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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2. 05. 수요일

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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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난감하다. 원래는 이런 목적의 글이 아니었지만, 어찌어찌 이렇게 이야기를 풀게 됐다.


이야기의 시작은 간단하다. 난 ‘강사다.(전문적으로 강연을 하는 건 아니다.) 기업체나 공공기관, 대학교에서 날 부른다. 와서 강연을 해달라고 말을 한다. 지금 88만 원 세대가 꿈꾸는 그 직장(대기업, 공공기관 등), 대기업에서 신입사원 강연을 요청해서 나갈 때도 있고, 부장단 강연, 공공기관의 연말, 연초 워크숍이나 신임 임원 승진자 혹은 기타 행사에서 강연을 해주기도 한다. 물론, 대학교에서도 강연을 한 적이 있다.(꽤 있다. 펜더란 필명이 아니라 내 본명을 가지고 말이다. 이쪽에서는 내가 군사전문가 혹은 군과 관련된 강연을 하는 게 아니라 역사나 인문학에 관계된 강연을 한다.)


강연을 주업으로 하는 프로 강사는 아니지만, 가끔 연락이 온다. 스케줄만 맞는다면, 어지간하면 가서 강연을 한다. 한때 진지하게 남들이 말하는 그 ‘프로강사’란 걸 고민해 본 적이 있었지만, 5분 만에 생각을 접었다. 전문적으로 강연을 하시는 분들은 그들만의 각오와 노력이 있을 터인데, 유감스럽게도 나에게는 그런 각오와 노력이 부족했다. 의지의 차이이다. 지금도 가끔 내 인토네이션(intonation)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지적을 받을 때마다 고쳐야지 하는 마음도 있고, 얼마간 발음에 신경을 쓰긴 하지만 그게 오래가지는 않는다.


글쟁이는 글로 세상과 소통해야지 말로 뜻을 세우진 않는다.


라는 핑계 아닌 핑계를 읊조리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담당 PD에게는 늘 미안하다.)


강연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 이 정도에서 갈음하고, 이 이야기의 주제를 꺼내야겠다. 강연을 하다보면, 배차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난 당연히 강사에게 차량을 보내주는지 알았는데, 최근에야 알았다. 그런 경우가 드물다는 걸.) 운전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배차를 선호한다. 그러면, 최소한 제네시스급 이상의 고급세단(리무진이 올 때도 있다.)과 정장을 잘 차려입은 수행기사 분이 집 앞에 와 전화를 걸어온다. 그걸 타고 목적지까지 갔다 오면 된다. 문제는 그 어색함이다. 생면부지의 기사님과 짧을 땐 1시간, 길면 9시간(왕복으로 말이다.) 가까이 밀폐된 차 안에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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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가벼운 인사로 시작하지만(거기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이 쉬지 않고, 2시간 떠든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강연을 하기 전, 하고 난 후의 성대는 휴식을 원한다.) 차량에 속도가 붙고, 인생의 액셀러레이터에 문제가 있는 기사 분들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길어지게 된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기사는 내가 강연을 다니면서 만난 인상 깊었던 수행기사 세 분의 이야기다. 재미난 기업 비사도 있고, 수행기사의 삶, 자긍심도 있다. 가슴 아픈 인생사와 그걸 극복하겠다는 인간의 의지를 엿볼 수도 있다.


원래는 언제고 수행기사 캐릭터를 만들어 보겠노라고 조금씩 정리한 것인데, 이렇게 기사로 내보내게 됐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꽤 타이트해서 언제까지 글을 올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지만, 시간을 내 최대한 글을 써 보겠다.

 



전제 1


여기에 등장하는 수행기사 분들에게 취재의 허락을 받은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 그저 글쓰는 작가라 언제고 이걸 모아서 책을 내겠다는 말씀만 드렸다. 해서 실명을 넣지 않고, 기업체나 공공기관, 업체명도 가명으로 대체하겠다.

 

전제 2


수행기사 분들의 이야기는 양해를 구하고(“좀 적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이런 이야기를 뭘...”하시며 쑥스러워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메모와 녹취를 했었다. 기억의 착오나 이야기적 전개를 위한 과장이나 축소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실을 전제로 했다는 걸 밝히겠다.

