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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유치원엔 친구들을 돌아가며 따돌리는, 그런데 이상하게 인기는 많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못된 말을 감히 되받아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친구 때문에 유치원도 가기 싫고, 견학도 가기 싫었다. 그때, 당시 7세의 나에게 당시 11세의 작은언니가 다가와 알려준 싸움의 비결, 그것은 기세였다. '그 친구가 뭔 개소리를 하려고 하려는 찰나 듣지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조온나게 쏘아붙여 버리라는' 언니가 가르침을 따라 와다다다다 쏘아붙여 주었을 때의 정적. 7살 평생 한 번도 말대꾸라는 걸 경험하지 못했던 그 친구는 너무 놀라 친구들에게 "너네 쟤랑 놀지 마"라는 반격도 하지 못했다. 그때 그 친구의 벙찐 표정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그날 이후 나는 (파이터로 다시 태어났으며) 기세의 중요성을 배웠다. 뭐든지 첫 순간에 이겨버리면 그다음은 쉬운 거였다.


기세의 중요성은 내가 지금껏 본 많은 시험에도 거의 다 적용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시험에서 기세만 믿다간 딱 첫 문제만 잘 보고 끝날 수도 있긴 하겠다만, 그래도 첫 문제까지 다 망하는 것보단 낫잖아?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토익 스피킹에게 선빵을 날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아, 네. 이제 썰 다 풀었으니 공부를 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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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깐요



사회성을 잃고 파트 1을 얻는 방법


토익 스피킹 전체 11문제 중에 파트 1이 차지하는 건 2문제. 대략 5줄 남짓의 지문 두 개를 자연스럽게 읽는 것인데, 안내문이나 행사 같은 걸 소개하는 안내 방송 등이 나온다. 채점할 때는 발음, 억양, 그리고 강세를 보기 때문에 '남이 알아들을 수 있게' 읽으면 된다. 쉽게 말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를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해버리면 망하는 거다. 그냥 자연스럽게 읽으면 되는 건데, 소리 내서 자연스럽게 읽기가 처음부터 쉬운 건 아니다. 수능 영어 공부를 하며 눈으로 고요하게 읽기에 익숙해졌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쯤에서 수줍게 꺼내보는 나의 오랜 취미는 영어책을 소리 내서 읽고 녹음해보는 것이었다. 요즘은 같이 사는 고양이들 눈치를 봐야 하는 집사의 신분이라 잘 안 하지만, 예전엔 방에 틀어박혀 아무 책이나 꺼내 읽고 녹음해서 들어보고 괜찮으면 혼자 킬킬거리곤 했다. 마치 영어로 염불 외우는 소리 같았을 테니 우리 엄마는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아마도 정상일 것이고 내 취미는 죄가 없다.


사회성을 잃은 대신 이 취미 덕에 파트 1만큼은 따로 공부한 적이 없다. 예-전에 잠깐 토익스피킹 학원에 다녔을 때도 파트 1만큼은 칭찬받은, 파트1(만) 모범생이랄까. 이제 아무 영어책이나 펼쳐보자. 긴- 글은 필요 없고 딱 한 문단만 고르면 된다. 이 기사에서는 나의 최애 영미 소설 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의 첫 문단을 사용하는 걸로 정했다.



It was 7 minutes after midnight. The dog was lying on the grass in the middle of the lawn in front of Mrs Shears' house. Its eyes were closed. It looked as if it was running on its side, the way dogs run when they think they are chasing a cat in a dream. But the dog was not running or asleep. The dog was dead. There was a garden fork sticking out of the dog. The points of the fork must have gone all the way through the dog and into the ground because the fork had not fallen over. I decided that the dog was probably killed with the fork because I could not see any other wounds in the dog and I do not think you would stick a garden fork into a dog after it had died for some other reason, like cancer for example, or a road accident. But I could not be certain about this.


