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 아들은 군대에서 다치고, 부모는 화병 걸리고


같은 희귀난치병에 걸렸더라도, 군대에서 다친 사람과 가족, 특히 부모들은 대부분이 ‘화병’에 걸린다고 한다.


군대 가기 전엔 멀쩡했던 자식이 하루아침에 거동조차 힘든 몸이 돼 버린 것도 가슴을 칠 노릇인데, 이후 국가가 당연히 안아야 할 책임을 외면할 때, 그리고 사회·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 뒤에 숨어, 사실상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게 된 아들들을 ‘용도폐기’할 때, 그 모든 억울함을 한 해, 두 해 감당하면서 같이 골병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육진훤(24), 진솔(23) 씨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부모인 육민수(51) 씨와 유선미(48) 씨는 두 아들이 차례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에 걸려 입원, 수술, 강제 퇴원, 자살시도로 점철된 지난 3년 동안 국민권익위원회, 국방부, 청와대 홈페이지에 수시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때마다 각기 다른 기관에서 모두 똑같은 반응이었다. ‘귀하께서 접수하신 진정 내용은 해당 부처인 국방부로 이송했다’는 문자만 달랑 선미 씨 휴대폰으로 수신될 뿐이었다.


그나마도 직접 관련이 있는 국방부는 아직까지도 답변이 없다. 나중엔 선미 씨 휴대폰으로는 아예 홈페이지 민원접수조차 할 수 없게 막아 놓았다. 할 수 없이 아버지 민수 씨, 이모 등 가족이 돌아가면서 사연을 올리고 민원을 접수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205109592.jpg

진훤, 진솔 씨의 어머니 유선미 씨에게 보내온

국민권익위원회의 고충민원 관련 서류 보완요구 통지서


다행히 정권이 바뀌고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정부기관들이 늦게나마 관심을 보이는 기색이다. 국가보훈처에서는 국가보훈보상대상자 신청에서 한 번 탈락한 전적이 있는 진솔 씨에게 재검요청 통지서를 보냈고,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구비서류 보완 요청 통지문을 보내온 상태다.


진훤, 진솔 형제와 가족들은 일단 할 수 있는 행정절차는 다 밟을 계획이지만, 결국은 법정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또 그간 수차례 언론 보도를 통해 진훤, 진솔 씨의 사연을 알게 된 지인들이 국회의원 누구를 통해서 문제 해결을 도와주겠다면서, 사돈의 팔촌에 한 다리라도 걸칠 수 있는 사람들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만 그마저도 지금으로서는 신통치 않아 보인다. 진훤, 진솔 씨의 부모가 지난해에는 직접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찾아가 고통을 호소했지만, 지금까지 가타부타 말이 없고, 군사전문가로 알려진 정의당 김종대 의원과 윤소하 의원을 비롯 일부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보이며 문제해결에 나서보았지만, 결국은 법의 문제로 귀결되는 현실이라 문제해결의 진척이 안 보이는 건 매한가지다.



2. 군에서 병 걸렸는데 결국은 ‘인과관계’만 따져


군 복무 중 사고 당시 상급 책임자의 책임 있는 조치를 이행했었는지 그리고 군의 의료부주의 여부와 CRPS 발병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이를 토대로 진훤, 진솔 군의 치료비를 비롯한 피해보상 행정절차가 진행이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A가 B를 칼로 찔러 죽였는데, A가 B를 칼로 찌른 행위가 B의 사망에 어떤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사망에 이르렀다는 인과관계가 입증이 돼야 A에게 살인죄를 인정할 수 있다는 논리를 군 복무 중 희귀난치병에 걸린 사병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


진훤, 진솔 씨도 군 복무 중 다리 골절상을 입었지만, 군에서 적정한 치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증증후군에 걸렸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해야만, 그동안 자비로 부담했던 수술비를 포함한 일체의 치료비를 보전 받을 수 있고, 그 외 국가유공자와 국가보훈보상을 비롯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법조인들, 특히 군대에서 희귀병에 걸린 사병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대리해 본 경험이 있는 변호인들은 하나 같이 그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일이 “말 할 수 없이 힘들다”고 말한다. 재판에서 그 인과관계가 받아들여지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물론, 보통 소시민의 자제들이 군대에서 이 정도로 다쳤다고 해도, 그 소송비를 감당하지 못해 소송까지 가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법조인들은 진훤, 진솔 씨만 해도 결국 소송으로 가면 소송비만 해도 최소 3000~4000만 원은 족히 들 것이라고 말했다. 


