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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송사 탐사보도팀 이야기를 다룬 <아르곤>이라는 드라마가 시작했다. 세월호와 MBC 사태를 그대로 반영한 구성에 탐사보도팀 팀장이자 앵커인 주인공 김주혁이 손석희를 빼다 박은 것으로 나름 이슈가 되었다.


<아르곤>의 핵심 갈등은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보도국장과 공정보도를 하려는 탐사보도팀 팀장(김주혁) 간의 갈등이다. 사고의 원인을 감추려는 보도국장은 김주혁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자, 탐사보도팀의 계약직 직원들을 잘라버리겠다고 합박한다. 정의로운 팀장은 팀원들을 지키기 위해 보도를 포기하는 그때, 소문을 엿들은 직원들이 팀장 사무실로 쳐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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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려도 좋으니, 진실을 보도해주세요."


계약직, 외주 직원인 자신들은 잘려도 좋으니 팀장은 진실을 보도해 달라는 요구다. 이에 감동받은 김주혁은 회사를 뒤집을 탐사보도를 준비하기로 맘 먹으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퍽 낭만적인 장면이다.


드라마는 드라마고, 현실은 현실이다. 같은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졌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계와 공정보도를 맞바꿀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방송국 파업을 둘러싼 비정규직, 외주 제작사의 문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방송국 외주 직원들의 현실은 어떤 것인지, 지원준 독립피디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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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코코아 기자:  / 지원준 PD: )


 

: 그러니까, 탄핵 3일 후 방송이었어요.

 

: 어떤 프로그램이었나요?

 

: KBS 아침 방송이었어요. 1부는 날씨, 기타 등등을 다루고, 2부에 시사가 나갔어요. 저는 2부에 시사 프로그램을 다루는 외주피디였어요.

 

: 뉴스 같은 프로그램인가요?

 

: 뉴스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PD수첩처럼 깊게 파지는 못해도 7~8분 정도 사건을 전반적으로 조명했어요.

 

탄핵 직후, KBS는 거의 비상방송 체제였어요. 대통령이 탄핵됐으니까. 프로그램 CP가 전 팀장들 소집해서 지침을 내렸어요. ‘시사 방송은 탄핵에 집중해라. 민의를 최대한 반영해라.’ 이렇게.

 

: 정상적이네요.

 

: 그렇죠. 저는 탄핵 당일부터 촛불 집회 참가자들 쭉 인터뷰하고 다닌 거 모아서 르뽀 형식으로 7분 30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갔어요. 담당 피디에게 시사를 받아야 하니까. 근데 그 피디가 갑질대마왕이에요. 굉장히 유명했어요. 소위 KBS 3대장 중 하나거든요.

 

제 영상을 보더니 다 뜯어고치라는 거에요. 커트 몇 개를 바꿔라, 인터뷰 순서를 바꿔라 이런 게 아니라 전부 다 뜯어고쳐라, 이건 편파적인 방송이다, 라고요.

 

: 뭐가 문제였던 거죠?

 

: 촛불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지극히 일부일 뿐이고 침묵하는 다수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그런데 촛불 집회 참여자들 목소리만 부각됐으니 이건 편파적인 방송이다, 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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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좌린


: 어떻게 하셨어요?

 

: 개겼죠(웃음). 말도 안 되니까. 결국 그 피디가 생방송 직전까지 방송내용 모르게 숨겼다가, 생방을 내보냈어요. 엄청난 후폭풍이 있었지만, 5%도 안 나오던 시청률이 10% 가까이 뛰었어요. 대박 난 거죠.

 

: 시청률로 증명된 거네요.

 

: 그렇죠. 이게 2004년도 촛불 집회 이야기에요. 노무현 대통령 탄핵되던 때요. 그때 언론 자유도가 아시아 최고라고 불렸는데, 독립피디들은 언론 자유를 누릴 수 없었어요. 정규직 PD의 성향에 좌지우지되니까요.

 

 

언론자유의 구멍

 

: 정권 차원에서 언론에 개입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네요.

 

: 또 다른 문제죠. 하지만 이게 결국 정권에게 이용되죠. 대표적인 예가 KBS 이승만 다큐에요. 이승만 미화하는 다큐를 만들어라 하니까 시사 피디들이 우리는 못 만들겠다고 제작 거부를 했어요. KBS가 어떻게 했나요? “그래? 외주에다 맡기지 뭐.” 하고 외주로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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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독립피디들이 돈 급하고 분유값이 떨어졌어도, 도저히 자기 이름으로는 저런 거 쪽팔려서 못 만들겠다고 해서, 결국 외주 프로덕션 대표 이름으로 나갔지만요.

 

: 결국 방송을 만들긴 만들었네요.

 

: 그렇죠. 외주 인력은 언제든지 정권이나 경영진의 입맛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우회로가 되어버린 거죠. 경영진이나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흔들지 못해야 언론의 자유가 생기는 거잖아요. 정규직 피디가 그걸 보장받았다 치더라도, 비정규직이나 외주한테 언론의 자유라는 우산을 싹 치워버리면 결국엔 구멍이 생기는 거죠.


: 아, 잠깐 용어가 조금 아리까리한데,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독립피디라고 하면 '상업성에 반기를 든다!' 같은 느낌이 있어서요. 독립피디, 외주피디 같다고 보면 되나요?


: 네. 프리랜서 피디죠. 프리랜서 피디로 일하는 피디들이 방송사로부터 독립이 되어 있어서 독립피디라고 부르고요. 이건 국제적인 용어에요.

 

: 아아, 네 알겠습니다. 방송국과 협의가 필요한 지점도 있을 거 같은데, 외주 제작자에게 보장해줄 수 있는 언론의 자유라면 어느 정도까지일까요?