 

전제 3


날 데리고 그 먼 거리를 운행해 주시고, 그 안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신 수행기사 분들과 날 초청강사로 불러준 업체와 기관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 기사는 그분들의 개인사를 통해 본 이 시대의 정리이지, 다른 어떠한 의도가 없음을 다시 한번 밝힌다.



 



 

첫 번째 기사 “S” - 핸들을 잡았으면 대표차 한번 몰아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는 게...힘드네.”


늦여름의 지리산. 신록의 푸름이 차창 가득 넘어오는 그때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감상도 아니고, 푸념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터져 나왔다. 내 본심이었다. 경제적인 힘듦, 가족관계의 불화, 6년째 이어지는 장똘뱅이 삶에 대한 한탄 등 답답한 심정들이 묶여져 나온 본심이었다. 창밖에는 늦은 여름휴가를 즐기겠다고 색색이 수영복과 파라솔들이 계곡을 점령하고 있는데, 난 이 먼 곳까지 와 2시간 내내 목이 쉬도록 강연을 했으니, 배알이 꼴릴 만도 했다. 아마도 이 강연료가 이번 달 카드 값의 1/3은 감당하지 않을까란 기대? 혹은 자조?

 

이때 핸들을 잡고 계신 기사님이 넌지시 말문을 여신다.


 

“강사님, 힘드세요? 강연이 힘드셨나 보네. 다들 그러십니다. 사람들 앞에서 2시간 씩 말한다는 게 어디 보통 일입니까?”

 

“아뇨...그냥 제 인생이 답답해서요. 제 인생...실패했나 봅니다.”

 

“아유,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저는 제가 모시는 강사님들은 다 인생 성공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회사가 어떤 회삽니까? 그리고 강사님 강의 듣겠다는 신입사원들이 보통 신입사원입니까? 우리나라 1등 기업에서, 고르고 고른 사람들이 저 사람들인데, 저 사람들 앞에서 뭘 가르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회사에서 강사님들 함부로 뽑는 줄 아세요? 다 알아보고, 찾아봐서 좋은 분들 모셔 오는 거 아닙니까? S가 뽑을 정도면, 강사님도 인정받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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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인터넷 강연, 초청강연을 주관하는 S社의 강사시스템은 업계에서도 알아준다. 일단 S에서 한 번 ‘검증을 거쳤단 소리가 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강연계에 진입한다. 한참 주가 올리다 논문 문제로 잠시 사라진 여자 강사분이나 지금 잘나가는 교수, 강사 등도 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서 올라왔다. 아,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등용문 같은 곳이다. 나 역시도 그런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지만, 강연엔 뜻이 없어서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그게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웃음) 제 말 믿으세요. 저 핸들밥만 30년 먹은 사람입니다. 제가 모셨던 분들 중에서 허투루 인생 사신 분 없었습니다. 제 차 타실 정도면, 이미 S에서 검증 다 끝낸 분들이란 소립니다. 그러니 힘내세요. 충분히 자격 있으십니다. 인생 괜찮으신 거예요.”

 

“...예”

 

“어깨 펴시라니까요. 수백 명 앞에서는 당당하시더니...”

 

“(웃음) 그럼, 재미난 이야기 좀 해주세요.”


“(당황) 예? 무슨...”

 

“기사님 살아오신 이야기요. 수원까지 올라가려면, 기본 3시간인데...예?”

 

“(웃음) 허허 참...강사님도 짓궂으시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대충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운전기사 분은 S社에서 잔뼈가 굵은 분이셨다. 그 분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러니까...84년인가요? 그때 S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웃음) 그때 군대 제대하고, S는 전부 S그룹인줄 알았죠. S전자가 뭔지, S전관이 뭔지...”

 

“에? 어떻게 S에 들어갈 생각을 다 하셨어요?”

 

“그게 그러니까...제가 공고 출신이거든요. (웃음) 자동차학과. 자동차학과 나왔으니, 자동차 밑바닥으로 기어들어가 먹고 살지, 자동차 핸들을 잡고 먹고 살지... 둘 중 하나였는데, 기름밥 먹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게...(웃음) 좀 힘들잖아요? 그리고 당시에는 운전기사 대우가 나쁘지 않았거든요. 기왕이면 S같이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자 해서 입사원서를 냈죠.”

