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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유니콘 찾기

정정이 불안한 국가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긴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을 섬기려고 하는 정치인이 없어”다. 항공 마일리지라는 넘이 나오기 전부터 타고다닌 비행거리가 족히 50만 마일은 되는 내가 저 소릴 안 들어봤던 나라는 캐나다 하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생각을 좀 해보자. 건물주와 세입자의 이해관계는 같지 않다.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일반 소비자는 필요한 서비스 혹은 상품에 다른 가격을 지불하게 된다. 여기서 보통 정치인에게 정치하라고 정치후원금을 넉넉하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은 건물주다. 거기다 인간이란 지가 잘나가고 있으면 대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 반대쪽에 있는 사람을 인간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 안 하기 쉬운 동물이다. 그럼 정치인은 누구의 편을 들게 될까? 이해관계가 명백하게 충돌하는 셋에게 ‘공통된 섬김’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아니, 이런 정치인은 현실계에서 유니콘 만큼 희귀한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지지자들이 바랬던 것은 자신들이 바라는 세상을 만드는 데 용맹정진하는 독재자였다. 그런데 아무리 독재자라고 하더라도, 군을 정치기반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바라는 것처럼 ‘개혁’이라는 것을 할 수 없었다. 차베스가 석유산업에 빨대 꽂은 이들, 전근대적으로 토지를 소유하는 이들에게서 말 그대로 뺏아서 주지 않는 이상, 그들이 바라는 것을 해줄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보여주기식 실적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정책을 부르는 방식 자체가 그랬다. 베네수엘라 국가개혁 프로그램은 미션 볼리바르라고 불렸다. 시몬 볼리바르가 꿈꾸던 위대한 남미연방을 만들기 위한 까우디요가 펼치는 군사작전이었던 것이다. 적폐 자체인 야당과는 굳이 이야기 할 필요가 없었고.

이를 위해선 차베스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가져야 했다. 쿠테타를 일으켰던 차베스가 사면된 후 정계에 처음 뛰어들었을때, 가장 먼저 했던 선거운동은 자신의 아버지, 휴고 드 로스 레예스 차베즈(Hugo de los Reyes Chávez, 1933년 1월 6일~)를 지자체 선거에서 바리나스 주지사로 당선시키는 것이었다. 우고 차베스에게 빨간 생각을 주입했다는 악명이 있는 형 아단 차베스(Adán Chávez, 1953년 4월 11일~)는 아버지를 이어 2008년부터 바리나스 주지사이며, 베네수엘라의 에너지부 장관도 역임했다.

한 가족에게 이렇게 권력이 집중됐는데 부정부패가 없을 수가 없다. 대표적인 추문이 딸 마리아 가브리엘라 차베스(Maria Gabriela Chavez)와 관련된 추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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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가 두 번째로 이혼한 후, 사실상의 영부인 대리 역할을 했다.

차베스 집안이 17개 국가에 부동산을 갖고 있고, 유동자산만 5.5억달러가 넘는다는 남미 우파 매체들의 말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소리 정도로 취급해도 된다. 그러나 가브리엘라가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기간 중, 아르헨티나에서 시가의 80% 정도 수준에서 쌀을 수입하려고 했다거나 마두로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음에도 UN에 베네수엘라의 대사로 파견되기 전까지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궁에서 머물렀다는 이야기는 사실로 보인다.

마두로 정권은 차베스보다 더 안 좋다. CANVAS weekly report에선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부통령인 타렉 엘 아이사미(Tarek El Aissami)가 헤즈볼라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173명에게 베네수엘라 여권을 발급한 혐의가 있다고, 그리고 미국 재무부는 베네수엘라 부통령이 1톤이 넘는 마약을 수출하는데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고 지목했다. (관련기사 - 링크)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들은 권력에 있는 사람들만 부정한 게 아니다. 뇌물이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전국민의 디폴트기 때문에 모두가 부정부패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베네수엘라는 원래 부정부패가 심했던 나라고, 차베스 집안도 이 문제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나라에서 부통령이 마약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일까.

지난 8월까지 타올랐다가 지금은 좀 시들어진 마두로 퇴진 시위의 출발점으로 돌아가보면 더 암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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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대통령 퇴임요구 시위의 발단과 지금까지의 경과

대통령 퇴진 시위에서 시위대가 요구하던 핵심적인 문제, 그리고 이 모든 위기의 출발점이 베네수엘라 경제가 폭망했던 것 때문인 건 틀림없다. 그런데 이 시위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쫓아가면 좀 깬다. 먹을 것을 내놓으라는 시위대의 핵심적인 요구랑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2015년 총선에서 마두로의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정당 연합(Partido Socialista Unido de Venezuela)은 처절하게 패배했다. 총 167석 중에서 52석을 얻어 과반수는 고사하고 31% 정도의 의석만 확보했다. 의회는 차베스 집권기간 동안 개혁조치라고 취해졌던 모든 법안들을 푼포피호 체제 이전으로 돌려놓기 시작했다.

