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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개헌이 간간이 소재로 등장하기에 
한일양국이 함께
헌법에 관심을 가지는 보기드문 시기입니다.

(아베 총리는 개헌 추진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고
야권과 양심적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평화헌법 9조 수호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에 평소 한일언론의 보도와 
양국의 헌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 필자와 함께
 
'이번 기회에 일본 헌법을 해부해보자. 
한국법과 일본법은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고 
그 역사와 내용을 알아보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 될 거야'

라는 취지로 
일본 헌법 시리즈를 게재합니다.







1. 전문(前文)을 읽어봅시다


대한민국헌법이 그렇듯이 일본국헌법에도 '전문(前文)'이 있습니다. 전문이라 함은 말 그대로 '앞 부분에 붙여진 글'이라는 뜻이며, 헌법의 경우에는 헌법이 제정된 유래나 목적, 해당 헌법이 실현시키려는 가치 등이 선언되죠. 일본국헌법의 경우 아래와 같은 전문을 두고 있습니다(자료적 의미를 감안해서 원문 그대로 게시하겠습니다).


日本国民は、正当に選挙された国会における代表者を通じて行動し、われらとわれらの子孫のために、諸国民との協和による成果と、わが国全土にわたつて自由のもたらす恵沢を確保し、政府の行為によつて再び戦争の惨禍が起ることのないやうにすることを決意し、ここに主権が国民に存することを宣言し、この憲法を確定する。そもそも国政は、国民の厳粛な信託によるものであつて、その権威は国民に由来し、その権力は国民の代表者がこれを行使し、その福利は国民がこれを享受する。これは人類普遍の原理であり、この憲法は、かかる原理に基くものである。われらは、これに反する一切の憲法、法令及び詔勅を排除する。


日本国民は、恒久の平和を念願し、人間相互の関係を支配する崇高な理想を深く自覚するのであつて、平和を愛する諸国民の公正と信義に信頼して、われらの安全と生存を保持しようと決意した。われらは、平和を維持し、専制と隷従、圧迫と偏狭を地上から永遠に除去しようと努めてゐる国際社会において、名誉ある地位を占めたいと思ふ。われらは、全世界の国民が、ひとしく恐怖と欠乏から免かれ、平和のうちに生存する権利を有することを確認する。


われらは、いづれの国家も、自国のことのみに専念して他国を無視してはならないのであつて、政治道徳の法則は、普遍的なものであり、この法則に従ふことは、自国の主権を維持し、他国と対等関係に立たうとする各国の責務であると信ずる。


日本国民は、国家の名誉にかけ、全力をあげてこの崇高な理想と目的を達成することを誓ふ。


그럼 위 전문에서 어떤 것을 선언하고 있는지 살펴 봅시다. 먼저 첫 문단은,


“일본국민은 정당하게 선거된 국회에서의 대표자를 통하여 행동하며, 우리와 우리들의 자손을 위하여 제 국민과의 협력과 화합에 의한 성과와 우리 온 국토에 걸쳐 자유가 초래하는 혜택을 확보하고 정부의 행위에 의하여 다시금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아니하게 할 것을 결의하여 여기에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것을 선언하며 이 헌법을 확정한다. 애초 국정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이지, 그 권위는 국민에게서 유래하며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이를 행사하고 그 복리는 국민이 이를 향수한다. 이것은 인류 보편의 원리이며 이 헌법은 이러한 원리에 기초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에 반하는 일체의 헌법, 법령 및 조칙을 배제한다.”


라고 말하고 있죠.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일본국민이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것을 선언'하고 '정부의 행위에 의하여 다시금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아니하게 할 것을 결의'한다는 부분이겠죠. 바로 국민주권 원리와 평화주의를 표명한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입법, 행정, 사법의 모든 권력과 군대를 지휘할 권능까지 온갖 권력이 천황에게 집중하던 메이지헌법 체제 하에서 국민의 권리가 억압되고 침략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반성이 담겼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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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역사적으로 따지면 “반성”의 의미는 일본 국민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연합군 내지 미국이 일본으로 하여금 '반성시킨'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따라서 일본은 아직까지 침략전쟁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해 본 적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법 제정의 역사적 배경이나 경위를 옆에 두고 법이 가진 이념이나 체계를 모색하는 것도 법을 생각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추상적으로는 일본국헌법은 국민주권 및 평화주의를 중요한 원리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또 첫 문단과 관련해서는 일본국민이 '자유가 초래하는 혜택을 확보'한다는 부분도 꽤 중요합니다. 짧은 구절이지만 이 부분을 통해서 일본국헌법이 인권보장을 기본 원리로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권보장의 구체적 내용은 헌법 제3장(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규정되고 있는데 전문에서도 국민이 자유의 혜택을 누릴 것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국민이 '이 헌법을 확정한다'라는 문구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국민이 헌법을 확정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국민 스스로가 헌법을 만든다는 뜻이죠. 메이지헌법이 흠정헌법(欽定憲法), 즉 천황이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하사(下賜)한 헌법이었던 것과 달리 현행 일본국헌법은 일본국민이 스스로 만든 민정헌법임을 밝히고 있습니다(여기서도 제정에 관한 역사성은 옆에 둠).


