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적 조치라고 해야 할까? 그 동안 N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었던 조사 4국의 세무조사를 먼저 터트리기로 했다. 혹시 몰라서 노동관계 2건도 같이 릴리스 했다.
“A의 O차장입니다. 보도자료 받으셨죠? 잘 좀 부탁드립니다. 시절이 심란하다보니... 김영란법 때문에 형님 얼굴도 제대로 못 보네. 마음 같아선 소 10마리 잡아서 살치살로만 대접하고 싶은데, 시절이 참 각박해졌어요. 예... 이거요? 오늘이나 내일 올려주시면 저야 좋죠 뭐. 형님, 힘 한 번 써주세요. 그래도 L에서 형님이 실세 아닙니까? 에이, 단신 같은 거 말고... 스트레이트 기사 써달라고 할 거면 형님한테 왜 전화 합니까? 한 번 팍팍 밀어주세요. 예, 형님 믿겠습니다!”
회사로 복귀한 뒤에 몇 통째 전화를 거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기자들, 우리가 관리하는 홍보대행사, 꼬꼬마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대행사, 동기들에게 다 연락 넣었다.
“야! 너 밀어내기 했다면서? 별일이다? 어지간하면 광고로 조지던 놈이?”
“씨바, 말도 마 N이 달라붙었어.”
“하... 씨바 일 더럽게 꼬였네. 아, 너 설마 H부장이랑 붙은 거야?”
“어, 제대로 붙었어. 씨팔좆팔 하면서 쌍욕을 하더라.”
“어쩌려고?”
“어쩌긴 뭘 어째? 조진다는데, 같이 조져줘야지.”
“그 새끼 개꼴통인데...”
“야. 한 번만 도와줘.”
“이 자식은 아쉬우면 연락해... 어떻게 도와줄까?”
“너 M쪽에 라인 있지?”
“있긴 하지.”
“자리 좀 만들어 줘.”
“대가리 치겠다?”
“당장은 기사로 밀어내고, B 기사 때리는 걸로 샅바 싸움 하는데, 결국 대가리 쳐야지 뭐.”
“하여튼 범생이 같은 새끼들이 사고를 치면 크게 쳐요.”
“그럼 그 새끼들한테 계속 밟히라고?”
“성질머리 하고는... 약속은 언제로 잡을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오케이 세팅 되면 연락주마... 그리고 씨발 살살 좀 해! 지금 독립 운동해? 적당히 맞춰주고 그러자.”
“아 씨바 몰라. 바빠! 끊어!”
M은 N의 모회사다. 당장은 H부장을 밀어붙일 수 있지만, 장기화 되면 이쪽이 귀찮아 진다. 당장 신년하례도 준비해야 하고, 말레이시아 쪽 마케팅 때문에 정신없는 와중에 N과 계속 싸울 순 없다. 적당히 힘을 보여주다가, 정치적으로 해결 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모회사 쪽의 라인과 쇼부를 봐야 한다. 라인이 괜찮다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 볼 수 있을 거다.
“팀장님! N에서 다시 기사 올라왔습니다!”
남XX의 다급한 목소리. 누가 보면 전쟁난 줄 알겠다. 아니, 우리한테는 전쟁이 맞다.
“대행사 연락해. 밀어내라고”
“예!”
“김과장! 보도자료는 다 뿌린 거지?”
“예! 세 군데에서 내일 오전 중으로 기사 내겠답니다.”
“더 쑤셔봐. 최소한 10개는 기사 올라와야 해”
“예!”
“박과장!”
“예!”
“대행사에 연락 돌려. 주말까지 계속 철야 대기하라고”
“예!”
“홍XX씨!”
“예!”
“커피랑 먹을 거 좀 사다 줘. 팀원들 원하는대로... 그래, 먹고 싶은 거 다 주문 받아.”
“제, 제가 하겠습니다.”
박과장이 나선다. 딴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대행사 연락해야지?”
“가면서 연락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쓰리샷 추가. 사약보다 진하게 알지?”
“예!”
카드를 건넸다. 사무실 여기저기서 저마다의 메뉴가 튀어나온다. 야근인데, 맛있는 거라도 먹여야지. 오늘만 벌써 4번째다. N은 기사를 올리고, 나는 기사를 밀어냈다. 벌써 40개의 기사가 올라갔고, N의 기사는 오르는 족족 뒤로 밀렸다. 그리고 오후 4시경 결정타가 터졌다. B의 기사가 올라왔다.
중국 발 경제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A社에 관한 이야기다.
중국에 집중됐던 판로가 사드로 흔들리자, A가 동남아를 중심으로 판로개척을 한다는 내용이다. 기사가 올라간 뒤 D차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기사 올라갔습니다.”
