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즈의 열한 번째 우승
한국시리즈 5차전이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지금까지의 시리즈 전적은 기아의 3승 1패 우세. 기아가 1승을 추가하면 시리즈는 끝난다. 두산으로서는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는 경기. 기아의 대량 득점으로 일방적으로 쉽게 끝날 것 같았던 경기는, 9회말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곰들의 후반 뚝심은 무서웠다. 점수는 7-6, 기아의 한 점 차 리드. 9회말 투아웃, 두산의 마지막 공격.
주자 만루의 상황에서 기아의 양현종이 던진 공을 두산의 김재호가 힘껏 받아쳤다. 관중석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져나왔다. 김재호가 친 공은 포수의 머리 위로 높이 떠올랐고, 기아의 포수 김민식은 안전하게 공을 받아냈다. 경기는 끝났다.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고 잠실야구장이 환호에 휩싸였다. 기아 타이거즈의 열한 번째 우승이었다.
2009년의 우승에 비해 극적인 장면이 적어서일까? 김기태 감독 말고는 눈물 흘리는 선수들을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양현종이 살짝 눈물을 닦았던가? 한국시리즈가 너무 싱겁게 끝나버렸다는 이야기들도 많지만, 어쩌겠는가. 모든 한국시리즈마다 극적인 드라마를 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정규시즌 우승과 함께 한국시리즈까지, 기아는 통합 우승을 거두었다. 열한 번째 우승이다. 36년의 우리 프로야구 역사에 큰 획을 긋는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 고작해야 기아의 두 번째 우승일 뿐이라는 의견들이 있다. 큰 틀에서 굳이 해태와 기아의 구분을 하지 않아도 좋은 게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생각이 다른 걸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 각자 편한 대로 생각하면 될 일이다.
간단하게 (기아)타이거즈의 우승 기록을 살펴보자.
우승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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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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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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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승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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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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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승 1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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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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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청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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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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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승 1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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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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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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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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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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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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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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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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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승 2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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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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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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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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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승 1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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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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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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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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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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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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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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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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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승 1무 2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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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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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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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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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승 2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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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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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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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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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승 1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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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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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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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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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승 3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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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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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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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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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승 1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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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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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
프로야구의 최다 우승팀 (기아) 타이거즈. 기아의 전신 해태 타이거즈는 1982년의 프로야구 원년부터 시작해 1997년까지, 열여섯 번의 시즌 동안 9회의 우승을 기록한다. 해태는 오랫동안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다른 구단에 비해 열악한 지원과 낮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해태 타이거즈는 전체 시즌의 60%가 넘는 우승 횟수를 자랑했다.
게다가 열 번, 아니 이제는 열한 번을 경험한 한국시리즈 우승 확률 100%의 DNA는,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타이거즈 고유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두산의 우승을 점치거나 기아의 우승에 의구심을 가졌지만, 이번에도 기아는 한국시리즈 우승 확률 100%의 DNA를 야구팬들에게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지역연고제로 운영되는 우리의 프로야구에서 해태는 한때 전라도를 상징하기도 했다. 광주의 비극과 함께 찾아온 암울했던 군사정권 시절.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외에는 마음 줄 곳 없는 많은 전라도 출신들은 야구장을 찾았다. 광주의 무등경기장 외에도 서울과 부산과 인천과 대전의 야구장을 찾은 그들은 목이 터져라 해태를 응원했고 <남행열차>와 <목포의 눈물>을 불러댔다. 당시의 해태 타이거즈는 전국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처음 시작부터가 전국구 구단이었다.
흔히 IMF라 불리는 그 시절. 모기업 해태는 경영난을 견디기 힘들어, 팀의 선수들을 한 명씩 팔아치워가며 겨우겨우 구단을 유지하는 상태였다. 선동열을 팔았고 이종범을 팔았고 조계현과 이강철과 임창용을 팔아가며 연명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홉 번의 우승을 이끌었던 김응룡 감독마저 해태를 떠나 삼성의 감독이 되었다. 그런 후에도 끝내 해태는 야구단을 감당하지 못했고, 해태 타이거즈는 기아 타이거즈로 이름을 바꾸어야 했다. 2001년의 일이다.
