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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도 아기를 키울 수는 있다. 그만큼 몸이 축날 뿐. 건강한 성인도 녹초로 만드는 신생아 육아는 산모에게 이미 열려버린 지옥문이다. 출산과 동시에 몰아치는 돌봄노동은 분만의 충격으로 산산이 조각난 모체에 회복할 겨를조차 주지 않는다. 산모는 미약하고 가녀린 갓난쟁이의 당장 생존이라는 과제에 짓눌려 인간의 몸이 소모품이라는 사실을 곧잘 잊는다. 산후조리 기간에 혹사당한 몸은 각종 지병으로 주인에게 복수한다. 망가진 손목, 삐걱거리는 허리와 골반,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카락, 산후풍과 요실금 등 일시적으로 보였던 고장들이 몸에 정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양육자는 가능하면 도구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노가다하는 놈보다 돈 쓰는 놈이 이기는 건 게임만이 아니다. 슬프지만, 육아에서도 적당한 ‘현질’이 승부를 가름한다.


육아용품의 세계는 어찌나 심오한지! 깊이 파면 팔수록 듣도보도 못한 물건들이 쏟아진다. ‘국민’이라는 호칭만 붙었다 하면 솔깃해지고, 제품 리뷰를 독파하고 나면 어김없이 꼬리말에 협찬 딱지를 마주하게 되는 초짜 육아노동자들에게 육아용품 쇼핑은 망망대해처럼 막연하기만 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물건을 사고-내팽개치고-바꾸는 시행착오 과정에 줄줄 새는 돈을 막으려면 전략적인 소비가 필요하다. 제한된 예산도 문제거니와, 새 식구를 맞이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집안살림을 수용하려면 물리적으로도 한계가 있다. 예비양육자들의 건강악화와 재정 누수를 조금이나마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쓰인 이 글에서는, 육아에 유용한 용품들과 사지 않아도 될 아이템을 큰 테두리에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고무젖꼭지 (공갈 젖꼭지, 노리개 젖꼭지, ‘쪽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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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가족>을 보고 자란 나는 24시간 쪽쪽이를 물고 있는 ‘매기’를 보면서 고무젖꼭지가 우는 아기의 입을 막을 때 쓰는 물건인 모양이라고 받아들였다. 이 막연히 부정적인 이미지는 육아 실전에 돌입하면서 신속히 철회할 수밖에 없었는데, 수유시간 외에도 늘 뭔가를 빨고자 하는 신생아의 강력한 빨기 욕구를 맨몸으로 때우겠다는 신념은 실로 ‘사서 고생’이었기 때문이다. 아기에게서 고무젖꼭지를 빼앗으면 양육자의 휴식과 수면은 그 곱절로 파괴된다. 고무젖꼭지를 너무 미워하지 말자.


고무젖꼭지는 위생상 하루에 서너 번은 갈아줘야 하며 –황당하게도 집에서마저– 본체나 캡을 잃어버리는 일이 잦다. 고무젖꼭지를 거부하는 아기들도 적지 않으므로 애초에 다양한 제품을 넉넉한 수로 준비해 아기가 가장 선호하는 모델을 탐색하자. 아기는 방금 물린 고무젖꼭지를 뱉거나 떨어뜨리기도 하는데, 여기서 비롯되는 살균업무를 줄이려면 옷이나 이불에 고정할 수 있는 노리개 클립이 필수다. 밤중에 아기가 놓친 고무젖꼭지를 찾기 위해 어둠 속을 더듬거리다 보면 야광제품에도 관심이 갈 것이다. 그러나 야광젖꼭지는 불을 끈 순간에는 너무 밝게 보이고 한밤중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아 기능 면에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2. 유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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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디럭스형 유모차, 절충형 유모차, 휴대형 유모차


유모차는 분명 투자가치가 있는 아이템이지만, 무리해서 최고가 제품을 장만하기보다는 적당히 예산을 분배하는 편이 안전하다. 유모차 보는 기준은 발달단계에 따라 변화한다. 목을 가누지 못하고 자극에 민감한 단계의 신생아에게는 무게감 있는 요람형 유모차(디럭스형)나 절충형 유모차가 필요하지만, 아기의 활동량이 많아지면 승차감보다도 가볍고, 부피가 작고, 접기 간편한 휴대용 유모차를 찾게 된다. 아기가 유모차를 특별히 거부하지 않는다면 최소 두 대는 살 각오를 해야 한다. 외출 난이도를 좌우하는 유모차는 십수 만원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만큼 신중하게 구매할 필요가 있다. 코너링이 좋은지, 핸들 높이가 적절한지, 리클라이닝이 몇 도까지 되는지, 수납 바구니가 넉넉한지, 캐노피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등 실물 디테일을 꼼꼼히 확인하고 직접 밀어보면서 ‘손맛’을 볼 필요가 있다. 고리 형태의 가방걸이와 음료수 등 소품 수납 가방, 레인커버 등 유모차 액세서리를 함께 준비하면 편리하다.