 

“그럼 바로 비서실로 들어가서 임원들 차 모신 거예요?”

 

“(웃음) 웬걸요. 처음엔 택배였어요.”

 

“...택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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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S 그룹은 수원지역에 대단위 전자단지를 건설하기로 했단다. 여기서 걸리는 것이 공장과 본사 사이의 소통이었다.

 

 

“(웃음) 그 당시엔 택배같은 게 없었잖아요? 군대로 치자면, 문서수발차량이라고 해야 하나? 봉고차 하나로 공장이랑 본사 오가면서 문서나 사람들을 옮겼죠. 공장에서 본사로 업무 보러 가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주로 태웠죠.”

 

“그럼 계속 택배 업무만 하셨어요?”

 

“아뇨. 그렇게 한 2~3년 했나? 제가 제법 성실해 보였나 봐요.”

 

“(웃음) 그렇게 보여요.”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비서실요? 그룹 비서실요?”

 

“(웃음) 자세한 건 말씀 못 드리구요. 여하튼 제 이력서와 신원 증명서를 확인했어요. 면접도 다시 보구요.”

 

“(웃음) 까다로운데요?”

 

“저도 당시엔 영문을 몰랐죠. 면접을 보는데...주량이 얼마냐? 술 잘 마시냐부터 시작해서, 가족관계나 군경력, 학력이나 그런 걸 묻더라구요. 그냥 있는 그대로 말했죠. 그렇게 면접 끝내고 며칠 지나니까...S전관 비서실로 파견을 가라대요.”

 

“파견이요?”

 

“(웃음) 말이 좋아 파견이지. 아예 그쪽으로 적을 옮긴거라 봐야죠. 15년을 파견갔으니.”

 

“15년이라...그럼 거기서 임원분들이나 사장님 차를 몬 거예요?”

 

“뭐...임원분들 차를 몰기도 했고, 해외 분들도 모셨고...사장님 차는 그땐 못 몰았죠(웃음). 대신에 ‘사장’이 되실 분들을 많이 모셨죠.”

 

“사장이 되...실 분이요? 그럼 임원분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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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기사님은 추억을 반추하는 듯 천천히 미소를 드리웠다. 룸미러로 본 기사님의 눈가에는 잔주름과 함께 초승달 모양의 눈웃음이 물씬 묻어나오고 있었다. 한참을 뜸 들이는 그 눈빛...아, 몸이 달아올랐다. 내 엉덩이가 들썩일 때쯤 돼서야 S기사님은 입을 열었다.

 

 

“그 당시에는 직급이 그렇게 많이 없었어요. 지금이야 과장 차장이 널렸고, 임원도 상무보니 뭐니 해서 세분화 됐지만...당시에는 직급도 별로 없었고, 사람도 별로 없었죠. 요즘 과장하고, 그 당시 과장하고는 차원이 달랐어요. 그리고...정말 열심히 일하셨죠.”

 

“열심히라면?”

 

“거의 뭐...새벽별 보고 출근하고, 저녁별 보고 퇴근한다고 보면 돼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출퇴근 문제가 걸렸죠. 그러다 보니 저 같은 사람이 과장, 차장, 부장들을...지금으로 치자면 카풀이라고 해야 하나? 3~4명을 한 팀으로 묶어서 출퇴근을 시켰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시간대에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니까...(웃음) S 그룹 비서실이면 얼마나 일을 많이 하겠어요? 그런데...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무서워요.”

 

“무섭다면...”

 

“이렇게 같은 차 타던 인연이 나중에...그러니까 한 20년 지나니까 다시 제가 그 분들을 모시게 되더라니까요.”

 

“...아!!”