“예, 지금 살펴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그대로 썼을 뿐입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검색해 봤는데, A社 기사가 갑자기 늘어났네요. 어뷰징 같기도 하고...”
“그게... 좀 상황이 있습니다.”
“N과 트러블이 좀 있는 거 같네요.”
“소문이 거기까지 갔습니까?”
“소문이 아니라 기사만 봐도 확인 할 수 있겠는데요? N 기사는 계속 밀려나가고 있고... 논조도 A社에 우호적이라고 할 수 없고...”
“뭐, 그렇게 됐습니다.”
“심층기사가 필요하겠네요."
“......”
“A社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관계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만간 취재차 찾아가겠습니다.”
“연락주십시오. 김영란법 때문에 비싼 건 못 사드리겠지만, 이 근처에 맛있는 데 많습니다.”
“커피면 족합니다.”
“케이크 맛있는 곳도 많습니다.”
D차장의 웃음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그녀를 선택한 판단은 옳았다. 접근 방식이 까다로워서 그렇지, 그녀는 거래를 아는 여자이다. 그리고 똑똑하다.
B의 기사가 올라간 뒤 N이 주춤했다. H기자가 대행사 통해서 확인 작업을 들어갔고, 대행사는 내게 곧바로 연락이 왔다.
“H기자가 연락 왔습니다. O차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독하다고...”
“앞으로 계속 기사 올라갈 겁니다.”
“예, 저희 쪽이 섭외하지 않은 곳에서도 기사 올라오는 거 봤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조질 땐 확실히 조져야죠. 적당히 조졌다간 다시 기어 올라옵니다.”
“그게, 그쪽에서 기획기사 세팅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래봤자 10개 정도겠죠. 까짓 거 받아보죠 뭐.”
“언제까지 싸우실 생각입니까?”
“저도 장기전으로 끌고 갈 생각 없습니다. 다음 주 초까지만 계속 서치해 주세요. 그 전에 쇼부 치겠습니다.”
“예, 계속 스탠바이하겠습니다.”
“조금만 힘내 주십시오. 곧 끝납니다.”
“예”
N이 당황하는 모습은 기사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A4로 4~5줄? 원고지 2~3매짜리 기사들이 계속해 올라왔다. 내용이랄 것도 없다. 조사 4국이 특별 세무조사를 했다는 내용. 탈세의혹이 있다는 철지난 기사들이 계속해 올라왔다. 시점은 없고(당연하다, 작년 가을 이야기가 아닌가? 언제적 이야기를 끌고 온 건가?), 새로운 내용도 없다. 하다못해 관계자 인터뷰라도 따 올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없다. 스트레이트도 아닌 스트레이트 기사라고 해야 할까? 사실은 없고, 감정만 남아있는 짧은 기사들이 계속 해 올라왔다. N은 자극적인 ‘미다시(제목)’로 사람들 눈을 속이려 했다. 당연히 기사는 밀어냈고, 그 빈자리를 B와 내가 산 기사, 내가 부탁한 기사들로 채워졌다. 노동관계 해결 보도 자료는 L에서 대대적으로 때려줬다.
‘노사 상생의 길’이라는 미다시로 크게 때렸다. 조만간 소 한 번 거하게 사야 할 거 같다. 아... 김영란법이 있구나. 뭐 어때? 벌금 좀 맞지.
팀원들도 차차 냉정을 찾아가는 것 같다. 처음엔 하늘이 무너진 듯 어쩔 줄 몰라 하더니, 한 번 두 번 기사를 밀어내고, 우리 쪽 언론사들을 동원해 우호적인 기사가 계속 올라오니 나름 ‘재미’도 있나 보다. 하긴 난생 처음 전쟁을 치르는 중이니 그럴 만도 할 거다.
이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린다. 파티션에 기댄 채 서 있는 법무팀장. 그 옆에 법무팀 직원 한명이 양손에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다.
“야근 중이시라는데, 위문 차 왔습니다.”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미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직속상관인 본부장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데, 11층 법무팀에서 위문을 오다니, 눈물이 나올 거 같다.
“위에 계신 분이, 이 누추한 곳까지... 어쨌든 감사합니다. 에 또... 여기는 좀 그렇고, 어디 회의실 가서 커피나 한 잔 하실래요?”
“좋죠. 아, 그리고 다들 고생하실 거 같아서... 김대리님?”
“예.”
김대리가 양손에 들고 있던 봉지를 풀었다. 초밥 도시락 세트다. 도시락 옆에 박혀 있는 문양을 보니 S호텔 일식부다. 근처에서 사온 게 아니라 장충동까지 갔다 온 거다. 아 씨바, 사람 감동시키네. 팀원들도 환호작약.