3. 아기띠(캐리어) 혹은 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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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띠(좌), 슬링(우)


손을 많이 타서 양육자와 피부를 맞대야만 잠을 자는 아기, 시쳇말로 ‘등 센서’가 심한 아기들이 있다. 외출용품으로 분류되는 아기띠(베이비 캐리어)는 일명 ‘껌딱지’ 아기를 키우느라 온종일 손이 묶여있는 양육자에게 좀 더 쓸모가 크다. 많은 양육자가 집안일을 해결하거나 손목 휴식시간을 벌 용도로 실내에서도 아기띠를 착용한다(물론 아기를 담은 가방을 앞으로 메고 있으면 어깨나 허리에 통증을 느낄 수 있다). 아기띠는 유모차를 끌고 나가기 번거로운 짧은 외출에 적합하고, 아기띠로 아기를 재운 뒤 유모차에 내려놓는 식으로 병행할 수도 있다. 단, 몸에 맞지 않는 아기띠는 매우 고역이라 본전도 못 뽑을 가능성이 높다. 가능하면 오프라인 매장이나 베이비페어에서 시착해보도록 하자. 버클을 혼자 힘으로 잠그고 풀기 편한지, 제품이 신장보다 너무 길거나 짧지 않은지, 어깨패드가 푹신한지 등이 주요 고려 사항이다. 아기띠 가격이 부담스럽거나 유모차를 주로 사용할 계획이라면 천 소재의 슬링도 나쁘지 않다. 슬링에는 모체와 밀착도가 높아 아기가 더 안정감을 느끼며, 제품에 따라서는 수유가리개로도 활용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4. 요람(Bassinet)과 아기 침대(Baby Cot)


_____4.jpg 아기 침대(좌), 요람(우)


호주에서는 영아급사증후군(SIDS, Sudden Infant Death Syndrome) 방지 및 신생아 안전을 위해 아기를 재울 때 이불이 단단히 고정된 요람이나 아기용 침대를 사용하도록 교육한다(호주 미드와이프들이 한국의 일반적인 아기 잠자리 -범퍼 침대나 낮은 바닥, 양육자와 침대 공유- 를 본다면 몹시 격분할 것이다). 상황이 이런 관계로 필자도 육아 초반에는 아기침대를 사용했는데, 자그마한 신생아를 누이기엔 공간이 썰렁하게 큰 탓인지 아기가 도무지 적응하지 못했다. 침대 난간을 올리고 내리고, 움푹 꺼진 매트리스 위 아기를 들었다 내리기를 하루에 수십 번씩 반복하면서 손목 통증은 날로 악화되었다. 이러다 영영 손목을 못 쓰게 되겠다 싶을 즈음 구매한 요람은 확실히 삶의 질을 개선했다. 단 몇 주였지만. 아기가 뒤집고 목을 들 기미가 보이기 전에 졸업해야 하는 요람의 유효기간은 최장 3개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침대를 계획하고 있다면 여전히 요람으로 시작할 것을 추천하고 싶다. 산모에게 출산 후 2개월은 몸이 받는 데미지를 어떻게 더 줄일까 궁리해야 할 시기, 신체기능 정상화를 위한 골든아워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사용 기간이 짧아 아까운 생각이 들 것 같으면 지인에게 물려받거나, 중고품을 구매하거나, 대여 서비스를 활용하는 대안도 있다.



4. ‘국민’ 완구류


수유 후 바로 잠들던 아기에게도 마침내 먹고 나면 놀고 싶어하는 시기가 온다. 이제부터는 손 빨기나 발차기 정도가 행동력 최대치인 인간,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단계의 인간을 어떻게 즐겁게 해줄지 고민하는 것도 일이다. ‘국민’ 호칭의 영예를 얻은 완구류들, 국민 치발기, 국민 애벌레, 국민 모빌은 놀기에 갓 눈을 뜬 월령에 효과를 발휘하면서 전국 육아인들의 사랑을 받은 아이템이다. 단 몇 분, 아기가 혼자 노는 그 찰나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육아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틈에 화장실도 가고, 빨래도 하고, 식사 준비를 해야만 인간다운 삶의 최저선을 방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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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더블하트 치발기, 앙쥬 치발기, 윈켈 치발기


