈자나 비문이 얼마나 있는지 체크나 하면서 시간을 죽이면 된다.
그 사이 팀원들은 한 숨 돌릴 게다.
아이스 모카에 생크림을 잔뜩 얹었다. 단 게 땡긴다. 설렁설렁 기사를 읽어내려가는데, 눈에 거슬리는 표현들이 눈에 띈다.
‘경영진의 모랄헤저드...’, ‘방만한 경영’, ‘대내외적으로 산적해 있는 위기 신호를 무시한 채...’
까기 위해 쓴 기사라지만, 너무 후졌다. 끄집어 낼 수 있는 ‘날 선 단어들’은 다 끄집어 내 쑤셔 넣으니 문장의 호응이 뒤죽박죽이다. 어쩌다가 기자들 빨간펜이나 하고 있는 건지...
문득, 이 기사를 읽을 일반독자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경제 기사, 그것도 A와 같은 작은 회사의 기사를 누가 읽을까? 주식 갤러리 사람들은 읽을까? 설사 읽는다 해도 요즘 같은 시절에 이 기사를 100% 믿는 사람들은 없을 거다. 일반인들도 기자들이 돈 받고 기사 쓰고, 자기들 입맛대로 기업들 조진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언론의 영향력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건 개별 언론사에 한정될 경우다. 모든 언론사들이 입을 맞추고, 조지겠다고 덤벼들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치부 기자들이 한 명을 타겟으로 삼아서 물어뜯는 걸 우리는 몇 번이나 보지 않았던가?
이제 남은 건 N의 다음 수다. 그 다음 수를 예측해 미리 대비하고, 그들이 기사를 올리기 전에 대응하고, 기사가 올라오면 밀어낸다. 귀찮은 일이지만, 그렇게 3~4번 밀어내면 그쪽에서도 반응을 보일 것이다. 아니면? 끝까지 가는 거다. 호랑이 등에 올라 탄 이상, 내려오면 죽는 거다.
생각이 거기에 이를 때쯤 핸드폰이 울린다. H부장이다. 왕이 움직였다.
“O팀장입니다.”
“아직까지 살아있네?”
“죽을 이유가 있습니까?”
“끝까지 잘났다? 회사가 지금 망하게 생겼는데, 직원이란 놈이 한가하게 입씨름이나 하고 말야. 그러니까 A가 이 모양 이 꼴이지!”
“알아서 판단하십시오. 저는 할 말 없습니다.”
“이게 아직 맛을 덜 봤구만? 기사 밀어내면 누가 쫄 줄 알아? 어디서 못 된 것만 배워 와가지고...너 죽고 싶어? 내가 너희 회사 박살내 줄까?”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다짜고짜 전화해 협박하면 책 사주고, 협박용 기사 만들어 뿌리면 고개 숙이고 광고 갖다 주는 일이 일상이 된 지금. 분명 그 시작은 있었을 거 아닌가? 우리 선배들의 잘못일까? 내가 이 업계에 발을 들이밀었을 땐 기사란 돈 주고 사는 것이고, 광고로 언론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상식이었다. 이게 잘못됐다란 생각이 들 때 쯤 이 시스템을 깰 수 없다고 믿었다. 시스템을 깰 수 없으면, 시스템에 최대한 적응하자란 생각으로 살아온 10여년이다. 궁금했다. 이 타이밍에서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틀린 걸까? H부장이 옳은 걸까?
“부장님.”
“뭐야?”
“제가 잘못했나요?”
“그럼 지금 잘했다고 말하는 거야?”
“그럼 설명해 주십시오. 구체적으로 제가 뭘 잘못했는지.”
“......”
수화기 저편에서 ‘움찔’하는 H부장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내가 잘못한 거라곤, N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 그들이 원하는 광고를 사주지 않았다는 것. 그 뿐이다.
“이색희가 지금 해보자는 거야? 끝까지 잘났다 이거지?”
“아뇨. 정말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H기자도 마지막 기회라고, 와서 사과하라는데 도대체 뭘 사과하라는지 알아야 사과할 거 아닙니까?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끝까지 가자는 거지?”
“그 끝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그리고 우리 회사가 사과할 게 뭔지 말해주시면 찾아뵙겠습니다. 말씀해주십시오.”
“이색희가... 너 거기 어디야? 내가 당장...”
“시청 근처 OO빌딩 옆 커피숍입니다.”
“......”
“더 할 말 없으면 끊겠습니다.”
“너 각오해! 너랑 너희 회사 박살내 줄 테니까.”
“참고로 지금 녹취 뜨고 있습니다.”
“......”
“끊겠습니다.”
“너 이색희...각오해.”
전화를 끊었다. 한 5초 정도 내가 오바한 게 아닐까 고민했다. 기자랑 싸워서 좋은 게 하나도 없다. 상대하기 귀찮으면, 기사를 밀어내 버리고 못 본 척 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감정싸움을 할 이유도 없다. 괜히 얽히지 말고, 대행사에 맡겨두면 깔끔할 텐데... 실수일까? 실수가 맞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후련하다. 이제 남은 건 대가를 치르는 일이다. H부장은 기사를 쏟아낼 거다. 대비해야 한다. 김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과장!”
“예”
“그때 법무팀하고 만든 보도자료 있지?”
“노동관계건이요?”
“그래, 그거랑 조사 4국 건 둘 다 있지?”
“예”
“그거 릴리스 해. N 빼고 다른 언론사 다 돌려. 그리고 매체 리스트 업 좀 해. 우리랑 우호적인 애들 있지? 그때 제2공장 이벤트 때 참여했던 곳들.”
“예”
“거기에 집중적으로 뿌려. 뿌리고 전화 넣어.”
“예,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올라갈 거니까. 준비하고 있어.”
“예”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니 갈 때까지 가보기로 했다.
추신
이 시리즈를 투고하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내부자의 안전과 비밀보장을 최우선시 한다는 딴지일보를 믿으나
이 연재가 중단되면 나에게 클레임이 들어왔거나 딴지 편집부가 쫄았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하시라.
언제나 그렇듯, 이 이야기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날리 없는 소설이라고 믿어주면 좋겠다.
지난 기사 언론이 기사와 광고의 교환을 요구할 때, 우리는 이렇게 움직인다 |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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