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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부리 추천9 비추천0

2014. 01. 22. 수요일

편집장 너부리








1. 취지

 

본 기사는 각종 매체에서 이루어졌던 광고 아닌 척 책 소개하기 식의 서적 광고도 아니고 필자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그 평가가 천차만별인 니맘대로 서적 리뷰도 아니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 챌 수 있듯 본 기사는 한 해 평균 독서량이 짐승만도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각종 서적에 대해 누구 앞에서건 아무 거리낌 없이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시키는 데 그 총체적 목적이 있는 공리주의적 텍스트라 할 수 있으며, 일종의 인문학적 데자뷰 현상을 도모하는 학구적 심령기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생업에 지친 나머지 읽고 싶어도 책 읽을 기력과 의욕을 상실한 독자들에게, 설령 의욕이 있다 하더라도 직장 내 오랜 눈칫밥 습관으로 한 곳에 1분 이상 눈동자를 모으기 힘든 독자들에게, 그리고 어디 가서 모르는 책 얘기만 나오면 자아 한 곳에 치명상을 입는 가녀린 영혼을 소유한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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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졸라의 <목로주점>

 

대체 얼마나 후레자식이길래 이름이 에밀 졸라냐며 분개할 사람까지는 없겠지만, 누군가 <목로주점>을 언급했을 때 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로 시작하는 이연실의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오르거나, 아니면 어디 길목에 자리잡은 허름한 단골 술집 정도가 연상되면서 이 작품은 왠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정겹고 푸근해서 읽은 척 역시 얼굴 가득 환한 미소만 지어도 반은 먹고 들어가지 않을까 싶은 순진한 예감이 들 수 있다 하겠다. 물론 그게 아니기 때문에 필자가 읽은 척 매뉴얼 대상 도서로 당 작품을 굳이 애써 선정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 당 서적을 읽은 척 하면서 오랜 친구와의 우정이랄지, 변두리의 정겨운 술집 분위기 따위를 연상하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남의 불행이 자신에게는 얼마나 큰 행복인지, 혹은 남녀 사이의 패륜적 육체관계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고백하는 본의 아닌 도덕적 커밍 아웃의 대참사를 불러오는 행위라 하겠다. 물론 실제로도 그렇기 때문에 그닥 억울할 건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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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목로주점에 목로의 의미는 위 그림처럼 잔술을 팔기 위한 직사각형의 나무판을 말한다. ‘BAR’를 연상하면 되겠다.)

 

 

3. 읽은 척 매뉴얼


1) 등장인물

 

제르베즈 : 그야말로 비극의 여주인공. 다리를 조금 절지만 금발의 미녀로 마음씨도 곱고 성실한 세탁부. 하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랑티에 : 제르베즈의 전남편. 당 작품에는 폭력을 휘두르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거의 유일하게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남성이다. 그렇다고 좋은 남성이라 오판하면 안되겠다. 겉에 꿀을 바른 독약처럼 그의 달콤함은 오히려 치명적인 파멸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쿠포 : 랑티에에게 버림받은 제르베즈와 결혼하는 지붕 수리공. 원래는 익살맞고 성실한 인물이었으나 지붕에서 추락해 몸을 다친 후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나나 : 제르베즈와 쿠포 사이에서 태어난 딸.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 내의 또 다른 대표작 중 하나가 <나나>인데 그 나나가 바로 이 나나이다.

(여기서 <루공-마카르 총서>가 무엇인지 궁금해 할 독자들 있을 수 있겠다. 졸라가 이십여 년에 걸쳐 만든 이십 편의 장편 소설로, 농부의 후손인 루공의 집안, 주정뱅이의 후손인 마카르의 집안 얘기를 총괄하는 작품이다. 자세한 건 검색해 보면 나오겠으나 당 작품을 읽은 척 하기 위해 <루공-마카르 총서>까지 들먹이는 것은 필연적으로 니가 그걸 다 읽어 봤다는 얘기냐라고 하는 되물음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할 것이므로 실전에서는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하겠다.)

 

구제제르베즈를 진심으로 사랑했을 것만 같은 남자로 그려지는 대장장이.

 

로리외 부인 : 쿠포의 둘째 누나. 남이 불행할 때 가장 만족스러운 존재감을 느끼는 인물.

 

비자르 : 당 작품에서 등장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독자들에게 가장 충격을 주는 인물. 그야말로 주취폭력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2) 내용 요약

 

사실혼 관계의 남편 랑티에가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도망가버림으로써 제르베즈는 생애 첫 파국을 맞는다. 하지만 야무진 세탁 솜씨로 두 아들과 함께 근근히 버티던 중 지붕 수리공 쿠포의 끈질긴 구애에 못 이겨 정식 결혼까지 하면서 제르베즈는 새로운 삶의 희망을 갖게 된다. 남편 쿠포는 자상했고, 부지런했으며 결정적으로 술을 절대 입에도 대지 않는 건실한 노동자였던 것.

 

결국, 몇 년이 흘러 예쁜 딸 나나도 태어나고, 집안 세간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은 제르베즈는 동네 번듯한 건물의 가게가 빈 것을 알고 흥분한다. 어쩌면 자신이 그 가게에 세탁소를 열어 사장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로 말이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가게를 함께 둘러보고 계약을 하기 위해 쿠포의 공사장에 찾아갔던 날, 남편 쿠포가 지붕에서 떨어지는 불운의 사고를 당한다.

