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0. 아슬아슬하다


본론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 최근 발생한 부산 중학생 폭력 사건은 사건 내용도 내용이지만, 범행 발각 후 처리 과정에서 문제점이 지나치게 많이 드러났다. 경찰의 대응도 의문점투성이고, 피해자가 약 300미터를 끌려갈 동안 누구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도 큰 문제다. 한국은 비교적 치안이 안정된 국가이지만, 이런 식으로 치안과 공정한 법 집행에 대한 의심이 쌓이기 시작하는 것은 결코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치안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책임감도 물론 필요하고 구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한국 사회가 대로에서 폭행을 당하는 사람을 방치하는 국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도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더 늦기 전에.



1. 고교생 참수 사건


1969년 4월 23일, 일본 카나가와현에서 남자 고등학생이 다른 남자 고등학생을 칼로 찔러 살해하고 목을 절단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가해자인 고등학생의 주장에 따르면 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흔히 이지메라고 불리는 괴롭힘을 당해 왔으며, 자신이 등산용 칼을 보여줘도 피해자가 놀라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놀리자 격분해서 살해했다고 한다.


rrr.jpg

 

가해자는 범행 직후 자신의 왼쪽 어깨를 칼로 두 번 그어 공격을 받은 것처럼 꾸민 뒤 칼은 땅에 묻어 은폐했다. 그리고 차량을 타고 지나가던 사람에게 세 명의 괴한에게 습격을 당했는데 자신은 살아남았고 친구는 살해당했다고 거짓말을 하며 구조를 요청한다. 이틀 뒤인 4월 25일, 경찰의 수사를 받던 가해자는 계속되는 모순된 진술에 화가 난 경찰이 거짓말은 그만두고 진실을 말하라고 설득하자 오후 6시 15분부터 살해 내용을 자백하기 시작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이 학교는 일본에서 상당히 유명한 명문고였다. 명문고에서 발생한 학생 간의 살인사건, 게다가 범행 후 가해자가 피해자의 목을 잘라낸 잔혹성 때문에 당시 이 사건은 일본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그러나 가해자는 미성년자인 고등학생이었고, 미성년자 보호에 각별한 관심이 모이고 있던 당시 일본 사회는 이 소년을 엄하게 처벌하는 대신 새로운 기회를 주는 쪽을 택한다. 가해자는 초등 소년원에 보내지고, 가해자의 아버지는 피해자 유족에게 화해금으로 모두 720만 엔을 매월 2만 엔씩 지불하는 형식으로 지불해 나간다는 내용의 합의도 맺는다. 그렇게,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2.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이 사건은 발생한 지 37년이 지난 2006년에, 일본 사회가 이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다시 사회에 파문을 던진다. 논픽션 작가 오쿠노 슈지 씨의 저서, 한국에는 2008년에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웅진지식하우스)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소개된 논픽션 작품을 통해서다. 저자인 오쿠노 슈지는 이 논픽션에서 사건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 유족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30여 년 전에 일본을 진감 시킨 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photo_2017-09-11_17-25-30.jpg

 

오쿠노 슈지가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다. 피해자 유족들은 그 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가 이어졌고, 가업이 기울어 경제적으로고 궁핍한 상황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괴롭혀 왔다는 주장이 널리 알려지면서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여론이 생겨났고, 결국, 이지메의 가해자이자 살인 사건 피해자의 유족으로 30여 년을 살 수밖에 없었다. 가해자 아버지가 지불하기로 한 화해금도 40만 엔 정도가 지불된 이후에는 연체가 이어져, 1998년 이후 680만 엔이 지불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시간이란 마법은 무서운 것이어서, 취재 과정에서 피해자 유족들은 간혹 가해자의 현재를 걱정하는 듯한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그런 사건을 저질렀으니 그 뒤 그의 삶도 순탄치는 않았을 것이라는, 걱정이라고도 동정이라고도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그리고 저자인 오쿠노 슈지는 다시 추적을 시작한다. 사건 가해자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추적의 결과는 씁쓸하고 아픈 것이었다.


