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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낮술을 좋아합니다. 


휴일 아침 사우나든 운동이든 적당히 땀을 빼놓고, 점심에 마시는 맥주를 제일 좋아합니다. 비싼 안주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시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공복에 식도를 벅벅 긁고 내려가는 맛이 중요합니다. 그러고 집에 가서 한숨 자고 나면 딱 무한도전이 시작하곤 했습니다. 최고의 토요일이죠.

 

이것 말고도 주말을 보내는 기가 막힌 방법이 또 하나 있는데, 일단 전날 저녁에 술을 얼큰하게 마셔 두어야 합니다. 주량보다 딱 두세 잔 더.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길을 나섭니다. 못 견딜 정도가 아니라면 물도 마시지 않습니다. 버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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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복과 갈증을 이겨내며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를 걸어가는 이유는 이 아름다운 것을 마주하기 위해서입니다. 술을 마셔서 해장하는 건지 해장하려고 술을 마신 건지 헷갈려하며, 알콜로 탈수된 온몸에 퍼지는 차가운 육수를 만끽합니다. 이 또한 훌륭한 주말이죠.

 

제 인생영화는 초등학생 때 ‘주말의 영화’로 처음 봤던 <쇼생크탈출>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주인공 앤디가 교도소장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피가로의 결혼> LP를 교도소 전체에 틀어버리는 부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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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빡친 교도소장을 코앞에서 능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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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ㄴ업 해버립니다. 특히 이 표정이 압권이죠.

 

노래하나 듣자고 뒈지게 맞고 2주 동안 독방에 처박혔다 나와서 한다는 소리가 “이 안에 음악이 있었어.” 라니. 뭔지는 몰라도 그게 어린 마음에 무지 멋져 보였습니다.

 

꺼낸 김에 제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길을 잘 가다가도 처음 보는 길이 나오면, 기어코 모험을 감행해 몸을 고생시키는 걸 좋아합니다. 이건 저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버릇입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그 길이 어디로 통하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상태가 얼마나 심각하냐면 군대에서 (1호차 운전병) VIP 모시고 초행길 운행 때 네비게이션 말 안 듣고 다른 길로 새서 영창 몇 번 갈 뻔했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왜 그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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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사전



고작 딱 며칠 고민해 본 제 취향들이 이 정도니 아마 실제로 저는 생각보다 더 복잡한 인간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복잡한 인간으로 비치기 싫은 아주 복잡한 인간이기 때문에, 혹은 좋아하는 것보다 사는데 중요한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나의 즐거움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데, 이래서는 안 될 일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하루 중 얼마나 당신다운 시간을 가지십니까? 저와 술 한잔하시죠. 알딸딸해진 틈을 타 제가 당신의 취미와 시시콜콜한 취향들을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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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육병아리 / : 한강낚시꾼)


근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올해 서른셋. 85년생이다. 카드회사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근 요즘 가장 즐겨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낚시다. 짬이 나면 가까운 공릉천이나 한강에서 낚시를 한다.

 

근 한강에 물고기가 있긴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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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는 소리다. 민물장어, 누치, 준치, 메기, 붕어 등등 다양하다. 나는 주로 장어를 대상어로 낚시를 한다. 굽거나 탕을 끓여서 먹을 수도 있고 운 좋게 씨알 괜찮은 것을 잡으면 팔 수도 있다. 물론 한강에는 그런 대물이 거의 없다.

 

근 낚시는 언제 입문했나?

 

 본격적으로 장비를 사서 시작한 건 2년 전 카드 영업일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첫 고객이 낚시광이었다. 낚시 커뮤니티 네임드 회원이었는데 한강에서 오래 장어 낚시를 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따라다니다가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근 한강 낚시의 매력은 무엇인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항상 차에 낚시도구를 싣고 다닌다. 주말보다는 평일이 낫다. 주말은 한강에 워낙 사람이 많아서 정신이 사납다. 낚시 자리도 없고. 평일 저녁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조용히 쉬기에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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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언제 올지 모르는 입질을 기다리고 있으면 지루하지 않나?

 

 해보기 전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즐겁다. 낚싯대를 던지고 끝에 달린 야광 캐미라이트를 계속 주시하면서 입질을 봐야 한다. 핸드폰이나 다른 것을 볼 수가 없다. 그게 의외의 매력이다. 온전히 나를 들여다볼 시간이 주어진다. 지나간 시간도 되짚어 보고, 앞으로 살날도 생각해보고.

