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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여행의 변화(Cebu, Philippines)


한국의 거대 여행사에서 원가에도 못 미치는 싼 가격으로 패키지여행 상품을 있는 것은 현지로 돈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여행악마가 아닌 이상 어떻게 여행경비(지상비)를 한 푼도 보내지 않는 제로투어를 떳떳이 판매 하겠는가?


(*지상비: 현지에 있는 랜드사가 패키지 관광객에게 쓰는 비용. 예-식사비, 차량비 등, 항공비의 반대말로 만들어진 듯함)

(*제로투어: 지상비 0원의 상품)


아마도 한국의 본사(하나투어, 모두투어 등)들은 아직도 랜드사나 가이드가 돈을 많이 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현지에서 제로투어를 받으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지상비 0원 짜리 손님을 계속 보내는 거라면 그들은 진짜 악마다.


그럼 한국의 여행사는 왜 이렇게 악마처럼 행동할까?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패키지상품이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행사에서 판매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니 당연히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그럼 왜 이렇게 빠르게 패키지여행의 판매량이 줄어들었을까? 그건 여행 시장에 자유여행이라는 다른 생태계가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패키지상품으로 여행을 하지만 이제는 그에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가이없고 정해진 일정이 없는 자유여행으로 여행의 형태를 바꾸고 있다.


이런 변화에 따라 패키지여행의 매출은 감소했고 수익은 줄어들었다. 생존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몰린 여행사들이 제로투어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하게 된 것이다. 자유여행이라는 새로운 여행 방식이 생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인터넷 때문이다. 인터넷은 새로운 여행 트렌드를 만들어 냈고 패키지가 독점하고 있던 여행시장을 급속도로 잠식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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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새로운 여행 생태계를 만드는데 선봉에 선 사람들은 여행사의 횡포에 불만을 품고 있던 옵션 업체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자유여행이라는 트렌드에 맞춘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세부에서 자유여행이 결정적으로 패키지 손님을 흡수하기 시작한 시점은 약 4~5년전부터이다. 그 전에는 인터넷이 발달했다고 해도 지금처럼 현지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어 있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옵션 관련해서든 쇼핑 관련해서든 단어 하나만 검색창에 쳐 넣으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보들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그 대부분의 자료들은 자유여행 업체에서 올린 글들이고 여행을 했던 개인 블로거들의 경험담이다.


인터넷에 “세부 3박 5일 00항공 일정 좀 짜 주세요.”하고 올리면 누군가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답변을 단다. 대부분 자유여행 업체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손님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고 거기서 얻은 믿음으로 옵션을 판매한다. 이들은 랜드사에서 떼어가는 커미션을 없애고 한국인 가이드 대신 현지인 도우미를 쓰는 방식으로 옵션(현지 관광 상품)의 원가를 줄였다.


자유여행 업체들은 여행객의 전체 일정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 한국의 여행사처럼 관광객을 전체적으로 보살필 필요가 없다. 또한 똑같은 옵션을 진행해도 본인들이 운영하는 곳에서는 더 싸게 제공 할 수 있으니 가격 경쟁력도 있다. 게다가 가이드 출신들이 많다 보니 행사를 관리하는데 큰 문제가 생기지도 않는다. 생긴다 해도 해결 능력이 뛰어나니 위기관리도 가능한 것이다. 이런 자유여행 업체들의 유일한 문제는 ‘모객을 위한 영업’이다. 그런데 이것을 인터넷이 해결해 준 것이다.


세부의 경우 대표적인 옵션인 호핑, 오슬롭투어, 보홀투어 같은 상품들은 이제 여행사보다도 자유여행 업체들이 더 싼 가격으로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패키지 손님들이 일정을 포기하거나 가이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자유여행 업체에 계약해서 놀고 오는 경우도 많아졌다. 자유여행 업체가 패키지손님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여행으로 여행객들이 유입되기 시작하자 한국의 본사들도 가만 있지는 않았다. 패키지여행의 판매가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한국의 여행사들이 처음으로 시도한 방법은 옵션의 가격을 낮추는 것이었다. 자유여행 업체와 가격으로 경쟁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옵션의 가격을 낮추면 자유여행으로 돌아섰던 고객들이 돌아오고 업체들은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방법은 완전히 실패했다.


