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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1. 17. 금요일

Ath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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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곡에 대한 기억은 매우 희미하고 단절된 기억들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또한 하얀 쌀밥을 먹지 못할 때 겨우 먹는, 가족들에게 가장의 낯이 서지 않게 하는 음식으로 기억됩니다.


사실, 단 한 번도 하얀 쌀밥을 먹지 못해서 잡곡을 먹을 수 밖에 없었던 시절은 저에게 없었습니다. 집에 쌀이 떨어진 기억은 저에게 없는데도(집에서 농사를 짓는데 쌀이 떨어진 다는 것을 상상해 보지 않았습니다) 밥상 앞에서 가족들에게 혹은 엄마에게 보였던 아빠의 태도를 통해 그런 기억이 자리 잡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셔서 직접 물어 볼 수는 없지만 밥상 위에 쌀밥 이외의 다른 잡곡이 들어간 밥이 올라오는 것을 마땅찮게 여겼던 기억이 많습니다. 콩이 섞여든 밥은 마땅찮아 하면서도 밥술을 들긴 했지만 보리나 율무, 옥수수 같은 잡곡이 들어간 밥이 밥상에 올라오면 질색팔색을 하다못해 수가 틀어지면 밥상을 뒤엎는 경우들이 있었지요.


밥상 뒤집기.jpg


“집구석으 쌀이 없어서 이런 것으로 밥을 지었어?!!”


‘내가 먹기엔 아무렇지도 않은데, 저 냥반은 하얀 쌀밥이 지겹지도 않은가’ 생각하며 밥상다리를 붙들고 있었죠. 실제로 누나는 종종 밥상머리에서 아빠의 언성이 높아지면 밥상이 뒤집어 질까봐 밥상다리를 붙들고 있었다더군요. 지금 와서 돌아가신 양반 옛날 얘기 꺼내 험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 태도 자체가 잡곡을 바라보던 관념 이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입니다. 쌀이 있다면 잡곡 ‘따위’ 내 가족들에게 먹이고 싶지 않다는 지독한 관념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이죠. 이것은 아빠 한 사람만의 관념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잡곡은 가난과 배고픔의 아이콘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잡곡의 생산은 단절되어 오다 최근에서야 조금씩 사람들의 인식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어쩌면 ‘이밥에 고기국’을 갈망하던 시대가 이제야 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밥상 뒤집기 신공 앞에서 나도 모를 잡곡에 대한 부정이 자리 잡았기 때문에 얼마 전까지 잡곡에 눈을 돌리기가 꺼려지거나 부담스러웠습니다.


가정환경이 이렇다 보니 논밭에 잡곡을 심지 않았습니다. 아주 심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기억에 띄엄띄엄 자리하고는 있지만 주요하게 길러지지 않았던 것이죠. 율무 같은 경우 심지 않는 해가 많고 수수는 씨앗이 생기면 구석진 자리에 몇 알 심어 ‘나던가 말던가’하는 마음으로 여름을 나면 겨우 몇 줌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마저도 밥에 올리면 집구석이 뒤집어지니 아빠 없을 때 한 줌 넣어 밥을 하거나 처마에 매달아 두고 한 해를 멀뚱히 넘기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매년 빠지지 않고 농사를 지었던 잡곡도 있습니다. 보리는 아무리 적게 심어도 조금씩은 농사를 지었는데, 엿기름을 만들려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고추장을 담거나 식혜를 만들 때는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죠.


엿기름.jpg


옥수수 같은 경우는 빨리 자라고 여름철 간식거리로 그만이니 밭고랑 옆에 몇 알씩 심어 두면 새끼들 간식으로 먹이기 좋았을 것입니다. 간식은 간식. 그렇다고 밥에 올리면... 음... 그렇죠.


메밀도 빠지지 않고 농사지었던 잡곡 중 하나입니다. 묵을 쑤어 먹기에 가장 간편했기 때문이죠. 도토리는 묵 쑬 녹말을 얻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녹두는 생산량이 적어 묵을 쑤기 곤란한 면이 있지만 메밀은 빨리 자라고 생산량도 많아 수확해 두었다가 겨우내 묵을 쑤어 먹고 잔치 날이나 명절에도 빠지지 않고 상에 올렸었습니다.