또한 국민주권 원리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내용으로 일본국민이 '정당하게 선거된 국회에서의 대표자를 통하여 행동'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국민주권 원리 자체는 이른바 직접민주제를 배제하지 않으므로 국가가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즉 법 제정이나 국정운영에 관한 판단을 할 때마다- 모든 국민의 의사를 반영시키는 제도도 허용이 되죠.


그런데 어느 정도 인구 규모가 있는 나라에서는 법을 만들 때마다 온 국민이 참가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고 중요한 외교 과제가 부상할 때마다 전국민적 논의를 벌이는 것도 무리입니다. 그래서 일단 '대표자를 통해서 행동'하는 간접민주제를 취할 수밖에 없는데 간접민주제로 국정을 운영하는 적극적 이유가 있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겁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법 제정이나 정치 운영에 요구되는 전문성이죠. 건물을 짓거나 요리를 만든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을 만들거나 바꾸고 그 법에 기초해서 정치를 하는 것도 나름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죠. 그래서 헌법은 주권자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대표자에게 권력 행사를 맡기고 법을 만들게 하고 정치를 하게 하는 것이 더 낮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첫 문단과 관련해서 하나만 더 덧붙이면 '우리는 이에 반하는 일체의 헌법, 법령 및 조칙을 배제한다'는 부분이 국민주권 및 대표민주제를 부정하는 법 규범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주로 헌법이 그 헌법에 규정된 개정 절차에 의하는 한 어떠한 개정도 허용되는지, 아니면 해당 헌법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개정은 허용되지 않는지에 관한 문제(헌법 개정의 한계 문제)로 논의되는 바이죠. 일단 헌법 개정에는 한계가 있다, 즉 헌법은 그 개정 절차에 따르더라도 개정할 수 없는 본질적 내용이 있다는 입장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헌법의 자살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죠. 구체적 사건마다 문제되는 헌법 조항이 달라짐에도 추상적 차원에서 헌법의 기본 원리를 확인해 두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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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문단은


“일본국민은 항구적 평화를 염원하고 인간 상호의 관계를 지배하는 숭고한 이상을 깊게 자각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제 국민의 공정과 신의를 신뢰하여 우리의 안전과 생존을 보유하자고 결의하였다.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며, 전제와 예종, 압박과 편협을 지상에서 영원히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는 국제사회에 있어서 명예로운 지위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전세계 국민이 골고르 공포와 결핍에서 벗어나서 평화롭게 생존할 권리를 가진 것을 확인한다.”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문단에서는 일본국민이 '항구적 평화를 염원'한다고 하며 평화를 유지함에 있어서 '평화를 사랑하는 제 국민의 공정과 신의를 신뢰'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하려는 뜻을 읽을 수 있죠. 제1문단의 내용과 맞물려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것을 확인하는 동시에 그 기초에 국제협조주의가 깔려 있다고도 하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헌법의 태도에 대해서 “일본 주변에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이 어디 있나?”라는 소리가 있습니다(말하기를 “냉전이 끝났다 싶었더니 테러리스트가 온 세계를 공포에 빠뜨리고 있지 않나?”라든지 “20세기도 아닌데 영토적 야심을 대놓고 부리는 나라가 바로 옆에 있잖아”라든지 “국민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도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는 독재자가 있는데 무슨...” 등등).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세계를 둘러싼 현실이 어떻든 일본국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평화주의는 전문이 말하는대로 숭고한 이상이며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는 소리도 있죠. 두 입장 다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아무리 추상도가 높은 헌법 전문이라 해도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크면 아예 공문화가 돼 버릴 우려가 있는 반면, 헌법 규정은 현실 사회를 반영해야 된다 하더라도 해당 국가가 실현하려는 이상이나 이념을 포기하게 된다면 헌법의 존재 의의 자체가 퇴색될 우려가 있죠. 달콤한 문구가 현실을 안 보이게 하면 안 되고, 현실 인식이 이상을 억제하면 안 되는 법입니다. 헌법을 생각할 때의 어려움 중 하나가 여기에도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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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두 문단은