 

“당시에 과장 차장 하시던 분들이 20년 지나니까 이사되고, 대표되고...그때 같이 차 타던 분들 중 한 분이 S그룹 한 계열사의 대표가 되시더라구요. 그게 인연이 돼서...제가 그 분 차를 몰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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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회상에 빠져드는 기사님...하긴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그래도 대단하다. 신입사원이 100명이 들어가면, 그 중 6명인가? 그 정도만이 임원이 될 수 있다고 하던데...그 인연 중 하나를 만난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그 분 수행기사로 활동하신 거예요?”

 

“그 전에 다른 분을 모셨죠. 이게...또...제가 그 분 상무 때부터 모셔서, 대표 될 때까지 모셨는데, 그때가 제 인생에 꽃이 핀 시절이었죠.”

 

“야...대단했었나 보네요?”

 

 

여기서 궁금했다. 드라마에서 보는 사장과 수행기사의 관계는 사무적이고 딱딱한 주종관계가 아니었던가?

 

 

“(웃음) 그런 관계가 많을 거 같죠? 그런데...핸들 잡고 20년 넘게 몰아보니,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어떤...형제애? 동지애? 저 때에는 그랬어요. 같은 운명을 타고난 운명공동체 같은 느낌이죠.”

 

“운명공동체요?”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분명 있다!! 그리고 분명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일련탁생(一蓮托生 : 마지막까지 운명을 같이 한다.)이란 말이 떠올랐다.

 

 

“그게...대표차를 몬다는 건 운명이에요.”

 

“운명이요?”

 

“(힘주어) 운명이죠. 몰고 싶다고 모는 게 아니죠. 제가 모시는 분이 대표가 돼야 하고, 또 그 분이 절 예쁘게 봐주셔야지 절 데려갈 거 아닙니까?”

 

“음...대표차를 몬다는 건 기사님 세계에서는 대단한 영예인가 봐요? 전무 차나, 사장 차나 어차피 기사라는 직함으로 활동하는 건 똑같잖아요?”

 

“(웃음) 제가 제 후배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핸들밥 먹는다면, 대표차 한번 몰아봐야 진짜 기사 아니겠냐?’ 라구요.”

 

“하긴, 임원이 몇 명인데 그 중 대표는 한 명이니까...”

 

“그렇죠. 이런 게 있어요. 한 번 어떤 분과 인연을 맺죠? 거기서 기사가 성실하고, 성실한 게 제일 중요하죠. 운전만 하고, 운행 없을 때는 고스톱이나 치고 그러면 안돼요. 하다 못해 자동차 엔진오일이라도 체크하고, 차라도 닦아야 해요. 제가 예전에 대표차 몰 때는 비서실에서 전날 일정이 나오거든요. 그 당시에는 네비게이션이 없어서, 만약 제가 모르는 길이죠? 그럼 그 전날 차를 한번 몰고 가 봐요. 그렇게 지리를 확인했어요. (강조) 성실해야 해요. 그렇게 인정받고, 뒷자리에 타신 분과 궁합이 맞으면...그걸로 쭉 가는 거예요.”

 

“쭉 간다니요?”

 

“뒤에 타신 분인 전무급이라면...영전을 하게 될 때 연락이 와요. 함께 하자고, ‘네 차 타는 게 제일 편해’ 뭐 그렇게요. 그럼 알아서 배정을 받게 되고...계열사 옮겨도 상관 없어요. 그렇게 같이 가는 거죠. 그러다가 나중에는 막역한 사이가 되기도 하고...그건 사람 성격 따라 다르지만, 제 경우에는 그랬어요.”

 

“막역한 사이라면...형, 동생 그런 사인가요?”

 

“(웃음) 그렇게까지는...그냥 농담 주고 받고, 속에 있는 말할 정도는 되죠. 솔직히 말하면, 하루 중 가장 얼굴을 많이 보는 관계가 저랑 뒤에 타신 분이죠. 마누라나 부하들보다 절 더 많이 보죠.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제가 담배를 태워요. 그때 대표님이 타워팰리스에 사셨는데, 제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차를 몰고 5시까지 타워팰리스에 가요. 그럼 5시 30분 전후로 해서 대표님이 승차를 해요. 그런데...그 사이에 4시 30분쯤 해서 차 몰고 나오면서 차 안에서 담배를 태웠거든요. 그런 다음에 차 환기하고, 방향제 뿌려도...귀신 같이 담배 냄새를 맡아요. 그 분이 담배를 안 태우시거든요. 그럼 농담 삼아 이래요. ‘S야. 내가 아침부터 담배냄새 맡아야겠냐? 가뜩이나 머리 아픈데, 담배 태우는 건 뭐라 안할 테지만...제발 차 안에서는 태우지 말아줘라. 응?’ 그때 뜨끔했죠. 그때부터 전 차 안에선 담배 안 태워요. 담배 안 태우는 분들이 담배 냄새에 민감하잖아요? 그렇게 또 하나 배우는 거죠.”