집에서는 얼추 이 정도만 농사를 지었고 조, 기장, 호밀 등은 마을에서도 몇 집만 농사를 지었던 잡곡입니다. 집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았지만 정월 대보름에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조와 기장이 들어간 잡곡밥을 맛보긴 했었는데 맛은 있지만 날곡이 너무 작아 도정이 어려워 기피대상이었다더군요.


최근 잡곡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수요는 늘어나지만 생산농가가 적어 값이 비싼 편에 속합니다. 중국이나 인도 등지에서 수입되는 양이 많지만 국내산을 선호하는 분위기라 국내산 잡곡의 값이 날로 상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정은 이러한데 잡곡은 생산장려 농산물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고 보리 같은 경우는 수매가 끊겨 생산량이 급감하는 추세입니다. 게다가 도정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농사를 지어도 도정을 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경우들이 많죠. 그런 이유로 잡곡보다는 콩농사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콩은 도리깨로 두드려 낱알만 거둬들이면 바로 취식이 가능하지만 잡곡은 건조시켜 탈곡하고 도정해야만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오늘은 최근 들어 점차 긍정적으로 인식되어지고 식탁에 주요하게 자리잡아가는 잡곡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잡곡_H~1.jpg


잡곡을 모아보면 화려한 듯하지만 수수하고 정겹습니다. 한복의 색은 이런 곡물의 색에서 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눈에는 아름답지만 입에는 맞지 않는다는 분들 많을 것입니다. 저도 어릴 때는 잡곡밥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들어 하나 둘 밥에 올려 먹으며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들이 주는 식감의 차이를 알아가고 맛의 차이를 즐기며 서서히 익숙해져 가고 있는 음식입니다.


일반적으로 잡곡이라 하면 주식을 제외한 곡물을 말합니다. 한국은 쌀이 주식이어서 멥쌀과 찹쌀을 제외한 곡물을 잡곡이라 부르죠. 종종 곡물이 아닌 과실(밤, 도토리, 은행 등)을 잡곡에 포함시키기도 하고 감자나 고구마를 잡곡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황작물을 재배하던 시기에 쌀 이외의 식량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총칭하여 잡곡이라 불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조, 기장, 수수, 피, 메밀, 율무, 옥수수, 보리, 호밀, 귀리 등을 잡곡으로 보고 녹미, 흑미, 현미 등도 잡곡에 포함시켜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은 한국에서 재배되는 대표적인 잡곡인 조, 기장, 수수, 피, 메밀, 율무, 옥수수, 보리, 호밀에 대해 이야기 하고 다음에 이어질 쌀 편에서 녹미, 흑미, 현미 등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잡곡이라 부르는 9가지 곡물은 쌀에 비해 농사짓기가 매우 수월합니다. 주요 영양소가 비슷해서 무엇을 주식으로 하든 굶어죽지는 않을 텐데도 굳이 쌀을 고집했던 이유는 밥을 지었을 때 얼마나 맛이 좋은가가 주식과 잡곡을 나누는 결정적인 원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수나 보리, 밀은 벼에 비해 수월하게 자라고 생산량도 많지만 입에 맞지 않았던 것이죠. 아무리 벼농사가 어려워도 쌀밥 한 그릇에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을 어쩌겠누.


역설적이게도 벼농사의 어려움이 다양한 잡곡을 대체식량으로 재배했던 원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가령 강원도 산간지방에선 메밀 농사를 많이 짓습니다. 메밀은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라고 파종부터 수확까지 3~4개월 밖에 걸리지 않아 주식으로 삼을 만하지만 대부분의 평지에는 벼농사를 지었습니다. 벼농사 짓는 곳에 메밀농사를 지으면 더 많이 생산 할 수 있고 배불리 한 해를 날 수 있었을 텐데도 쌀을 고집했습니다. 낭중에 피죽을 먹더라도 쌀밥을 고집했던 것이죠.