“우리는 어느 국가도 자국의 일에만 전념하여 타국을 무시하여서는 아니 되고, 정치 도덕의 법칙은 보편적이며 이 법칙을 따르는 것은 자국의 주권을 유지하고 타국과 대등한 관계에 서려고 하는 각국의 책무라고 믿는다. 일본국민은 국가의 명예를 걸어 전력을 다하여 이 숭고한 이상과 목적을 달성할 것을 맹세한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국제협조주의를 바꿔 말하며, 일본국헌법이 제시하고 있는 이상 및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걸의를 맹세하고 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2. 일본국헌법의 3가지 기본 원리


위와 같은 전문을 갖고 있는 일본국헌법에는 3가지 기본 원리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국민주권, 평화주의 그리고 기본적 인권의 보장이죠. 이 3가지에 국제협조주의를 더해서 4가지 기본 원리로 생각하는 입장도 있고, 국제협조주의를 평화주의에 포함시키는 입장도 있으나 일단 위 3가지 원리가 일본국헌법의 기본 원리임을 부정하는 입장은 없습니다. 이들 원리는 헌법 각 규정에 구체적으로 규정되고 있으며 자세히는 다음 번 이후에 차차 소개할 테니 이번에는 일단 어디서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는지만 적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국민주권 원리를 가장 선명하게 규정하고 있는 조문은 제1조입니다.


第一条 天皇は、日本国の象徴であり日本国民統合の象徴であって、この地位は、主権の存する日本国民の総意に基く。


제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이 존재하는 일본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주권이 존재하는 일본국민”이라는 부분이 바로 그거죠. 국민주권 원리를 가장 뚜렷하게 규정하고 있는 조문의 주어가 천황인 것은 아이러니하기도 한데 일단 일본국헌법이 국민주권 원리를 채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죠. 그런데 전문이나 제1조에서 규정하는 국민주권은 나라의 정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힘, 혹은 권위 정도의 의미로 해석되는데 그런 의미에서는 국회가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의원으로 조직된다고 규정하는 제43조 역시 국민주권을 뒷받침해 준다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평화주의를 규정한 제9조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을지 모르겠네요.


第九条 日本国民は、正義と秩序を基調とする国際平和を誠実に希求し、国権の発動たる戦争と、武力による威嚇又は武力の行使は、国際紛争を解決する手段としては、永久にこれを放棄する。

 前項の目的を達するため、陸海空軍その他の戦力は、これを保持しない。国の交戦権は、これを認めない。


제1항에서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한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希求)하며, 국권의 발동(發動)으로서의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혹은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고 규정하는 것에 이어 제2항에서 “전 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기타의 전력은 이를 보유하지 아니한다. 나라의 교전권을 이를 인정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1항이 전쟁의 포기를, 제2항이 전력의 비보유 및 교전권의 부정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조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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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국제협조주의가 위 제9조와 함께 제98조 제2항에 규정되어 있다고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第九十八条  この憲法は、国の最高法規であつて、その条規に反する法律、命令、詔勅及び国務に関するその他の行為の全部又は一部は、その効力を有しない。

 日本国が締結した条約及び確立された国際法規は、これを誠実に遵守することを必要とする。


제1항은 “이 헌법은 나라의 최고법규이며, 그 조규에 반하는 법률, 명령, 조칙(詔勅) 및 국무에 관한 기타의 행위의 전부 또는 일부는 그 효력을 가지지 아니한다”고 해서 이른바 헌법의 최고법규성을 규정하고 있고 “일본국이 체결한 조약 및 확립된 국제법규는 이를 성실히 준수할 것을 필요로 한다”고 하는 제2항이 국제협조주의를 규정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여담이지만 일본에서는 헌법하고 조약이 서로 모순될 경우 어느 쪽을 우선시키냐는 논점이 있습니다. 일본과 비슷하게 국제협조주의를 취하고 있는 한국헌법에는 없는 논점이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위 일본국헌법 조문과 대한민국헌법 제6조 제1항을 대조시켜 생각해 보면 재미있을 겁니다.