 

결국 가게를 세내기 위해 모았던 돈이 모두 남편 치료비용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창업의 꿈이 물거품이 되어버릴 찰나, 남편을 살리기 위해 초인적 인내심으로 간병을 했던 제르베즈의 모습을 보고 격한 감동을 먹은 이웃집 대장장이 구제가 자신의 결혼 비용으로 모아둔 돈을 선뜻 빌려줌으로써 주인공은 마침내 개인사업자가 되어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한 몸에 받는다. 늘 밑바닥에만 있을 것 같던 세탁부가 사장이 되었기 때문에 받은 질시겠지만 또 어쩌면 유부녀가 총각에게 전 재산을 빌릴 수도 있는 그녀의 두터운 신망, 혹은 타고난 섹시함이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신장개업한 예쁜 세탁소에 텍사스 소떼처럼 밀려드는 일감으로 금새 부자가 될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고를 당한 후부터 쿠포는 술을 입에 대더니만 아이들을 때리기 시작했으며, 일을 나가지도 않아 집안의 돈을 야금야금 까먹고 앉았던 것. 설상가상으로 제르베즈 역시 비정상적인 식탐의 버릇이 생겨 엥겔지수는 치솟고 가세는 바닥을 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탕자의 귀향. 그러니까 집 나간 랑티에가 돌아오면서 상황은 급물살을 탄다. 이미 과도한 음주로 판단능력을 상실하기 시작한 쿠포는 처음엔 랑티에를 잡아먹을 듯 했으나 술기운 탓인지 아니면 대범한 남자이고 싶은 허세 때문인지 혹은 둘 다인지, 랑티에와 친구를 먹더니만 급기야는 랑티에를 자기 집에 세입자로 들이는 가공할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한다.

 

이후 쿠포는 더욱 많은 술을 먹고, 더욱 난폭한 폭력을 휘두르며 몰락해갔고 제르베즈는 한 지붕 아래 현 남편과 전 남편 사이에서 일종의 시간차 쓰리섬을 벌이는 도덕적 타락, 혹은 쾌락적 한계극복의 국면에 돌입한다.

 

정신적 위기감(미래에 대한 불안)을 육체의 쾌락(섹스, 과식)으로 극복하고, 육체의 위기감(비만, 알코올 중독)을 정신적 나태(어떻게 되겠지 뭐..)로 돌려 막기를 하며 버티던 제르베즈는 결국 마지막 자존심처럼 여겼던 세탁소까지 말아먹고 다시 밑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이후 입은 셋(쿠포, 제르베즈, 나나)인데 벌거나 저축하는 사람은 없어 서로에 대한 증오의 힘으로 연명하던 와중에 결국 나나는 집을 나가 창녀로 자수성가하고, 쿠포는 술에 의한 착란 증세로 정신 병원을 오가다 비참한 최후를 맞으며, 제르베즈역시 자살을 택할 자존감마저 상실한 채 술과 영혼을 맞바꾸며 쿠포의 전철을 밟는다. 

 

3)읽은 척 세부 스킬

 

-인생 막장의 서

 

당 작품을 실제로 읽은 사람이라면 중간중간 다음과 같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좀 그만 하지??!!’

 

이는 <목로주점>에서 그려지는 주인공의 삶이 그냥 기구하다 말하기에는 너무 밋밋하다 할 정도로 점입가경의 인생 막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치 포르노의 클로즈업 화면을 3D 아이맥스로 장시간 관찰하는 것만 같은 피로감이 몰려든다 하겠다. 그만큼 당 서적은 한 여인의 SF좆망사를 너무도 리얼하게 그려낸 작품이라 하겠다.

 

그렇다. 한 여인의 좆망사.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 필자는 아랫도리와 호형호제하는 노골적 표현을 매우 싫어한다. 하지만 읽은 척의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 당 작품을 뭐라 한마디로 규정해야만 한다면 아무리 고민해봐도 좆망이라는 표현 이상의 적합한 언어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그만큼 에밀 졸라는 당 작품에서 등장인물의 삶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2단 콤보 기술을 무한 작렬시키다가 끝내 주인공을 참혹한 비극의 정중앙으로 몰아간다는 얘기이다.

 

물론 리얼 라이프도 그러하듯, 고통과 좌절의 중간중간에 잠시 잠깐의 행복과 희망이 전혀 존재치 않는 것은 아니다. 아들 둘까지 둔 상태에서 남편에게 버림받은 제르베즈가 건실한 노동자 쿠포와 결혼해 이제 좀 잘 살겠거니 싶은 희망이 싹트기도 하고,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창업을 해 사장님이 되는 달콤한 스토리도 나오며, 절망의 상황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정부대출금처럼 퍼주는 대장장이 구제도 등장한다.

 

하지만 마치 롤러코스터가 그러하듯 잠시 잠깐의 성공과 행복은 이후의 추락에 가속도를 내기 위한 점프대에 불과했다고나 할까. 아니면 지옥은 천국의 한 가운데에 있다는 걸 모른 채 환호했던 지옥행 특급열차의 차창 밖 풍경이라고나 할까.

 

7층으로 올라가면서 그녀는 어둠 속에서 웃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뼈에 사무치는 쓰디쓴 웃음이었다. 그녀는 그 옛날 자신의 이상을 떠올렸다. 조용히 일하고, 언제나 빵을 먹고, 잠자기 위한 깨끗한 집을 가지고, 아이들을 잘 키우고, 매를 맞지 않고, 자기 침대에서 죽는 것. 그래, 말도 안 돼, 웃기는 생각이었어, 뭐 하나 이루어진 게 없잖아! 지금 그녀는 일을 하지 않았고,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었고, 쓰레기 더미 위에서 잠을 잤고, 딸은 화냥질을 했고, 남편은 자기를 두들겨팼다. 그녀에게 남은 일은 길바닥에서 쓰러져 죽는 것뿐이었는데

<목로주점>열린책들, 유기환 역, p.599

 

게다가 그녀의 삶이 파멸에 이르는 데 있어 아랫도리 사용량의 과부하가 어느 정도는 단초로 작용하기 때문에 좆망이라는 표현은 당 작품의 구체적 에피소드를 면밀히 이해하고 있는 척 함에 있어서도 유용하다 할 수 있다.