옥수수, 호밀이 자라기에 적합한 토지에 굳이 벼를 심기도 했습니다. 같은 땅에 옥수수를 심으면 10kg의 옥수수를 얻을 수 있고 벼를 심으면 3kg의 쌀을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밭벼를 심어 쌀을 갈구 했습니다. 맛있는 것이 좋긴 하지만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 이곳저곳 맹지에 여러 가지 구황작물을 심어 쌀과 함께 섞어 먹거나 쌀이 떨어지면 근근히 그것들을 먹고 쌀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쌀은 분명 마약이었던 것이죠.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한 두 가정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전국토의 집집마다 이렇게 밥 중독에 시달렸달지... 흠흠.


지금은 잡곡을 건강식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엄마세대까지만 하더라도 쌀이 모자라 어쩔 수 없이 먹었던 ‘잡’곡이었습니다.


보리밭.jpg


지난주 군산 집에 들렀다 보게 된 보리밭입니다. 파릇파릇 보리싹이 올라와 겨울을 나고 있더군요. 보리, 밀, 호밀등은 가을에 파종해 겨울을 나야만 실한 씨앗을 맺는 내한성 작물입니다. 추위가 심한 곳에서는 얼어 죽기도 하기 때문에 봄에 파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씨앗을 적게 맺어 수확량이 적습니다. 보리밭 옆을 보니 완두콩도 싹을 틔우고 봄을 기다리더군요. 엄마에게 완두콩도 가을에 심느냐고 물었더니 강추위에 얼어죽지만 않으면 가을에 싹을 틔워 겨울을 난 완두콩이 열매를 잘 맺는다더군요. 완두콩에 내한성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돼 놀라운 마음에 이곳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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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이 이 겨울에 논두렁에 왜 나있나 했죠. 


이날 시골집에 갔을 때 우연찮게 마을 이장아저씨를 만나 보리와 밀농사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칠십 평생을 농사만 지으며 살아온 이장아저씨의 말을 밀과 보리농사에 대한 설명으로 대신합니다.


이장아저씨의 말입니다.


보리 밀 비교.jpg


「보리나 밀이나 농사짓는 방법은 똑같혀. 가을이 나락비고 땅 갈어서 거기다 파종 허고 흙으로 얇게 덮어 주믄 되는 것인 게. 근디 밀은 보리보다 늦어. 보리보다 열흘 이상 더 영글어야 수확을 한단 말여. 벼농사가 한시가 급한디 열흘 이상 늦어져 버리믄 서리 오기 전이 나락 못 거둬들인다고. 그려서 밀보다는 보리농사를 지을라고 허지. 근디 밀은 보리보담 수확량이 많고, 요즘 우리 밀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농사지을 욕심이 생기기는 헌다고. 나도 작년이는 밀농사를 지었는디 올 해 벼농사가 늦어져서 몇 가마니를 작년보다 못혔어. 이렇게 저렇게 따져봐도 도낑개낑인디 마음 고생할 것 없다 싶어서 올 해는 보리를 심었다고.


글고 밀은 말릴 때 기름이 많이 들어가. 같은 양을 거뒀어도 보릴 말릴 때 기름값 50만 원 들어가믄 밀은 배도 더 먹어. 작년이 밀 건조하는디 건조기가 먹은 기름 값만 130만 원 들어갔어. 보리는 50만 원 이믄 썼다 벗었다 허는디.


보리가 수매를 해줄 때가 좋기는 혔는디 아주 판로가 없는 것은 아녀. 맥주공장으로 많이 들어간게 헐값으로 팔리는 것도 아니고. 밀은 수매를 해 주는 정미소가 따로 있어. 그 정미소에서 밀을 수매해서 우리밀가루로 만들어 여기저기다 파는가 보더라고. 근디 올 해는 다들 보리농사만 져서 정미소가 애 좀 먹을 거여. 정부서 조생종 밀을 만들어서 보급해 주믄 걱정 없이 밀농사 지을 수 있을 틴디 그럴 생각도 없는 것 같여. 우리밀 우리밀 혀봐야 소용있나. 농사를 져먹게 해줘야 그것도 되는 것이지.」


호밀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습니다.


