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펜더 추천10 비추천0

2014. 02. 03. 월요일

펜더






 


“야! 유린기 잘하는 데 아는데 오늘 거기서 보자. 6시까지 C대 앞으로 나와!”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향은 언제나 푸근한 엄마 품과 같은 온기를 건네 준다. 그렇다면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죽네 사네하며 붙어다녔으니 햇수로만 따져도 얼추 24년? 사반세기가 가까워지는 친구들이다. 친구라기보단 형제란 표현이 맞을 듯 싶다. 명절날만 되면 서로의 집을 찾아가 인사를 하고, 끌고 나와 회포를 푸는 것. 그게 명절날의 모습이다. 문득 옛 시절을 뒤돌아보니 우리의 대화 주제가 변한 만큼 우리가 나이 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내가 서울에 올라갔을 때만 하더라도,

 

“서울 여자 예쁘냐? 고소영 봤냐?” “거기엔 SBS도 나온다면서?”

 

뭐 이런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직장생활, 사업, 육아, 교육, 주식... 그러다가 정치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단골 안줏거리가 됐다. 그래 어느새 우리가 그렇게 욕하던 동네 형들과 비슷한 연배가 돼 그 동네 형들이 하던 말들을 하는구나...

 

각설하자. 이번 설에 친구 한 놈이 갑자기 유린기를 먹으러 가자고 난리를 쳤다. 어떤 설정도, 구라도, 픽션도 아니다. 진짜 유린기를 먹으러 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을 먹은 것도 아니며, 그녀를 희화화하기 위해 유린기란 설정을 잡은 것도 아니다.(친구들은 그녀가 이라 불리는 것도 몰랐다. 내가 말해주긴 전까지는... 쿨럭) 그냥... 유린기가 먹고 싶었던 것이다.(설 바로 전날!!)

 

“내가 저번에 모임이 있었거든, 거기서 이걸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어.”

 

그렇게 우리는 유린기를 먹게 됐다. 설날 하루 전에 말이다.


.

.

.

.

.

.



1.JPG



유린기와 몇 가지 요리를 올려놓고, 한 순배 술잔이 돌았다.

 

서로 그간의 사정, 살아온 이야기 등을 말하고 나니 자연스레 정치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들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경기에 민감한 직종에 있었기에 정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었다. 사업을 하는 이들이라면 한국에서 정치가 경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몸으로 느낄 것이다.

 


A : 야, 오늘 B가 다 쏘는거야? 이색희 공장 팔았잖아. 야, 그거 얼마에 넘겼냐? 27억?
 
B : (인상) 25억...그게 30억에 맞춰야 얼추 들어오는 게 있는데, 대출 까고 이것저것 하면...그냥 빚잔치야.
 
C : 까는 소리하네. 공장 팔고 차부터 바꾸겠다고 벤츠 매장 찾은 놈이.
 
A : (웃음) 우리 대표차가 SM7이잖냐...좀 오래 탔고, 내가 미안해서라도 바꿔줘야지.
 
나 : 그래서? 차 바꿨어?
 

A : 나? 난 아니고, 우리 대표차. 00시리즈로 바꿔줬는데... 좋아하더라.

 

 

A는 중소기업 치고는 제법 건실하게 사업을 하는 친구다. 대표라 불리는 사람은 자신의 처형이고, 이 녀석이 실질적인 회사의 대표다. 그 동안 속을 끓였던 공장 건물을 팔고 나서 한숨 돌린 상태. 그러나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A : 근데, 이게 마냥 좋아할 일이 아냐.


나 : (심드렁) 뭐가? 돈 안돌아서 쩔쩔 맬 때가 언젠데...

 
A : 글치, 근데 이거 공장 때문에...세금 좀 쎄게 맞을 거 같아서.
 
나 : 비용 처리하면 안 돼?
 
A : (한숨) 비용 처리하려고 이것저것 머리를 굴리긴 하는데, 요즘...분위기 장난 아니다.


나 : 왜?
 
C : 네가 이 바닥 떠나서 감이 많이 떨어졌나 본데... 여기 박근혜 대통령 되고 나서 완전 개박살 났어.
 
나 : 뭔 소리야?
 
B : 세금.
 

나 : 세금?

 

 

친구들 말로는 지금 자영업자나 중소기업하는 이들은 저마다 세금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는 것이다.