치발기는 유치가 돋기 시작한 아기들이 물고 빨며 잇몸 가려움을 해소할 때 쓰는 장난감으로, ‘국민갈비’라고도 불리는 더블하트/유피스 치발기, ‘앙쥬’ 바나나 치발기, 기하학적 구조의 ‘윈켈’ 치발기가 가장 유명하다. 치발기마다 다른 특성을 지녔으니 부드러운 것부터 딱딱한 것으로 이행한다. 애벌레 모양 촉감인형(헝겊인형)을 일컫는 ‘국민 애벌레’의 양대산맥은 해외 브랜드 ‘라마즈’ 제품과 국산 브랜드 ‘케이스키즈’ 제품이다. 케이스키즈 애벌레 인형은 원색 디자인에 치발기, 거울, 딸랑이(더듬이), 바스락거리는 장난감(볼)이 달려있는 반면, 라마즈 애벌레 인형은 각기 다른 패턴과 소재의 패브릭으로 접붙인 마디마다 청각 자극용 장난감이 내장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라마즈 애벌레 인형이 ‘촉감’인형의 목적에 더 충실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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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키즈 애벌레 인형(좌), 라마즈 애벌레 인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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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니러브 ‘수더앤그루브’ 모빌


그러나 아무리 신박한 장난감도 아기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치발기와 촉감인형에서 소문의 효과를 보지 못했던 나는 다행히도 국민모빌 ‘타이니러브 수더앤그루브’로 구원을 받았다. 6가지 테마의 미디음악이 흐르는 동안 원반 세 개가 자동으로 회전하면서 규칙적으로 꿈틀거리는 타이니러브 모빌은 아기를 최장 30분까지 상대했다. 필자의 경험과 각종 후기를 종합해보면 컬러 모빌이 가장 요긴하게 쓰이는 월령은 2개월에서 4개월이며, 이 시기의 육아 난이도를 고려하면 십만 원(흑백모빌, 스탠드 포함)도 아깝지 않다. 많은 임부가 출산준비 겸 취미 생활로 DIY 모빌을 만들지만, 모빌은 역시 정성보다 기능이다. 반드시 타이니러브 제품이 아니어도 괜찮다. 양육자의 개입이 필요 없는, 양육자에게 한숨 돌릴 겨를을 주는 그런 장비를 꼭 마련하자.


5. 턱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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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천 턱받이, 실리콘 턱받이, 방수천 턱받이


음식을 곧잘 흘리고, 뱉고, 던지는 아기들과의 식사전쟁에서 턱받이는 필수다. 귀엽기로는 천 턱받이가 최고지만, 일주일에 스물한 개의 턱받이를 관리하는 마당에 음식물이 덕지덕지 묻은 천 빨래는 감당하기 어려운 노동이다. 야심차게 장만한 턱받이를 몇 개 망치고 나면 결국 천 턱받이가 침 닦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식사용 턱받이로는 실리콘이나 방수 소재를 써야 한다. 다만, 실리콘/방수천 턱받이의 관리 편의성을 강조하기 위해 ‘물로 헹구고 말리면 끝’이라고 쓴 인터넷 후기는 반쯤 거짓말이다. 각종 음식물을 받아내는 턱받이를 물로만 세척하면 악취가 심하게 난다. 실리콘 턱받이는 설거지거리를, 방수천 턱받이는 빨래거리를 늘린다. 양자 가운데 본인이 그나마 선호하는 한 가지 노동을 선택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육아용품 추천은 정말로 어렵다. 카시트, 살균기, 블렌더, 목욕용품, 플레이매트, 장난감 등 한 인간을 육성하는 데 필요한 물건들은 한 면에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고, 개별 아이템은 고유한 성향을 지닌 두 인간 -양육자와 아기- 의 만남에서 늘 다르게 적용된다. 무책임하게 들리겠지만, 육아용품 탐색은 어느 정도 복불복 게임의 성격을 띤다. 어디서 꽝을 맞고 잭팟이 터질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서 양육자의 주관이 중요하다. 고른 사람의 애정이 있어야 기대에 조금 못 미치더라도 열심히 쓸 ‘마음’이 드니까. 그리고 취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육자의 ‘마음가짐’이다. 나는 모든 예비양육자들이 다음과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육아에 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양육자의 고생은 육아 진정성을 증명하는 지표가 아니라는 것. 영유아 육아라는 몇 년짜리 장기전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초장부터 무리한 정신/육체노동으로 ‘번아웃’되지 않도록 체력 안배를 잘 해야 된다는 것. 아이만큼 양육자 역시 중요하다는 감각을 잃으면 안 된다. 출산을 앞두고 두려워하고, 기대하고, 떨고 있을 모든 예비양육자들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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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