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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이 2%가 될 때까지 정책을 보류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


가장 핫한 세계경제 이슈라고 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미국연준)의 ‘되감기(Unwinding)’”가 아닐까 싶다. 이는 ‘지난 금융위기 때 도입된 양적완화 정책을 되돌려서 지나치게 비대해진 자산규모를 정상화’하는 것을 뜻한다. 이 되감기에 대해서 얘기하려면, 먼저 연준이 과거에 어떠한 정책을 취했는지를 짚고 넘어가야한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한창이던 2008년 11월, 미국연준은 양적완화를 단행한다. 서브프라임사태로 부동산의 가격이 폭락하고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의 금리가 치솟자,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600조 가량의 돈을 풀어 모기지를 매입하기로 약속했다. 이를 ‘1차 양적완화’라고하는데, ‘1차’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로도 연준은 두 차례나 추가 양적완화를 단행하였다. 2010년 600조 가량의 미국국채를 매입해주기로 약속했고, 2012년에는 매월 최대 85조의 모기지를 사들인다.


이 기간 동안 연준 돈이 엄청나게 많이 풀렸다. 금융위기 이전 2008년도에 연준이 보유한 자산규모는 900조가 되지 않았으나, 2014년에는 자산규모가 4500조가 된다. 6년도 안 됐는데 자산이 5배나 늘은 것이다.


연준은 발권력(發券力, 은행권, 공채권 따위를 발행할 수 있는 힘), 그러니까 돈을 찍어낼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이것을 적극 활용해 막대한 양의 국채와 모기지를 사들였다. (정부는 예산을 짜다가 돈이 부족하면 국채를 찍어낸다. 이 국채를 중앙은행이 사줄 수는 있지만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정부가 중앙은행에게 ‘빌리는’ 것이지 직접 돈을 찍어낼 수는 없다. 참고로 이걸 어겨보자는 게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헬리콥터 머니(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국민에게 직접 양적 완화 정책을 펼치는 것)’다)


연준이 나서서 돈을 풀어준 덕에 국채와 모기지의 가격은 안정될 수 있었다. 치솟던 금리는 안정세로 돌아섰고, 금융시장 역시 경제위기에 공포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다. 연준 보고서에 따르면, “양적완화로 인해 주택담보대출 시장의 금리가 약 1% 내려간 효과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는 기준금리 인하와 더불어 이자비용을 더욱 줄여주는 효과를 냈다.


(연준은 주로 대형은행들로부터 국채와 모기지를 구입하였다. 은행들은 유사시를 대비해서 의무적으로 일정비율의 현금을 연준 구좌에 쌓아놓아야 하는데(지급준비금), 연준은 이들 은행으로부터 자산을 매입할 때마다 지급준비금을 늘려주었다. 예를 들어 미국 연준이 JPM은행으로부터 1조원 가량의 모기지를 구입했다면, JPM 앞으로 1조원이 배달되는 게 아니라, 연준 내 JPM은행의 지급준비구좌에 1조원이 쌓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연준은 애써 그 많은 돈을 새로 찍어내고, 현금수송차로 졸라게 옮길 필요가 없다. 걍 각 은행들의 연준 구좌에 매입대금을 꽂아주면 된다.


참고로 은행은 지금준비계좌에 돈이 쌓인 만큼 기업 및 개인들에게 추가적인 대출을 해줄 수 있는데, 이는 국채, 모기지 같은 안전자산에 있던 돈이 위험도가 높은 일반대출로 옮겨가는데 기여했다.)


즉, 양적완화란 건 시장에 돌고 도는 돈, 그러니까 통화량을 늘리는 정책이다. 같은 기간 미국연준이 기준금리를 0%로 낮춘 것을 떠올리면 이 때 만큼 돈 빌리기 좋은 시절이 없었다. 일례로 미국선 30년 만기 부동산담보 대출고정금리가 3% 초반 대까지 떨어졌다. 다시 강조하자면, 무려 ‘고정’금리다. 30년 동안 금리가 아무리 올라도 이자는 3%대 초반이다. 부동산담보대출의 경우 채무자에겐 조기상환 및 낮은 금리로 재대출 받을 권리도 있다. 주택구입자금을 최대 3%(및 추가 금리 인하 시 더 저렴한 이자)에 30년 간 빌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미국 경제성장률과 실업률과 같은 거시지표가 좋게 나오자, 옐렌의장이 양적완화 정책을 되돌리겠다고 선언한다. 현재 비정상적으로 늘어나있는 미국 연준의 자산규모를 축소하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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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장의 반응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양적완화 축소는 올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한 바 있는 연준의 정책방향과 일치한다(올 12월에 한 번 더 올릴 가능성이 있다). 인플레이션을 제외한 주요 지표가 안정적으로 나오고 있고, 금융시장 역시 역대 최고치에 근접해있기 때문에, 과거 금융위기 과정에서 취했던 비정상적인 조치(초저금리, 양적완화)를 되돌리기에 적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더불어 내년 2월 퇴임을 앞둔 옐렌 의장(연임에 대해선 노코멘트)을 비롯해 다수의 연준 의원들이 임기 동안 해왔던 정책들을 스스로 되돌려 후임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는 것도 있을 것이다.


