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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트럭은 물론 운전도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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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무환.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고, 모든 준비를 끝마친 내 마음은 한 마리 사슴의 발걸음 마냥 총총총- 가벼웠다.


스팀(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게임 플랫폼)에 들어가 유로트럭을 실행시켰다. 짧은 로딩이 끝나자, 캐릭터를 설정해달라는 안내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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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은 가장 운전을 잘하게 생긴 사람으로, 트럭은 열정적인 레드로, 회사 로고 역시 붉은 불꽃으로 정했다(자유한국당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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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송회사의 근거지는 파리로 정했다. 기왕 운전 배우는 거 자유와 낭만의 도시인 파리에서 똘레랑스도 배우면 더 좋으니까..는 개뿔. 아무래도 큰 도시에 회사를 세워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


설정을 마치고 튜토리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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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운전을 시작해 볼까? 어, 음, 그런데 시동을 어떻게 거는 거지..? 튜토리얼이라면서 왜 시동 거는 방법은 안 가르쳐 주는 거지? 


순간 몹시 당황했음에도, 침착하게 발 아래 놓인 발판 3개를 차레대로 밟아 보았다. 부륵- 하는 소리가 잠깐 나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발판 1, 2, 3을 다시 한번 밟아보고, 양발로 온갖 조합으로 밟아 보았다. 1-2, 1-3, 2-1, 2-3.. 역시 부르르륵- 하더니 별 미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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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알 수 없는 1, 2, 3


이렇게까진 안 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막 이것저것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112322312313321321을 왔다 갔다 하며 밟았다. 끄떡도 없던 트럭에 그제서야 부륵-부르그륵- 부륵- 시동이 걸렸다! 쉽네!


자, 이제 출발해 보자. 대충 눈치로 보니, 2번은 브레이크, 3번은 엑셀인 것 같다(1번은 모르겠다). 3번을 밟아, 튜토리얼이 안내하는 곳으로 트럭을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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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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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아무래도 고장 난 트럭을 고른 모양인지 제멋대로 움직여서 자꾸만 벽에 쳐박았다. 모든 전자제품에는 뽑기운이라는 게 있다던데, 트럭도 그런 모양이었다.


시작하자마자 마주한 마의 구간(?)에서 한참을 씨름한 뒤, 차를 반파하고 나서야 도로로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처음엔 다들 그런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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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파리의 도로

 

이렇게 도로를 달려 목적지에 화물을 가져다주면 미션 완료. 튜토리얼이라 그런지 다른 차는 안 보였다.


어정쩡한 자세로 핸들을 잡고 유로트럭으로 GTA 비틀거리며 운전을 하고 있자, 시어머니에 빙의한 직원들이 몰려와 한 마디씩 거들었다.


 "운전을 너무 못하네 ㅋㅋ" 


 "이걸로는 절대 면허 못 따겠다!"


 "아이고, 핸들을 살살 돌려야죠.."


후.. 세상에 날 때부터 운전 잘 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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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했으니, 섭섭하지 않게 한 번 더 박아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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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지에서 화물을 내려놓으면 미션이 끝나고 보수를 받게 된다. 주차까지 완벽하게 하면 보너스 경험치를 받지만 지금은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므로, 자동주차를 시켰다.


짧고도 긴 첫 주행을 마치고 핸들에서 손을 떼자, 어깨와 손목, 발목이 뻐근했다. 첫 주행으로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운전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과(자동차는 무조건 빨간불에 가는 줄 알았다) 회사 직원들은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 


그 순간 마음먹었다. 반드시 면허를 따서 이 악마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리라. 정말로 유로트럭만 해서 면허를 따내고야 말겠다!


우선 기초부터 찬찬히 다질 필요가 있었다. 맨땅에 헤딩도 좋은 전략이긴 하지만, 정말 맨땅에 머리를 찧을 순 없으니까. 해서 나는 운전의 기초 중의 기초라는 필기를 따기로 했다.



필기를 따자



 "야, 필기 공부를 왜 해. 한국말만 알면 딸 수 있는 건데." 



