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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알박기, 니들이 이겼다


뜨거운 감자 신고리원전 5·6호기에 대한 공론화위원회의 결론이 건설 재개로 나왔다. 위원회는 오늘 그동안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471명의 59.5%가 찬성하여 정부에 건설 재개를 건의하기로 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즉시 중단 의견은 40.5%였다고 한다. 혹시나 기대했던 마음이 역시나 실망으로 끝났다. 허가 받기도 전에 1조 1576억원을 투입한 한수원의 알박기는 이번에도 성공하였다.


기실 공론화위원회의 역할은 정부에 권고할 뿐, 결정을 내리고 집행을 하는 건 정부다. 따라서 공약대로 건설을 중단하고 말고는 정부가 결정하면 될 일이다. 굳이 권한도 없는 공론화위원회를 거친 것은 현실 정치 상황이 낳은 삽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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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천안 모 연수원에서 열린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 종합토론회 (출처: 뉴시스)


독일의 메르켈 정부가 2011년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하여 탈핵 정책에 대해 의견을 구한 건 정책을 뒤집기 위한 메르켈의 방편이었다. 독일은 이미 1998년 구성된 사민당과 녹색당(적록연정)에 의해 2000년 단계적 폐쇄 정책이 결정되고 2020년대에 원전을 마감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2005년 기민련의 메르켈 정부가 들어선 뒤 보수파는 탈원전 정책을 뒤집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였고 마침내 2010년 10월28일 일부 원전에 대해 수명 연장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아뿔사, 불과 6개월만에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였고, 잠복했던 독일인들의 불만은 원전 반대 시위에 전국적으로 25만명을 불러모으는가 하면 사고 직후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52년 보수당의 아성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녹색당 주지사를 탄생시켰다. 메르켈은 자신의 원전 연장 정책을 뒤집어야 했고 어제 일을 오늘 뒤집어야 하는 안타까운 사정에 윤리위를 구성하여 17인 석학의 힘을 빌린 것이었다.


우리나라 공론화위원회도 배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건설 중단이 공약이기는 하나 여론이 반드시 우호적이지도 않고 국회의 의석 구조는 더욱 암담하다. 하여 정부 내에서도 중단하고자 하는 쪽은 국민의 힘을 빌리고 싶었을 거고, 계속하고 싶은 쪽으로서는 밑질 게 없는 판이었을 게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고 기대는 역시 기대일 뿐이었다.


그나마 원전 축소가 53.2%로 유지 35.5%, 확대 9.7%보다 높고 문재인 정부의 원전 축소 정책은 유지될 것이라고 하는 공론화 위원장의 립서비스가 있었지만 두고 볼 일이다. 국회의석 구조가 바뀐다면 90% 공정에서 건설 중단을 결정한 대만의 선택이 남의 일만은 아닐 수도 있으리라.




정부는 원자력문화재단을 원전산업계에 돌려 주라


건 그렇고 가장 최근의 원전에 관한 여론조사(천지일보 9.21)는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찬성하는 이가 47.0%로 반대하는 이(32.3%)보다 높게 나타나 공론회위원회의 조사와 유사하다. 그러나 원전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바뀐 것은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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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지지도 (출처: 천지일보)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날 무렵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 중 약 3분의 2는 원전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사고 직후인 그 해 3월23일 윈/갤럽인터내셔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의 64%가 원전에 찬성하여 반대(24%)보다 2.5배 이상 많았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가 바로 수습되지 않은 채 주민들이 떠돌이 생활을 하고 피해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면서 강고하기만 했던 우리나라 사람들도 원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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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에도 한국인의 원전 지지도는 높았다 (출처: 한겨레신문)


그 해 10월 로이터 통신이 IPSOS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도 61%가 원전에 반대하고 찬성률은 39%로 떨어졌다. 지금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벌써 6년이란 세월이 흘러서인지 반대율이 다소 낮아지기는 했지만 한국에서도 탈원전은 이제 다수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러면 불과 7년 전까지 한국인은 왜 원전에 대해 그렇게 너그러운 태도를 갖고 있었을까?