「호밀. 호밀은 그전이 밭이다 쪼매씩 심었던 것이지. 보리보다 딱딱하고 색도 검어. 밥으로 먹자고 심었던 것이 아녀. 술 담을 때 쓸 누룩 만들라고 쪼매씩 심었던 것인디 요새 집이서 술 담는 사람이 있간디. 수확량도 적고 색도 검고, 맛도 없는디 뭣헌다고 그것 농사를 짓것는가. 자네 말대로 요새는 호밀로도 빵을 만든다더만 안 먹어봐서 뭔 맛인가는 모르것지만 그냥 밀이 호밀보다야 맛이 좋지. 다들 건강 생각하는 세상이라 그것도 찾는가 보구먼. 」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책상머리 앞에 앉아 구글을 뒤적거리는 것보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 듣는 말에 더 많은 정보와 펙트가 담겨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렇게 <알고나 먹자>를 써 가고는 있지만 이장아저씨와 같은 분들이 이 글을 보면 콧방귀가 절로 나오지 않을까 내심 염려스럽고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이장아저씨를 비롯한 마을 어르신들과 엄마가 알고 있는 지식은 무궁무진합니다. 한 두 사람만 알고 있는 전문지식이 아닙니다. 마을에 살고 있는 노인들 모두가 농사일은 어떻게 해야 하며, 달과 해의 움직임은 어떻게 보아야 하며,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방법들이며, 세시풍속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때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말 할 줄 모르고 글로 써낼 줄 몰라서 그렇지 학식을 쌓은 사람들보다 더욱 깊이 있게 알고 있고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분들 스스로는 배운 것 없이 평생 땅 파 먹고 산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그들이 경험하며 쌓은 지식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상아탑임이 분명합니다.


이장아저씨의 말에 몇 가지 부연설명을 하고 보리와 밀을 정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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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겉보리 오른쪽이 쌀보리


보리는 겉보리와 쌀보리로 나뉩니다. 좀 더 정확히 두 줄 보리와 여섯 줄 보리로 나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 재배되는 보리는 대부분 여섯 줄 보리입니다. 제가 살던 호남지역에서는 쌀보리를 주로 재배했기 때문에 겉보리로 지은 밥은 먹어보지 않고 자랐습니다. 겉보리는 나중에 시간이 지나 보리차로만 맛보았습니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보리차의 모양이 어려서 먹던 보리차의 모양과 많이 달라 주인에게 물었더니 그것이 겉보리라더군요. 겉보리를 껍질째 볶은 것을 차로 끓이니 쌀보리로 끓인 보리차보다 훨씬 구수하고 맛있었습니다.


20대 중반 무렵에 여자 한 번 만나보겠다고 서울에 갔는데 그 친구가 인사동의 어느 밥집으로 저를 데려가더군요. 그 집은 강된장을 넣은 보리비밤밥이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강된장과 함께 보리밥이 나왔는데 옥수수알 만한 보리밥을 보고 까암짝 놀랐죠. ‘뭔노메 보리쌀이 이렇게 크다냐?’ 평소에 먹던 보리밥보다 쫄깃하긴 한데 입안에서 자꾸 왔다갔다 하고 잘 씹히지 않아 먹기가 지랄이다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 앞에서는 애써 맛있는 척을 해 줬지만서두요... 네.;;; 그것이 꽁보리밥, 즉 겉보리로 지은 보리밥이란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 군산에선 보리만 넣어 지은 밥을 꽁보리밥이라고 불렀는데 레알 딱딱한, 겉보리로 지은 꽁보리밥은 그때 처음 먹어 보았습니다. 그녀와는 뭐. 보리밥처럼 흐지부지 되었지만 말이죠. 

연애 할 때는 찰밥을 드시라능... 쩝 ;;;


꽁보리밥.jpg


맥주에 관한 이야기는 anyone님이 연재중이시니 <알고나 마시자>(이노메 제목을 왜 이렇게 잘 지은거야!!)를 참조하시고 엿기름에 관한 이야기는 고추장 편에서 자세히 이야기 했으니 고추장 편을 읽으시면 엿기름이 fuck oil이 아니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실 겝니다.