 

근 카드 영업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

 

 많다. 군 제대 후 트럭 운전을 하루도 안 쉬고 한 3년 동안 죽어라 했다. 그 후엔 카페를 창업했다. 초반에는 장사가 꽤 잘 되었는데 점점 주변에 비슷한 카페가 하나둘 생겼다. 건물주는 임대료를 퍽퍽 올리고. 알잖나 흔한 스토리. 버티다가 작년에 접었다.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

 

근 나이에 비해 이력이 많은 것 같다.

 

 어릴 때 꽤 유복하게 자랐다. 근데 IMF가 터지자 그때 사업하는 집처럼 우리도 힘들어졌다.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새 학기가 되었는데 어머니가 반장 같은 거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반장을 하면 반 간식값이나 선생님 선물이나 이런저런 돈 들어갈 데가 많았다. 내가 좀 청개구리 같은 기질이 있다.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어진다. 오기로 출마해서 반장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철없을 때였다.

 

고등학교 때는 빨리 돈 벌 생각으로 실업계로 갔다. 반에서 1~2등은 했다. 내가 고3이 되던 해에 갑자기 대학에서 실업계 고등학생들을 따로 선발했다. 담임 선생님이 성적이 충분하다며 수시 응시를 권했다. 어차피 등록금 댈 형편도 안돼서 거절하려다 담임 선생님이 ‘내 교사 인생에서 한 번은 4년제 대학 나온 제자를 보고 싶다’며 사비로 내 원서를 접수해버렸는데 그게 합격을 해버린 거다. 동국대학교 생명공학과였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자 어린 마음에 가슴이 뛰었다.

 

근 드라마틱하다. 그래서 진학을 했나?

 

 집에서 사립대학 등록금을 4년이나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는 학자금 대출 같은 것도 없었고. 세상일이 모두 내 고집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부모님은 마음이 쓰이셨는지 2년 만에 졸업할 수 있는 전문대를 권하셨다. 다음 해 명지전문대학 전기과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근 대학 생활은 어땠나?

 

 전공에 큰 흥미가 없었다. 대신 여행 동아리 회장을 했다. 연합 동아리라서 다른 학교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술도 진탕 마시며 즐겁게 놀았다. 그때가 아마 내 인생에 가장 호시절이었을 것이다.

 

근 그때 취미는 무엇이었나?

 

 여행이었다. 신입생 때 동아리에서 을왕리에 처음 갔는데, 그때 바다를 처음 봤다. 바다 너울에 부서지는 햇빛, 웅장한 수평선. 무언가 알 수 없는 해방감 같은 것을 느꼈다. 아마 그때부터 물가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나의 취미이자 해방구였다.

 

근 3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트럭을 몰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 시간은 어떻게 버틴 건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정장 입고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여의도 증권맨들이 멋있어 보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기업 공채에 지원하려는데, 4년제 이상 대학을 졸업해야 지원할 수 있다는 걸 하는 것을 알고 황당했다. 보험 상품을 파는 일에 2년제는 안 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작정 여의도에 있는 본사에 쳐들어갔다.

 

근 깽판이라도 친 건가?

 

 인사과에 무작정 내려 가장 높아 보이는 사람 책상에 가서 항의했다. 내가 왜 지원조차 못 하는지 설명해달라고. 부당한 학력차별 아니냐고. 그 책상 주인은 과장이었다. 회사 규정이 그러니 이해해달라고 했다. 다음날 다시 쳐들어갔다. 내 말이 틀리지 않았으면 규정을 바꾸면 되는 거 아니냐고 또 따졌다.

 

근 실화인가. 낚시꾼 구라 아닌가 이거?

 

 보통 미친놈이 아니라고 여겼는지 과장이 일단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밖으로 나왔다. 빌딩 1층 카페에 앉히더니 서류뭉치를 하나 줬다. 지금 판매 중인 보험 상품이니 읽어보고 다시 올라와서 자기한테 영업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마음에 들면 과장 직권으로 면접에 올려주겠다고 했다.

 

근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한 시간 만에 읽고 올라가서 브리핑을 했다. 좋게 봤는지 과장이 진짜 나를 면접에 올려주었다. 며칠 후에 최종 합격 전화를 받았다.