처음 한국인들에게 알려진 원자력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어 2차 세계대전을 끝낸 원자폭탄이었다. 수 만 명의 목숨을 일시에 빼앗고 도시를 박살낸 원폭이지만 식민지 조선인에게 그것은 해방을 선물한 산타클로스 같은 거였다. 두 번째로 한국인에게 강렬하게 다가온 건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 뒤에 중국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만주에 터뜨리자고 한 원폭이었다. 이로 인해 한국인의 정서에서 원자폭탄은 두려워하면서도 희원하는 이중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러던 차에 국내에도 원자력발전소가 세워지고 이후 원전산업계의 일방적인 홍보 작업이 지속되어 은연 중에 원전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들이 스며들었다. 수 십 년간 지속된 원전 홍보의 전면에는 원자력문화재단이 있었다.


원자력문화재단은 1989년 동력자원부에서 에너지홍보 캠페인의 우라늄 편을 티비 광고로 방영한 것을 계기로 ‘원자력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여 원자력 이용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냄’을 목적으로 하여 1992년 동자부 산하의 재단법인으로 설립되었다. 1994년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전기에너지관을 수탁운영 한 것을 시작으로 1995년에는 발전소주변지역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운영 재원을 출연받았다. 2002년부터는 산자부가 관리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출연 제도가 변경되어 지금까지 매년 수 십 억 원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단체이다.


원자력문화재단에 대한 정부 출연금    (단위: 억원, 출처: 원자력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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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문화재단은 이 예산으로 △효과적인 매체를 이용한 원자력 정보 제공,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 문화사업, △체험형 원자력 전시 홍보 등을 시행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공익광고라는 이름으로 매일 공중파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을 파고 든 원자력 홍보이다. 공익광고는 그 자체로 시청자들의 수용성이 높다. 정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매일 티비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런 광고를 접한 당신의 의식도 가만히 들여다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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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홍보 광고의 한 장면


신문 광고도 중요한 홍보 창구다. 신문에는 단순 광고에서 시작해서 점차 협찬 기사 형태로 진화하였다.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2012년 4월 12일 특집 섹션으로 게재한 ‘원전 강국 코리아’ 기사는 5500만원, 같은 해 3월 6일자 이사장 인터뷰 기사는 1100만원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2012년과 2013년 2년 동안 14개 신문사에 협찬 기사를 내기 위해 원자력문화재단이 쓴 돈은 모두 3억 6천만원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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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0만원짜리 협찬 기사의 위용 (출처: 뉴스타파)


19대 정의당 김제남 의원실의 집계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원자력산업계의 홍보 예산은 205억원, 이 중 한국수력원자력㈜이 100억원으로 제일 많고 그 다음이 원자력문화 재단으로 56억 8천만원을 썼다. 정작 원자로를 만드는 두산중공업이나 실제 노가다를 맡은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은 일반 광고를 하지 않는다. 두산이나 현대, 삼성 입장에서야 일반인들이 사주는 게 아니니 아예 광고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터이다. 오히려 그동안의 숱한 원전 비리를 보건대 그들은 허가권자나 발주자에게 건네 줄 뇌물이 더 관심 대상이리라.


그런데 지난 8월말 국회에 제출된 내년도 정부의 기금운용계획안 중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보면 원자력문화재단 출연금으로 예년과 같은 50억원이 올라왔다. 5월 9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인수위도 없이 시작하느라 예산까지 챙길 시간이 없었다 해도 이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은 예산 심의 과정에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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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산업홍보 69억원 중 50억원은 원자력문화재단 출연금이다.

(출처: 2018년도 기금운용계획안 첨부서류. 국회 홈페이지 가면 볼 수 있다)


미국과 일본에도 이와 유사한 단체가 있으나 이들은 민간단체로 원전산업체들이 기금을 모아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이 내는 전기료에서 떼는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원자력문화재단을 지원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더 이상 계속해서는 안 된다. 필요하다면 원전으로 큰 이익을 보고 있는 두산중공업과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이 운영하면 될 일이다. 그들이 쓰는 접대비와 홍보비의 아주 일부만 하여도 이런 재단 몇 개라도 가능하다.


뜨거운 감자는 내려놓았다 해도 문재인 정부가 진정 원전 축소의 길로 가려 한다면 정부는 앞으로 원전의 안전과 폐로에 집중할 것이라는 분명한 신호를 원전산업계에 보내야 한다. 수 십 년 동안 매일 저녁 국민들에게 원전이 안전하다고 속삭여 온 재단에 정부가 출연하는 일은 즉각 중단되어야 하며, 원자력문화재단은 그동안 공적 자금으로 조성한 재산을 그대로 정부에 반환하고 친정(원전산업계)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에너지전환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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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이토록 거침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 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