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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수능 절대평가를 앞두고 벌어진 수능과 학종 논란을 디볐다. 나는 학종이 수능보다 '덜 나쁜' 제도라며 사교육 밀착도가 낮다는 통계와 국가장학금 수혜율, 소득별 대입 결과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학종이 수능에 비해 가정 배경 영향을 덜 받는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엄청나게 까였다.


우선 수능과 학종을 1:1로 놓고 다이다이 시킨 것부터 넌센스라는 지적이다. 맞다. 평가 방법과 내용이 다른 두 전형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다만 수능은 줄고 학종은 확대되는 큰 흐름이 몇 년간 지속되었고, 최근 그 비율이 역전되기에 이르렀으니 나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변명을 슬쩍 붙여본다.


통계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학종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국가장학금 수혜율이 수능과 논술 전형보다 높았다는 경희대 데이터는 '경희대 특수성'이라는 반론을 받았다. 특목고, 외고, 자사고에서 경희대 정도 레벨의 대학을 갈 이유가 없으니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7년 입시 결과에 따르면 경희대에 수시로 입학한 학생 1,657명 중 외고는 8.5%, 자사고 10.6%, 과학고 1%로 일반고 출신이 아닌 비율이 20% 가량 되었다. 이는 경희대 정시 전형으로 입학한 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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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 성적이 폭넓게 형성됨. 일반고 외의 학생들이 지원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경희대 2017년 학생부 종합전형 합격자 학생부 등급


통계 자체보다 학종 사교육이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니 통계에 제대로 반영될 수 없다는 비판도 있었다. 글쎄. 참여정부 말기에 입학사정관 전형이 적극적으로 검토된 이래 10년이 흘렀다. 돈의 흐름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산업이 그렇게 굼뜰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수능 비중이 낮아지면 풍선효과로 인해 컨설팅 업체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지적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보다는 훨씬 늘어날 것이고 몸집을 불리려 노력하겠지만, 수능 사교육만큼 비대해질 수는 없다(수능 1타 강사들의 연봉은 수십억을 넘나들고, 이적료는 백억 대라는 말이 돌 정도다. 코스닥에 사교육 업체가 상장된 것만 봐도). 학종은 어디까지나 교내 활동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교육이 끝없이 침범할 수 없기 때문이다.



4. 수능은 공정한가


강준만은 저서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에서 수능의 종교화 현상을 지적한다. 여러 능력 중 하나인 수능 점수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수능 점수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서열의 기준'이자 '진리의 빛'으로 삼고 있다고 비꼬았다.


수능 설계자였던 박도순 고려대 교수 역시 이와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14년 인터뷰에서 “입시에서 차지하는 수능의 역할을 최대한 줄여야 학생과 교육이 산다”고 주장했다. 사고력 측정을 위해 도입한 수능이 암기 시험으로 변질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점수가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건 신화에 불과하다"며 수능에서 ±10점 차이는 통계상 무의미한 수치임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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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중앙선데이(링크)


두 사람의 권위를 빌려 수능 무용론 같은 걸 주장할 생각은 없다. 수능은 나름의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종교화', '신화' 라는 단어가 단적으로 드러내듯 수능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능 점수는 삶에서 부여받는 어떠한 숫자보다 강력하게 작용한다(단, 키는 제외). 60만 명을 줄 세우는 그 숫자에는 누구도 감히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수능 = 공정한 시험'이라는 절대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능은 공정한가?"


대부분이 이 질문에 "그렇다. 수능은 공정하다."라고 답한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공정함을 판단하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나는 이 수능 점수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능은 학생의 능력을 나타내는 여러 지표 중 하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그 '공정함'에 대해서도 좀 더 따져볼 여지가 있다고 본다.


흔히 "대학 입시는 공정해야 해"라 말할 때, 공정함은 어떤 의미일까? 객관식 시험은 공정한 시험인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시험의 형식이 객관적인 것이 곧 공정함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의 공정함은 여러 층위로 나눌 수 있다. 

 

 a. 명확한 근거로 채점할 수 있는 것

 b.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는 것

 c. 측정하고자 한 것을 측정하는 것


객관식 시험인 수능은 a의 공정함을 극대화한 시험이다. 정해진 답을 OMR 카드가 판독하면 모든 채점이 끝난다. 나머지 두 요소는 어떨까? b의 기회의 평등 관점은 이전 편에서 다루었다. 공정하게 기회가 주어지고 가정의 영향에 휘둘리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데이터로 내가 내린 결론은, 수능은 불평등을 더욱 가파르게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마지막 c를 보자. c의 공정성을 다른 말로 옮기자면, '타당도'다. 측정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예컨대 포크레인 자격증 시험이라면 포크레인을 운전할 수 있는지 측정해야 하지, 뜬금없이 심폐소생술을 능력을 측정하면 안 된다는 거다. 즉, 평가의 목적에 맞게 평가하느냐를 따지는 것이 타당도다.


따라서 타당도가 높은 평가가 좋은 평가다.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그간 우리는 대학 입시에서 타당도를 간과해 왔다. 시험의 객관성에 온 신경이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제시하는 수능의 목표는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 측정'이다. 수능은 이 능력을 제대로 측정하고 있는가? 물론 이는 쉽게 땅땅땅 결론 내릴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인재상부터 능력, 지능 등을 포괄하여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다. 그 복잡하고 어려운 일은 우선 밀어두고, 나는 '대학에서의 공부'에 국한시켜 타당도를 따질 수 있는 '간접' 증거를 살펴볼까 한다. 대학교 학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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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 10개 사립대(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서울여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 15, 16년도 입학생 6만 5천여 명의 학점을 분석한 결과, 학생부 교과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의 평균 학점이 3.37점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학생부 종합(3.33점), 논술(3.24점), 수능(3.17점) 순이었다.