먼저 면허를 딴 친구들은 필기 공부 같은 건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너무 쉬워서 하나도 안 보고 그냥 들어가도 붙을 수 있다고. 숨 쉬듯 구라를 치는 놈들의 말이라 믿을 수 없었지만, 운전면허 필기에 관한 썰을 찾아봐도 '그냥 푸니까 되던데요?' 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정말 그런가 싶기도 하고, 공부하면 나만 바보 될 거 같고 해서, 정말 아무우것도 보지 않고, 그냥 시험을 봐보기로 했다. 도전 속의 도전 같은 느낌이랄까. 나도 한국인이니까 못 할 건 없다는 마음으로. 


필기 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안전교육이라는 걸 받아야 한다고 해서, 회사에서 제일 가까운 서부면허시험장에 교육 접수를 신청했다. 바로 내일 날짜로. 필기 시험은 안전교육이 끝나고 바로 보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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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면허시험장에 도착했다. 1층으로 들어가니 구청 비스무리하게 여러 창구에서 접수를 받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생각보다 복잡해 보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어리버리하다, 안내 직원에게 잡혔다. 



 "접수하셨어요?"


 "어... (안전교육을 신청했으므로) 네." 


 "창구로 바로 가세요~" 



창구로 갔더니, 안전교육을 받고 다시 오라고 그랬다. 다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안내 직원을 찾아갔다. 



 "저기.. 창구 갔더니 안전교육을 받고 오라는데요?"


 "아, 교육 안 받으셨어요?" 


 "..네."


 "(한숨) 2층으로 올라가세요-"



그렇게 한 번 어리버리를 까고 나니, 갑자기 주눅이 들었다. 2층에 도착하니 접수대에서 안전교육 접수를 받고 있었다. 이름을 말하고 자리를 배정 받았다. 13명 정도가 함께 안전교육 비디오를 봤는데, 중국인이 5명 정도 있었다(비디오에서도 중국어 자막이 나왔다). 이 사람들도 풀 정도면 필기는 정말 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교육이 끝나고 1층으로 내려가 제대로 접수를 했다. 응시표 한가운데 찍힌 '보통 1종' 단어를 보자, 괜시리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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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 정도 걸리는 신체검사(정확하게는 시력 검사)를 마치고, 3층으로 올라갔다. 이제 진짜 필기시험을 볼 때였다. 


망설임 없이 시험장에 입장, 응시표를 내고 자리를 배정받았다. 중학교 때 컴퓨터실과 똑같이 생긴 장소에 똑같이 생긴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응시번호를 입력하고 시험을 시작했다.


1번 문제부터 알 수 없는 게 나와 정신이 아찔했다. 첫 문제를 어렵게 내는구나, 했더니 그 다음 문제도, 그 다음 문제도, 다다다다다음 문제도 모르는 게 계속 나왔다. 그림 동영상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 도덕 시험에서나 나올 법한 문제, 그러니까 


Q. 운전 중 눈앞에 길을 건너려는 아이가 나타났다. 어떻게 해야 할까?


① 속도를 올려 아이가 건너기 전에 빨리 통과한다.

② 속도를 줄여 아이가 길을 건너는 것을 확인 후 지나간다. 


이런 정도의 문제 말고는 다 찍었다. 표지판 문제는 최대한 본능의 촉을 살려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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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는 것도 찍는 것 나름이지, 이런 표지판들은 도무지 감이 안 왔다.

머릿속에선 자꾸만 중딩 때 했던 바람의나라, 이가닌자의검 재료를 주는 놈이 생각났다.


마지막 문제를 끝내자, 40분 제한시간 중 32분이 남아 있었다. 등에 땀이 한 줄기 정도 흘렀다. 손이 저렸다. 발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침을 꼴깍 삼키고 [시험종료] 버튼을 클릭. 결과가 떴다. 


운전면허 필기시험 모의고사-4.PNG


66점, 불합격. 씨발!! 누가 필기 공부 하나도 안 해도 된다고 그랬어!!!


당혹감과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리에서 일어나 감독관에게 갔다. 


 "저기.. 재시험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늘은 안 되요. 내일 다시 오세요."


말을 끝마친 그는, 흡사 포청천 같은 단호한 얼굴로 내 응시표에 도장을 찍었다. 


 '불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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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1. 이 기사는 유로트럭의 협찬 같은 건 없고, 사비를 털어서 쓰고 있습니다.


2. 많은 분들이 운전만큼은 똑바로 배워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혹시 유로트럭으로 면허를 따더라도 반드시 운전 잘하는 사람에게 다시 운전을 배워, 안전운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_@


3. 여러분, 필기시험 공부하세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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