마두로 행정부가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기업 PDVSA와 사기업들, 그리고 러시아와 합작회사를 추진하자 의회는 이것도 비토했다. 이에 마두로 정부는 이 사안을 베네수엘라 대법원으로 갖고 갔다. 그런데 대법원은 2016년 1월 실시될 예정이었던 국회의원 보궐 선거를 연기하는 결정을 했다. 총 네 곳의 선거구에서 벌어질 보궐선거였는데 이 중 세 곳이 야당 우세지역이었다.

법원의 이 결정을 두고 대법원이 자신들의 수적 우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고 의회가 반발했고, 대법원의 결정에 반발하는 의회에게 대법원은 빅엿을 날려버린다. 베네수엘라 대법원장이 3월 30일에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의 입법권을 사법부가 대신할 것이라고 판결을 해버렸던 것이다.

법원은 이 결정을 철회했지만 이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베네수엘라 경찰이 극심한 폭력을 행사했다. 폭력은 폭력을 부르는 법, 경제실정에 대한 불만까지 겹쳐지자 시위는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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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기사 - 링크)

거기다 야당 리더들의 행태도 좀 깼다. 고인이 된 차베스는 물론 마두로와도 맞붙었던 엔키레 카프릴레스 라돈스키(Henrique Capriles Radonski)가 맞섰던 것은 비상이 걸린 국가 경제를 어떻게 회복해보자고 한 것이 아니라 경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선포한 국가비상사태였다. (참고기사 - 링크)

지금의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졸라 개기고 있는 방송국 둘이 “복지를 퍼주면 나라가 절단나요!”라며 특집 방송을 꾸밀만한 꺼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에 대한 보도가 단편적이었던 이유는 이런 경제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61%는 현재의 경제적 위기에 대한 해법을 요구하지 정권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33%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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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기사 - 링크)

지금까지 정리했듯, 푼토피호 체제로 자기들끼리 카르텔을 묶어서 자기들끼리 먹고 살았던 정치집단, 즉 베네수엘라의 야당들이 현 경제 위기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IMF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면서 보완장치라곤 만들지 않았다가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발포했던 것도 그들이다. 그러니 뭔가 바꿔보겠다고 했던 차베스와 그의 후예들에 대한 믿음이 아직까진 남아 있는 셈이다.

8월 4일, 베네수엘라에선 새로운 헌법을 만들기 위해 다시 제헌의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그런데 개헌의 목표 자체가 두리뭉실하다. 마두로 대통령은 새로운 헌법이 베네수엘라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이전 헌법의 무엇이 문제여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긴 한 적이 없다. (참고기사 - 링크) 당연하다. 마두로가 추진하는 개헌은 여소야대 정국을 차베스가 돌파했던 바로 그 방법을 되풀이하려고 하는 것이지 헌법 자체의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니까. 당연히 야당은 제헌의회 선거에 불참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헌의회와 의회는 열심히 싸우고 있다.



16. 정리하며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그리고 한국의 투표 성향을 놓고 보면 대략 70%는 정해져 있다. 정치적 각성을 최근에 한 뉴비들이 선거전에 참여했다가 부모님 설득에 실패했다고 좌절하는 거, 그거 원래 안 되는 것에 도전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참사다. 한 정당 찍기 시작한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그 정당 찍는다. 그게 ‘뇌가 없어서’ 혹은 ‘정보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그렇기 때문에 그 정당을 찍는 거다. 물론 그 분들이 정확하게 보느냐, 그건 아니다.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무려 다섯 번에 걸쳐 나눠서 써야 할 정도로 복잡한 배경을 두고 있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스탠스에 맞춰서 세상을 뒤틀어보는 데 익숙하다. 그렇게 세상 만사를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적 문제를 남이 해결한 것에 맞춰 벤치마킹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사안에 다양한 층위가 있으며 그들이 선택한 문제 해결 방법들엔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것은 또 배제하고.

우리가 봐야 하는 건

1. 국가경제가 한 가지 산업, 혹은 상품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는 것.
2. 정치집단은 국민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압박하지 않는 한, 권력 잡는 것에만 골몰하는 집단이라는 것.
3. 정치적 경쟁 상대를 악마화 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

뭐 이런 것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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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은 플라스틱 문명이라고도 한다. 이 플라스틱 문명에서의 핵심은 원유다. 그 원유를 생산하는 국가도 멍청한 짓을 반복해서 하면 엄청난 경제적 위기를 겪는다. 특히 식량은 사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멍청한 것은 없다. 10년 전까지,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산업은 조선업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이었다. 그런데 이젠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려 한국 경제는 거의 반도체 혼자서 하드캐리하고 있다. 이게 언제까지 갈 것인가?

비판자 앞에서도 웃으면서 대응해야 하는 이들이 정치인들이다. 우리가 뽑아줬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를 위해 일 할 가능성은 낮다. 자신을 위해 일할 가능성이 훨씬 높지. 그리고 우리의 입장이라고 하는 게 항상 옳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치의 문제는 어느 정당을, 혹은 어느 정치인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정리하고 사회적 자원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건 지속적으로 관심있게 보고 참여할 일이 있다면 그때 그때 참여해야 민주주의라는 게 그나마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우리는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베네수엘라와는 다른 차원의 해결방법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면 저들과 똑같은 길을 갈 것인가? 뭐 이런 게 이미 최소 40명이 시위 중 사망한 국가의 시위를 보고 고민해봐야 하는 것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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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uel 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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