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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이른바 '뜨기' 전, 나는 그를 본 적이 있다. <리얼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을 할 때였다. 저녁나절에 하던 데일리 프로그램에서 하루 30분 방송 가운데 9분 꼭지 연작을 기획 방송하고 있었는데 한 작가가 쭈뼛쭈뼛하며 아이템을 내놓았다.


"대구에서는 꽤 유명하다고 해요. 그 야구장에서 장내방송을 하는데 진짜 웃기대요. 무명 개그맨이랄까."


일종의 짧은 휴먼 에세이 느낌의 성격인지라 안될 이유도 없을 것 같아서 일단 면접(?)을 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도 한참 없지만, 천하의 김제동은 무슨 MC도 아니고 하다못해 메인 프로그램의 게스트도 아닌 데일리 프로그램의 9분짜리 꼭지 출연자로서 우리 앞에 왔었다.


나는 다른 아이템을 기획 중이었기에 어차피 내 몫은 아니었지만, 함께 인사를 나누고 얘길 들었다. 첫인상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일단 비주얼이 너무 아니지 않냐? 얼마나 웃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내 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동료 PD는 그를 아이템으로 찜했고 대구까지 내려가서 촬영을 하고 방송을 했다.

 
"골 때려. 정말 말 잘 해. 사람들을 휘어잡아. 그런데 방송으로 뜰지는 모르겠어. 본인 꿈도 그래" 


본인 꿈이라니? 그 말뜻을 나는 프로그램 말미에 등장하는 김제동의 인터뷰를 들으며 알았다. 그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마이크 하나 들고 앰프 하나 놓고 사람들 많은 장소에 가서, 사람들한테 내 이야기 하고, 사람들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나도 좋잖아요," 그때 코너 제목이 "나는 나 김제동"이었는데 마지막 인터뷰 들으면서 "거리의 개그맨 김제동"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이른바 '뜬' 것은 우리가 만난 지 1년도 안 돼서였다. 어 그때 그 김제동이야? 하면서 우리 눈은 모두 김제동의 눈 크기의 세 배가 됐다. 우와아 사람 팔자 모르는구나. 


아마 그는 나를 절대로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의 무명시절을 잠깐 스친 지나가는 PD A였다. 그리고 그가 뜬 다음에는 감히 그와 범접하기 어려운 교양 PD였고, 조우했다 하더라도 하늘 같은 MC로 대우해 드려야 했을 터이다. 


그 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그에 대해 여러 얘기도 듣고 소문도 접했고 활약상도 지켜봤다. 플러스마이너스도 있고 좋고 나쁜 소식도 있으나, 분명한 것은 그가 우리 방송에서 얘기했던 마지막 인터뷰 "마이크 하나 들고 앰프 하나 있으면" 어디든 가서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겠노라 하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무슨 사상을 가졌는지 뭘 노리는지 모른다. 그러나 장담하건대 대한민국 연예인의 역사에서, 배우 가수 개그맨 MC 등등 모든 영역을 통틀어 그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연예인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그리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리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자주 토해 낸, 그러면서 사람들을 웃기고 울린 사람은 없다. 있으면 얘기해 주기 바란다. 

 
하늘이 재능을 내린 사람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그 재능을 하늘이 감탄하도록 잘 쓰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김제동은 그걸 했다. 그는 입심의 천재고 그 입심을 자신의 돈벌이에 그치지 않고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궂은 자리에서 유쾌함을 빚어내고 웃는 가운데 주먹을 부르쥐게 만드는 재능을 맘껏 썼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그의 외침을 들으며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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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이 당신에게 진 신세가 너무 큽니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그분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 큽니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하셨습니다. 저희가 그분으로 인해 받은 행복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하셨습니다. 그 짐, 우리가 오늘부터 나눠 지겠다고 다짐합니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저희가 슬퍼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슴속 심장 속에 한 조각 퍼즐처럼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미안해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이야말로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 이후에도 그는 여러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묶어 세우고, 눈물을 빼고, 배꼽을 흘리게 했다. 온갖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그렇게 했다. 작년 503번이 청와대에서 그 가증스런 홰를 칠 때도 그는 방송사에서 뭐라든 말든 거리에서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원하던 거리의 '마이크'로서. 


그는 우리 헌법을 끄집어내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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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조 2항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권력이라는 단어는 헌법에 딱 한 번, 1조 2항에만 나옵니다. (…) 권력은 오로지 국민에게만 있고, 나머지는 모두 권한, 국민이 가진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입니다. (…) ‘대한민국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한다.’ 즉, 국민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에서 일어나는 일,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말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므로 성주의 문제에 관해서 외부인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는 성주에 갔다. 가서 공권력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국가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마 그가 권력에 민감한 이였다면, 어디 비례 대표라도 노리는 이였다면 그는 작년에도 성주에 가지 않았을 것이고 오늘은 더더욱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그는 가슴이 아팠던 거다. 그리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거다.


"성주의 문제에 외부인이 어디 있느냐. 이건 대한민국의 문제다."라고 부르짖던 사람이 이유와 배경이 어찌 됐든경찰과 씨름하고 몸 다치고 나자빠진 사람들을 찾지 않는다면 그 자신 견딜 수 없었던 거다. 작년에 성주에 가서 "사드는 왕짜증이야." 하면서 춤춘 국회의원들은 '엄중한 시국' 때문에 모르쇠하고 있을망정, 아무 정보도 없고 정치적 계산도 없는 그로서는 아픈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으며 웃기고 위로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를 안 좋게 말하는 말을 들으며 내 가슴이 다 아팠다. 그가 다 옳은 것도 아니고 그가 항상 맞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내게도 마찬가지다. 단지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그는 자신의 입지를 돌아보기보다는 자신이 필요한 곳을 찾았던 사람이고, 계산기를 두드리기에 앞서서 무슨 말을 하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을 할 수 있을까를 계산하던 사람이라는 거다. 


대학교수든 천하 없는 정치 평론가든 뭐든 그에게 "뭘 모르고 누가 하는 말 듣고 설쳐대는 관종" 같은 말을 한다면 나부터 그 입을 쳐 주고 싶다. 대통령 하는 일에 끼어들었다고 김제동을 욕하면 그 입 꿰매 버리고 싶다. 니들보다 천 배는 더 용감했던 사람이라고 감히 얘기하면서. 


사드, 배치할 수 있다. 필요하면 해야지. 거기서 반대하는 사람들 설득하고 정히 안되면 끌어내야지. 다칠 수도 있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는 걸 왜 비웃고 왜 눈 부라리고 왜 욕하나. 작년에 김제동 말 들으며 손뼉 치며 감동했을 사람들이. 혹자는 원래 김제동이 맘에 안 들었고 뭐 기타 등등 그럴 수도 있겠다. 그분들께는 한 마디만 전한다. "잘났다." 


김제동 씨, 고맙습니다. 대한민국은 당신이 있어서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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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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