지금은 밤 12시 7분. 개 한 마리가 쉬어즈 부인의 집 앞 잔디 한가운데에 드러누워있다. 눈은 감겨있다. 꿈에서 고양이라도 좇는지 달음질하는 자세 그대로 옆으로 누워있다. 그러나 개는 달리는 것도, 잠자는 것도 아니었다. 개는 죽어있었다. 개의 몸 밖으로 정원에서 쓰는 쇠스랑이 삐죽이 나와 있었다. 쇠스랑 끝은 개의 몸 전체를 관통해서 땅에 꽂혀있는 듯했다. 쇠스랑이 꼿꼿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개는 아마도 쇠스랑에 찔려 죽은 것 같았다. 개에게서 다른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개가 다른 이유로 죽은 다음에, 가령 병에 걸려서 죽거나 도로에서 사고로 죽은 다음에 쇠스랑으로 다시 찔렸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는 없다.(한글로 번역할 필요는 없지만 개인적인 덕심으로 넣어본ㄷr....☆)


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 by Mark Haddon




1. 나는 영어 초심자야 - 좀 많이 끊어 읽기(초심자가 아니라면 2번으로)


처음 무작정 글을 읽으려니 너무너무너무 길었다. 우다다 읽다가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실 수 있기 때문에 적당히 읽을 수 있는 정도로 끊었다. 어디를 끊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정답은 없다. 단, 끊어 읽기를 많이 하다 보면 정답에 가까워지는 건 분명하다. 일단 중요한 건 단어별로 끊는 게 아니라 의미별 단위로 끊어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 윗글 첫 번째 문장을 보자.


It was 7 minutes after midnight.


여기에서 7 minutes는 뭉쳤을 때 7분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7과 minutes 사이를 끊지 않았다. 짧은 문장은 그냥 읽지만, 한 번에 읽을 수 없는 긴 문장을 끊을 땐 쉽게 생각해 그 문장의 동사를 기준으로 잡았다. 예를 들어 윗글의


It looked as if it was running on its side.

에서 첫 번째 동사 looked를 기준으로 뒤가 길기 때문에 뒤를 끊었더니


It looked / as if it was running on its side.

가 되었다. 뒤도 너무 길어 뭉쳤을 때 '옆으로'라는 의미가 되는 on its side는 하나로 두고 그 앞을 잘랐더니,


It looked / as if it was running / on its side.

가 되었다. 이렇게 자르면 된다.


그다음부터는 종이접기 아저씨처럼, 친구들이 기다릴까 봐 제가 미리 끊어왔어요(사기).



미리 준비해왔어요.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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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익숙해질수록, 저 파란 선 중 불필요한 걸 지워가면 된다. 이제 어른이 됐으니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2. 나는 초심자는 아니야 - 좀 덜 끊어 읽기


위에서 너무 나노 단위로 끊었다면, 조금 덜 끊어 읽어도 된다. 혹은 위의 것들이 익숙해졌을 때 아래와 같이 조금 덜 끊어 읽기를 연습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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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번이나 2번, 혹은 둘 다 끝냈다면 - 강세와 억양이라는 걸 살려보기


의미 단위로 끊어서 읽어봤다면 우선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시는 사태는 막은 거다. 이제 강세나 억양을 살릴 차례다. 아무 강세나 억양 없이 줄줄 읽으면, 랩 못하는 사람이 랩 하는 걸 듣는 것처럼 채점자가 막 고통스럽고 그렇다.


(오바마의 연설이 아니라면 토익 스피킹에서 나오는) 문장에서 억양을 살려 읽어야 하는 부분은 대략 다음과 같다. 문법 얘기는 하기 싫지만, 문법책에 나오는 최소한의 명칭은 빌려 쓸 수밖에 없다. 쓰고 싶지 않지만 나도 달리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A. 주어 자리

I, you, he, she, it 등의 대명사는 강조하지 않는다. It was 7 minutes after midnight에서 It은 대명사니까 강조하지 말고, Its eyes were closed에서 주어 자리에 있는 its eyes는 eyes만 강조한다.