 

3.갱생


가해자는 소년원에서 3년을 복역한 뒤 출소했고, 그 뒤 명문대에 진학해 대학원을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오쿠노 슈지가 취재를 위해 가해자를 찾아냈을 때, 그는 이미 도쿄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어 있었다. 결혼해 가정을 이뤘고, 번듯한 집도 있었다.

 

피해자 유족들은 이 사실을 알고 굉장한 충격을 받는다. 그들의 상상과는 달리 가해자는 일본 사회에서 너무나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문자 그대로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30년 전 사건을 거론하자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이냐고 오히려 화를 내고, 피해자 유족들이 곤궁하다면 돈을 빌려줄 수도 있다고 받아칠 정도로 여유 있는, 성공한 삶.


tie-690084_1280.jpg

 

2006년에 오쿠노 슈지가 이러한 사실들을 기록한 전술한 책을 출판하자, 이 사건은 다시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30여 년 전에는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인터넷 사회가 이 사건의 전개를 크게 바꿔버린다.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가해자는 그동안 지불하지 않았던 화해금도 지불하고 직접 유족들을 만나 사죄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해 왔으나, 인터넷에 개인 정보가 유출되자 결국 견디지 못하고 변호사를 폐업한 채 모습을 감추게 된다.

 

사건 발생 30여 년이 지나 어느 논픽션 작가가 날카로운 집념으로 발견해 낸 진실은 일본 사회에겐 지나치게 차갑고 씁쓸한 것이었다. 일본 사회는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가 충분히 반성한 뒤 사회에 복귀해 훌륭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중요한 사회적인 목표로 삼아 왔다. 그리고 그 관점에서 이 사건의 가해자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갱생 성공 사례]였다. 3년간의 소년원 복역 기간도 문제 없이 마쳤고, 그 뒤 사회로 복귀해 학업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기고 전문직 자격도 취득해 좋은 수입을 벌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무엇 하나 문제 될 것 없이 사회 복귀에 성공했던 것이다. 일본 사회가 바라던 이상적인 미성년자 범죄 해결 사례라 할 만했다.

 

그런데 왜 일본 사회는 그 사실을 기뻐할 수 없었을까.

 


4.피해자, 피해자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일본 사회는 가해자에게 이런 기회를 주는 동안, 피해자들의 삶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에서 찾고 싶다. 가해자가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하는 동안, 피해자의 유족들은 왜 경제적인 궁핍, 사회의 편견, 지독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신음해야 했을까. 국가와 사회는 그들에게 무엇이었나. 피해자 유족들은 생계를 걱정하는 동안 가해자는 잘 나가는 변호사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회가 과연 우리가 바라는 사회였을까.

 

미성년자는 분명히 보호받아야 한다.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그래서 아직은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할 미성년자들이 성인에 비해 적은 책임을 지고 많은 보호를 받는다는 문명 사회의 기본적인 합의를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미성년자 보호]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형을 가볍게 하고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 복귀를 지원하고 사회에서 그들이 떳떳하게 살아가도록 수많은 예산과 인력이 동원되는 동안, 피해자를 위해 국가와 사회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자문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생각한다.

 

최근 미성년자 범죄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소년법 개정 움직임까지 일어나고 있다. 범죄를 줄이기 위해 법개정이 필요하다면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고, 가해자들이 지금보다는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한국 사회가 합의한다면 엄벌화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가해자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어찌 됐든 성인보다는 가벼운 처벌밖에 받지 않고, 그 결과 처벌 감정도 어느 정도는 억눌러야 하는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 혹은 유족들을 위해 어떤 지원과 노력이 필요한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아무리 소년법을 개정해도 모든 미성년자가 성인과 동등한 책임을 지는 사회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민은, 가해자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더 큰 고통을 받는 일은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지에 집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법이 정한 책임을 모두 지고 난 다음에는 떳떳하게 사회로 돌아올 수 있는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피해자와 유족들이 그에 못지 않은 지원 속에서 조속히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는 사회도 우리의 목표여야 한다. 부디 한국 사회가 그 목표를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길 빌어 본다.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