“다들 식사하세요. 커피 오면, 티타임 하고, 30분 휴식 합시다. 그리고 법무팀장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구요.”
“법무팀장님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팀장님!”
“예, 다들 먹고 힘내세요. 파이팅!”
해맑게 웃음 지으며 날 따라나선 법무팀장. 회의실 불을 켜고, 커피 두 잔을 내렸다.
“팀장님, 서운 합니다. 이런 빅 이벤트가 있는데, 언질도 안 해주시고...”
“보안이 생명이라서요. 터지고 나서는 대응하기 바빴습니다. 죄송합니다. 서운 하셨을텐데도 이렇게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유, 농담입니다. 우리 O차장님 실력 보고 놀랐습니다. 사장님도 오늘 올라오는 기사 보면서 감탄하고 있습니다.”
“실력은 무슨... 돈을 처바르고 있는데요...”
“돈 쓰는 거도 능력입니다. 돈은 돈대로 쓰고, 욕은 욕대로 먹는 케이스 많이 봤습니다.”
“운이 좋은 거죠.”
“운 이전에 배짱이죠. 언론사랑 맞짱 뜨겠다니, O차장님 배포도 대단하십니다. 아, 오해하실까 말씀드리지만, 순수한 감탄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좋게 봐주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수습할 생각입니까?”
“주말 끼고 다음 주 초까지 밀어내다가 M으로 가야죠.”
“M이요?”
“꼬리 아무리 잘라내면 뭐합니까? 대가리를 쳐야죠.”
“모기업을 치겠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모기업을 칩니까? 정치적으로 타협 봐야죠.”
“N하고는 협상안하고요?”
“N붙잡고 있어봤자 답 안 나옵니다. 계속해서 광고 달라 징징 거릴테고, 여기서 고개 숙이면 평생 호구 잡힙니다. 앞으로 N은 무시할 생각입니다.”
“그럼 M으로 광고 돌릴 생각입니까?”
“그건 봐가면서 해야죠. 제 생각에는 어차피 신년하례 오고, B랑 P 라인 타면... 앞으론 종이신문들이랑 방송 쪽으로 돌아설 거 같은데, 적당히 관계 유지하면서 인터넷하고는 거리를 둬야죠. 이 참에 인터넷 관리는 대행사에 다 넘기려구요.”
“그게 정답이겠네요.”
“그럼 그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이요?”
“M이랑 미팅 잡히면, 같이 가시죠.”
“아... 이제 제 차례입니까?”
“법무팀장이랑 같이 들어가면, 중량감이 다르죠.”
“(웃음) 얼굴마담이 필요한 거네요?”
“위기관리팀의 핵심은 홍보랑 법무 아닙니까? 이 참에 궁합을 맞춰봐야죠.”
“좋습니다. 일정 잡히면 연락 주십시오.”
“예”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시네요. 사장님도 이 정도까지 판 벌릴지 몰랐다고 놀라더군요. 아, 이것도 칭찬입니다. 제 생각도 마찬가집니다. 이 정도로 밟아 놓으면 어지간한 인터넷 언론은 쉽게 시비 털진 못할 거 같아요. 타이밍도 기가 막히네요. 신문사 만나기 전에 인터넷부터 밟아 놓는다. 누가 보면, 기획한줄 알겠습니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질질 끌려가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거 같아서요.”
“잘하셨습니다.”
“결과는 더 두고 봐야죠. N이 순순히 넘어가면 좋겠지만, 그쪽도 한 성질 하니까요.”
“잘 될 겁니다.”
법무팀장의 위로에 마음 한 구석에 응어리진 뭔가가 풀어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 잡는데, 회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박과장이다.
“왜?”
“저기... N이 또 기사를 올렸습니다.”
“밀어내.”
“그게...”
“왜?”
“그게... 저...”
“아, 저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럼 두 분 말씀 하십시오.”
“아, 아닙니다. 박과장 뭔데 그래? 말해도 돼.”
“그게 N에서 사장님을 걸고 넘어졌습니다.”
“!”
“!”
씨팔... N이 끝까지 가겠다고 선언했다.
추신
이 시리즈를 투고하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내부자의 안전과 비밀보장을 최우선시 한다는 딴지일보를 믿으나
이 연재가 중단되면 나에게 클레임이 들어왔거나 딴지 편집부가 쫄았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하시라.
언제나 그렇듯, 이 이야기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날리 없는 소설이라고 믿어주면 좋겠다.
지난 기사 언론이 기사와 광고의 교환을 요구할 때, 우리는 이렇게 움직인다 |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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