 

앞서 내용요약에서도 언급했듯, 제르베즈는 자기 집에서 두 명의 시간차 남편들과 동거를 하는 엽기적 애정행각을 벌인다. 쿠포의 엄마, 그러니까 시어머니와 어린 딸도 함께 거주하는 집에서 말이다.(이는 단순히 시어머니와 딸이 함께 거주하는 공동의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피해 난교를 하는 제르베즈의 대범함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나나는 어려서부터 자기 집에서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와 교성을 지르는 엄마의 무규칙 이종 섹스를 현장학습 함으로써 일종의 영재 교육을 받고 자라는데, 결국 창녀가 되어 배운 바를 몸소 실천하는, 그야말로 행동하는 음심으로 거듭난다. 시어머니 역시 당시의 목격담을 만지작거리다가 결정적 순간에, 그러니까 제르베즈의 경제적 파멸의 순간에 마치 양심 고백하듯 동네방네 떠듦으로써 여주인공의 도덕적 파산까지 양수겸장으로 가져오는 메신저의 역할을 한다.)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원시공동사회의 일처다부제를 연상시키는 셋의 동거가 제르베즈의 강력한 의지나 면밀한 설계로 결성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봄이 오자, 한집 식구 같은 랑티에가 친구들과 더 가까이서 살 수 있도록 동네로 들어오고 싶어 했다. 그는 깨끗한 집의 가구 딸린 방을 원했다. 보슈 부인, 심지어 제르베즈조차 그런 방을 찾아 주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았다. 그들은 이웃 거리까지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그는 너무 까다로웠다.

(중략)

이제 저녁마다 쿠포네 집으로 와서 천장 높이를 재고 방의 배치를 살피는 척했고, 이 같은 거처가 몹시 탐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집이 있다면 더 볼 필요도 없이, 이처럼 조용하고 따뜻한 집 한쪽 구석에 기어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어. 그는 매번 이런 말로 집 둘러보기를 마쳤다.

제기랄! 진짜 좋은 집이야, 정말!”

어느 날 저녁 그가 그 집에서 식사를 하고 디저트 시간에 똑 같은 말을 지껄였을 때, 그와 말을 놓고 지내기 시작하던 쿠포가 별안간 소리쳤다.

그럼 여기서 지내, 이 친구야, 그렇게 마음에 든다면어떻게 방법을 찾아보자고…”

(중략)

랑티에는 일부러 제르베즈를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그는 그녀가 좋다고 한마디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제안에 몹시 당황했다. 그러나 랑티에가 자기 집에 산다는 생각이 그녀에게 상처가 되거나 불안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더러운 세탁물을 어디에 둬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중략)

폐가 될 건 없어요, 전혀.”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방법이 있겠죠…”

<목로주점>열린책들, 유기환 역, p.341~343

 

 

쿠포 부부에게 기생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떡밥을 뿌린 사악한 전남편과, 독주를 장복하면서 바보가 되어버린 현남편이 그 미끼를 덥석 삼키는 바람에 초래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만 정조를 지키면 됐지. 그 덕에 하숙비도 벌고…’라며 일견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란 걸 알면서도 굳이 애써 원천봉쇄 하지 않으려 했던 제르베즈 역시 암묵적 방조의 혐의 정도는 존재한다.

 

그녀는 저항했다. 격하게 고개를 흔들며 안 된다고 했다. 정신이 없는 가운데 마치 거기서 자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듯 그녀는 실크 드레스를 벗어 의자 위에 던졌고, 내의와 속치마 차림으로 하얀 목덜미와 벌거벗은 두 팔을 드러냈다. 침대는 내 것이야, 그렇잖아? 그녀는 자기 침대에서 자고자 했다. 두 번이나 침대에서 깨끗한 구석을 찾아내서 거기로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랑티에는 단념하지 않았고, 그녀의 욕정에 불을 붙이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소곤거렸다. ! 그녀는 오도 가도 못 하게 되었다. 앞에는 자기 잠자리에 드는 것을 방해하는 더러운 남편이 있었고, 뒤에는 불행을 이용해서 자기를 다시 가지려는 비열한 사내가 있었으니 말이다! 모자장이가 목청을 높였기 때문에, 그녀는 조용히 하라고 애원했다. 그녀는 나나와 쿠포 할멈이 자고 있는 작은방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계집애와 노파는 잠이 든 게 틀림없었다. 깊은 숨소리가 들렸다.

오귀스트, 놔줘요, 이러다 모두 깨겠어.” 그녀가 두 손을 모아 애원했다. “정신 차려요. 다음에, 다른 곳에서여기선 안 돼. 딸 앞에서는…”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 옛날에 그녀의 몸을 달아오르게 하고 얼을 빼놓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귀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그녀는 힘이 빠졌고, 귀가 윙윙거렸고, 거대한 전율이 온몸을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시 한걸음을 뗐다. 하지만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역겨움이 너무도 크고 악취가 너무나 심해서 그녀 자신마저 침대 시트에 토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술로 녹초가 된 쿠포는 보료에 누운 듯 바닥에 누워 입이 비틀어진 채 시체처럼 꼼짝 않고 취기를 식히고 있었다. 동네의 모든 사내들이 들어와서 자기 아내를 껴안아도 털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리라.

안됐지만 할 수 없지.” 그녀는 더듬거렸다. “그이 잘못이야. 어쩔 수 없어! 어쩌면 좋아! ! 어쩌면 좋아! 그이가 날 침대에서 쫓아냈어. 난 더 이상 침대가 없어, 어쩔 수 없어. 그이 잘못이야.”

그녀는 몸을 떨었다, 정신이 아득했다. 랑티에가 그녀를 방으로 밀고 들어가는 동안, 나나의 얼굴이 작은방 문에 달린 유리창에 나타났다.

<목로주점>열린책들, 유기환 역, p.386~387

 

 

게다가 그녀는 결국 들통났음에도 그 평범치 않은 삼각관계를 굳이 애써 청산하지 않는, 그러니까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혹은 이미 소를 잃었기 때문에 외양간을 고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왕지사적 자기 합리화까지 선보인다.