수능 입학생보다 학종 입학생의 대학 수학 능력이 높다는 결과다. 수능보다 학종의 타당도가 높을 수 있다는 간접 증거다. 어찌 보면 모든 과목을 공부한 후 점수에 맞춰 대학을 결정하는 수능에 비해 전공 적합도를 반영하는 학종의 결과가 좋다는 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학점뿐 아니라 전공 만족도와 중도 탈락율 역시 수능보다 학종에서 더 나은 결과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해석할 수 있다.


즉, 객관성의 측면에서 학종이 수능에 비해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겠으나, 공정성의 다양한 층위, a+b+c 의 합을 따져보자면 학종이 결코 수능에 뒤지지 않을지 모른다.



5. 학생부 '종합'전형


앞서 살펴본 대로 학종이 가정 배경의 영향력이 적고, 타당도가 높은 시험이라 하더라도 이 세 번째 요소가 없었다면 나는 학종을 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학종이 미약하게나마 학교 현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희망적인 사실 말이다.


우선 이 점을 명확하게 하고 가야겠다. 일부 교육 평론가와 교사들은 '선발과 교육'은 별개라며, 학종이 불평등에 기여한다 하더라도 교육 현장을 살리고 있으니 괜찮다고 말한다.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교육은 진공 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이 지속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교 붕괴, 교실 붕괴로 돌아온다. 교육은 학교와 가정과 사회가 함께 하는 것이니 말이다(그럼에도 가정과 사회가 망가져도 교육만은 굳건할 수 있다고 믿는 분들께는 심시티라도 해보길 권한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학교를 바꾸고 있다. 대학에서 학생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니 좋든 싫든 문제 찍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종이 교실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은 교사들의 증언과 다양한 설문에서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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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중앙일보>


교사들은 학종으로 인해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는 경향이 늘었다고 말한다. 스스로 동아리를 조직해 탐구하거나 체험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나가게 되었다고. 학교 생활에 충실하지 않으면 대학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학종의 가장 큰 효과는 사교육 업계에 빼앗겼던 교육의 주도권을 되찾았다는 것에 있다.


"억지로라도 이것저것 할 수 있으니 좋다"는 교사의 증언은 학종의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수능으로 인해 과거의 교실이 얼마나 황폐해졌던 것인지 상상케 한다. 수능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은 교육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었고, "학교에서 자고 학원에서 공부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학종은 교육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따위의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렇게 좋은 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내 스탠스는 어디까지나 '덜 나쁜'이다. 학종으로 인해 학교생활이 변질되고, 더 힘들어졌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교육으로 미친 지위 경쟁의 도구로 쓰이는 한 이 상황은 변하지 않을 테다. 그저 어짜피 수능으로 개고생하던 거, 조금 더 교육적인 방향으로 노력을 쏟아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학종으로 학교가 활성화됐다는 사실은 교사들의 증언뿐 아니라 입학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시도교육청에서는 매년 '학생부 종합전형 합격 사례집'을 발표한다. 학종이 깜깜이 전형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어떤 학교의 학과에 어느 정도 성적과 교내 활동으로 합격했는지, 면접 질문은 무엇이었고, 자소서에는 어떤 항목을 썼는지까지 공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학생부 종합전형 이후 교내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활동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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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천시교육청, 2016년 학생부 종합전형 합격사례집

 


최상위권 학생들보다 2~4 등급 사이 자료를 가져왔다. 모든 입시 논의가 최상위 3% 위주로 전개되는 불편함과 교내상 몰아주기로 인해 전교 1등만 교내상을 받고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합격 사례를 살펴보면 백일장, 토론, 동아리 활동 등 과거의 학교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임했으면 베스트겠으나, 입시를 위한 형식적 활동이었다 하더라도 수능 문제 찍기보다 이런 활동이 유의미하고 보다 교육적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수능 비중은 줄고 학종은 늘고 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고, 진보교육감이 많아졌기 때문에 생긴 변화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선 홍준표를 제외한 모든 후보가 수능 절대평가와 학종 전형 유지를 교육 정책으로 내세웠다.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이 흐름은 오래전부터 교육계에서 논의되어 시행되고 있다.


어젠가 '수능은 20세기형이고 학종은 21세기형' 이라는 글을 봤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라 생각한다. 앨빈 토플러가 "한국 학생들은 불필요한 공부에 하루 15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한 비판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수능으로 인해 학창 시절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변화하지 않으려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암기교육이 말이 되느냐 하면서도 수능은 바꾸지 않으려 한다.


그 변화가 학종으로의 변화이기 때문에 비판받는 측면도 있다. 맞다. 학종은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은 제도다. 평가의 불명확성이나 학교의 차이에서 오는 불이익에 대한 비판은 깊게 새겨서 꾸준히 개선해 나가야 한다. 더 많은 선발 결과를 공개하고,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 학교차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할 필요도 있다. 물론 교사 1인당 학생 수도 개선돼야 한다. 나는 학종이 그렇게 조금씩 더 촘촘해지는 것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차악이라고 본다.


학종이 맞고 수능은 틀렸다는 게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가치 판단의 문제다. 우리가 어떤 학교를 만들 것이며 어떤 기준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 보다 나은 것인지 논의해 보자는 것이다. 단 그 논의가 주관적 경험과 인상비평을 토로하는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학생으로서, 학부모로서, 입시라는 터널을 먼저 빠져나온 선배로서 누구나 의견을 가질 수 있으나, 앞으로 한 발 나아가려면 논의의 토대가 있어야 한다. 부족하긴 하지만 이 글에서 제시한 데이터가 그 최소한의 토대가 될 수 있길 희망한다. 그 토대를 바탕으로, 우리가 교육 문제를 좀 더 박터지게 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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