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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관람가 / 컬러 / 119분


(포스터 보면 대충 눈치 채셨겠지만, 어쨌든 스포일러 함유) 김현석 감독이 집념으로 만든 제8회 작품, <아이 캔 스피크>는 꽤 음산한 도입부를 보여준다. 비 내리는 밤. 판초우의를 입은 수상한 자가 콘크리트 바닥 위로 거대한 쇠망치를 질질 끌며 재래시장에 온다. 그는 점포 앞에서 수상한 행동을 저지르는데, 이 때 카메라는 판초우의 괴한을 감시하고 있는 또다른 판초우의가 있음을 보여준다. 감시하던 판초우의를 감시하던 또다른 판초우의의 정체는 다음날, 민원서류를 수북하게 들고서 구청을 방문한 옥분(나문희)이다.


이 음산한 도입부는 어째서인지 내겐 많이 웃겼던 장면으로 기억된다. 쇠망치 든 괴한은 최근 몇년간 외국에서 '아시안 익스트림' 쪽 계보로 놓을 법하게 만들어진 한국영화에 대한 메타포로 보여서였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등장한 판초우의가 누가 있었나를 생각해보니, 박훈정 감독의 <브이아이피> 에서 박희순이 그랬었네. 여튼 그런거. 반면 같은 판초우의라도 옥분에게서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슈퍼히어로물인 <언브레이커블>의 이미지가 생각났다. 한국영화 제작사 중에서 명가로 불리는 명필름 제작이라서일까? 판초우의 두 개에서 전해지는 다른 이미지는 <아이 캔 스피크>가 품은 두 가지 마음을 생각케 한다. 최근 만들어진 한국영화들과는 다르다는 자신감. 혹은 달라야 한다는 강박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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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도 요즘 흔히 활용되는 연쇄살인, 범죄모의, 범죄수사가 아니다. 아, 수사, 는 있을 수도 있겠네. 여튼 '할머니가 영어를 공부한다' 는 굉장히 소박한 설정이다. 구청으로 전근 온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가 해당 지역의 민원왕이라 구청에서 기피하는 일명 '도깨비 할매', 옥분을 만난다. 민재는 그녀의 명성을 얕보고, 스스로 외치는 '법과 원칙'으로 도발했다가 뼈저린 후폭풍을 당한다. 그런데 평소 영어에 관심이 많았던 옥분이 민재의 우수한 영어실력을 보고는 태도를 바꿔 가르침을 부탁한다. 작품은 그녀가 어쩌다 영어공부를 결심했는지를 설명할 때 비로소 진짜 이야기를 꺼낸다. <YMCA 야구단>, <스카우트>의 감독이 이 작품을 만들었음을 복기시키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회해서 역사를 전달하는 이야기 만들기'의 선수이지 않은가. 그에 걸맞게 <아이 캔 스피크>도 영어 공부라는 밑밥을 깔아놓고서, 사실 옥분이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전개가 등장한다.


