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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부터 8월까지의 일본을 둘러싼 국제정세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일본이 항복하기 전 전쟁에 뛰어들려는 소련의 노력, 소련이 참전하기 전 전쟁을 끝내려는 미국의 노력”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와중에 반토막이 난 게 한국이다. 만약 일본이 조금만 더 일찍 항복했다면, 한반도가 둘로 갈라지는 일은 없었을 거다(정말 간발의 차이다).


이 대목에서 전제로 해야 할 게 하나 있다. 국제정치를 연구하는 이들이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안타까워하는 대목 중 하나가 1944년 말의 일본의 선택이다.


사이판이 함락되고, 레이테가 넘어갔으며, 일본으로 향하는 상선들이 침몰해 원유부터 시작해 모든 원자재들이 바다에 수장되던 그 시기. 이때 일본은 소련을 선택했다. 소련을 통한 ‘강화’를 모색하며 시간을 낭비했다.


“만약 일본이 1944년 말 모스크바를 선택하지 않고 워싱턴에 접근했더라면 미국은 평화계획을 가지고 일본을 환대했을 것이다.”

- 미국 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일본인 출신 역사학자 이리에 에리카의 발언 中 발췌


이리에 에리카 교수의 발언은 곱씹어 볼 만하다. 일본인 출신으로 역사학을 공부하고, 국제관계사를 강의한 이리에 교수는 1944년 말 일본의 선택이 무지와 착각이 만들어낸 비극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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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말이라면, 일본에게는 아직 쓸 만한 카드가 있었다. 가미카제 앞에서 미국인들은 일본 본토로의 험난한 여정을 상상해야 했고, 그 상상대로 본토에 가까워질수록 사상자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걸 확인했다. 이때라면, 아직 얄타 회담 전이었기에 전후 세계패권에 대한 삼거두(미국, 영국, 소련)의 논의가 있기 전이다. 아울러 도쿄 대공습이나 원자폭탄도 떨어지지 않았다.


미국은 충분히 일본을 받아들였을 거다. 그런데 어째서 일본은 미국 대신 소련을 택했을까? 여기에는 양보할 수 없는 하나의 고집과 하나의 착각, 하나의 망상이 작용했다.


고집은 간단하다.


‘천황제의 유지’다. 소위 말하는 국체호지(國體護持)다. 천황제를 지키기 위해선 지금 총칼을 마주하고 있는 미국보다는 소련이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착각은 좀 심각하다.


당시 일본의 지도자들은 소련에 대해 막연한 ‘동질감’을 느꼈다. 국제사회의 작동 원리가 ‘이익’이란 걸 잊어버린 유치한 접근이다. 그렇다면, 이 동질감은 어디서 온 걸까? 우선은 ‘왕따’에 대한 경험이다. 소련은 공산국가이기에 건국 이후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서방 세계로부터 철저히 차별 당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박멸의 대상으로 몰렸다. 이대로 세계가 공산화 될까 걱정하는 서방세계 기득권 세력들의 공포 앞에 소련은 언제나 무시당하고, 탄압받았으며, 외면당했다. 같은 의미로 일본도 근대화에 성공했고, 강력한 군사력을 구축했지만 동양이란 이유로 차별받았다. 이런 왕따의 동질감에 더해서 체제의 유사성도 소련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일본과 경쟁하던 영국과 미국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말했다. 그러나 일본은 한 없이 전체주의에 가까운 나라였다. 소련의 사회주의(스탈린의 독재는)는 일본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망상은 도를 넘어섰다.


당시 일본의 전쟁 지도자들은 전쟁 이후의 세계 권력구도를 예상했다. 전쟁이 끝나면, 필연적으로 소련과 미국이 대립을 할 것이란 게 당시 일본의 정세판단이었다. 이때 소련이 영국과 미국과 싸우려면, 파트너가 필요한데 그 파트너가 바로 일본이란 소리다. 만약 이런 구상이 실현된다면, 태평양 전쟁 기간 내내 일본이 꿈꿨던 ‘대동아 공영권’을 소련으로부터 인정받고 완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패전의 위기 앞에서도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이란 망상의 끈을 놓지 않았던 거다.