 

온 동네가 분개하고 있음에도 제르베즈는 나른하고 졸린듯한 표정으로 태연히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도 자신이 죄인이고 더럽기 짝이 없는 여자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혐오했었다. 랑티에의 방에서 나올 때면 그녀는 손을 씻었고, 수건을 적셔서 더러움을 없애려는 듯 껍질이 벗겨지도록 어깨를 문질렀다. 그럴 때 쿠포가 장난을 치려 하면 그녀는 화를 내었고, 몸을 덜덜 떨며 가게 안쪽으로 옷을 입으러 갔다. 더욱이 남편이 자기를 안은 직후에 모자장이가 자기 몸을 만진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남자를 바꿀 때마다 피부를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서서히 그녀는 익숙해져 갔다. 매번 몸을 깨끗이 씻는 것도 피곤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나태함이 그녀를 둔감하게 했고, 행복해지려는 욕구가 현재의 골치 아픈 삶으로부터 온갖 행복을 끌어내게 했다. 그녀는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관대했고, 아무도 힘겨워하지 않도록 모든 일을 조정하려 애썼다. 그렇지 않은가? 남편도 애인도 만족한다면, 집이 문제없이 그럭저럭 굴러간다면, 모두가 통통하게 살지고 불만 없이 평온하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웃고 산다면, 정말이지 불평할 게 뭐가 있을까. 결국 일이 각자의 만족 속에서 잘 굴러가고 있으니, 내가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닐 거야. 통상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아야 하잖아. 그리하여 방종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목로주점>열린책들, 유기환 역, p.392

 

정리하자면, 그녀의 좆망에는 실제 의 관습적 윤리문제와도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당 작품을 한 여인의 좆망사라 표현하는 것은 천박한 축약이기 전에, 매우 디테일하면서도 중의적인 읽은 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에밀졸라의<목로주점>이 갖는 문학사적 의미를 이해하는 척 함에 있어서도 좆망이라는 표현은 공교롭게도 적절하다. 

 

<목로주점>은 확실히 내가 쓴 소설 가운데 가장 정숙한 소설이다. 그럼에도 나는 유달리 끔찍한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선 형식만으로도 사람들을 질겁하게 했다. 그들은 어휘에 대해 분개했다. 나의 죄는 민중의 언어를 모아서 그것을 무척 공들여 만든 거푸집에 붓는 문학적 호기심을 가졌다는 데 있다. ! 형식, 거기에 대죄가 있다니! 그렇지만 민중언어의 사전도 이미 존재하고 있고, 또 박식한 사람들은 그것을 연구하고 그 대담성, 의외성, 이미지 생산력을 즐기기까지 한다. 민중 언어는 꼬치꼬치 캐기를 좋아하는 문법학자들에게는 그야말로 하나의 보물섬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무엇하랴, 아무도 나의 의도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여겨지는, 순수하게 문헌학적인 작업을 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아주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나 자신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의 작품이 나를 변호해 주리라. 이것은 진실의 작품이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민중의 냄새가 나는 최초의 민중 소설이다.

<목로주점>열린책들, 유기환 역, p.8

 

위는 작가의 서문을 발췌한 부분으로, 졸라가 자신의 작품을 두고 파리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원색적 언어를 있는 그대로 구현한 최초의 민중소설이라고 자평한 만큼 당 작품에 대해 한 여인의 좆망사라며 민중의 냄새가 물씬한 표현을 쓰는 것은<목로주점>에 대한 내용 이해뿐 아니라 세계문학사에서 당 작품이 차지하는 위상마저 숙지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시 현상을 제공한다 하겠다.

 

-가정폭력의 서

 

당 작품에는 제르베즈의 막장 인생 얘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녀가 막장의 끝판왕이라 단언하기도 힘들다. 왜냐하면 아래와 같은 인물들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비자르 영감이 마누라를 두들겨 패고 있어요.”다림질장이가 말했다. “ 정문 현관 밑에서 곤드레만드레 취한 영감이 세탁장에서 돌아오는 마누라를 기다리고 있었대요마누라가 들어오자마자 주먹질로 계단으로 끌고 갔고, 지금은 방에서 죽도록 때리고 있어요…. 봐요, 비명 소리가 들리죠?”

(중략)

맞아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어!” 제르베즈가 와들와들 몸을 떨면서 말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갔다. 망사르드식 창이 달린 방은 무척 깨끗했지만, 남편이 주벽으로 침대 시트까지 팔아서 술을 마신 탓에 헐벗고 서늘했다. 소란에 식탁은 창가까지 밀려나 있었고, 뒤집힌 의자 두 개는 다리를 공중으로 쳐들고 있었다. 방바닥 한가운데서, 물에 젖은 치마가 허벅지에 달라붙고 머리칼이 산발이 된 비자르 부인이 피를 흘리면서 비자르가 발길질을 할 때마다 아이쿠! 아이쿠! 소리를 지르며 거친 숨결로 헐떡였다. 처음에 주먹으로 때리던 비자르는 이제 아예 발로 짓밟고 있었다.

에잇! 망할 년아!... 에잇! 망할 년아!... 에잇! 망할년아!” 그는 때릴 때마다 끈덕지게 그 말을 되풀이하면서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으르렁거렸고, 숨이 막히면 막힐수록 더 격렬하게 때렸다.

(중략)

바닥에서는 비자르 부인이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감은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비자르는 잠시 마누라를 손에서 놓쳤다. 그는 다시 돌아와서 미친 듯 날뛰며 때렸지만 발길질이 빗나갔고, 눈에 초점이 사라진 채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다가 급기야 자기 가슴을 쳤다. 이런 단말마의 참극 속에서 제르베즈의 눈에 네 살짜리 여자아이 랄리의 모습이 보였는데, 방 한구석에서 랄리는 아빠가 엄마를 때려잡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아이는 그 전날 젖을 뗀 여동생 앙리에트를 보호하려는 듯 두 팔로 감싸고 있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아이의 머리에는 옥양목 머리쓰개가 덮여 있었고, 심각한 표정을 담은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생각에 잠긴 듯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으며, 눈물 한 방울 없이 커다란 검은 눈망을로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목로주점>열린책들, 유기환 역, p.274~275

 

입사 면접이랄지, 독후감 과제 제출이랄지, 애인 앞에서 교양 뿜기랄지. 아무리 읽은 척이 절박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이런 내용을 소재로 읽은 척 깐죽 스킬을 시전했다가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클 수 있겠다.

