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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광석이는 왜 그리 일찍 죽었대냐


(실제 스포일러 살짝 함유) 난 김광석의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전적으로 '서른 즈음에' 때문이다. 좀 무책임하다고 해야 하나. 그는 그 곡 하나만으로 이제 꼴랑 30대에 접어드는 청춘들에게 세상 다 살게 만든 듯한 공허감만 안겼다. 김광석은 '일어나'도 부른 사람인데, 서른살이 되면 다들 저 곡을 부른다. 도대체 그는 서른 살까지 어떻게 살았길래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토록 조로했다고 느끼게 할까. 그의 30년은 나의 30년이 아니며, '서른 즈음에'는 솔직히 제목을 '백 이십 살 즈음에'로 바꿔야 한다고 보는데. 심지어 저런 전염성 강한 곡을 만들어 놓고는 황망히 가버리기까지 했다. 황망함의 근원은 아마도 사망 직후, 미망인인 서해순의 인터뷰에서 언급된 김광석의 자살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수에요. 그냥 친구들과 술 먹고 장난하다 그렇게 된 거에요."


그럼 싫어하면서 뭐하러 <김광석 19960106>을 봤냐고 물으실 수 있겠다. 간단하다. 작품이 당시 김광석의 사망사건은 99%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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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김광석 타살의혹은 TV 프로그램에서 다뤄진 적이 없었(던 걸로 알고있)다. <그것이 알고싶다> 에서도 조용했으며, 다소 가쉽 프로그램 같은 <리얼스토리 눈>에서 한 번 다룬 정도?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하지만 그러기엔 시신 발견 위치가 부적절했으며, 목격자가 오직 아내 뿐이었다는 점. 아내의 오빠는 전과 13범이라는 사실들이 있었다. 분명 작품 하나 만들어 볼만한 사건일 텐데 의혹에서 끝나지 않을 정도의 증거를 확보 못했거나, 쉽게 건드리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의 이름을 딴 길이 생기고 음악을 가지고 뮤지컬을 만들며,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치는 등 한국음악의 아이콘이 된 측면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새벽 2시쯤 극장 상영관 안에 들어가면서 제목인 <김광석> 아래 '19960106' 이라는 숫자가 문득 다시 보였다.


김광석은 21년 전에 요절한 음악인이고, 위 날짜는 생일이 아니라 사망일이다. 결국 제목은 <김광석> 이 아니라 <김광석 19960106> 이어야 그 정체성에 맞다. 이름을 들으면 추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연도와 날짜까지 읽게 될 경우, 그의 비정상적인 죽음에 관한 보고서로 생각하게 되어서다. 다음엔 김광석이 아니라, 감독을 맡은 이상호만 보이는 공식 포스터에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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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감독은 유족을 제외하고 김광석의 타살의혹을 가장 공공연하게 말해왔는데, 작품은 TVN 방송국 프로그램인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의 영상 일부를 삽입하여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의혹이 맞긴 하다고 알려준다. 과거 기자 신분으로 게스트로 출연한 감독, 진행자인 백지연 간의 대담에서 그녀는 자살로 결론난 사건을 뒤집어 타살이라고 기사화 하려면 100% 확신이 들지 않는 이상 어렵지 않느냐고 묻는다. 감독은 안 그래도 1%가 더 필요하다고 답한다. 99%의 확신은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작품의 제목과 달리 공식 배포된 포스터에 김광석의 얼굴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감독이 이야기하는 1%는 아마 그를 비롯해서 김광석을 안다고 자부한다면 대부분 용의자로 의심하고 있을 미망인, 서해순의 답변이리라. 핵심적인 증거를 더 찾을지라도 서해순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영원히 99%의 추론으로 남을 수 밖에 없을 테니까. 혹여 오래 전 의혹 속에 죽어간 고인을 팔아서 만들었다는 비판으로부터 대응하고자 지금의 포스터가 만들어졌을 수 있지만, 정확히는 감독이 기자의 정체성을 포함해서 스스로를 걸었음을 은유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작품이 시작되면 제일 먼저 스크린에 보이는 이미지는 감독의 기자인생을 대변하는 '다 젖어서 못 쓰게 된' 취재수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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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감독작인 <다이빙벨>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한 번쯤 제기할 수 있는 의문으로서 만들만 했다고 여길 수는 있겠지만, 완성도는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에 비하면 두 번째 감독작인 <김광석 19960106>은 여러모로 향상된 모습을 보인다. 김광석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은 감독이 기자로서 수집한 여러 증거들 덕에 긴장감과 더불어 슬픔까지 담아내고 있으며, 김광석의 음악세계를 이야기할 때는 금새 정감 넘치고 추억에 젖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분위기 조절이 능숙하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감상과 동시에 감독 겸 주인공을 맡고 있는 이상호라는 인물이 어째서 호불호가 갈리는지 조금 알겠다는 생각도 든다. 바로 타살의혹 취재가 쉽지 않음을 드러내고자 감독 개인이 기자로서 좌절을 드러낼 때다. 그것이 한 번씩 작품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단점이 된다. 어느 날 발생한 홍수로 감독이 기자 활동 거점으로 삼았던 지하 사무실이 침수된 장면을 보여줄 때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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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감독은 침수로 인해 중요한 자료들을 여럿 잃는다. 그 중에는 MBC 기자 시절 김광석 타살 의혹과 서해순에 관련하여 취재했던 방송분을 담은 VHS 테이프들도 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감독은 원래 MBC 방송국에 소속된 탐사보도 전문기자였다. 전두환 관련 취재를 하다 '명예 훼손 및 품위 유지 규정 위반'을 이유로 해고됐는데, 이후 그는 MBC 복직 투쟁을 벌이며 GO발뉴스라는 인터넷 탐사보도 전문 방송의 진행을 맡아오기도 했다. 사실 이는 감독으로서 만든 <김광석 19960106> 안에서의 좌절이라기 보다는, 작품 바깥에서 기자로서의 이상호가 느꼈을 좌절에 가깝다.