그 결과는 일본에게 ‘지옥’으로 돌아왔다. 국제정세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만 있었어도, 일본은 핵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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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 12일


1945년 4월 12일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망한다. 곧바로 트루먼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그리고 첫 각료회의가 끝나고, 헨리 스팀슨(Henry Lewis Stimson) 육군 장관이 트루먼과 독대를 하게 된다(모든 각료가 다 나간 뒤에).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보고했다.


“우리는 지금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1942년 8월 시작된 맨해튼 프로젝트. 수 천 명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갈아 넣은 이 프로젝트는 기밀 유지를 위해 극소수의 인원만이 프로젝트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을 뿐이었다. 과학자와 기술자들 중 대부분은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의 실질적인 목적은 모른 채 할당된 과업만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치인들과 전쟁 지도자들 중에서 원자폭탄 프로젝트를 알고 있었던 이는 루즈벨트 대통령과 헨리 스팀슨뿐이었다.


아이러니한 게 트루먼도 모르고 있었던 맨해튼 프로젝트의 전모를 스탈린은 프로젝트 초기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스파이를 동원해 맨해튼 프로젝트 초기부터 이를 감시했고, 7월 16일 첫 실험 날짜도 스파이로 활동하던 물리학자 휴크(Klaus Fuchs)를 통해 통보받을 정도였다.


1945년 4월 25일 스팀슨은 트루먼에게 원자폭탄에 대한 정식 보고서를 제출한다.


1. 4개월 정도 후에 미국은 아마도 전대미문의 전율스러운 병기를 완성할 것이다.


2. 미국은 그 완성을 위해 영국과 긴밀히 협조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미국이 제조와 사용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수년간 다른 나라는 이러한 지위에 이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3. 그러나 미국이 영구히 이러한 지위를 독점할 수 없는 것도 확실하다. 앞으로 다른 나라도 짧은 기간 내에 원자폭탄을 개발할 가능성이 크다.


4. 장래에 이러한 병기가 비밀리에 제조되어, 돌연 엄청난 파괴력과 함께 사용될지도 모른다. 이 병기를 통해 약소국이 불과 며칠 내에 강대국을 정복할 수도 있다.


5. 기술의 진보에 부응하지 않는 현재의 빈약한 도덕적 가치를 볼 때, 세계는 이러한 병기에 의한 멸망의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근대 문명은 완전히 파괴될 수도 있다.


6. 우리 지도계층이 이 새로운 병기의 힘에 대한 인식 없이 국제평화기구 문제를 논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일 것이다. 종래 생각되어 온 어떠한 관리제도도 이 위협을 관리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특정한 국가에 있어서 또는 국제적으로 이 병기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정도의 철저한 감시권 및 국내통제가 필요할 것이다.


7. 이 병기를 다른 국가들과 나누어야 할지에 대한 문제, 또는 나눌 경우 어떤 조건에 의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대외관계의 주요쟁점이 될 것이다. 미국이 이 병기를 제조했다는 것은, 그로 인해 문명이 감당해야 할 모든 비극적 상황에 대해서 도의적 책임을 스스로 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8. 반면, 원자력의 정상적인 사용방법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세계평화와 우리의 문명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보존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된다.


9.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의 행정과 입법 양 부문에 있어서, 필요한 조치의 권고가 가능한 권한을 갖는 특별위원회의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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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슨의 보고서를 보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2017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당연하게 받아들인 국제정치 역학구도와 핵무기 통제, 핵무기를 통한 국제질서에 관한 뼈대가 1945년에 나온 보고서의 내용에 다 담겨 있다.


이제 칼자루는 트루먼에게 넘겨졌다. 트루먼은 당장 두 가지를 결정해야 했다.


첫째, 원자폭탄을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둘째, 사용한다면, 어떤 나라에 떨어뜨릴 것인가?


전쟁은 거의 끝이 났다. 스팀슨의 보고서처럼, 원자폭탄은 전대미문의 전율스런 폭탄이다. 이걸 사용할 정도의 급박한 상황이 앞으로 전개될까? 그리고 떨어뜨린다면, 어디에 떨어뜨려야 할까? 독일과 일본 둘 중 하나에 떨어뜨려야 한다면 어디일까?


그러나 트루먼의 고민은 곧 하나로 줄어들게 된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베를린 벙커에서 자살한다. 그리고 며칠 뒤인 5월 7일 독일이 공식적으로 항복하게 된다.


그리고 운명의 1945년 5월 8일 트루먼은 대일 성명을 발표한다.


