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회사 사옥이 이전한 지 얼마 안 된 즈음이었다, 일단 이곳 저곳을 뚫으며 ‘먹을 만한’ 집을 찾던 중 정갈해 보이는 한 집을 누군가가 찍었고 우루루 들어갔다. 그런데 초입에서 반갑게 우리를 맞던 주인장과 우리 일행 중 한 선배가 거의 비슷한 탄성을 내질렀다. “어어어...”
사연인즉슨 이 식당은 원래 2000년도 쯤 신촌 어느 께에선가 무척 잘나가는 대박집이었고 매일 같이 이루는 문전성시에 돈을 갈퀴로 긁던 가게였다. 그러다보니 당시 나와 선배가 함께 만들던 <리얼 코리아>의 레이더에 걸렸고 방송을 타는 바람에 더 대박이 터져서 몇 달 동안 손님들의 장사진이 끊이지 않았다는 후문을 들은 기억이 났다. 한동안 악수를 멈추지 않던 선배가 내 머리 속에 퍼뜩 떠오른 질문을 똑같이 던졌다.
“아니 그 대박집을 놔두고 여긴 왜... 분점 내신 거예요?”
사연은 뜻밖이었다. 그 가게가 있던 곳은 일종의 엉성한 주상복합 건물이었고, 1층은 가게, 그 위층들은 원룸 비슷한 다가구 주택들이었다고 한다. 그 중 하나에 한 남자가 살았다. 주인 아저씨도 낯익은 사람이었다.
새벽 장사 끝날 때쯤 그는 창밖에 고개를 내밀고 담배를 피울 때가 많았고 아저씨는 몇 번 볼멘 소리를 했다고 한다. “거 꽁초 버리지 말아요.” 그때 남자는 기분 나쁘게 히죽이죽 웃었고 주인 아저씨도 별 이상한 놈 다 본다 하고 제 할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식당이 들어 있던 건물 전체가 뒤집어졌다. 그 남자의 이름은 유영철이었다. 유영철이 담배를 피우거나 우두커니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던 즈음은 어쩌면 새로운 살인 하나를 끝낸 뒤였을지도 몰랐다. “싫은 소리 했던 게 얼마나 무서웠던지... 나 뻔히 보고 히죽 히죽 웃던 그 모습이 너무 무섭게 떠오르고.”
건물 주변에는 인적이 끊겼고 대박 오브 대박이던 가게 매출은 쪽박으로 떨어졌다. 급기야 건물 전체를 부수어 버리니 정든 터전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흘러든 곳이 우리가 이사 왔던 동네였던 것이다. 선배 말로 “내가 방송한 것 중에는 최대의 대박집”이었다는 가게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부터 칼을 못 잡겠던걸요. 손님들이 안 올 만도 하지.”
악(惡)을 마주한다는 것은 그렇게 끔찍한 일이다. 자신과 관련이 없는 악 앞에서도 오금이 저리고 ‘그쪽으로는 오줌도 누기 싫은’ 게 인지상정일진대 악이 자신의 삶을 발밑으로부터 무너뜨리고 우연으로든 의도적으로든 그 칼끝이 자신의 목덜미 근처를 누볐다는 느낌을 소유한다는 건 수십 년이 흘러도 그 창백한 빛 바래지 않을 ‘체험, 죽음의 현장’일 게다.
악 앞에서 벌벌 떨며 일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고, 그 악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고, 타조처럼 머리를 흙에 박을지언정 그를 목도하지 않으려 기를 쓰는,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인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명제가 항상 참일 수 없는 이유는, 그 악에 대항하여 사람들이 보여 온 행동의 역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9년 동안 정권과 그 사주를 받았던 언론사 경영진들은 ‘언론 연쇄 살인마’들이었다. 유영철보다도 더 알뜰하고 치밀하게 범행을 기획했고 유영철보다 더 대담하게 언론인들의 팔 다리를 끊어냈다.