 

위와 같은 끔찍한 가정폭력의 에피소드는 당 작품이 비록 19세기에 쓰여진 소설이라 하더라도, 소설은 늘 현실을 반영하는 법인데다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이런 지옥은 곳곳에 현존하기 때문에(마침 필자가 이 글을 쓸 때, 초등학교 소풍을 가고 싶다는 8살 딸의 갈비뼈 16개를 부러뜨려 죽음에 이르게 한 엄마의 뉴스가 있었다.) 나에게는 자아 호신용 읽은 척이었을 뿐이지만 누구에게는 깊은 영혼의 상처를 헤집는 2차 가해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게다가 당 작품에 등장하는 비자르 영감의 막장질은 자기 아내를 때려죽이는 비극에서 끝나지를 않는다.

 

꼬마 랄리, 2수짜리 버터 조각만큼 조그마한 이 여덟 살짜리 계집애가 어른처럼 훌륭하게 살림을 꾸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힘든 일이었다, 계집애는 세 살짜리 남동생 쥘과 다섯 살짜리 여동생 앙리에트를 책임지고 있었다. 온종일, 심지어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할 때에도 그 조무래기들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비자르 영감이 마누라를 발로 차서 죽인 이후, 랄리는 온 가족의 작은 엄마가 되었다. 아무 말 없이 아이는 스스로 죽은 엄마를 대신했는데, 그 짐승 같은 아비는 진짜로 아이를 마누라로 착각했는지 예전에 엄마를 두들겨 팼던 것처럼 지금은 딸을 두들겨 팼다.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면, 이자는 여자들을 죽도록 두들겨 패야 직성이 풀렸다. 그는 랄리가 몹시 어리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나이 든 여자였다 해도 더 세게 때리지는 않았으리라. 따귀 한 대가 아이의 얼굴 전체를 덮었고, 아직 살이 여려서 다섯 개의 손가락 자국이 이틀이나 남아 있었다. 그것은 비열한 구타였다. 그렇다고 해도 때렸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때렸다. 그것은 사나운 늑대가 겁에 질려 아양을 떠는 불쌍한 작은 고양이, 눈물이 날 정도로 깡마른 작은 고양이에게 덤벼드는 격이었는데, 그 불쌍한 작은 고양이는 불평 한마디 없이 체념 어린 아름다운 눈으로 조용히 구타를 받아들였다. 그렇다, 랄리는 결코 반항하지 않았다.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고개를 약간 숙일 뿐이었다. 건물을 시끄럽게 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로 소리를 참았다. 이윽고 아버지가 구둣발로 차서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몰고 다니는데 싫증이 났을 때, 아이는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길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런 다음 일을 시작했고, 동생들을 씻겨주었고, 식사를 준비했고, 가구에 먼지 하나 없도록 깨끗이 청소를 했다. 얻어맞는 것도 하루 일과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목로주점>열린책들, 유기환 역, p.469~470

 

고로 <목로주점>을 읽은 척함에 있어서는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대략 다음과 같은 수준의 절규에 가까운 읽은 척을 권장하는 바이다.

 

인류 최초의 범죄라 언급되는 카인과 아벨의 얘기는 많은 걸 시사해. 아벨만 예뻐하는 하느님의 편애가 형제간 살인의 비극을 낳았다는 거, 그러니까 인류 최초의 범죄는 애정결핍 때문에 벌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점과 그 살인자는 어마어마한 괴물이나 멀리서 찾아온 외계인이 아니라 바로 아벨의 친형인 카인이었다는 점 말이야.

 

사람들이 가끔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얘기를 하면서 세상 참 무섭다고 할 때가 있잖아. 하지만 목로주점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바로 가족인 것 같아. 비자르 영감을 봐봐. 아빠면 뭐해. 자기 아내를 발로 차서 죽이고 여덟 살짜리 딸은 채찍으로 때려죽이잖아. 그러니까 정말 위험한 건 언제 만날지 모를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늘 내 곁에 있는 가족이라는 거야.

 

물론 모든 가족이 위험하다 말할 수는 없겠지. 충분히 서로 사랑하며 단란하게 사는 가족들도 많으니까. 하지만 가족의 구성원 중 누군가가 일방적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그때는 가족이기 때문에 더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는 거야. 사이코패스가 나를 괴롭힐 수 있는 시간과 가족이 나를 고문할 수 있는 시간의 양은 비교가 안될 거잖아. 게다가 사이코패스한테서는 정말 재수없고 억울한 일을 당한 거라는 생각이라도 할 수 있지만, 아빠에게 당하는 건 그렇지가 않아. 내가 딱히 잘못한 게 없어도 사랑이 아닌 증오를 주는 현실의 부조리를, 같은 수준의 육체적 물리력이 없는 아이가 관념상으로나마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냥 아빠는 옳고 나는 맞을 짓을 한 거여야만 해. 진짜 억울한데 억울할 기회도 없는 게, 진짜 이해 안 되지만 억지 이해를 해야만 하는 게 바로 가정폭력이라는 거지. 그래서 랄리가, 그 꼬마가 그 매를 맞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소리를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 이런 모순된 상황을 별 도움도 안 되는 동네 사람들한테까지 알리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

 

그런 면에서 가정폭력의 본질은 어쩌면 에 있는 게 아니라 모순에 있는 건지도 몰라. 사람들이 가정폭력을 얘기할 때 사랑의 매는 필요한가 아닌가를 두고, 그러니까 아이를 때리는 게 효과가 있나 없나를 두고 논쟁을 벌이곤 하는데 그거 다 개소리들이라는 거지. 단적으로 얘기해서 모순이 없는 매라면, 그렇다면 니맘대로 때리라는 거야.

