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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정권 때 인물로 송국첨(宋國瞻)이라는 이가 있다. 충북 진천 출신이다. 그는 과거에 급제한(고려시대에는 무과가 없었다) 문관이었다. 하지만 강감찬이나 윤관도 문관이었지만 군대를 거느리고 전장을 누빈 것처럼 송국첨도 약해빠진 책상물림이 아니었다. 송국첨이 역시 문관이지만 장수의 재능을 갖추었던 서북면병마부사 김희제 휘하에 있을 때 망해가던 금나라의 장수 우가하가 고려 변경을 침입했다.
 
김희제는 차제에 버릇을 고쳐 놓겠다고 집권자 최이에게 청했는데 최이는 묵묵부답이었다. 왜 직장에 이런 높으신 분 많지 않은가. 뭘 건의하면 듣는 거 같은데 결국은 아무 말도 않고 알아서 해라. 단 책임은 네가 져라는 식의. 최이가 그랬다.
 
김희제는 알아서 했다. 송국첨 등과 함께 출동하여 압록강을 넘어 우가하 일당들을 혼내주고 개선했다. 이 무렵 지은 송국첨의 시를 보면 그 기개가 웬만한 무반 나부랭이 찜쪄먹을 듯 호방하다.
 
인으로 칼등 삼고 의리로 칼날 삼으니
이것이 장군의 새로운 거궐(보검)이라.
한 번 휘둘러 바다로 향하면 고래가 내닫는 듯
두 번 들어 육지로 향하면 물소와 코끼리가 엎어지네
하물며 저 마산의 궁한 미치광이들 쯤이야
없애려 하였으면 채찍 끝의 가루가 되었으리.
아침에 다섯 강을 건너 저녁에 승리를 알려
기쁜 기색은 가득한 봄 빛 발하리.
 
마침내 몽골의 군대가 고려를 공격했을 때 왕족 회안군 정과 함께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이를 찾아가 담판한 것도 송국첨이었다. 이때 살리타이는 송국첨의 씩씩한 기상에 감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문무겸전의 인재에게는 단점이 하나 있었다. 아니 장점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그저 강직했던 것이다. 오죽하면 서북면의 기생 우돌이 다들 흥청망청하는데 혼자 고고한 이 사내에게 이런 시를 써서 보였을까.
 
광평 (당나라 측천무후 때 강직한 재상 송경의 자, 즉 송국첨을 가리킴) 의 모진 속을 저는 일찍 알았어요.
본디 함께 침소에 들어 볼까 하는 맘은 없었고요.
다만 하룻밤 술 마시고 시를 지어
풍월 읊는 좋은 인연 맺는 게 바람일 뿐이랍니다.
 
즉 탐나는 남자긴 한데 씨도 안먹힐 것 같으니 시나 짓고 놀자는 것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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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에게만 강직하면 좋았을 텐데 이 송국첨은 고려 천지를 뒤덮는 권력 앞에서도 강직했다. 무신 정권 시대의 핵심 권부라 할 정방에도 있었지만 이내 물러났다. 돌아가는 꼬라지가 맘에 들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그가 경상도 순문사로 갔을 때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망나니들을 본다. 명색 승려라는 만전과 만종 형제였다. 이들은 집권자 최이의 서자들이었다.
 
그 모계가 너무 천해서 그랬는지 최이는 그들의 머리 깎아 중 되라고 보내 놨는데 애초에 중 팔자와는 거리가 먼 왈패들이었다. 무리를 모아 사람들 패고 부녀자 강간하고 재물 거두는 데에는 천재적이었다. 쌀만 50만석을 끌어모았다고 하니 알쪼다. 거기에 이 쌀 가지고 고리대금업을 펼치는 바람에 농민들은 나라에 바칠 세금낼 것까지 다 빼앗겨 버리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송국첨이 눈을 부릅떴다.
 