 

2.jpg



B : 대기업 같은 것들은 연말에 매출 생기면 법인세 내느니 직원들 성과급 준다고 돈 풀잖아? 어차피 법인세로 나갈 거 인심이나 쓰자는 건데...우리 같은 애들은 걔네들 버는 것의 발톱의 때만큼도 못 버는데... 그게 또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니까...
 
나 : 뭔 소리야? 자세히 좀 말해봐.
 
A : 간단히 말해서 지금 바짝 몸 웅크리고 있어. 원래 우리도 공장 팔고 나서 회사 차 3대를 바꾸려고 했어. 대표차 바꾸고, 영업용 두 대 바꾸려고 했는데... 회계 사무소에서 반대하는 거야.
 
나 : 회계 사무소에서 왜?
 
A : (웃음) 요즘 같은 시절에 법인 명의로 차 3대 뽑으면 바로 세무조사 들어와서 세금 두들겨 맞는다고.
 
C : (웃음) 대기업들한테 세금 걷을 생각은 안하고, 힘없는 애들 쥐어짜자는 거지.
 
A : 요즘 여기 장난 아냐. 돈 냄새 조금만 풍기면 바로 찾아와서 쥐어짠다니까. 회계사무소에서 하는 말이 정 뽑아야 한다면, 개인 명의로 사서 쓰다가 한 2년 있다가 중고매입으로 돌리라고... 요즘 박근혜 언니가 눈에 독기 품고 돈 찾잖아.(웃음) 중소기업 중에서 돈 좀 만진다 소문나면 다 털어버린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지.(웃음)
 
B : 소문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빵집은 벌써 털렸어.

3.jpg



C : 다음은 보쌈집이라면서?

 

A : 어? 너네들도 그 소문 들었냐?

 

 

빵집? 보쌈집?

 

 

B : 우리 와이프 대학때 친구가 P 빵집을 해. 들어보니까 그게 인건비 따먹기라더만? 새벽 5시인가 나와서 밤 10시까지 남편이랑 둘이서 뺑이쳐야지 겨우 인건비 떨어지는데...
 
나 : 근데?
 
B : 그 집이 이번에 3천 7백인가? 4천인가 두들겨 맞았어. 우리 집 와서 말하는데, 울먹울먹 거리는데... 짠하더라.
 
나 : 그만큼 버니까 두들겨 맞는 거 아냐?
 
B : 그만큼 벌면 억울하지나 않지. 이게... 본사 포스기 데이터를 다 뽑아간 거야. 그리고 포스기에 나와 있는 매출전표대로 그대로 세금을 때려 버렸다니까.
 
나 : 매출대로 세금 때리는 건 맞는 거 아닌가?
 
B : 이 양반아, 우리나라가 그렇게 깨끗하고 깔끔하냐? 말 들어보니까 팔다 남은 빵은 반품하거나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일단 매출로 잡아두고, 나중에 어떻게 보상받거나 하는 게 있었나 봐. 그럼 이 아줌마는 이 빵들을 주변의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데 기증하거나 하는 거지. 유통기한이 짧게 남은 빵들이라 잘 팔리진 않지만, 먹는 덴 지장 없는 것들이라 그쪽에서도 고마워하고... 근데 이것들을 전부 매출로 잡아버려서 세금을 빵빵 때리는 거야. 완전 죽을 맛이지. 좋은 일 하려다가 완전 X된 거지.


얘기 들어보니 남일 아니더라... 알바생은 뽑아야 하는데, 걔들 고용보험이니 뭐니 해서 다 맞춰줘야 하는데, 1~2달 쓸 애들한테 그거 다 맞춰주려니 그것도 난감하고, 안 하면 두들겨 맞고... 골 때리더만...

 
나 : 해줄 건 해 줘야지.


B : 맞지. 해줄 건 해 줘야지. 근데 가뜩이나 힘든 서민들 등쳐먹는 느낌이란 거지. 프렌차이즈란 게 결국은 본사 배불리는 일이잖아? 가맹점 중 태반은 인건비 따먹기 하는 거고, 그나마도 못 따먹는 애들 천진데... 그걸 침 흘리며 쳐다보는 거지. 세금 뽑아먹겠다고...


A : 올해는 보쌈집이라더라.
 

C : (웃음) 내년엔 닭집이냐?


4.jpg

일동 웃음



A : (진지) 나라 살림이 힘든 건지, 대기업이 힘든 건지...예전엔 건드리지도 않던 애들을 탈탈 터니...
 
C : 대기업들 못 뽑아먹으니 없는 것들 뽑아먹자는 거지.
 