자신의 상전인 정권에 반하는 기사를 쓰거나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을 바보로 만들거나 직장에서 내모는 건 일도 아니었다. 방송대상 수두룩히 받은 PD에게 스케이트장 청소를 시키고 베테랑 아나운서를 웬 건물 짓는 현장에 투입하고 그에 불평했다는 이유로 목을 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정말로 서슴지 않았다. 유영철이 “여자들 몸 함부로 굴리지 마라.”고 후안무치한 충고(?)를 내뱉었듯 전직 MBC 사장은 고통받고 있는 후배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고통도 은총입니다.”
이 사이코패스들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일어서 싸웠다. 악에 무너진 대박 터전을 뒤로 하고 전혀 낯선 동네에서 새로운 맛집으로 일어서고 있던 식당 주인 아저씨처럼, 터전을 잃은 언론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얼키설키 언론사를 세웠고 빈약하지만 야무지게 언론 연쇄 살인마들에게 맞섰다.
연쇄살인마 정남규와 격투를 벌여 그에게 수갑을 채우도록 한 이는 정남규에게 습격당한 시민이었듯 피를 흘리면서도 어떻게든 그 악의 멱살을 잡고 더 이상의 칼질을 멈추기 위해 팔을 비틀고 그 다리를 걸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적어도 악에 대항하는 힘이 이기리라, 최소한 지지는 않으리라는 희망을 다시금 곱씹은 건 MBC 보도국의 파견직 AD들의 ‘제작 거부’ 선언을 보고서였다. 이들에게 제작 거부란 곧 사직이다. 파견회사의 직원으로 돼 있는 이들은 계약 기간을 자의적으로 파기하였기에 그 소속사에도 ‘심대한 피해’를 주게 돼 있는 바, 그들에게 닥칠 불이익은 비단 사직 뿐 아니라 향후의 앞길에도 영향을 주게 돼 있다.
그 공포가 얼마나 컸을까. 그냥 가만 있으면 되는데, 그냥 모른 척 하면 되는데, 사실 일을 계속한다고 누가 의리없다고 손가락질 할 것도 아닌데 (누가 감히 파견 비정규직에게 너희도 파업하라 다그친단 말인가) 그들은 악 앞에 나섰다.
“우리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돌아서서 눈물 흘리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자발없이 눈물이 치솟았다. 그들까지 연쇄살인범의 칼날을 보게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들마저 직을 던져 사이코패스에게 항거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은 정말 미안한, 너무도 소름끼치게 미안한 일인데. 그들이 그렇게 하는 사이, 말 참 구더기 피부처럼 매끈매끈하게 하는 방송인은 마이크를 대신 잡아들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은 악 앞에서 저렇게 대범하고 용감했을까. 더구나 연쇄언론살인범들의 행각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이들이 어떻게 그 트라우마를 박찰 수 있었을까.
그들을 위해서라도 MBC 노동조합은 무조건 이겨야겠다. 연쇄살인범들의 행각만큼이나 잔인하고 뻔뻔하고 어이없는 수법으로 언론을 죽이고 언론인들의 숨통을 끊고 자유민주주의를 참칭하면서 언론을 짓밟았던 지난 9년 동안의 적폐의 부역자들을 끌어내려야겠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한 예수의 말을 돌려 말한다면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의 목소리가 곧 내 목소리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위해 자신의 직을 던진 파견직 노동자들에게서 나는 거룩함을 보고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행하는” (로마서 12:21) 이들의 향기를 맡는다. 주여 그들을 보우하소서.
그들은 선배들에게 되레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그들에게 그런 용기를 내게 했던 건 어쨌든 좋은 사람들이었을 터이다. 비정규직 정규직의 벽은 있을망정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 하고 어떻게든 좋은 자리 마련해 주려고 애쓰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
그런 사람들을 대열에 끼고 싶어하는 것, 그러도록 노력하는 것도 악에 대항하는 일의 하나가 될 것 같다. 유영철에 쫓겨 온 식당 아저씨도 그랬다. “유영철 같은 놈이 어떻게 없겠어요.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 여기 이사온 것도 우리 집 망한다고 걱정하던 단골 방송국 아저씨들이 권해서였어요. 언론사들이 다 상암동으로 오니까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어떤 분들은 자리까지 알아봐 주고 그랬어요.”
산하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