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2490024_787590534762397_6717343222817461865_n.jpg


<세 여자>라는 책이 있다.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인 조선희 작가의 작품이다. 고종석 선생의 글발이 화려하게 빛날 무렵 썼던 몇 소설들이나 얼마 전 읽었던 서명숙 작가의 <영초 언니> 등에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이 어디까지가 상상의 소산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의 기록인지 헷갈린다는 점이었다. 심리 묘사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1분 만남을 몇 장에 걸쳐 서술하는 방식은 비록 소설가로 그 모습을 바꿨다 해도 기자 근성에 맞지 않는 것인지.

어쨌든 이 <세 여자>의 시작은 다큐멘터리다. 1991년 한소수교 이후 비비안나 박이라는 한국계 소련인이 한국을 방문한다. ‘동그스름하고 오밀조밀하게 생긴 전형적인 한국 여인의 얼굴’이지만 한국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던 예순 네 살의 무용학과 교수. 그는 시끄럽지는 않았으되 일부 언론, 학계, 심지어 정보 기관까지 은밀하고 각별한 보인 인물이었다.

그녀의 성 ‘박’은 한국 현대사에서 잊을 수 없는 이름 박헌영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무래와 정 모양의 아호를 쓰면서 기층 민중들의 삶을 기억하겠노라 다짐했던 비운의 혁명가 이정(而丁) 박헌영의 딸이었다.

그녀가 기자에게 보여 준 한 사진에서 이 소설은 출발한다. 세 여자가 개울에 발 담그고 노닥거리고 있는 사진. ‘팽팽한 종아리와 통통한 뺨, 가뿐한 단발’을 한 세 여자가 청계천으로 추정되는 개울에서 해맑게 웃고 있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사진에 적혀 있지 않으나 응당 그 중의 하나는 사진의 주인공일 터이다. 박헌영의 부인이자 비비안나 박의 어머니였던 주세죽. 나머지 둘은 누구일까. 작가는 한때 식민지 경성을 풍미했던 월간지 <신여성>을 들이댄다.

“나와 나의 친구 두 사람 합 3인이 단발하던 때는 지난 8월 21일 오후 6시경이었습니다. 혹 어떤 이는 3인 단발 동맹이나 혹은 신경이 과민한 양반들은 어떠한 비밀 결사가 아닌가 의심하였습니다. (후략) ”

 신여성 1925년 10월호

여성이 단발을 하는 것조차 무슨 동맹이나 비밀 결사로 오해받을 수 있었던 거의 100년 전의 20세기 초. 작가는 이 기사를 발판 삼아 주세죽 외 두 명의 유력한 후보를 불러 온다. 신여성 편집장이었던 허정숙. 그리고 주세죽의 남편 박헌영의 동료이자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운동의 맹장 김단야의 애인 고명자. 그래서 < 세 여자>다.

이 소설의 부제는 ‘20세기의 봄’이다. 암담한 식민지 시대의 울타리는 여전했지만 봉건의 겨울이 가고 근대의 봄이 스며들던 1920년대. 봄이란 게 그런 거 아닌가. 이름 아는 꽃들도 피어나지만 난데없는 잡초도 끼어들고, 경칩 돼 튀어나온 개구리가 꽃샘 추위에 얼어죽기도 하지만 모든 움츠렸던 것들이 기지개부터 펴고 보는 계절 아닌가.

허정숙_주세죽_고명자.jpg

20세기의 봄은 세 여자 인생의 봄과 겹친다. 80년 광주를 겪은 청춘들처럼 1919년 3.1항쟁을 겪은 봄들은 희망과 용기로 빛났다. 동토의 땅을 박차고 봄바람 몰고 올 외국으로 나갔고 배우고 익히는 가운데 겨울로 남은 조국을 찾겠노라 다짐들을 한다.

비장하게 ‘단발선언’을 해야 할만큼 보수적이던 조선에서 “부인들이 축첩반대 운동을 한다는데 그럴 게 아니라 여자들도 축첩을 하자! 정부(情夫)를 가지자!”고 주장했던 맹랑한 여성들은 그야말로 21세기의 한국 여자들이 봐도 휘둥그레질만한 청춘 사업을 벌인다.

