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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인이라는 떡밥

 

지난해 이맘때를 생각하면 거의 새 나라나 다름없지만, 아쉽게도 아직 우리는 행정부만 겨우 조금 바꿨을 뿐이다.

 

그 아래를 꽤 가까이서 채우고 있는 건 여전히 MB503 시절에 승진했던 인간들인데, 그들의 품질은 요즘 MBC 노조가 폭로하는 자기들 지역 방송국 사장들의 행태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부 부처의 국장급도 태반이 비슷한 품질이다. 잘 한 짓이라곤 기억나지 않는데 인제 와서 “우릴 자르면 니들도 똑같은 놈들이잖아?”라고 하는 호연지기는 그분을 닮았다. 능력이라곤 없는데 그저 잘 비벼서 지난 9년간 승진한 분들, 간단하게 줄여 이 적폐들이 철밥그릇 유지하며 퇴직 때까지 정부가 개혁 좀 해보려고 할 때마다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기 위해선 여론을 흩뿌려야 한다.

 

이럴 때 적폐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당장 반응할 수 있는 떡밥이다. 평소에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서 대상 하나를 골라서 사실은 별거 아닌 그 존재가 한국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흔들 수 있는 대단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약 200만 명의 외국인들 중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게 중국인이다. 이들에 대한 떡밥이 던져졌고, 사람들은 덥썩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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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일보(링크)

 


MB503 시절에 가장 먼저 언론사에서 매장당한 사람들은 탐사보도하던 이들, 그리고 언론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하던 기자와 프로듀서들이었다. 이들이 밀려나지 않고 수준 이하의 보도를 비판했더라면 ‘long gas line’ 소동은 없었을 것이다. 2015년 네팔 대지진 당시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660km 밖에 있는 카트만두 상황을 천리안으로 보고 기사 쓰는 일도, 범인의 배포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번 떡밥은 배포가 남달랐던 그 언론사에서 던졌고, 꽤 많은 사람들이 낚였다.

 


2. 조선이 또

 

발단은 한 커뮤니티에 약사라는 분이 올린 글이었다. 요약하자면 약국에 오는 중국인들과 한국계 중국인들이(법무부 출입국 관리소는 조선족이라고 하지 않고 한국계 중국인이라 호칭한다) 비싼 간염약을 많이 사는데, 우리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는 내용이다.

 

중국이 높은 경제적 성장률을 찍고 있지만, 그건 북경과 해안 도시들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서 그런 거지, 중국의 시골은 아직도 개혁개방 때와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중국 시골의 위생환경은 한국의 1970년대 이전이라고 봐도 된다. 간염이 비위생적인 환경과 관계가 있는 질병이니 중국인 중에 간염 보균자가 많은 게 딱히 이상한 게 아니다.

 

중국인을 많이 보는 지역의 약사가 저런 글을 올릴 수도 있다. 한 해 동안 약 천 명 정도가 늘었다면, 약사 입장에선 확실한 변화를 경험했겠지. 문제는 이걸 기사화한 방식이 여전히 방글라데시에서 네팔 지진 보도하던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출입국 관리소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1,899,519명이다. 이 중에 중국인이 329,216명이고 한국계 중국인이 626,655명이다. 둘을 합치면 전체 외국인의 50%가 넘는다. 어느 쪽 하나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비율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거대 집단이다.

 

기자가 대충 중국인이라고 버무려 썼지만, 기사 속 이야기는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계 중국인들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이다. 한국계 중국인과 중국인은 한국에 오기 위해선 다른 법의 적용을 받는다. 한국계 중국인은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한국계’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혹은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이들의 후손으로 아들(딸), 손자(손녀), 증손자(증손녀)까지만이다. 그 후 재외동포법이 개정되었기 때문에 증손자 대가 낳은 자식들인 현재 10대 한국계 중국인들은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외국인으로 간주한다.