진훤이발.jpg 

진훤 씨의 CRPS에 걸린 다리 발가락 사이가

부종 때문에 염증과 냄새가 점차 심각해진 상태다




3. 군복무는 한 개인의 ‘특별한 희생’


군법무관으로 십 년 동안 재직했고 2013년 군을 떠난 후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군복무 중 희귀병인 ‘크론병’에 걸린 사병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박근배 변호사(한화그룹 경영지원실)는 군 의료문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군 복무 중 발생한 사고와 일반 의료사고를 동일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인과관계가 증명되면 군에서 보훈보상을 해주고, 아니면 못 해준다는 것. 그런데 군복무를 한다는 것은 자기의 ‘특별한 희생’이라고 볼 수 있다. 설사 군복무자의 질병이 군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정부와 국방부가 인과관계를 인수하는 게 필요하다.


인과관계에 매몰되어 있는데, 사실 이 문제는 법적인 게 아니라 정책적인 문제다. 인과관계가 불투명하더라도 군에서 군복무에 따르는 위험에 대해서 군이 인수하는 정책적 전환과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대부분 병역의무를 이행 안 하려고 한다. 그 기저에는 군대의 가혹한 환경, 똥도 마음대로 못 누는 개·돼지 취급당하는 현실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시민권을 따기 위해서 미국 군대에 자원하는 사람의 3분의 1일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군대는 안 가려고 하면서 미국 군대는 가려고 하는 게 말이 되냐.”


국군수도병원.jpg  


현재 병역법에 따르면 군대에서 포탄, 수류탄을 맞거나 대인지뢰를 밟아 외상을 입게 되면 국가유공자나, 국가보훈보상자가 쉽게 인정되지만, 암에 걸린 사병만 해도 군 입대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으면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정되지 않는다. 암도 그러할 진데 하물며 희귀병의 경우는 더더욱 국가유공자나 국가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받기가 어려운 게 현재 시스템이다.


박근배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서 국가유공자와 국가보훈보상대상자를 인정해주는 병역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병역법에서 인정하는 질병과 사고에는 사회변화, 환경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희귀난치병 등은 상당부분 포함되지 않고 있어 군 병사들의 인권, 진료권 보장에 큰 구멍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면 진훤, 진솔 군이 걸린 CRPS, 또 요즘 많이 걸리는 크론병이 그렇다. 아토피와 비슷한 것이다. 이런 병들은 옛날에는 없었다. 환경이 변하면서 기존에는 없었던 질병이고, 그렇다보니 그동안 의학계에서 연구도 전무하고, 발생경로, 인자도 특정하지 못하다 보니 병에 걸린 사병들은 적당한 대우를 못 받는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이런 원인과 인자들이 밝혀지더라도 그 땐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고통과 위험은 전부 개인에게 부담시킬 것인가.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국가는 뒤로 물러나 있고, 병에 걸린 사람에게 모든 질병의 책임을 지우는 이런 구조는 잘못됐다. 군 생활 하는 동안 아프거나, 병에 걸렸거나 하다 못해 군 생활 중 개인적으로 장난치다가 불행한 사건으로 질병이 발생하고 장애가 생겼더라도 국가가 모든 걸 인수하겠다는 정책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말로 신성한 국방의무 이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휜, 진솔 씨도 이 모든 험로를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형제는 국가보훈보상대상 신청을 다시 한 번 해보고, 결과에 따라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 한다. 쉽지 않을 과정을 앞둔 형제의 부모는 "사채를 끌어 써서라도 소송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피켓시위.jpg

지난 추석연휴 동안 기자는 군사보호시설이 위치한 경기도 군포시 수리산 정상에서 피켓시위를 벌였다


피켓시위2.jpg

기자가 피켓시위를 위한 등반에 나서는 그 시간 진훤 씨는 부작용과 고통이 심해져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보냈다





지난 기사


육진훤과 육진솔, 끝나지 않는 고통

진훤, 진솔 형제는 왜 자살시도를 하는가

군대에서 다치면 어떤 대우를 받을까






편집장 주


이 기사는 오랜 기간 육진훤, 육진솔 형제를 취재한 

"헤르매스 아이"님과 협의 하에

국방부에서 해당 문제를 외면하지 않을 때까지 

 매주 딴지일보에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제보: DDANZI.MASTER@GMAIL.COM







헤르매스 아이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