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밀밭의 기억에서 바로 건너 뛰어 라면, 빵, 국수 등 밀가루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으로만 남아 있고, 시장에서 판매하는 누룩에서 곧장 막걸리로 건너뜁니다. 1년 365일 중 밀가루 음식을 먹지 않는 날이 드물 것이고 300일은 술에 절어 살면서도 그 중간 단계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집에서 밀농사를 짓지 않고 술을 빚어 마시지도 않아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엄마의 기억에는 가양주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나 : 엄마 어려서는 집에서 술을 담았었소?


엄마 : 그때야 집집마다 다 술을 담었지. 지사도 지내고 대소사 있으면 담었어.


나 : 그럼 술 담는 방법은 기억하고 있어?


엄마 : 술이야 누룩허고 밥허고 물만 있으믄 담는 것이지.


나: 그럼 지금도 담자면 담것네?


엄마 : 그것을 뭣헌다고 담냐. 술도 못 마시는 내가 그것 마시자고 술을 담것냐? 너 그것 마시고 취허는 꼴 보자고 담것냐? 쓰잘떼기 없는 소리만 혀싸!


나 : 그럼. 술 못 담게 헐 때 있었잖소. 그 때도 몰래 술 담고 그렸소?


엄마 : 그 때 그런 짓 허먼 클나는줄 알었지. 파는 술도 있는디 그것 몇 잔 마시자고 담었다 쇠고랑차믄 한 두 사람 깝깝헌 일이냐. 술 그것이 뭐 좋은 것이라고 허지 말란 짓 혀감서 담는 사람 어디 있것냐. 어미~ 그 무선 시싱서...(그 무서운 세상에서...)


그 무서운 세상을 지나 99.9% 주정에 0.1%의 증류식 소주를 섞은 이슬을 마시며 오늘도 꽐라가 됩니다. 엄마는 귀찮은 것도 있지만 그 무서웠던 기억이 여전히 관념에 남아있는 듯 보였습니다. 같은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어도 만드는 사람마다 맛이 달라지는데 술이라고 그렇지 않을려구요. 집집마다 해가 드는 시간이 다르고 습도가 다르고 하다못해 나무가 해년마다 자라나 드리우는 그림자의 크기가 달라져 음식의 맛이 달라집니다. 장독대 옆의 동백나무가 자라나 그림자가 커지면서 해가 적게 들자 올해 된장 맛이 작년 된장만 못하더군요. 이러한데 집집마다 술맛도 달랐을 것입니다. 같은 물과 고두밥과 누룩으로 술을 담아도 만드는 사람의 손맛과 그 집의 바람과 해와 습도가 다양한 맛의 술을 만들어 냈을 것입니다.


엄마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리집 술의 맛은 어떨지 무척 궁금하네요. 200번쯤 닦달을 하면 동치미 담아 줬듯이 술도 담아 줄까요? 흐흐


그것 마시고 이런 진상되면 어쩌지??? 끙;;;


윤창중.jpg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수수가 빠질 수 없겠죠. 수수는 중국에서 고량으로 불리고 고량주의 원료가 됩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만드는 대부분의 술의 베이스가 쌀이라면 중국술의 베이스는 수수입니다. 한국에도 수수로 빚은 유명한 술이 있는데 바로 문배주죠. 문배주는 수수와 조를 이용해 만든 술입니다. 40도로 높은 도수의 술이지만 뒷맛도 깔끔하고 중국술처럼 향이 강하지 않아 입에 아주 그냥 짝짝 붙죠. 네. 문배나무가 뭔 나문지 구경도 못해봤지만 문배나무의 향기가 나서 문배주라는 이름이 붙었다더군요. 문배나무는 모르지만 문배주의 향기는 잘 압니다. 음... 문배나무의 향기가 이러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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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는 곡물 ‘수수’를 얻는 수수와 설탕을 얻는 사탕수수로 크게 나뉩니다. 고향에선 사탕수수를 ‘단수수’라고 불렀습니다. 곡물을 얻는 수수는 알곡이 여물 때까지 기다리지만 단수수는 여름철에 줄기를 베어서 껍질을 벗기고 안에 든 수수깡을 꼭꼭 씹어 먹으면 너무너무 맛있었습니다. 집에 어린 것들이 있으면 늦여름에 군것질 꺼리가 없을 때 베어 먹으라고 많이들 심었지만 이제 단수수는 심지 않으시더군요. 마을에서 단수수 구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껍질이 대나무처럼 날카로워서 벗겨내다 입술 베이는 일이 허다하다 보니 대가리에 핏기 좀 마르기 시작하면 그것 벗겨먹을 생각은 하지 않게 됩니다.