자유여행이 득세한 이유는 인터넷의 발달이 가져온 자연스런 변화이다. 또한 영어교육으로 외국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세대가 등장한 것도 큰 몫을 차지한다. 여행객의 패키지 이탈 현상은 꼭 돈 때문만이 아닌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바뀐 것이다. 시대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옵션 가격 인하라는 꼼수로 막으려 했으니 여행사의 패키지 방어는 실패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행사에서도 이런 변화를 알고 있었을 것이지만 당장에 할 수 있는 방법이 가격을 낮추는 것 외에는 달리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사용한 ‘옵션 가격의 인하’라는 것은 매우 비열한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본사인 자신들은 한 푼도 손해를 보지 않고 오로지 현지의 랜드사와 가이드가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옵션 판매는 랜드사와 가이드의 주 수입원이다. 이걸 줄이면 랜드사나 가이드는 큰 피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본사에는 피해가 거의 없다. 그러니 본사는 이 방법을 쓴 것이다.


이런 일은 결정되면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세부의 옵션 판매금액이 50%나 할인되어 버렸다. 가이드와 랜드사는 하루아침에 옵션 수입의 절반이 날아가 버린 셈이다. 랜드사 사장들이 얼마나 저항했는지 본사를 얼마나 설득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어제까지 $100에 판매되던 옵션들이 하룻밤 사이에 $50이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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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한국의 여행사에서는 이렇게 옵션의 가격을 낮추면 자유여행으로 갔던 손님들이 “감사합니다.”하며 돌아오리라 생각했을까?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정말 바보들이다. 어쨌든 이 방법은 가이드와 랜드사의 수입을 줄인 것 외에는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옵션의 가격이 떨어지자 옵션 행사의 품질만 나빠졌고 이건 자유여행으로의 이탈을 더욱 부추겼다. 이후 세부의 옵션가격은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여행의 질만 낮춘 셈이 됐다.


이때 묘한 일이 생겼다. 대형 여행사(하나투어, 모두투어 등)에서는 옵션 가격을 낮추며 패키지가 무너지는 것을 방어하려고 했는데 흔히 현지에서 2군 업체라 부르는 중저가 브랜드(노랑풍선, 온라인투어, 레드캡 투어, 인터파크 등등)의 여행사들은 옵션의 가격을 낮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예전의 옵션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아직도 놀라울 정도로 잘 버티고 있다.


(*1군 여행사: 하나투어, 모두투어 *2군 여행사 : 1군을 제외한 모든 여행사)


사실 1군 업체 중에서는 세부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던 하나투어가 먼저 옵션의 가격을 낮췄다. 그러자 모두투어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모두투어는 다른 2군 업체들이 따라 올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2군 여행사들은 그러지 않았다. 끝까지 버틴 것이다.


아직도 2군 업체는 예전 가격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래서 2군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가이드가 바가지 씌웠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그런데 이건 가이드가 바가지를 씌운 것이 아니다. 원래 회사에서 그 가격으로 판매하라고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럼 옵션가격을 낮추지 않았던 2군 업체의 랜드사와 가이드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돈을 잘 벌고 있을까?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 노출되어 있는 옵션의 가격표가 두 배나 차이가 나는데 옵션 판매가 잘 될 리가 있겠는가?


옵션가격의 차이는 인터넷 검색을 조금만 해보면 손님들은 금방 알 수가 있다. 그러다보니 2군 업체 손님들은 패키지의 일정을 통째로 포기하는 상황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희들은 전체 일정 포기 할게요. 싸인 해 드리면 되죠?”


“우리 이제 볼 일 없겠네요. 수고하세요.“


이런 말을 하는 손님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패키지 손님이 일정을 빠지고 자유여행업체를 찾아 옵션을 하는 것은 위법이다. 패키지 약관에 그렇게 하면 된다고 분명하게 쓰여 있다. 하지만 도망가는 손님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손님들에게 약관을 내세워 겁을 준다고 해도 손님 입장에서는 무시하면 그만이다. 가이드나 랜드사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결국 ‘일정포기 각서’를 받고 풀어주는 것이다.


“손님들 일정 포기 중에 생기는 일은 가이드나 여행사에서 어떤 책임도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가이드가 이렇게 말하면, “걱정 마세요. 우리가 알아서 할 거예요. 자유여행 업체에서 다 알아서 해 준다고 했어요.”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이런 손님을 만나게 되면 가이드와 손님들은 사흘 동안 눈 마주치기가 어렵다. 돈 몇 푼 아끼려다가 상호간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까? '수입이 0원이 되는 가이드일까?', '싸게 놀고 가는 손님들일까?' 결국 여행사는 제로투어로 싼 비행기 표와 호텔만 제공하는 것이고 가이드와 랜드사의 수입은 0원이 된다. 아마 세부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생각된다.