<아이 캔 스피크>는 '초반부에는 웃기다 후반부에는 울리기' 방식으로부터 많이 자유롭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한국 상업영화의 공식으로 발전해버린 이 지랄맞은 방식에서 자유롭다는 점만으로 특별해 보이는 신기한 경험이 이뤄진다. 작품은 전반과 후반이 각각 영어교육과 재래시장 재개발 이야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라는 두 가지 다른 소재로 합쳐져 있다. 그러나 장르는 코미디가 아닌 '드라마'라는 생각이 일관적으로 유지된다. 유머가 많이 포진했음에도 극을 지배하지 않게끔 선을 지켜서다. 웃기던 이야기가 변화하여 눈물을 쏟아낼지라도, 이질감이 없게 등장인물의 감정변화에 대해서 설득을 잘 하고 있다. 나문희와 이제훈을 비롯하여 해당 나이대에서 연기 제일 잘 한다는 사람들이 만만치 않은 내공을 선보이는 덕도 있지만 사실 이건 작품이 가진 자신감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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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를 다루는 극작품들은 '현실성'을 살리겠다는 명목으로 등장인물이 성적 피해를 당하는 장면들을 심심찮게 삽입하는 경향이 있었다. 결과는, 창작자 쪽 의도와는 별개로 관객에게 피해자들을 값싼 동정의 대상 정도로만 여기게 하거나, 관음적 욕망을 채워주는 식으로 나오곤 했다. 그러나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피해라는 소재를 택했을 경우 빠질 수 있는 자극적 연출의 함정을 피했기에 더 보편적 매력을 가진다. 민재가 옥분에게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려다, 한국어로 하기엔 쑥스러워 영어로 말하는 장면은 작품이 자신감을 드러내는 대표적 장면이다. 옥분은 어린 나이부터 가장이 되어야만 했던 그의 사연을 듣고서 "무척 힘든 삶을 살았겠구나" 라고 말한다. 민재가 놀라면서 다 알아들었냐고 묻자, 옥분은 웃으면서 말하는 모습만으로도 다 안다고 답한다. 마치 작품이 관객이 어떤 성향을 가졌든지 다 파악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아이 캔 스피크>에도 현실성은 존재한다. 주목하는 지점이 다를 뿐. 작품은 옥분이 참혹한 과거를 안고 살아가더라도 사회에서 자리잡고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쪽이 더 옳다고 판단한다. 가해를 저지른 국가로부터 사과를 받기 위해서, 돈을 받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말도 안 되는 의혹을 맞받아치려, 지지 않으려 치열하게 살아왔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옥분의 친구이기도 한 다른 위안부 피해자와 인권 단체가, 미국 국회에서 서양인 피해자와 함께 증언할 계획을 세우는 전개도 치열함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 속 현실성은 곧 자국에 대한 냉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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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당연하다. 1975년 일본 오키나와에 살던 배봉기 할머니가 일본 교도통신 인터뷰를 통해 위안부 피해 관련 첫 증언을 한 이후로, 국가적으로 이들에 대한 조처가 몇십 년 째 크게 진전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현실에서 뫼비우스의 띠를 그리고 있어서인지, 극작품들도 몇십 년 째 피해자들이 증언하는 단계만 다룬 이야기를 반복 재생산 중이다. <아이 캔 스피크>는 띠 바깥으로 나와 있다. 같은 증언의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이를 위해 증언자가 무언가를 배우는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의문을 갖게 만들어준다. 단순히 배움엔 나이가 없다는 식이 아닌, 어쩌다 저 연세가 되어서 외국어를 공부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말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 영어를 배운 것과 달리, 미국 국회에서 일본 우익정치인들에게 일본어로 유창하게 일갈하는 옥분의 모습은 복잡한 심정을 갖게 만든다. 그녀가 일본어를 구사하는 순간이 그 장면 뿐인 이유도 있다. 웃기고 놀랍고 또 서글프달까. 사실 일제강점기를 살았다고 누구나 일본어를 수월하게 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런 사람들은 해당 문화권이 대세였을 당시, 그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뭔가를 해보려고 배웠겠지. 이런 장면들로도 옥분의 삶은 충분히 설명된다. 작품에서 옥분의 어린시절과 참혹한 위안소 풍경이 재현되지만,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이야기를 이해시키기 위한 부가적인 장면 수준으로 그 분량이 짧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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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이 캔 스피크>를 완성도 면에서 <스카우트>와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껄끄럽다. 전체 상영시간 중 절반을 차지했던 재래시장 재개발과 공무원 조직의 업무 태만 관련 이야기가, 위안부 피해를 설명하려고 이용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다. 전반부는 원칙을 지키지만 융통성은 없는 민재의 인물형, 그리고 재래시장 사람들이 옥분을 대단히 존경하고 좋아하고 있음을 설명하려고 존재했다. 일명 공무원식 해결방법이라고 하여, 문제 해결에 아무런 영향이 없지만 노력은 했다는 식으로 자리를 보전하는 공무원 사회. 그리고 법으로 장난해서 서민들의 터전을 엎어버리고 개인적 욕망을 이루려 드는 정치인들을 풍자하려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재개발 관련 문제는 민재가 각성하면서 중반부 쯤 꽤 싱겁게 해결된다. 옥분이 제기한 수많은 민원들은 후반부에 돌입하면서 간략하게 후일담처럼 표기될 뿐이다. 민재가 구청 아카이브를 둘러보다 따로 정리된 옥분의 파일을 꺼내 읽어볼 때, 첨부되어 있던 민원 문서에 찍힌 해결완료 도장 뿐. 딱 그 장면 뿐이다. 공무원들이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작품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들이 얘기한 '공무원식 해결방법'으로 완료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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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 관계자들이 보여준 이런 나태함은 그들이 옥분의 사연을 알게된 후 도움에 나서면서 적당히 흐지부지된다. 그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겠지? 이렇다 보니 일제 강점기 당시 처참한 일을 겪었던 피해자들을 위로하겠다는 좋은 의도가 있고, 또 감성적으로 잘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캔 스피크>는 찝찝함을 남긴다. 이야기 구조 상, 국제적인 문제를 부각시켜서 국내의 나태함을 회피하려는 인상을 줘서다. 물론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은 한국에서 중요하게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다. 사실이다. 하지만 이야기 속 또다른 소재이자 현대의 문제인 도시 재개발 문제는 덜 중요할까? 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본래 이야기를 숨기려는 보조 개념으로만 활용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 문제는 보조 개념으로는 어울리지 않고, 또한 대충 다뤄서도 안 되었다.