수수.JPG

요라고 먹지요. 아야. 입술빈다.


수수대와 단수수대는 구분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수수대는 밑둥이 붉고 굵습니다. 그걸 베어 먹으면 밍숭맹숭한 단맛이 나서 안 먹으니만 못했었죠. 단수수는 밑둥부터 초록색이고 다 익으면 겉면에 하얀 가루가 묻어있습니다. 그렇게 익은 단수수대를 베어 먹었죠.


수수대에 얽힌 아주 재미있는 설화가 하나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리 없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다들 아시죠. 이 이야기를 가만 살펴보면 매우 육두스럽고 매우 딴지스러운면이 있어 딴지 버전으로 각색해 보겠습니다.


이 이야기의 제목은 <해와 달이 된 오누이>입니다.


해와 달이 된 우누이.jpg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옛날 옛날에 깊은 산골에 아이 둘과 함께 살던 과부가 있었다.

과부는 아이들만 남겨두고 아랫마을로 일을 나가서 품싹으로 개떡 세 장을 받았다.

(씨발, 일당 개떡 세 장이 뭐냐)

해가 저물어 집에 돌아오는데 첫 번째 고개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호랑이 :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과부 : 씨벨놈. 옛다 떡이다.


다음 고개로 넘어갔더니 또 고 쉐끼다.


호랑이 :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과부 ; 참... 드럽게... 아나. 떡이다.


세 번째 고개를 넘었는데... 이런 씨발. 또 그쉐끼네.


호랑이 : 떡 하나...


과부 ; 조까. 씨봥쉐야. 이거나 쳐먹어라.


네 번째 고개를 넘었는데...아이 씨발.


과부 ; 떡 없어. 꺼져 개쉐야~


호랑이 : 고럼. 브라우스 벗으면 안 잡아 먹지. 흐흐흐흐흐


과부 ; 참. 씨발 개병신 변태 쉐이를 봤나. 먹고 떨어져라.


다섯 번째...


과부 ; 아. 씨발 또 뭐. 엉? 뭘 바라는데? 엉?


호랑이 : 미니스커트 버스면 으허허허허 안잡아 머~~억지롱~~


과부 ; 참나... 벗기기 고스톱도 아니고 이 씨방새가. 정말. 확... 벗는다 벗어. 더러워서 벗는다. 응?


여섯 번째 언덕에선 스타킹을


일곱 번째 언덕에선 드뎌!! 하악하악. 브브부라자를.


올 것이 왔다. 여덟 번째. 아흑. 드뎌 벗나? 응? 빠빠빠빠빤쓰?


꼴릿해진 호랑이가 덥쳐라 호랑이가 되어 과부를 덥쳤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과부가 호랑이의 콧털을 쥐어 잡았다.


과부 ; 이 씨발여러 호랑이 쉐뀌가 뒤질려고 환장했나.


아무리 열받아도 호랑이 콧털은 건드는 게 아니다.


졸 열받은 호랑이가 결국은 과부를 잡아먹고 말았다.


과부를 잡아먹은 호랑이가 과부의 옷을 입고 오누이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갔다.


오누이는 문을 잠그고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랑이 : 애들아. 엄마 왔다. 문 열어라.


누이 : 씨붱. 울 엄마 목소리가 저래?


오빠 : 아이 씨발. 엄마 아닌 거 다 아니까 꺼져라. 신고하기 전에.