 

예를 들어 거짓말 하는 아이는 매로 따끔히 다스려야 정직하게 기를 수 있다는 나름 그럴듯해 보이는 원칙을 가진 부모가 있다 쳐봐.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매를 드는 부모도 늘 거짓이 없다면, 그런 부모의 매라면 난 존중 받아 마땅하다고 봐. 아마 매를 맞는 아이도 그런 경우엔 부모의 매를 폭력이라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아. 모순이 없는 매는 아이를 다치게 할 수는 있어도 미치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야. (게다가 아이는 반드시 자기 부모를 따라 하는 법이니 정말 정직한 부모에게 매를 맞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거짓을 행하는 아이는 없을 거 같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잖아. 거짓말 한다고 때리고, 그럼 아빠엄마는 왜 거짓말 하냐 따져 물으면 말대꾸 한다고 때리고, 그래서 억울해 울면 뭘 잘했다고 우냐며 또 때리고. 이러니 애들이 어떻게 안 미쳐?


매가 꼭 필요하다면 적어도 어떻게 하면 맞고 어떻게 하면 안 맞는다는 명확한 기준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가정폭력은 이런 기준이 없잖아. 그냥 때리는 사람 마음인 거지. 그렇다고 내가 평소 다른 사람들한테 좀 무시 받는 것 같아 열 받고, 되는 일이 하나 없어서 속상하니깐 누군가 울고 불며 잘못했다는 말이라도 좀 들음으로써 나도 누구에게는 이렇듯 존재감의 맹위를 떨치는 사람이라는 걸 좀 증명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어. 자 그러니까 지금부터 네가 좀 맞아야 할 것 같아식의 속마음을 설명을 해주는 것도 아니잖아. 어떻게든 아이의 잘못을 만들어 가해자가 정의의 심판자까지 되려고 이중의 지랄삥들을 치잖아. 이러니 애들이 안 미치고 배기겠냐고. 이렇게 각 가정에서 싸이코패스 선행학습에 열을 올리는데 싸이코패스 선진국이 안 되겠냐 이 말이야.

 

그리고 하나 더. 가정폭력의 본질 중 또 하나는 비열함인 것 같아. 그러니까 가정폭력은 타고나길 다혈질인 남편, 혹은 엄격함을 추구하는 부모의 필요악적인 뭔가이기 전에 그냥 비열한 인간들의 특징일 수 있다는 얘기야.

 

목로주점에서는 실로 다양하고 끔찍한 가정폭력이 재현돼. 제르베즈도 어려서부터 하도 아빠한테 맞고 자라서 14살 어린 나이에 랑티에와 함께 집을 나간 거였거든.

 

정말이에요! 난 야심이 없어요, 큰 걸 바라지 않죠내 이상은 그저 조용히 일하고, 언제나 먹을 빵이 있고, 잠자기에 적당한 집이 있고, 글쎄, 침대 하나, 식탁 하나, 의자 둘, 더 이상은 아녜요! 그리고 아이들도 키워야죠, 가능하면 훌륭한 사람으로한 가지 더 있다면, 그건 언젠가 살림을 다시 차린다 해도 더 이상 얻어맞지 않는 거죠. 안 돼요, 얻어맞는 건 정말 못 참겠어요그뿐이에요, 정말 그뿐이에요…”

<목로주점>열린책들, 유기환 역, p.63

 

술을 입에 대면서부터는 착한 가장이던 쿠포도 아이들에게 발길질을 하고 나중에는 제르베즈도 마구 때리지.

 

쿠포는 자기가 암나귀의 부채라고 이름 붙인 몽둥이를 갖고 있었다. 그가 마누라에게 그 부채를 부쳐 주는 광경이란, 정말 굉장했다! 그럴 때면 그녀는 땀에 흠뻑 젖었다. 물론 그녀 또한 사납게 할퀴고 물어뜯었다. 텅 빈 방에서 난투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허기조차 잊게 하는 주먹질 말이다. 그러나 마침내 그녀는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주먹다짐도 예사로 여기게 되었다.

<목로주점>열린책들, 유기환 역, p.559

 

그렇다면 제르베즈는 온전히 피해자였을까? 그렇지 않아. 쿠포와 함께 술을 먹으며 머리에 독이 차오르면서부터는 제르베즈 역시 자기 딸 나나를 두들겨 패기 시작해. 그렇게 폭력을 싫어하던 제르베즈 마저도 말이야.

 

겨울로 접어들면서 쿠포네 집의 살림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저녁마다 나나는 두들겨 맞았다. 아버지가 때리다 지치면, 어머니가 행실을 가르쳐 준다며 따귀를 날렸다. 그리하여 집은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다. 한족이 때리면, 다른 쪽이 말렸고, 그러다 보면 결국 셋 모두 접시가 깨진 가운데 방바닥에서 뒹굴었다.

<목로주점>열린책들, 유기환 역, p.522

 

남편이 아내를 때리고, 엄마가 자식을 패고, 형이 동생을 조지고, 그 동생은 하다못해 개미나 잠자리라도 해체를 하고그러니까 가정폭력이란 건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어김없이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향한다는데 그 비열함의 본질이 있다는 거지.

 

그렇잖아. 아무리 성격이 불같고 다혈질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시베리아 호랭이의 머리통을 쥐어박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시 말해 아무리 가정폭력의 이유에 훈육의 원대한 목표가 있고, 고육지책의 가슴 아픔이 있다손 치더라도 가정폭력의 본질은 그냥 때릴 수 있으니까 때린다에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야.


그래서 비열한 폭력에는 늘 증오심(과장된 분노)이 세트로 따라오는 것 같아. 그것이 불의에 대한 증오든, 나태에 대한 증오든, 비열함에 대한 증오든. 증오에 대한 증오든 뭐든 간에. 강력한 증오는 그 증오의 이유가 얼마나 합리적인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종종 폭력의 비열함을 감춰주거든.

