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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패혈증으로 사망한 피해자, 개에겐 녹농균이 없었다


모 연예인이 키우던 개가 이웃집 아주머니를 물어서 아주머니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악화되어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환자의 혈액배양 검사 결과 녹농균이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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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 - 링크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녹농균은 주변에 흔히 존재하는 균으로 특히 오염된 물에서 발견된다"며 "피부 화상을 입거나 당뇨를 오래 앓거나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 감염되면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환자의 건강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녹농균은 박테리아 중에서도 독성이 강한 균이라서 면역체계 질환을 앓는 환자가 감염되면 치사율이 높아진다"면서 "하지만 개한테 물려 감염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최씨 가족은 동물병원에서 이 개를 자체 검사해 녹농균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의사의 소견서와 진료기록을 이날 반려견 관련 행정당국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단 위에 언급한 사실만 보면 환자가 녹농균에 감염되었고 이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기사대로


개에 물려 녹농균에 감염되는 것은 드물다 + 해당 개의 구강에서 녹농균이 검출되지 않았다.


요렇게 보면 '병원이 처치를 잘못해서 사망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아 보입니다.


2011년 Clinical Microbiology Review에서는 동물에 물렸을 때의 감염을 일으키는 균주에 대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균.JPG

해당 표를 보면 녹농균이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살펴보니 감염 원인균 중 녹농균이 차지하는 빈도가 6% 정도로 나옵니다. 아주 흔한 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드물지는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논문이긴 하지만 우리 나라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개의 구강에 있는 세균총(세균의 구성)은 수시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세균이 한 두 종류만 있는 게 아니라 대부분 복합적인 균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죠.


녹농균에 오염된 물을 먹었다면 녹농균 검출율이 좀 더 올라갈 거고 따끈따끈한 응가를 먹었다면 대변에 있는 균이 검출될 확률이 올라가겠죠.




2. 녹농균에 어떻게 감염되나


패혈증이 직접 사인이고 녹농균이 그 원인균이라면 어떻게 감염되었을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1. 개의 구강에 있던 녹농균이 무는 순간 상처를 타고 침투

2. 개가 물었던 상처로 녹농균이 침투 (병원에 가기 전 또는 병원 내에서 또는 병원을 갔다 와서)

3. 상처 이외의 부분으로 녹농균이 침투


견주가 자기 개의 구강에는 녹농균이 없다는 소견서를 받은 건 1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의도였겠죠. 앞서 말한대로 개의 세균총은 수시로 변합니다... 오늘 해당 균이 없다고 어제도 해당 균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죠. 오늘 다시 검사하면 없던 녹농균이 또 배양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구강에 있는 세균을 배양할 때 검체가 부적절하면(오염되거나 적게 채취하거나 등) 아예 있는 균이 없다고 나오거나 없는 균이 있다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3의 경우는 호흡기, 요로 등으로 감염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는데, 폐렴이나 요로감염이 자각 증상 없이 6일만에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2가 남았네요.


피부-2.jpg


우리 몸에서 피부는 세균을 포함한 외부 물질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중요한 방어막 역할을 합니다. 멀쩡한 피부에 똥을 쳐바르고 있어도 감염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 입니다. 반면 피부에 작은 상처가 나게 되면 아주 소수의 독극물이나 소수의 세균으로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마지노선-2.jpg


2차대전 당시 프랑스는 독일과의 국경에 그 유명한 마지노선을 건설합니다. 프랑스의 공학과 군사기술의 집대성인 마지노선은 독일군 전체가 투입되도 정면에서는 버틸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지만 독일군은 불과 소수의 기갑세력을 벨기에의 삼림지대를 통해 우회함으로서 프랑스를 발라 버립니다.


피부가 마지노선이라면 벨기에의 삼림 지역은 바로 개가 만들어낸 상처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상처가 없었다면 애초에 환자가 녹농균에 감염되고 패혈증까지 갔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감염 경로가 병원에 오기 전이든 병원에서든 말이죠.




3. 견주는 왜 검사를 했을까


상처가 나서 왔으니 병원에서 감염 되었어도 원내 감염이 아니고 병원의 잘못이 전혀 없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병원이 상처 소독이나 항생제 처방 등을 함에 있어 잘못이 있었다면 당연히 병원에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한 겁니다. 감염내과 교수의 의견대로 개에 물려 녹농균 감염에 이르는 경우는 흔한 경우는 아니라고 한다면, 병원에 개에 물린 환자가 왔을 때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는 녹농균을 잡는 항생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도 됩니다.


일반적으로 개에 물려서 오면 Amoxicillin-Clavulanic acid (아모크라) 또는 3세대 세팔로스포린 계열이 많이 사용되는데, 이들 항생제는 녹농균에는 효과가 없습니다. (3세대 세팔로스포린 중 ceftazidime 같은 녀석은 예외) 게다가 요즘 병원 밖에서도 흔한 ESBL(+) 녹농균의 경우는 carbapenem 계열 항생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런 항생제는 처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항생제를 경험적으로 투여해 보고 효과가 없으면 나중에 사용하는 제한 항생제에 속합니다.


아마 환자가 ESBL(+) 녹농균에 감염되었다면 일반적인 항생제를 투여 받는 동안 감염이 진행되어 패혈증으로 진행되었을 가능성도 있었겠죠.


녹농균은 지역사회에도 흔하고 병원에서의 원내 감염의 원인균으로도 흔한 균이라 녹농균 감염이 어디서 이루어졌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견주의 잘못은 "기르는 개의 배양 검사 결과 1의 가능성은 없으니 2, 3 때문에 죽었을 것이다."라는 뉘앙스의 행동을 해버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가족들은 패혈증의 원인균이 어디서 감염되었는지 견주와 병원에게 책임 소재를 가리자고 하지도 않는데 견주가 너무 앞서 나가다 못해 사방으로 튀고 있는 느낌마저 드네요.







Hun.💊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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