(상략)...일본의 지도자들과 일본군이 전쟁을 계속하는 한. 우리의 공격은 더욱 강력해지고 일본의 모든 것은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중략)...우리들의 공격은 일본의 육해군이 무조건 항복하여 무기를 버릴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군대의 무조건 항복은 일본 국민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곧 전쟁의 종결을 의미한다. 이러한 재해를 가져온 군부지도자의 세력에 종지부를 찍는 것을 의미한다(하략).”


일본은 반응이 없었다. 아니, 이미 반응을 하고 있었다. 트루먼이 대일 성명을 발표하던 그때 태평양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였던 오키나와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1945년 4월 1일 날 시작해 81일간 이어진 이 전투는 이오지마 전투에 비견 될 정도로 처참했다.


물론, 일본군 투항자가 대규모로 발생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었지만(약 1만 5천명), 지옥이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이 한 번의 전투로 미군 사망자만 2만 명이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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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은 오키나와 전투가 한참인 5월 25일 일본본토(규슈) 진공작전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바로 ‘올림픽 작전’이다. 문제는 이 작전의 예상 인명 피해였다. 오키나와에 투입된 병력의 35%가 피해를 입은 것을 감안한다면, 본토 공격에 76만 6천명이 투입되면 이 중 26만 명 이상의 인명피해가 예상된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 보고는 육군장관 스팀슨에 의해 무시됐다.


“만약 일본군이 끝까지 저항한다면, 미군의 사상자 숫자는 1백만 명을 넘을 수도 있다.”


비관적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아니,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예상일 수 있다. 상황이 비관적으로 흐르자 미군 내에서도 전략의 방향성에 대해(그러면서 자군의 존재의의를 증명하기 위한)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해군의 경우는 섬나라인 일본의 특징을 고려해 지금처럼 해상봉쇄와 공중폭격으로 일본을 고사시키는 전략을 주장했다. 반면, 육군의 경우는 일본은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이기에 본토 진공을 주장했다.


서로 저마다의 주장을 내세울 때 트루먼은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해 올림픽 작전을 승인하기로 결정한다. 1945년 11월 1일 미군은 일본 규슈로 상륙하기로 결정한다.






1부 

[러일전쟁]


2부

드레드노트의 탄생

1차 세계대전, 뒤바뀐 국제정치의 주도권

일본의 데모크라시(デモクラシー)

최악의 대통령, 최고의 조약을 성사시키다

각자의 계산1

8년 의 회, 던 축 

일본은 어떻게 실패했나2

만주국, 어떻게 탄생했나



외전

군사 역사상 가장 멍청한 짓

2차대전의 불씨

그리고, 히틀러

실패한 외교, 히틀러를 완성시키다

국제정치의 본질



3부

태평양 전쟁의 씨앗1

태평양 전쟁의 씨앗2

도조 히데키, 그리고 또 하나의 괴물

일본을 늪에 빠트린 4명의 '미친놈'

대륙의 각성완료, 다급해진 일본

대동아(大東亞)의 환상에 눈 먼 일본

일본,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렸다 1

일본,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렸다 2

일본의 패배

일소중립조약이 파기되던 순간 1

일소중립조약이 파기되던 순간 2

천조국, 움직이다



4부

왜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하려고 했을까

신성불가침으로 만들어진 권력, 덴노(天皇)

일본의 반인반신, 덴노(天皇)의 오판과 태평양 전쟁

미국과 일본의 외교와 태평양 전쟁

정신력으로 전쟁을 결정한 일본

미국의 최후통첩, 헐노트(Hull Note)

진주만 공습, 두고두고 욕먹는 이유

인류 역사상 가장 병신같은 선전포고

미국, 2차대전에 뛰어들다

전통이란 이름의 살인, '무사도(武士道)'

맥아더의 오만, 태평양전쟁 필리핀 전장

일본, 필리핀의 물가를 100배로 만들다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을 이용한 방식

전쟁은 돈으로 하는 것이다

자살특공대 가미카제(神風)의 등장

일본의 비명이 종말을 재촉했다



5부

B-29, 지옥이 시작된 일본

불의 도시, 파국으로 향하는 일본

본토결전

세계 질서를 정리한 회의

덴노를 보호하라

침몰 직전, 일본이 선택한 공허한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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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가 디비주는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괴물로 변해가는 일본

조약, 테이블 위의 전쟁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펜더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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