 

놀랍게도 증오가 아닌 사랑이 비열한 폭력에 물타기를 할 때도 있어. 적에 대한 강력한 증오는 곧 자기 편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니까. 이단을 불태워 교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의 마녀사냥이 그렇고, 흑인을 노예로 백인의 이득을 추구한 인종차별이 그렇고, 적군을 말살해 아군의 안녕을 도모하려는 온갖 전쟁이 다 그렇잖아.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정말 이해되지 않는 미친 짓들을 되풀이 하는 이유는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예나 지금이나 지들은 정말 옳은 일(혹은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야. 그도 그럴 것이 피아가 정해진 상황에서 적에게 가해지는 참혹한 고문은 우리 편에게는 정의의 구현이 될 테니까 말이야.

 

결국 근본적인 건 피아를 규정하는 인간의 머리 속 개념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 개념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 이상, 그러니까 뇌세포의 일대 전환이 없는 이상 이런 반쪽 짜리 정의와 사랑, 반쪽 짜리 불의와 증오는 내가 어떤 반쪽의 위치에 놓일 것인가의 입장만 바뀔 뿐 계속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몰라.

 

사실 당 작품에서 가정폭력의 주요 원인으로 제시되는 건 술과 가난이야. 비자르 영감은 늘 술에 쩔어있는 중증의 주정뱅이였고, 멀쩡하던 쿠포도 술을 먹기 시작하면서 변하기 시작했으니까. 제르베즈도 마찬가지고. 또한 폭력을 휘두르는 등장인물 모두는 현재 괄약근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 하지만 술과 가난이 가정폭력의 근본적 원인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렇잖아. 술에 취한 모든 사람, 찢어지게 가난한 모든 사람이 그런 끔찍한 폭력을 휘두르는 건 아니잖아. 술을 먹지 않는 부모와 가난하지 않은 가정에서도 가정폭력은 얼마든 발생하고 말이야.

 

물론 술과 가난이 그럴 가능성을 굉장히 높이기는 할 것 같아. 왜냐하면 술과 가난은 결국 사람을 모순되게 만들고, 비열하게 만드는데 아주 그냥 특효가 있는 조건들일 테니까 말이야. 술과 가난은 물리적으로 뇌세포를 직접 파괴하기도, 사람의 감정을 총체적 불안에 빠뜨리는 대표적 요소들이잖아. 알코올에 파괴된 뇌세포에서 모순 없는 현명함이 나올 리 만무하고 당장 배를 굶는 가난에서 비열하지 않은 우아함이 샘솟기는 정말 힘들 거야. 그 점 때문에 당 작품에서는 술과 가난이 거의 모든 악의 배후인 것처럼 설정되지만, 다시 그 배후에는 특히 술과 가난에 의해 쉽게 무너지는 인간의 이성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

 

이런 점에서 나는 비자르 영감도 한 줌의 변호를 받을 자격은 있을 것 같아. 비자르 영감이 구제불능의 악마이기 전에 한 번도 구제받아본 적 없이 자라 어른이 되어버린 랄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야. 비자르 영감이 날 때부터 온갖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부인과 딸에게 그런 짓을 한 거라면 순도 99.99%의 악마를 향해 맘껏 분노하고 심판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런데 만약 비자르 영감 역시 어려서부터 끔찍한 가정폭력에 길들여진 사람이었다면, 그러니까 자기와 똑같은 아버지 밑에서 랄리처럼 고문당했음에도 용케 죽지 않고 버텨 어른이 되어버린 게 비자르 영감이었다면, 게다가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이성적 판단의 과정(자기는 억울한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 그런 억울한 경험을 전염시키면 누군가는 또 자기처럼 될 거라는 개연성, 누구보다 그 지옥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잔인한 악마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선에서 그 지옥을 봉인한다면 그건 정말 찬사 받아 마땅한 훌륭한 일이라는 사실 등)을 다질 수 있는 환경과 기회는 박탈된 채 술과 가난으로 더욱 견고한 모순의 늪에서 비열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삶을 살아야 했다면 우리는 과연 비자르 영감을 순도 몇 프로쯤의 악마라 규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상상은 비단 비자르 영감과 비자르 영감의 아버지까지만 국한시킬 수 있는 게 아니라 거기서 얼마든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거야. 성경의 세계관이라면 아담과 이브까지, 단군의 세계관이라면 곰과 호랑이까지도 갈 수 있겠지. 폭력의 역사는 정말 유구할 테니까 말이야.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이 될 거 같아. 분명한 건 귀찮고 복잡하지만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확장되는 맥락에 따라 악마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사람은 병신이 되기도 하며, 또 그 병신이 천사가 되기도 하는 다양한 결과물들이 도출될 거라는 사실이지.” 

 

-결정적 장면들

 

당 작품의 주제 의식과는 별 상관 없지만, 읽은 척에는 매우 유용한 결정적 장면들이 있다.

 

하나는 작품 초반 제르베즈와 비르지니가 벌이는 빨래방의 격투다. 마치 서부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에피소드는 진보적 개차반(입은 정치적 진보를 떠들지만 행실은 개차반이라는 점에서)인 랑티에가 집을 나간 후 제르베즈가 공동 세탁장에서 묵은 빨래에게 화풀이를 하던 중, 마침 남편과 눈맞은 여인의 친언니가 나타나 좀 더 현실감 있는 대체제를 향해 분노의 방망이를 내다 꽂는 장면이다.

 

이 과정에서 우아한 필자로서는 차마 일일이 옮겨 적을 수 없는 기괴망측한 육두문자들이 오가고, 급기야는 빨래 방망이로 서로의 치부를 난타하는 진풍경까지 연출된다. 그것도 온수와 수증기 때문에 젖은 옷이 착 달라붙은 안쓰러운 상황에서. 나중에는 상대의 빤스까지 안쓰럽게 강제 이탈시킨 채….