B : 빵집이든 보쌈집이든 터는 걸 뭐라 하는 게 아니라, 털려면 본사만 털던가...아니면 장사 좀 되는 애들을 털어야지 개나 소나 다 털어버리니...
 
A : (웃음) 나라 살림이 거덜 났다잖아. 작년에 경찰들 눈에 불 켜고 단속 뜬 거 기억 안나?
 

B : (웃음) 글치 눈 시뻘개져서 스티커 날릴려고 별짓을 다 하더만...이건 뭐 삥 뜯는 것도 아니고.

 

 

나랑은 별세계 이야기였다. 친구들은 저마다 자신과 자신 주변에 떨어진 세금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다. 내 앞에 놓여있는 유린기를 씹으며, 난 넌지시 물어봤다.

 

 

나 : 니들 그러면 창조경제에 대해선 알고 있냐?

 

 

정적.

 

 

A : 알지. 작년에 벌써 한 건 했잖아?

 

나 : 뭐?

 

 

뭐지? 내가 모르는 박근혜의 창조경제란? 이 녀석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 같았다.


 5.jpg

박근혜의 창조경제란...



A : 카니발.

 

나 : 카니발?

 

A,B,C : 폭소

 

나 : 야, 카니발이 뭐 어쨌다고?

 

B : 야, 작년에 카니발 11인승 속도제한 걸었잖아.

 

C : 110킬로였나? 그거 넘으면 못 밟게 해놨잖아.

 

나 : 그게 왜?

 

A : (웃음) 그게 11인승 이상 승합차가 사고나면 크게 난다고 속도제한 걸었다는 건데...그게 걸면 더 위험해 질 수 있거든...뭐 뜻은 좋은데, 내가 알기론 몇 년 동안 한다만다 말이 많았던 거야. 이게...고속도로에서 이거 몰고 나가면...완전 똥차 되는 거지.

 

나 : 근데 그게 왜?

 

A : 재작년인가? 박근혜 선거 할 때 보좌관이 교통사고로 죽은 적이 있었잖아?

 

나 : 아...

 

A : 그때 뒤집힌 차가 카니발이야.

 

나 : ......

 

A : (진지) 내 추측으론 말야. 이게 바로 창조경제였어. 보좌관의 죽음을 보고 나서 결심을 한 거지. 더 이상 이런 헛된 죽음을 막아야 한다고.

 

나 : ...자동차 리미트 건 게 창조경제다?

 

A : (웃음) 대충 아귀가 맞지 않냐?

 

나 : ...말을 말아야지.

 

B : 창조경제가 별거냐? 삥 뜯기지 뭐. 한 1년 있어보니...이건 뭐 뭘 못 뜯어먹어 안달인데. 진짜 창조적으로 삥 뜯더라. 미래창조 뭐?

 

나 : 미래창조과학부.

 

B : 그래, 그거...그걸 뭐하러 만들어? 그냥 국세청이랑 경찰 묶어서 미래창조삥뜯기부 만들면 되지.(웃음) 걔들도 지들이 뭐하는지 모르는 애들이잖아?

 

6.jpg

 


하긴 창조경제가 뭔지 설명한다면 노벨경제학상 받을 수 있다는 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B : 네가 몰라서 그렇지 요즘 자영업자 중소기업들 죽을 맛이다.

 

나 : 야야, 만날 때마다 그 이야기라 이젠 귀에 따까리가 앉았다.

 

B : 예전엔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 거지...요즘은 경기도 안 좋은데, 국세청이랑 경찰들이 눈 시뻘개져서 덤벼든다니까. 둘이서 사이좋게 다구리 놓고 삥 뜯어가려고 주머니에 손 쑤셔 넣고 동전까지 탈탈 털어간다니까.

 

 

그렇게 설날 전야 유린기와 함께 한 회동은 끝이 났다. 창조경제와 함께 한 아주 ‘건전한’ 회합이었다. 그들은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이 어떻고, 지방선거가 어떻고 하는 여의도 정치판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들에겐 그걸 생각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버거운 이들이었기에 다만 박근혜 대통령이 서민들, 자영업자, 중소기업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길 기대할 뿐이다.(그런 기대가 있다면 말이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세금을 걷으려면 좀 잘사는...그러니까 돈 좀 버는 사람들이나 대기업에게 더 많이 걷고, 힘없고 약한 자들에게는 그 상황과 형편에 맞게 징세를 했으면 하는 소박하고, 상식적인 판단을 했으면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년 전 공약으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가 바로 그런 취지의 약속이 아니었던가?








펜더


편집 : 보리삼촌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