다행인 건 이번 양적완화 내용이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다. 옐렌 의장의 발표에 따르면, 매월 10조 가량의 자산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하는데, 4500조의 달하는 자산규모를 생각하면 절대 큰 규모가 아니다.


자산을 줄여나가는 방식도 보유하고 있는 국채나 모기지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만기가 도래한 채권들을 재투자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된다(자산규모를 4500조 정도로 유지하던 과거에는 보유한 채권의 만기가 도래하면 회수한 원금 만큼을 추가로 재투자하는 방식을 취했었다). 다시 말해 연준이 매달 회수하는 원금 중 일부인, 약 10조 가량을 재투자하지 않는 정도의 조치라는 말이다. 연준이 인위적인 자산매각도 없이 보유량을 조금 줄인다고 당장 국채 및 모기지시장이 폭락하거나 금융시장 전체에 혼란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뉴스를 쌩깔 수만은 없다. 첫째, 연준의 정책은 처음에 바꾸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바꾸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꾸준하게 진행된다. 기준금리만 해도 처음 올릴 때까지 10년이 걸렸지만, 그 이후로 올해만 연내 3회의 금리 인상이 있을 예정이다. 양적완화 축소 역시도 생각보다 빨리 진행될 수 있다. 옐렌 의장도 최근 인터뷰에서 “별도의 공지 없이 자산규모의 감소속도를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속도에 있어 걱정되는 점은 과거 연준이 지나치게 빠르게 돈줄을 죌 때마다, 엄한 곳에서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경제위기가 닥쳤다는 것이다. 대규모 양적완화 자체가 지난 경제위기 때 처음 등장했기 때문에 이걸 되돌리면 경제에 어떤 영향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관련 연구가 아직 진행된 바 없다). 경제학이라는 게 원래 실험과 검증을 할 수 없는 학문이라서, 우리는 이 거대한 실험에 리허설 없이 라이브로 참가하는 수밖에 없다.


둘째, 연준의 이번 정책은 온전히 미국의 경제만을 고려한 조치이다. 미국은 주식시장이 최고치를 경신중이고, 실업률 역시 완전고용에 근접했지만, 다른 나라들은 조금 다르다. 최근 몇 달간 중국의 경제 지표는 그리 좋지 못하고, 유럽 중앙은행 또한 아직까지 시장에 돈을 푸는데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나홀로 양적완화 축소와 기준금리인상은 자칫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미국의 기준금리와 동일하다. 그런데 여기에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하고, 기준금리를 한번 더 올린다면? 많은 해외자본이 미국시장으로 몰릴 것이다.


셋째, 아직까지 인플레이션이 미국 연준이 설정한 목표치(2%)를 훨씬 밑돌고 있다. 금리도 낮고, 실업률도 낮은데, 왜 물가가 정상수준을 밑도는지 아무도 모른다. 옐렌 의장 역시도 이를 미스터리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양적완화를 축소시키면 인플레이션이 더욱 더 감소해버릴 수 있다. 이게 좀 복잡한 얘기라서, ‘경제상황이 낙관할 만큼 좋진 않다’는 정도로 이해해주셨음 좋겠다. 인플레이션이란 건 치솟을 때보다 제로 혹은 마이너스가 될 때 더욱 골치 아픈 생물이다. 물가가 계속 떨어지면 소비는 계속 줄고, 이로 인해 경제활동이 위축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마이너스 인플레이션, 즉 ‘디플레이션’에 시달린 대표적인 나라에 일본이 있다.

종합해보자. 미국 연준은 금리인상과 더불어, 지난 10년 간 지나치게 커진 연준의 자산규모를 감소시킬 계획을 발표했다. 일단은 월 10조원 규모로 매우 작은데다가 매각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산규모 축소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될 수도 있고,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인플레이션이 지금보다 더 낮아질 수도 있다. 땜에 좀 께름칙하다.


강조하자면, 꼭 연준이 양적완화를 축소한다고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모두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던가, 제2의 경제위기가 닥친다는 소리는 아니다. 아직까지 세계경제에 직접적인 위협을 줄만큼에 대형 악재, 그러니까 촉매제는 잘 보이지 않는다(작년에 악화된 중국경제가 촉매제가 될 뻔 했지만 당국이 잘 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인 촉매제가 없는 한 우려들은 단순한 걱정 혹은 먼 훗날의 장작일 뿐이다. 하지만 촉매제는 꼭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주변에 위협요소들을 미리미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씻퐈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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