옵션가격 인하로 손님들을 잡아 보려던 대형여행사의 방법은 어쨌든 실패했다. 옵션 가격 인하가 큰 효과가 없자 대형 여행사인 하나투어 모두투어 등의 1군 여행사들은 두 번째 조치를 취한다. 그게 바로 상품가의 ‘인하’였다. 결국 본사가 먹는 돈에까지 손을 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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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업체는 자유여행으로 빠져나가는 손님을 잡지 못하자 2군 업체의 손님들을 뺐어오는 방법으로 영업 전략을 바꾼 것이다. 1군으로서의 자존심 같은 것은 없어졌고 모두 진흙탕 싸움의 가격경쟁에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여행사들이 상품가를 가지고 출혈 경쟁을 하다 보니 급기야 제로투어 상품까지 나오게 됐다. 그럼 제로투어라는 것이 새롭게 생겨난 것이냐? 꼭 그렇지는 않다. 예전에도 제로투어는 존재했었다. 남는 항공권이나 호텔들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떨이로 상품을 판매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땡 처리”라고 불리는 제로투어들이 판매되곤 했던 것이다. 어차피 모든 장사에는 이런 ‘떨이’가 있는 일 아닌가? 그런데 지금의 ‘제로투어’는 그런 형태의 떨이 판매와 조금 다르다. 망하지 않고 버티기 위해서 만들어낸 고육지책의 상품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품가의 인하는 여행객을 잡는데 효과가 있었다. 일단 싸니까 손님들물건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싼 상품가로 무너지는 패키지여행 시장을 떠받치는데 성공했다. 어쨌든 지금은 효과가 있어 보인다. 비수기라도 손님이 크게 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가격 떠받치기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이 가격 떠받치기 때문에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말라죽고 손님들은 영문도 모른 채 질 낮고 스트레스 받는 여행을 해야 한다. 모두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3~4년 안에 뭔가 결판이 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볼 것이고 동남아시아의 여행 시장은 축소될 것이다.


지금 시위를 하며 저항하고 있는 태국이나 기타 동남아시아의 가이드들은 이런 변화의 과정에 생긴 실질적 피해자들이다. 패키지여행에서 가이드들에게 바가지를 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적개감을 표출할 수도 있지만 그건 오해인 경우가 많다. 물론 사기를 치자고 마음먹은 가이드들도 있을 것이다. 어디나 그런 사람은 존재한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옵션 가격이 다른 것은 회사의 정책이지 가이드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가이드가 깍아주는 것은 자기의 수익을 줄이면서 판매하는 것이다. 손님이 제 가격을 냈다면 정상적인 것이고 가이드가 깍아주면서 하나라도 더 옵션을 팔려고 했다면 그건 영업을 한 것이지 사기가 아니다. 지금 동남아시아 가이드들은 기본적인 생존권을 걸고 싸우고 있다. 그런데 이 싸움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여행사, 랜드사, 가이드는 각각 도급의 형식으로 엮여있다. 결국 가이드는 1인 기업이고 계약직 노동자이다. 그러니 노동조합을 만든다거나 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언제든지 여기를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특히 후진국에 사는 사람일수록 강하다. 그러니 “수틀리면 뜨지 뭐”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뭉쳐서 노조를 결성한다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결국 저항을 하는 사람들은 현지에 가족이 있는 생계형 가이드들이나 관광업 종사자들이고 이런 사람들은 ‘제로투어’ 같은 상품이라도 받아가며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우리나라 여행업의 모순된 수익구조에 대한 해결책은 없다. 있다면 매우 단순한 방법이다. 상품가를 정상으로 올리고 가이드에게 지급되는 적정 인건비를 책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쉬운 방법이지만 본사나 랜드사가 수용 할 수 없는 조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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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패키지여행의 가격이 지금보다 두 배나 세 배로 뛰면 모객이 될까? 어렵다고 본다. 본사들은 이걸 두려워하는 것이다. 새로운 가격이 형성되어 시장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많은 희생자가 따를 것이다. 그건 본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패키지여행이 완전히 사라질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패키지여행이 완전히 몰락해서 없어져 버릴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패키지여행이 뭔가 다른 방식으로 정착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사람들이 가끔 물어 본다.


‘패키지여행이 왜 필요한지?’ ‘단순한 세일즈맨에 불과한 가이드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가이드들은 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그러면서 패키지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한 번도 제대로 된 가이드와 제대로 된 패키지여행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넓게 보면 위의 질문들은 '패키지여행의 사용법'에 관련된 질문이다.


다음 편에 저 질문들의 답을 해 보겠다.






지난 기사


여행 가이드가 알려주는 패키지 여행의 수익구조 1

여행 가이드가 알려주는 패키지 여행의 수익구조 2






벼랑끝..


편집 : 꾸물

Profile
"Sometimes I think I'm fighting for a life I ain't got time to live"
- Dallas Buyers Club, 2013.
가끔은 살려고 애쓰다가 정작 삶을 누릴 시간이 없는 거 같다.
-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