 

“그 분이 대표님?”

 

“예, 그 분이 수원공장 총책임자셨죠.”

 

“야...대단하시네요.”

 

“대단하신 분이셨죠. 똑똑하고, 카리스마 넘치셨고, 정도 많았고, 일도 정말 열심히 하셨죠. 능력을 인정받아서 해외에 잠시 나갔다 오셨는데...그때 제게 제안을 하나 하셨죠.”

 

“제안이라면...?”

 

“아, 날 데리고 해외로 같이 나가자는 건 억지일 거 같고, 자기가 돌아오면 그룹 본사로 올라가 자리를 잡을 거 같으니 그때까지만 여기서 버텨달라고...”

 

“임원과 수행기사는 그런 관계군요.”

 

“그렇죠...모시는 분이 승진을 하고, 대표가 된다는 건...핸들 잡은 저희들에게도 엄청난 일이거든요. 정말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대표차를 몬다는 건 기사들에게는 꿈입니다.”

 

“제가 몰라서 그런데...대표차는 다른가요?”

 

“(힘주어) 다르죠.”

 

“어떻게 다른데요?”

 

 

우문(愚問)을 던져봤다. 수행기사라면, 다 같은 수행기사가 아닐까? 대표차래봤자. 똑같은 검정색 세단일 터이고, 수행기사라고 해도, 대표 수행기사라는 타이틀만 다를 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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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막상 그렇게 물어보면...군대 갔다오셨죠? 연대장 1호차랑 사단장 1호차가 다르잖아요? 성판 달고 달리고...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크게 다르죠.”

 

“어떻게 달라요?”

 

“일단은...차가 다르죠. 모는 차종이 다릅니다. 요즘은 부사장급은 신형 에쿠스 리무진이고, 그 윗단계는 뭐더라? 여튼 차부터 달라요.”

 

“기사분도 대우가 달라지나요?”

 

“(웃음) 완전 다르죠. 대우부터 확 달라져요. 일반 임원 수행기사와 다르게 잔업수당으로 봐야 하나? 100만 원 정도가 나오는데, 바로 꽂아줘요.(웃음) 거기에 판공비 조로 50만 원인가가 더 나와요. 이건...소위 말하는 ‘옷값입니다.”

 

“옷값이요?”

 

“대표가 회사 얼굴이잖아요? 그 차를 모는 기사도 회사 얼굴이잖아요. 옷도 깔끔하게 맞춰 입으라는 거죠. 그리고 법인카드가 나와요.”

 

“법인카드요??”

 

“예, 법인카드 나오죠. 이게...모르시는 분들은 기사 나부랭이가 무슨 법인카드가 필요하냐 물으시겠지만, 필요해요. 저희들도 판공비와 업무추진비 같은 게 필요하거든요.(웃음)”

 

“대단한데요?”

 

“결정적으로 정년이 연장되죠. 제가 모시는 분이 대표를 3년이고, 5년이고 계속 이어나가면...저희도 자동적으로 정년이 연장되거든요. 보통 한 번 차를 맡기면,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계속 차를 몰게 되니까요.”

 

“아, 그래서 대표차를 하려는구나.”

 

“그럼요. 핸들 잡았으면, 대표차 한번 몰아봐야죠. 기사들도 움직이다보면, 나름 ‘서열’이 있거든요. 대표차가 넘버 원이죠. 어떤 분야든 시작을 했으면 ‘오야’는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대표를 두 분이나 모셨다는 기사님의 표정에는 어떤 ‘자부심’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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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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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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