시일을 두고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허정숙은 남편을 세 번 갈아치우고 네 번 결혼했으며 주세죽은 박헌영과 떨어진 뒤 남편의 동지 김단야와 맺어지는데 이 김단야는 고명자와 사실상 부부로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독립운동가가 옥고를 치를 때 그 부인은 남편을 위해 수절하고 욕망을 참고 지내야 하는가?”가 논쟁이 됐다는 말을 들은 바 있지만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이 정신없는 사다리 애정 게임을 들여다보는 건 그 자체가 흥미진진했다. 남편이 감옥에 들어가 있던 무렵 임신한 허정숙을 두고 그것이 누구의 아이냐로 입방아들이 분주했을 때 일이다.

자애로웠던 아버지 허헌마저 “네가 무슨 사상을 가지든 인정한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게 있다.” 고 점잖게 훈수를 두었을 때를 작가는 이렇게 묘사한다.

‘아버지도 둘째가 송봉우 아이라는 소문을 들으신 걸까. 아니면 신일용 아이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남편 두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는 일은 안 합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 대목에서 폭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정말 봄이었던가. 그러나 마냥 봄 단발녀들 제 오시네 흥얼거리며 혁명 운운하는 맑스보이 엥겔스 걸들의 연애 스토리만 주구리장창 늘어놓는다면 아마 1권을 끝맺지 못하고 던져 버렸으리라. 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었던 것은 봉건과 식민의 겨울 틈바구니에서 새어나온 그들의 봄날 햇살 한 자락마다, 그 뺨들을 살랑였던 봄바람 한 웅큼마다 징그러운 뙤약볕처럼 사람들을 말라 비틀어지게 하고 쓰러지게 만들었던 20세기의 ‘여름’이 스멀스멀 스며들어 있었던 탓이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아침마다 ‘텐트’를 치는 것 때문에 잠에서 깨어 괴로워하면서 “봉건제에, 식민지에 우리가 받은 숙제는 너무 무거운데 눈치없는 아랫도리만 낭랑하게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오.”라고 토로하던 근엄한 혁명가 박헌영을 읽으며 나는 깔깔대고 웃었다. 봄이네 봄이야. 하지만 그의 아내 주세죽이 배가 남산만해졌을 때 허정숙과 나누는 대화에서 나는 문득 찌는 듯한 20세기의 여름의 느낌에 땀이 흘렀다.

“박선생이 웬일이야. 자식은 사전에 없는 줄 알았더니.”

“바닥을 봤잖아. 사람이 약해진 거지.”

조선 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된 박헌영은 살인적인 고문과 옥중 투쟁 속에 거의 미쳐 있었다. 아내와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발광하여 똥통의 똥을 먹기도 했다고 하니 ‘미친 척’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바닥에 내동댕이쳤을 때 박헌영은 강철같은 혁명가 이전에 고통 앞에 약하고 욕망 앞에 순종하는 인간도 자신의 정체성임을 통감했던 것일까. 점차 독기를 머금기 시작한 20세기의 염천(炎天)은 그렇게 사람들을 녹여 놓았다.

2365_24.jpg
주세죽(좌), 박헌영(우)

허정숙의 남편 또는 애인들은 모두 사회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이었으나 그 노선상의 차이로 피터지게 싸웠다. “다들 민족해방 한다고 객지에 나와 생고생했고 또 가까이서 보면 인간적으로 매력 있는 사람들이 처음 당을 만들 때 서로 갈래가 갈랐던 것 때문에 죽어라고 서로를 미워했다. 그러다 피를 본 다음엔 트라우마가 되어 그 무엇으로도 돌이킬 수가 없게 됐다.”

허정숙의 세 번째 남편 연안파 최창익과 네 번째 남자 소련파 채규형은 1960년대를 넘기지 못하고 김일성에 의해 숙청됐다. 사회주의 운동의 맹장이었던 김단야는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과 떨어져 살면서 옛 동지의 애인 주세죽과 맺어지지만 스탈린의 대숙청 때 엉뚱한 죄목으로 저승길을 가고, 주세죽 또한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추방돼 거기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박헌영의 최후야 따로 언급할 것이 없다.

3.1항쟁과 1920년대 초반은 ‘세 여자’ 뿐 아니라 여러 남자들의 봄이었으나, 20세기의 봄을 겪었던 그들, 러시아 혁명에 열광하고 3.1항쟁의 분출과 실패에 고무되고 자극받았던 청춘들은 곧이어 다가온 괴물 같은 20세기의 무더위 앞에 녹아 없어지거나 일사병에 쓰러지거나 더위를 피해 뛰어든 물에 빠져 죽어갔다. 아니면 온몸을 불태울 것 같은 태양을 피해 변절이라는 초막을 찾아야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실상 허정숙일 것이다. 그녀는 단발하고 청계천에서 물장난치던 세 여자 가운데 두 여자가 죽고도 40년을 더 살았다. 봄을 만끽했고 꽃샘추위를 견뎠으며 20세기의 여름이라 할 파시즘과 세계대전 시기를 건넜던 그녀는 냉전이라는 썰렁한 가을 이전에 김일성이라는 걸물과 마주하면서 자신들의 남편과 지기들을 모두 녹여 버린 살기 넘치는 늦더위를 경험하게 된다.