우습게도, 이 찝찝함 때문에 나문희가 보여주는 엄청난 열연에 감동받다가 작품의 공동배급사가 일본 기업인 롯데라는 사실을 복기하게 된다. 굳이 기업 국적을 따지지 않아도 힘을 가진 자들이 기업과 자본 등을 이용해서 국제사회로 시선을 돌리게 한 후, 얼마나 많은 관료 세력들과 결탁하고 내부 사회에서 해 처먹었을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자본권력이 개입하는 이야기가 전체 상영시간에서 절반을 차지하는데 이를 게으르게 만든 탓이다. 그래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세심하게 구축한 공감의 이야기도 어떤 의미로는 이용당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재개발 문제가 더이상 생각나지 않으니 말이다.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하면서 굳이 재개발 이야기를 하려 했다면 좀 잘 하든지.


어지간해선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결과물이라고 적고 끝내고 싶다. 그러나 <아이 캔 스피크>는 감독이 <스카우트> 만들 때의 '실력에서 좀 녹슬었음을 증명하는 결과물'이라고 써야 옳겠다. 극장에서 볼 때는 감동받는 작품이었지만, 극장 문을 나서니 별로였다. 그저 언젠가 롯데가 자기네 건물에 태극기와 '대한민국 만세'라고 적힌 거대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풍경이 쓸데없이 떠오를 뿐이었다. 것 참 찝찝하다.


p.s.

1) 흔히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처음으로 증언한 사람'을 김학순(1924~1997) 할머니로 이야기 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배봉기 할머니가 있었고, 이미 한국에서 1982년 <여성동아>에 <독점수기: 나는 일본군의 정신대였다>를 통해 증언한 이남임 할머니, 1984년에 태국에서 한국으로 와 <여성중앙>에서 <한국말을 잊은 한국의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증언한 노수복 할머니가 있었다.


역사학 박사인 한혜인은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가진 역사적 의미는 위안부 피해의 참상을 알리는 최초의 고백이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국가의 배상과 연관된 ‘국가책임’의 문제로 인식하게 했다는 점이다.'라고 설명했다. 김학순 할머니에게 붙은 '최초 증언자'는 이런 의미로 이해하는 쪽이 나아보인다.


2) 분량은 짧지만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세 배우가 있다. 한 명은 위 사진에도 있는 족발집 사장 혜정 역을 맡은 이상희 배우. (<연애담>의 윤주) 다른 한 명은 중반부에서 잠시 나문희의 존재를 잊게 만드는 진주댁 역의 염혜란 배우. 그리고 미 국회에서 증언하는 위안부 피해자를 맡은 마티 테리 배우다. 세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는 정말 대단하다.


3) <아이 캔 스피크>를 보다가 좀 놀란 장면이 있었는데, 민재의 남동생인 영재(성유빈)의 흡연장면이었다.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고 담배를 피웠음을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민재가 담배 피웠냐고 다그치자 영재는 "그냥 고3 스트레스로 이해해주면 안 될까?" 라고 응수한 후, 오히려 옥분에 대한 형의 무례를 지적한다. 흡연에 대해서는 이 장면 이후 다시 언급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에서 청소년 흡연에 대해서 이렇게 So Cool 하게 넘어간 적이 있나 싶어서 좀 놀랐다. 김현석 감독이 청소년 흡연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귀찮아서 생략한 것인지 모르겠다. 난 사실 위의 대사 하자마자 형이 동생 뺨이라도 후려칠 줄 알았다.






홍준호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