B. 동사 자리

am, are, is 등의 be 동사는 강조하지 않는다. I am reading a book처럼 am reading이 짝꿍이 되어 동사 자리에 있다면 am 말고 reading을 강조하면 된다. 동사 뜻을 가진 애만 강조해준다고 생각하면 좀 쉽다.


C. 그 뒤 자리 

전치사(in, into, on, of, after before 등) 뒤에 나오는 명사는 강조한다.

예를 들어 after midnight / into the ground 처럼.


D. 항상 강조해서 읽는 곳

대문자로 쓰인 명사, 숫자, not은 늘 강조한다. 이것들은 그 문장에서 늘 중요한 말이다.


위의 규칙에 따라 끊어 읽기에 강세까지 더해보았다. 어떤 느낌인지 표현하려고 물결무늬를 넣었다. 아래 파란 선은 많이 끊어 읽었을 때인데, 이미 2번까지 갔대도 상관없이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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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안 온다면 이제 오디오북과 비교해보자. 원어민이라 끊어 읽는 건 훨씬 덜 하겠지만, 물결무늬 억양이 무슨 의미인지 감을 잡기 쉽다.


https://youtu.be/XS7SsCTlwq4



4. 3번까지 다 끝내고 시험장에 가기 전에 


끊어 읽고, 억양까지 다 살렸는데 가끔 날 당황하게 했던 건 시험 기출 문제나 문제집에 나오는 축약어들, 기호들, 숫자들이었다. 토익 스피킹에 자주 나오는 Ext 123, 10˚C10˚F, 771-7707(전화번호 쭉 읽기) 같은 것들은 미리 어떻게 읽는지 알아보고 갔다.


이런 것들이 다 익숙해지면, 시험장에서 지문 종류에 따라 손석희에 빙의하거나 유재석에 빙의해 읽는 여유도 부려볼 수 있다.



이건 사실 (고작) 토익 스피킹을 위한 건 아니다


책을 한창 소리 내어 읽었을 땐 녹음도 종종 했다. 공부법엔 쓰지 않았지만, 녹음을 해보면서 내가 생각보다 여러 번 아버지를 가방에 넣었다는 걸 깨닫고 다시 녹음했다. 토익 스피킹 전체도 아니고 고작 파트 1에 나오는 두 문제를 위해서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묻는다면, 토익 스피킹이 끝나도 그나마 남는 것이 이 공부였기 때문이다.


한창 학원에 다닐 때 툭 치면 쏟아낼 듯 외웠던 표현들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소리 내 읽고 녹음해보면서 고쳐서 만든 발음과 억양은 아직도 제법 남아있다. 그래서 파트 1뿐만 아니라 발음과 억양 공부를 시간 내서 해본 적이 없다. 그게 큰 고민이었던 적도 없다. 그러니 이건 사실 고작 토익 스피킹을 위한 공부는 아니다.


토익 스피킹을 공부한다면, 혹은 내 영어엔 억양이 없다면, 혹은 시간이 많다면, 한 번쯤 책을 펴고 녹음 버튼을 켜보기를 권하고 싶다. 생각보다 얻는 게 많다. 문학을 보면서 내 뇌에서 자체 생성하지 못하는 표현들을 줍듯이 영어책을 읽으며 아 이런 예쁜 표현도 있구나, 하고 끄덕끄덕하게 되는 건 덤이다.


아, 가족과 조금 멀어질 수는 있다. 조금 많이.




덧붙이는 말,


이것은 토익스피킹 협찬 기사가 아니라 사비를 털어 쓰는 기사다. 협찬 기사라면 지난 기사에 그렇게 짜증을 쓸 수는 없었을 거다.


그리고 제가 ETS라면 딴지에 협찬 안 할 것 같아요(질색).

이것은 궁서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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