자그마치 1920년대, 남편을 감옥에 두고서도 “옥바라지는 오케이, 연애는 내 마음”이라며 자유연애를 즐긴 이 호방한 여성, 대륙을 누비며 중국 공산당의 거목들과도 교류했던 연안파의 핵심 허정숙은 김일성 유일 체제에 적절하게 적응하면서, 또 김일성의 배려를 충분히 받으며 여생을 보냈다. 과연 그녀는 동료들, 친구들이 거의 말살돼 가는 과정을 버텼을까.

소설 속에서는 “김일성 곁에서 거세돼 가던” 박헌영이 혁망가로서의 마지막 힘을 짜내 김일성에 저항하는 장면이 나오고 허정숙 역시 연안파 숙청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로서 ‘토론의 자유’를 제기하며 맞서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때 일본제국주의도 어쩌지 못했던 강한 여자 허정숙을 무너뜨리는 것은 자식과 손주의 등장이었다. 박헌영이 허구헌날 발기하는 아랫도리를 탓하다가 결국 감옥에서 심신이 무너진 뒤 세죽을 안았던 모습이 떠오른달지.

이 소설의 미덕이자 단점은 어디까지가 사실인고 뭐가 허구인지 자주 헛갈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세 여자>의 수미(首尾)는 다큐멘터리로 쌍관(雙關)한다. 비비안나 박의 이야기로 시작한 소설은 1991년 설, 마지막으로 허정숙을 만났던 L씨라는 사람은 허정숙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수령도 인간인데, 동지의 비판을 받아야 발전하는데 장군님한테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이 없어 걱정입니다. 장군님 주위에 아첨꾼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 아첨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이건 당시 한국 대학가에 판을 쳤던 주사파들도 눈에 불을 켜고 비판할 말이었다. 당과 수령은 무오류인데 말이다. 그러나 허정숙은 예언이라도 하듯 그녀의 마지막 설날 그렇게 말하고 갔다. 그녀의 삶 이후 냉전의 해체라는 20세기의 겨울이 펼쳐졌다. 그녀는 20세기의 가을이라 할 냉전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봄을 찬란하게 했던 소비에트의 몰락을 몇 달 앞둔 1991년 6월 5일 죽었다. 이후 20세기의 겨울이 왔다.

허정숙.jpg
허정숙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사람들이 20세기 초반 이곳에 살았다. 혁명이 직업이고 역사가 직장이었던 사람들. 1910년 세 여자는 글자를 깨치기 시작한 어여쁜 소녀들이었지만 어느 결에 공중납치된 나라의 국민이 돼 있었다... 세 여자와 남자들은 삶을 역사에 ‘올인’했다. 그들 대부분은 무덤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들 부류의 삶 전체가 하나의 실수로 취급되었고 뒷날의 사람들은 그 얼룩을 지우고 싶어했다.”

내가 이 책을 단 이틀 동안 짬짬이 읽으며 독파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겠다.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호방한 대학의 교수로, 깐깐한 편집장으로, 잘나가는 정치인으로, 인권 변호사로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착취하지 않고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면 안 된다“는 믿음이 죽음의 주문이던 시절에 살았던 죄로 스스로 그들의 삶을 들어 내팽개쳤다. 그들도 아침에 일어나면 텐트치는 남자였고 좋아하는 남자 때문에 마음 졸이고 유혹도 해 보고 바람도 피우고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죽어라 싸우고 토라지고 울고 짜는 인간들이었는데.

역사는 건조하지만 삶은 축축하다. 활자는 딱딱하고 사진은 박제로 남았으나 그 활자와 사진의 주인공들은 그저 사람들이었다. 이 책은 그 간극을 부족하나마 메워 준다. 개인적으로 올해의 책으로 꼽기는 뭐하나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는 분류해 두고 싶다. 지금 우리는 21세기의 봄을 살고 있다. 우리의 여름 가을 겨울은 어떨까. 대체 어떻게 될까.





산하

편집 : 꾸물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