호랑이 : 엄마가 오늘 노래방에서 노래를 많이 불러서 그래. 빨리 문 열어.


오빠: 야이 씨빡새꺄. 울엄마 맨날 노래방 나가거든. 개소리 하고 있어. 안 꺼져?


호랑이 : 지금 문 안 열면 문 부스고 들어간다. 빨리 문 안 열어?


문풍지에 구멍을 내고 밖을 내다보니 호랑이가 엄마 옷을 입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오빠 : 야이 씨발 좃됐다. 어쩌지.


누이 : 하느님한테 빌어보자. 우리는 순수한 어린이들이니까 우리 소원을 들어줄지도 몰라.


오빠 : 그래. 우리 졸라 차카자너.


오누이 합창 : 하느님. 우리를 살리시려거든 짱짱한 두렁박을 내리시고 우리를 죽이시려거든 썩은 두렁박을 내려주셔요~


그러자 개뻥스럽게도 하늘에서 두렁박이 내려왔다.


그걸 본 호랑이도 같은 주문을 외웠다.


호랑이 : 하느님. 나를 살라시려거든 짱짱한 두렁박을 내리시고 나를 죽이시려거든 썩은 두렁박을 내려주셔요.


그러자 또. 뭐 씨발. 그렇다고 하자. 두렁박이 내려왔다.


오누이가 두렁박을 잡고 하늘로 올라가자 호랑이도 두렁박을 잡고 하늘로 따라 올라갔다.


오누이는 하늘나라까지 잘 도착했는데 호랑이는 그만 중간에서 줄이 끊어져 떨어지고 말았다.


그른데. 그른데. 하필이면 떨어진 자리가 수수대를 날카롭게 잘라낸 밑둥이 있던 자리였다.


호랑이는 결국. 결국 말이다. 딴지의 모토인 똥침, 수수대 똥침을 당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셨다.


아... 이 하늘의 응징은 무시무시하여라. 강간범은 수수대 똥침으로 멸하리라!!


하늘에 오른 오누이는 해와 달이 되어 낮에는 해가 되어 뜨고 밤에는 달로 떠올랐고 호랑이가 똥침 당하며 흘린 피는 수수대에 그대로 남아 수수대 밑둥이 아직까지 붉은 것이다 카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수수대 밑둥은 여전히 호랑이 똥꼬 피가 묻어 있어 붉습니다. 네. 쩝;;;


호랑이의 기운이 서려있는(??) 수수라 그런지 아이의 돌이 되면 수수떡에 팥고물을 무친 수수팥떡을 해 먹였습니다. 팥죽에서 이야기 했던 잡귀를 쫒고 살아있는 어린 것을 보호하려는 주술적 의미가 담겨 있지요. 수수팥떡 참 맛있습니다. 요즘은 찰떡에 팥을 무쳐 수수팥떡이라고 내주는 돌잔치 전문업체들이 많은데 수수가루로 빚은 수수경단은 찰떡과는 맛이 확연히 다릅니다. 수수경단에 팥고물을 무쳐 먹는 수수팥떡. 생각하니 군침이 도네요. ^^


수수경단(640x480).jpg


일본인들도 경단을 좋아하나 봅니다. 순 우리말로는 옹심이라 부르는 경단이 일본 애니메이션<사무라이 참프루>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 경단(だんご-단고)에 목숨 거는 캐릭터들이 출연합니다. 찹쌀경단인지 수수경단인지는 모르겠지만 씨리즈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단고타령이 이어집니다. 대꼬챙이에 경단을 꽂아 닭꼬치처럼 빼먹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무지 맛있게 먹죠.



사무라이 참프루.jpg

귀여운 후우짱이 단고를 물고 가네요.

후우짱. 떡 하나 주면... 어흥 ㅎㅎㅎ




참고도서 - <잡곡의 과학과 문화>(박철호, 박광근, 장광진, 최용순 - 강원대학교출판부)



잡곡을 한 편으로 자르려고 했는데 잡설이 길어지다 보니 분량이 너무 많습니다. 2편으로 나눠서 나머지 잡곡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Athom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