“아드님들이 이런 짓을 벌이고 있습니다.” 송국첨은 천하의 권력자 최이에게 직소했다.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열 받은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이 그쪽을 편들지 모릅니다. 소환해서 다스리시오.” 최이는 마지못해 아들들을 불러들이고 빼앗은 재물을 돌려 주는 듯 했지만 팔은 안으로 굽었다. 아들들이 울며불며 호소하자 아버지의 마음은 금새 돌아섰고 권력자의 변덕은 곧 송국첨에게는 화근이었다. 그는 동경유수로 좌천됐고 이후 최이의 아들 가운데 만전, 즉 최항이 권력자로 등극한 뒤에는 지방을 전전하다가 분사(焚死)하고 말았다.
 
어느 나라 역사든 강직한 사람들이 화를 입는 경향은 일률로 비슷하다. 사람 사는 세상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강직한 이들이 빛을 발하고 힘을 얻고 그 역량을 발휘하는 빈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강성해지고 그렇지 못한 이들이 활개를 칠 때 그 나라는 쇠약해졌다.
 
송국첨이 활약하던 최씨 정권 때 그 경향은 두드러졌다. 교활하면서도 의심 많은 것이 내력이었던 최씨 4대는 바른 말하고 아픈 데 찌르는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귀주성 전투의 영웅 김경손이 백령도 앞바다에 수장되고 강화도 천도에 반대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장군 김세충의 목이 달아났다. 압록강을 건너 금나라 장수 우가하를 박살내고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이 앞에서도 늠름했던 송국첨도 권력자의 왈패 아들들을 탄핵한 댓가를 치러야 했다.
 
오늘 송국첨을 떠올리는 이유는 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한 불운한 군인의 사연을 접했기 때문이다. 황인걸 중령이다. 어떤 분인지에 대한 설명은 2014년에 쓴 표창원 의원의 글로 대신한다.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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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당시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장으로 재직 중이던 이모 준장이 부하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며 5000만원에 이르는 공금을 횡령해 온 사실을 발견한 황 중령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육군 중앙수사단장에게 익명으로 편지를 써 이를 알렸다. 하지만 그는 결국 '복무규율 위반' 및 '보안규정 위반' 등의 사유로 감봉 3개월이라는 중징계와 따돌림의 대상으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황 중령의 제보 편지를 받은 육군과 국방부는 '장성 비리 의혹 수사'보다는 '제보자 색출'에 전력을 기울였고, 결국 그의 신원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중략)
 
병사들이 먹을 빵 구입비와 방탄헬멧 도색비 등 총 5000여만원을 횡령한 '악인'은 장성에게 지급되는 모든 영전과 영예를 누리며 전역한 반면, 군 내부가 썩어들어가는 비리를 목격하고도 모른 척 눈감았다면 승승장구 권력과 지위가 보장됐을 엘리트 장교는 '의인' 노릇을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제 49세가 된 황 중령은 4년 뒤면 곧 청춘을 다 바쳤던 군에서 쓸쓸히 퇴장해야 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각 계급별 승진 시한 내에 승진하지 못하면 '계급정년'에 걸려 퇴직해야 하는 군 인사규정의 특성 때문이다.”
 
2014년의 글이라고 했다. 올해가 2017년이다. 이제 정말 황인걸 중령은 계급정년이 목까지 차올랐다. 오만한 권력의 범죄에 맞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 군인이 밀려나는 군대가 과연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군대일까. 최이의 아들들 같은 왈패들이 버젓이 설치고 배불리고 권력과 가까운 자들이라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나라의 군대가 강력할 수 있을까. 송국첨을 몰아내고 김경손을 죽인 군대가 어느 나라 군대와 싸워 이길 수 있을까.
 
확실하지는 않으나 청원 수가 20만 명은 넘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 2천명도 되지 않는다. 바야흐로 적폐청산이라는 단어가 물보다도 더 흔하게 쓰이는 이 세상에서 용맹스럽지만 고독하게 적폐와 맞서 싸운 장교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몹시도 당연한 일일 텐데, 아직은 그 수가 적고 약하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께서는 청원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청원에 이름을 보태 주시기 바랍니다. 저런 군인 하나는 본보기로라도 대한민국 군대에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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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15:20 현재
청원 바로가기 (링크)
 
댓글로 청원 완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일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하자마자, 아니 하기도 전에 알아야 합니다. 공유도 해 주셔요.
 
 
 
 
 
필자의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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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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