 

: 피디들이 제작해도 방송사 이름 걸고 나가는 거니까 당연히 협의해야지요. 내부에서 제작할 때는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중재하고 협의하는 절차가 다 있어요. 물론 정권 바뀌고 나서 잘 안 지켜지긴 하지만.

 

간단해요. 외주 피디들도 똑같이 해달라는 거에요.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니구요. 협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구요. 방송사 피디들의 편의에 따라서 자꾸 배제하는 폭을 늘려놓으면, 개구멍이 점점 커지는 거에요.


: 그런 협의체는 KBS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도 다 없는 건가요?


: 없죠. 하나도 없어요.


: 외주는 모든 방송사들이 하고 있고. 전체 방송으로 보면 외주가 얼마나 될까요?


: 약 50%?


: 아, 되게 높네요. 


: 드라마 제외하면, 35%정도 될 거에요. 

 

 

KBS 울타리 안과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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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주의 입장에선 방송사 피디의 영향력이 어마어마 하겠네요.

 

: 어느 정도냐면요, 역시 노무현 때 이야기에요. 생방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작가한테 전화가 왔어요. 빨리 와달라 해서 가봤더니, 아나운서가 영상을 바꿔 달라는 거에요. “왜 고치려고 그러세요?” 했더니 “노무현 얼굴 보기 싫어서요.”라 하더라고요. 


: 생방 직전에요?


네. 어이가 없었죠. 생방이 20분 남아서 영상을 바꿀 수 없다, 블랙 화면을 넣을 순 없지않냐 그랬더니, 작가들한테 “나 노무현 이름 부르기 싫어요. 바꿔줘요.” 해서 결국 ‘노무현 대통령’을 ‘현직 대통령’으로 대본을 바꿨어요. 외주 앞에서 본사 정규직은 무조건 옳은 거에요. KBS는.

 

: 아나운서가 그 정도면..

 

: 방송사 피디들의 영향력은 무소불위죠. ‘불방’이라는 게 있어요. 갑질도 저렙, 중렙, 만렙이 있는데 (웃음), 외주 피디나 작가를 자르라고 하는 건 고랩인데 만렙은 아니에요. 만렙은 불방을 가장 선호해요. 불방은 다 찍어왔는데 방송에 안 써주는 거에요.

 

진행비로 내 돈도 들어가고, 작가도 일하고, 출연자 출연료도 있는데 불방을 받으면 돈을 못 받는 거에요. 일은 일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쓰고, 돈 못 받고 사방에 욕먹어야 하고. 엄청난 피해가 오죠.

 

: 엄청난 압박이네요.

 

: 그렇죠. 불방의 위험에 놓이게 되면 어떤 식으로는 맞춰주게 돼 있어요.

 

: 사전에 제작비를 받는 경우는 없나요?

 

: 없어요. 전혀. 


: 방송사 입장에선 손해볼 게 없는 거네요.


: 그렇죠. 싸니까. 외주 비율은 점점 더 늘어나게 돼 있어요. 이윤이 나니까.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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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언론사 파업이 진행되고 있어요. 2012년에도 그랬지만, 정권 말 안듣는 직원들의 빈자리를 외주나 계약직이 채우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다 보니 외주 직원들을 비난하는 여론이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 그런 점을 아쉽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비정규직, 외주 직원들은 파업에 참여할 수 없어요. 파업하면 불법이거든요.

 

: 아아, 직원이 아니니까..

 

: 정규직 직원들이야 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지만 이 사람들은 파업하면 끝나는 거에요. 형사상 민사상 소송을 다 짊어져야 하니까. 그냥 잘리는 거에서 끝나지 않죠.

 

: 그렇군요.

 

: 그 사람들도 동참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는 게 먼저인 거 같아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같이 뛰쳐나오지 않는다고 비난받는 건 가혹하다는 거죠.

 

: 그렇죠. 그 빈자리를 이용해 엄청난 이익을 취하는 게 아닌 이상에는요. 약자끼리 싸우는 이상한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는 거니까.

 

: 사실은 이명박근혜 시절뿐 아니라 노무현 때에도 우리는 개인적인 투쟁을 해야만 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겠어요. 개인이 그들과 싸워서 이길 순 없죠.

 

정말 방송을 올스톱 시키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은 껴안아서 노조 가입을 시키던지, 단체를 만들던지 해서 같이 보이콧하면 되거든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지금 같은 구조라면 정권 바뀌면 언제든지 뚫고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거죠. 외주가.


: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 인터뷰는 실명으로 내보내도 되는 건가요? (웃음)


아, 예. 그럼요. 저야 뭐 이미 배제돼 있는데요, 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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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직후, <MBC> '리얼스토리 묘' 담당 CP의 갑질을 폭로하는 뉴스가 떴다.


https://youtu.be/fp7WJDBzIAk


이 고발의 시작은 '리얼스토리 묘'가 송선미 씨 남편 장례식장을 촬영한 몰카 영상을 내보내면서부터다. MBC는 방송이 사회적 비판을 받자, 해당 영상은 외주 제작사에서 촬영했다며 책임을 외주 제작사로 떠밀었다. '시사'라는 이름으로 묵인된 폭언과 모독을 견디던 외주 피디들은, 참다 못해 폭로를 하기에 이르렀다.


외주 제작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갑질의 문제이지만, 언론 자유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지원준 피디의 말처럼 외주 제작사에 대한 갑질과, 갑질을 용인하는 구조가 근절되지 않는 한, 외주는 언론 자유의 '구멍'으로 오래도록 남아, 두고두고 우리를 괴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편의를 댓가로 유지하는 구멍이라면, 방송사 직원들이 내건 '언론 자유'라는 기치가 무색할 정도로 너무 큰 구멍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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