(편집자 주 - 대한민국헌법 제1장 제6조 ①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기본적 인권의 보장에 대한 규정은 제3장(제10조에서 제40조까지)에서 비교적 자세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구체적 조문 내용은 나중에 지면을 바꿔서 실펴보독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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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문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위에 본 것차럼 일본국헌법 전문은 눈부시게 훌륭한 내용을 담고 이런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정도인데 정작 법적 문제가 생겼을 때에 직접 전문에 근거해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헌법에 규정됐다 하더라도 내용이 애매한 문헌에 기초해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허용하면 난소, 속되게 말하는 막소송 현상이 초래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전문 제2문단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평화롭게 생존할 권리'가 침해당했다거나 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국가에 의한 행위를 취소시켜 달라고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지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전문의 재판규범성' 문제이죠.


[사건] 나가누마 사건

북해도 소재의 한 시골마을(유바리군 나가누마쵸(夕張郡長沼町)에 항공자위대의 '나이키 지대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농림대신이 삼림법에 기초해서 국유보안림의 지정을 해제했다. 이 처분에 대해 반대 주민들이 기지 건설에 공익성이 없어 자위대의 위헌성 및 보안림 해제 처분의 불법성을 주장하며 처분의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나가누마 사건의 원고 주민들은 해당 처분의 취소를 청구함에 있어서 '소의 이익'(쉽게 말해서 소송 제기 시 요구되는 요건으로서 법원에 의한 재판을 통해서 해결할 만한 이익이나 필요성 정도의 뜻임)으로서 평화롭게 생존할 권리(평화적 생존권)를 내세웠습니다. 1심은 평화적 생존권을 소의 이익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 인정(다시 말해서 평화적 생존권이 법적으로 보호될 만한 구체적 권리임을 인정)했으나 2심은 이를 뒤집었습니다.


최고재판소 역시 평화적 생존권을 소의 이익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실질적으로 전문의 재판규범성을 부정한 것으로 여겨집니다(최고재판소의 논리는 기지 건설로 인해 벌채된 삼림을 대신하는 대용지가 마련돼서 홍수나 갈수의 위험성이 사라진 이상 소송을 통해 해결할 이익은 소멸됐다는 것이므로 평화적 생존권에 대해서는 '부정'했다기보다 '묵살' 내지 '무시'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학설을 봐도 전문의 재판규범성을 부정하는 입장이 통설인 것 같습니다. 이유는 다양하나 역시 전문의 규정 내용의 추상성이 전문에 재판규범성을 인정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큰 요인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전문의 재판규범성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말하듯이 전문의 거의 모든 내용이  제1조 이하 본문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전문의 규정 내용을 재판 상 주장할 수 있는 권리로 생각하는 실익도 그리 크지 않은 것이죠.


그래서 일반적으로 전문의 재판규범성이 인정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데, 다만 이른바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문제를 둘러싸고 앞으로도 시끌벅적하게 논의가 계속될 것 같으면 전문이 규정하는 평화적 생존권이 다시 각광을 받으면서 이 권리만큼은 재판에서 주장할 수 있다는 입장이 힘을 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일본 최고재판소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사법적 판단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위대나 미일동맹이 직접 관련된 평화적 생존권에 대해 적극적으로 인정할 것은 기대하기가 어려운 바입니다. 이와 같은 사법부의 소극적 태도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분분해서 헌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대목 중 하나이겠습니다.




마무리


이번에는 일본국헌법 전문을 소개하면서 생각나는 대로 관련된 대목에도 언급해 봤습니다. 조금이라도 헌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경험이 있는 분한테는 완전 개소리가 됐을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있는 한편 법학을 접해 본 적이 없는 분들한테는 법률 용어가 난무하는 글이 돼 버리는 바람에 역시 개소리가 됐을지 모르겠다는 죄책감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분들한테 별로 재미가 없는 글이 되지 않았을까 걱정되는 바인데 다음 회부터는 일본국헌법의 조문을 꼼꼼히 살펴 보면서 구체적 사건을 적극 소개하고 적용되는 헌법 규정으로 어떤 것이 있으며 법원이나 학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헌법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외국 헌법의 한 사례로서 일본국헌법의 규정 내용이나 그에 관한 해석론(물론 아주 간략한 것이지만)을 소개하는 글이 됐으면 좋겠고, 또 한편으로 일본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는 헌법 상 문제가 된 여러 사례를 통해서 일본사회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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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친구들을 위한 일본헌법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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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레 히요코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