과거 방송국 해고 전력을 이야기 하거나, 기자 생활을 하며 작성한 취재 수첩들이 물에 젖어 내용이 유실된 탓에 (도입부에 취재수첩들이 왜 등장했는지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다) 절망하는 장면들 말이다. 침수로 인해 유실된 자료 중에 김광석 타살의혹을 뒷받침해줄 VHS 테이프들이 있기는 했고, 따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혹 취재수첩 속에 사건과 관련된 내용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품 흐름 상 VHS 테이프를 못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줘도, 너무 길었다. 심지어 김광석의 친형이 유실된 VHS 테이프의 복사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금방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장면은 어떤 측면에 있어서는 김광석 타살의혹에 관한 수색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멈추지 않는 기자 / 감독 이상호의 전기로 주객전도 된다는 느낌을 준다. 사건을 뚝심있게 취재하는 와중에, 관객을 향해서 이런 자료 조사와 증거를 모으기 위한 자신의 노력을 좀 알아달라고 구는 경향이 있어 보인달까. 혹은 그렇게 보일 여지가 있다던가.


좋게 생각해 보면 타살의혹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니까, 고인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방식일 수도 있다. 예컨대 작품은 김광석 사망 당일날 방송된 뉴스 영상을 삽입하며, 당시 현장에 왔던 김광석과 절친했던 가수인 박학기의 현장 인터뷰를 보여준다. 여러 카메라가 마치 특종을 전하겠다는 듯한 자세로 인터뷰를 요구하는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지인을 잃은 박학기는 기자들을 향해 이런 말을 한다.


"여러분들이 정말 광석이를 애도하려고 이렇게 인터뷰와 촬영을 하시는 건지 의심스럽다"


<김광석 19960106>은 해당 장면을 집어 넣음으로써 오직 재미만을 위해 고인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전한다. 그래서 감독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분명 김광석의 유족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으며, 심지어 미망인인 서해순과 인터뷰도 몇 번 진행한 경력이 있고. 무엇보다 현재까지도 적극적으로 의문사 해결에 의지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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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작품은 극영화가 아니다. 다큐멘터리다. 감독이 현실에서 보여준 기자의 행보가 더 많이 겹쳐보일 수밖에 없다. 기자로서의 종횡무진이 이뤄낸 업적도 있겠지만, 과거 <다이빙벨> 베를린 영화제 관련 사건,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 옹호를 비롯한 논란들이 상대적으로 더 떠오르는 것이다. 작품 바깥에서 일어난 이상호의 논란들은 모두 당사자가 취재 중에 결론을 먼저 내리는 성향이 강했던 탓에, 기자로서의 신중함에 의심을 갖게 만들었던 사건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작품에서 굳이 감독이 기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이름을 드러낼수록 과거 논란들이 주로 상기되었기 때문이다. 극영화 분야에서는 창작자를 둘러싼 논란이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 정도로 여길 수 있겠지만, 다큐멘터리라면 진심을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물론 다큐멘터리에도 기본적으로 연출이 들어가지만...) 감독이 가진 야망이라고 해야할지, 욕망이라고 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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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자의식 표출이 작품을 보고픈 욕구를 아예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다. 최소한 등장하는 자료와 추론들은 진짜이거나, 진짜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김광석이 썼다는 일기장이라든지, 말미에서 김광석의 아버지가 생전에 조심스레 건넨 녹음 테이프가 재생되는 순간 타살 의혹은 한 번쯤 제기해 볼만하다는 가벼운 생각을 넘어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위력적인 증거가 가진 힘이다.


1%가 부족할지라도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극장을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자연스럽게 하나의 생각에 이른다. 우리가 김광석의 음악을 듣고, 김광석 길을 걷는 식으로 관련 컨텐츠를 소비할수록, 그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 이득을 본다는 생각. 작품을 보면 굳이 김광석을 좋아하지 않을지라도, 좋아하는 창작자를 위해 쓴 돈이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단순한 치정행각으로 여겨질 수 있었던 의문사의 이야기는 이렇게 확장된다. 그런 점에서 <김광석 19960106>은 봐줄만하다.


15세 관람가 / Color, Black & White / 82분



p.s.

1) 요즘은 제정신인 언론이 없어서인지, 탐사취재를 해야하는 기자들이 감독으로 변신하고 있다. 단지 플랫폼이 TV나 온라인에서 극장 스크린으로 옮겨갔을 뿐 그들은 전부터 해왔던 일들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이런 작품들을 마주할 때마다 굳이 극장 상영관에서 봐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긴 하지만, 그냥 탐사취재 컨텐츠를 유료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그러려니 하면서 보게 된다.


2) <김광석 19960106>은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일어나, 김광석> 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공개되었다. 상영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는데 손을 든 한 여성이 작품의 내용을 보강하는 발언을 했다.


그녀는 미국에서 김광석의 딸을 돌보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김광석의 법정상속인은 딸이라고 한다. 그런데 딸이 금치산자라서 서해순이 모든 재산을 위탁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해순은 재산만 관리할 뿐 자신이 낳은 딸은 제대로 돌보지도, 같이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현재까지 김광석의 노래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모두 서해순에게 가고 있다.


그리고 서해순은 이 작품 속에 김광석이 부른 노래가 담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홍준호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