 

근 다시 묻는데 이거 실화 맞나?

 

 걱정하지 마라. 다음 이야기부터는 무척 현실적이니까. 결과적으로 나는 그 회사에 입사하지 못했다. 사정이 있었다. 세탁공장을 하던 부모님이 너무 힘들 때였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아버지가 하루 종일 트럭을 몰았는데 저러다 큰일 나지 싶더라. 결국, 나를 올려준 과장님께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입사를 포기했다. 다시 생각해도 그분께 무척 죄송하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다음 해부터 그 기업 공채 지원기준이 초대졸로 바뀌었다고 하더라. 조금은 뿌듯했다.

 

근 그 후엔? 하루도 안 쉬고 트럭을 몰았나?

 

 찜질방과 헬스장은 대부분 24시간인데, 그곳 세탁을 하기 위해 20시간씩 운전했다. 자정에 나갔다가 다음 날 저녁 8시에 들어와 맥주 한 캔 마시고 곯아떨어지는 일이 쳇바퀴처럼 돌아갔다. 운전하다가 너무 졸리면 청양고추를 하나씩 씹었다. 3년간 일을 해서 8천만 원 정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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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카페는 어떻게 창업하게 된 건가.

 

 세탁일이 너무 힘들어 물려받기도 싫었고 부모님도 체력에 한계를 느껴 공장 문을 닫았다. 모은 돈으로 오랜 꿈이었던 장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치킨집을 할 생각이었다. 집 앞에 잘 되는 곳이 하나 있어서 가게 운영을 배우는 조건으로 6개월 동안 일을 했다. 적성에 잘 맞았다. 단골도 많아지고. 내가 예뻐 보였는지 사장님이 가게를 싸게 넘겨 줄 테니 해보라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손님이 많아도 치킨집이란 게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한 달에 400만 원도 못 가져가겠더라.

 

그래서 카페를 알아봤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소규모 카페가 많지 않았다. 역시 한 6개월 카페에서 일했다. 일을 곧잘 해내자 사장은 나에게 아예 가게를 맡겼다. 실제로 카페는 수입이 괜찮았다. 무엇보다 자리만 잡으면 사장이 가게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확 끌렸다.

 

시장조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가게 자리를 알아봤다. 그런데 내가 가진 돈으로 시작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절대 빚지고 시작하고 싶지 않았는데, 무리한 생각인가 싶었다. 그때 홍대 쪽 부동산에서 상수역 좋은 목에 싸게 급매물이 나왔다고 연락이 왔다. 이미 봐뒀던 좋은 자리였다. 시세보다 4천만 원 정도 쌌다.

 

근 거기서 창업하게 된 건가?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있겠나. 홍대로 차를 몰고 갔는데, 알고 보니 부동산에서 장난친 허위매물이었다. 허탈한 마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차를 돌리다가 익숙한 카페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왜인지 모르게 끌려 들어가 커피를 한잔 마셨다. 번화가에서 벗어나 있는데도 손님들이 꽤 많았다. 다음날 작정하고 아침 오픈 때부터 죽 때리고 앉아 매출을 체크해봤다. 중간에 화장실 가고 점심 먹느라 놓친 손님들을 빼고 세어도 대충 200잔이 넘게 팔렸다. 이거다 싶어서 사장에게 인수 의사를 밝혔다.

 

근 거기는 가격이 맞았나?

 

 처음에 사장이 제시한 가격은 1억 2천이었다. 권리금 7천 보증금 5천. 나는 가진 돈이 8천밖에 없다고 배짱을 놨다. 처음에 난색을 보였다. 하지만 급하게 가게를 처분할 사정이 있었던 사장이 이후 계속 네고를 해왔다. 뭔가 되겠다 싶었다. 아는 스님에게 물어보니 계속 버티면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을 해줬다. 전화할 때마다 500만 원씩 깎던 사장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 전 재산 8천으로 가게를 인수했다.

 

근 기분 째졌겠다.