 

이 장면은 파리 노동자의 변두리적 삶을 풀HD급의 묘사로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문학사적 가치뿐 아니라 그 비주얼이 인간의 동물적 행태를 적나라하게 담고 있기 때문에 읽은 척을 위한 학습의 가치가 충분하다 할 것이다. 쉽게 말해 야하기 때문에 당 서적을 읽은 누군가라면 반드시 기억하고 있을 장면이므로 기억해두면 유용하다 하겠다.

 

또 하나는 제르베즈가 세탁소 사장이 된 후 첫 생일잔치를 개최하는 장면으로, 쿠포의 탈선에서 비롯된 불안함과, 살림살이가 살짝 펴진 것에서 비롯된 보상심리가 제르베즈의 거대한 식욕으로 전이되어 펼쳐지는 일종의 식자재 테러식이라 할 만하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바로 12파운드 반짜리 거위 바비큐를 향해 벌이는 거의 차력쇼에 가까운 폭식 장면이다.

 

개선의 행진이 펼쳐졌다. 만면에 조용한 웃음을 머금은 제르베즈가 땀에 흠뻑 젖은 채 두 팔을 뻗어 거위를 들고 들어온 것이다. 여자들이 그녀를 뒤따라 행진했고, 그녀처럼 웃었다. 맨 뒤에서 있던 나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광경을 보기 위해 자꾸만 발돋움을 했다. 비 오듯 기름을 흘리는 거대한 황금빛 거위를 식탁에 올려놓았을 때, 아무도 곧바로 덤벼들지 못했다. 존경에 가까운 놀라움과 감탄이 좌중의 말문을 막았다. 모두가 눈을 깜박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거위를 바라보았다.

(중략)

그야말로 포크의 일제 공격이었다. 말하자면 참석자 그 누구도 이처럼 질리도록 음식을 먹어 본 기억이 없었다. 통통하게 살진 제르베즈는 팔꿈치를 괴고 한 입이라도 놓칠까봐 말도 하지 않으면서 커다란 고기 조각을 씹었다.

(중략)

! 빌어먹을! 배가 터지도록 먹었어! 먹을 땐 먹어야지, 안 그래? 어디서건 회식이 있을 때 목구멍이 차도록 먹어 두지 않는 건 바보짓이야. 사실인즉, 모두의 배가 엄청나게 부풀어 올랐다. 여자들도 임신한 것처럼 배가 불렀다. 금세라도 터질 듯했다. 대식가들이 따로 없어! 입은 헤벌어지고 턱에는 기름이 잔뜩 묻은 채, 그들은 얼굴이 돈더미에 묻힌 부자들의 엉덩이처럼 벌겋게 되었다.

<목로주점>열린책들, 유기환 역, p.30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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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목로주점>

 

당 장면은 그야말로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소위 먹방으로써도 읽은 척의 가치가 있지만, 성경의 최후의 만찬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는 점에서도 회자될 가능성이 높은 중요 장면이라 하겠다. 제르베즈의 생에서 가장 럭셔리한 저녁을 먹는, 말 그대로 최후의 만찬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생일잔치에 모인 참가자의 숫자가 공교롭게도 13명이었다는 점. 그리고 13이 불길한 숫자라서 즉석 추가 섭외한 인물이 바로 당시 제르베즈가 살고 있는 건물에서 가장 비참하던 브뤼 영감인데 이후 제르베즈의 삶은 브뤼 영감의 삶과 서서히 겹쳐간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이런 이유로 작품 말미에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몸이라도 팔아보려고 동네 야산을 헤매던 제르베즈가 브뤼 영감과 조우하는 장면 역시 당 작품을 읽은 척 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결정적 장면이라 하겠다. 

 

첫 번째 돌풍에 제르베즈는 정신이 번쩍 들어 더욱 빨리 걸었다. 벌써 어깨가 하얗게 된 몇몇 남자들이 달음박질을 치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나무 아래로 천천히 걸어오는 한 남자가 눈에 띄자, 그녀는 다가가서 다시 말했다.

여보세요, 잠깐만요…”

남자가 멈춰 섰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손을 내밀며, 나지막이 속삭이듯 말했다.

한 푼 적선합쇼…”

두 사람을 서로를 바라보았다. ! 맙소사! 둘이 이렇게 만나다니, 브뤼 영감은 구걸을 하고, 쿠포 부인은 매춘을 하면서! 그들은 서로의 면전에서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벌리고 서있었다. 이런 시간에, 이렇게 만나 어떻게 서로를 돕는단 말인가. 밤새도록 늙은 노동자는 거리를 배회하면서도 감히 사람들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다가간 첫 번째 사람이 바로 자기처럼 굶어 죽어 가는 여자였던 것이다. 주여! 불쌍하지도 않으신가요? 50년이나 일하고서, 구걸을 하다뇨! 구트도르 가 최고의 세탁부였는데, 시궁창에서 헤매다뇨!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한마디 말 없이 서로 헤어져 각자 세찬 눈보라 속으로 걸어갔다.

<목로주점>열린책들, 유기환 역, p.302~307

 

 

그 밖에도 당 작품과 관련해서는 아니어도 에밀 졸라를 좀 아는 척 하기 위해서는 그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유죄라고 말할 때, 혹은 유죄여야만 한다고 믿었을 때 무죄임을 선언해 졸라가 해외 망명까지 해야만 했던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해서는 에밀 졸라의 또 다른 역작, <나는 고발한다!>에 대한 읽은 척 매뉴얼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이 도리라 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자세한 언급을 생략하는 바이다.

 

이상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본 읽은 척 매뉴얼은 누군가에게 잘 알지 못하는 책 얘기로 불의의 일격을 당했을 때 자신의 자아를 방어하기 위한 호신용 매뉴얼일 뿐이다. 결코 자신보다 더 책을 읽지 않는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한 나쁜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편집부 주


한 번쯤 읽어는 봐야 할 것 같으나 

이러저러한 사정상 읽지 못했던 고전작품을

열분덜이 '읽은 척'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하는 <읽은 척 매뉴얼>

그러나!

절대로 읽은 척 하지 말고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것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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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