 

한국에 일하러 들어오는 중국인은 고용허가제 규정에 따른다. 이 경우, 비자 신청 당시에 건강검진 서류를 첨부해야 하며, 한국에서 사업장에 배치되기 전에 다시 건강검진을 한다. 여기서 이상이 있을 경우엔 돌려보낸다. 중국인이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대한민국 영토는 제주도뿐이며, 여기로 가는 이들이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할 방법은 아예 없다. 중국인이 우리나라 건강보험에 가입하는 방법이 아주 간단하다고 한 해당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

 

고용허가제에 따라 한국에 오는 중국인들은 당연히 건강보험 가입 대상자다. 즉, 간염 보균자인데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해 이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계 중국인뿐이다. 중국인이 감염된 경우라면 한국에 입국한 이후에 공동생활 과정에서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일보 기사만 보자면 마치 아무 중국인이나 한국에 들어와서 국민건강보험 가입을 할 수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 실제로 기사에 등장하는 이들도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계 중국인들인데도.

 

한국인 C형 간염 환자들 대비 한국계 중국인들의 C형 간염 보균자는 약 6배 정도다. 그래 봐야 거주하고 있는 62만 명 중에서 3,396명이다. 약 1천 명 늘어난 C형 간염 보균 한국계 중국인들의 입국을 막겠다고 하면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그리고 시행령, 시행규칙을 모조리 손봐야 한다. 이건 2001년 헌법재판소에서 헌법 불일치 판정을 받아서 개정한 지금의 법률에 대한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십수 년 전의 짬뽕-울면 논쟁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 불똥은 국적법과 헌법에까지 닿게 된다. 적폐청산과 개혁 논의는 개뿔.

 

국적 문제, 왕래 허용 문제, 그리고 취업의 자유 문제까지 이미 10년 전에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든 결과물이 지금의 재외동포법이다. 이걸 다시 손 보겠다고 하면 62만 명의 한국계 중국인들과의 문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그들을 고용하고 있는 산업 현장과도 시끄러워지게 된다.

 

상당수의 이주노동자는 산재보험 가입을 하지 않는 부문에서 일한다. 한국인들이 일하기 싫어하는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다가 다치는 사람들이 산재보험도 제대로 못 받고 있는 판인데, 간염약 타서 먹는 한국계 중국인들이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흔들지도 모른다는 걱정할 시점일까? 100% 토종 한국인이 아니면 ‘인간’이 아닌 건지, 아니면 이 매체가 인간들로 구성이 안 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 토종 한국인 사회 얘기할 때도 늘 사람보다는 재정 걱정하던 이들이니 아무래도 후자가 맞는 듯하다.

 


3. 그럼 전혀 문제가 없을까

 

문제가 있지, 왜 없겠는가. 언젠가 썼던 이야기지만 2015년에 네팔에서 아내의 결혼 비자를 받기 위해 내가 주네팔 한국 대사관에 제출했던 서류는 114페이지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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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서 10장 더 넣어야 했다.

 


서류 준비하는데 걸린 시간, 지금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저 서류들 중 한 장에 불과한 네팔 혼인증명서 발급 받는 데만 다섯 달이 걸렸으니. 저 서류들엔 정신과 의사의 진단서와 성병 검사 결과 등이 포함된 종합건강진단서, 집의 규모를 보여주는 부동산 계약서와 주택 등기부등본, 세금을 지난 3년간 얼마씩 내왔는지 증명하는 세금 납부 증명서까지 들어간다. 저거 준비하면서 화났던 적은 딱 한 번밖에 없었다.

 

별 불만 없이 저 많은 서류를 준비했던 것은 그간 있었던 대부분의 사건 사고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 사람과 평생 같이 살겠다고 들어오는 사람 중에서도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돈을 벌겠다고 낯선 나라에 온 사람들이 벌이는 사건 사고가 왜 없겠는가? 한국계 중국인들이 주로 살고 있는 지역인 지린성(吉林省)은 고도성장을 구가 중인 중국경제에서도 소외된 지역이다. 생활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런 이들이 거의 천안시 규모로 들어와 한국에 살고 있다.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한국계 중국인이 재외동포로 인정받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중국으로 넘어간 분들의 증손자까지니 그분들의 자녀는 당장 성년이 되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재외동포로 한국에 쉽게 올 수 있었던 권리는 거의 끝나간다. 이젠 C형 간염약 이야기가 아니라 이들과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가 논의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그건 북한과 우리와의 관계로도 이어지니까.

 

그러니 제발, 본인이 뭘 지적하고 있는지, 그걸 지적하는 게 옳은지 구분이 안 된다면 기사 쓰지 말자. 아니,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매체가 사람 얘기 함부로 보도하지 말자.





Samuel 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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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