 

 설렜다. 28살에 내 가게를 갖게 되었다. 그것도 홍대에.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동안의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아침 오픈을 아르바이트생한테 맡기지 않고 내가 직접 했다. 손님들에게 사장 눈도장을 찍으려고 그랬다. 1교시에 등교하는 학생 손님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7시 반에 출근했다. 접객에는 자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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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기말시험 기간에는 도서관에 자리가 없는 학생들 와서 공부하라고 24시간 오픈했다. 한 잔이라도 홍대 캠퍼스 어디든 오토바이를 타고 직접 배달을 했다. 장사 정말 열심히 했다. 매출이 쭉쭉 올라 오픈한지 1년이 되었을 때 월 1500만 원 가까이 되었다. 자리 잘 잡아서 점포를 두어 개 더 늘릴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꿈이 있던 시절이었다.

 

근 위기는 언제 왔나?

 

 1년이 지나자 임대료 인상 이야기가 나왔다. 계약 서류에 군데군데 영악한 단어들이 숨어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것들이 점점 나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경남도지사까지 하셨던 분이니 돈 몇 푼 가지고 서운하게 할 일 없을 것이다”

 

점잖은 말로 현혹하며 임대료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아둔 구두계약을 믿은 것이 화근이었다. 임대료 인상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산관리회사는 담당 직원을 바꿔가며 딴소리를 했다. 처음 230만 원이었던 월 임대료는 이후 30%씩 매년 인상되었다. 맞서보기도 하고 읍소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너무 억울해 대응해보려 했지만, 어렵게 찾아간 변호사는 계약서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묘하게 위법과 편법을 오가는 내용이어서 승률은 50%, 짧아도 2년은 걸릴 소송이라고 했다. 하루 종일 혼자 커피를 팔아도 손해 보고 집에 가는 날이 허다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진짜 건물주가 가끔 가게에 커피를 마시러 오는데 하루는 작정하고 빌듯이 이야기했다. 아들뻘 되는 사람이 먹고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고. 사정 좀 봐달라고.

 

“허허. 나는 돈 문제는 잘 몰라서. (자산관리) 회사 사람들하고 이야기해요~”

 

그 사람은 그날 10개 찍으면 20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을 공짜로 주는 쿠폰에 9번째 도장을 찍고 갔다. 쿠폰을 지갑 속에 고이 넣는 것을 보며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날 장사를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노인이 10번째 도장을 찍으러 오기 전에.

 

근 힘든 시기였겠다.

 

 2016년 5월 카페를 연지 4년 만에 가게 문을 닫았다. 내 나이 서른둘이었다. 성실함과 깡으로 살면서 두려울 게 없었는데 그때는 좀 세상이 무서웠다. 이상했다. 나는 분명 열심히 살아왔는데. 내가 잘못 산 것이 아닐까. 뭘 잘못했을까. 노가다를 해서라도 동국대에 갔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분하고 억울해서 잠도 잘 못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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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어떻게 극복했나.

 

 결국 다시 살아보는 수밖에 더 있나. 큰 공부 했다고 생각하고 털어냈다. 카드 영업을 시작하고, 마음이 쪼그라들 때면 한강에 와서 낚싯대를 폈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도 내가 참 열심히 살았더라.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더라. 낚시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어느 날에는 너무 미워서 깊이 묻어뒀던 건물주 할배 얼굴도 꺼내보는 용기도 부렸다. 담배 한 대 피면서 만수무강하시라고 빌어줬다.


근 낚시의 시간은 과거도 되짚지만, 앞일을 생각하기에도 좋다고 했다. 당신의 앞으로는 어떻게 그리고 있나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낚시를 하면서 깨달은 것인데, 난 참 좋은 어른을 많이 만났다. 언제나 내 결정을 믿어주시는 부모님, 자기 사비로 대학 원서를 접수해주신 담임 선생님, 치기 어린 마음을 좋게 봐준 모 기업 과장님. 아들처럼 대해준 치킨집 사장님, 그리고 처음 낚시를 알려준 공릉천의 조사님들. 간혹 세상이 얄궂게 굴어도 그분들이 있었기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나도 그런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나 같은 녀석들에게 세상 엿 같아도 결국은 살만할 거라고 응원해주는 어른이 되는 게 지금 내가 꾸는 꿈이다.


그리고, 카페 손님으로 만나 사귀게 된 여자친구가 있다. 카페가 마냥 헛일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같이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여자친구도 요즘 낚시에 재미를 붙여 같이 간다. 큰 낙이다. 올 12월에 결혼 날짜를 잡았다. 전세로 시작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집을 장만하는 게 지금 목표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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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병아리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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