모기업이 바뀌고 팀의 이름이 바뀐 기아는, 모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많은 것들이 바뀐 타이거즈의 상황에 아직 적응을 못하고 있는 팬들도 많았다. 야구장에는 아직도 해태라고 써 있는 유니폼을 입고 오는 팬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과자 팔아가며 야구단을 이끌던, 우승한 선수들에게 해태과자 종합선물세트를 선물하던, 그 시절의 해태 타이거즈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2009년 기아 타이거즈는 SK를 꺾고 드디어 열 번째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1997년 아홉 번째의 우승에서 멈춘 지 12년만에 마침내 염원했던 우승의 숫자를 만들어냈다. 한국시리즈 10회 우승. 당시 운동장에서 마구 부둥켜안은 채 엉엉 울던 기아 타이거즈 선수들의 모습이 아직 또렷하다. 특히 이종범의 눈물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의 눈물은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시리즈 차체도 워낙 극적이었지만 무언가 한풀이를 했다는 느낌이 있었다. 팬들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타이거즈와 관련된 많은 이들이 눈물바다였다.
12년 전, 9회의 우승을 했던 리그 최강의 팀임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 선수들과 감독과 야구단을 차례로 남의 손에 넘겨야 했던 해태 타이거즈. 선수들과 팬들의 오래된 설움이, 마침내 그때의 열 번째 우승으로 해소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8년 뒤. 기아 타이거즈는 우승 트로피를 하나 더 늘렸다. 8년 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선수들은 몹시 기뻐할 뿐 그다지 울지 않았다. 한국시리즈를 순탄(?)하게 치른 탓도 있겠지만, 예전과 같은 묵은 한이 이제 선수들에게는 없어 보였다. 그게 좋아 보였다.
지난 시절 한국시리즈에서 기아에게 패한 준우승 팀들을 확인해 본다. 삼성이 세 번, 빙그레(한화)가 세 번 해태에게 물을 먹었다. 빙그레에게 유독 미안하다. 빙그레는 위의 세 번과 함께 1992년에도 롯데에 막혀 준우승에 머무르고 만다. 5년 동안 4회의 준우승이라니. 삼성이야 훗날 8회나 우승을 기록할 만큼 리그를 지배하는 강팀이 되었지만, 한화(빙그레)는 1999년에 단 한 번 우승한 것이 전부일 뿐이다. 한화가 서러운 준우승 5회의 빚을 갚을 날이 빨리 와야 프로야구가 재미있어질 것 같다.
2009년의 데자뷰
올해 한국시리즈를 보면서 2009년을 여러 번 떠올렸다. 당시의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으로 야구사의 한 귀퉁이 몇 줄 정도는 적어도 차지할 나지완은, 3차전 기아의 위기상황에서 9회초 2점짜리 홈런을 터뜨렸다. 홈런 타구가 향한 곳은 공교롭게도 2009년 끝내기홈런의 그 자리와 비슷한 곳이었다. 그 홈런으로 나지완은, 2차전의 본헤드 플레이로 인해 쏟아졌던 비난을 깨끗이 지워냈다.
2차전을 완봉승으로 완벽하게 막아내고 6차전에 선발로 예정되어 있던 양현종이, 5차전 9회말 기아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야구장 전체가 술렁였다. 2009년의 또 한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아킬리노 로페즈. 당시의 우승 주역 로페즈는 1차전과 5차전에 등판했다. 1차전은 8이닝 승리투수, 5차전은 무실점 완봉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로페즈는 7차전의 8회 5-5상황에서 또다시 등판했다. 오늘의 양현종에게서 당시의 로페즈의 모습이 보였다.
5차전의 결정적 장면 세 가지
이범호의 만루홈런 - 3회 1-0, 만루의 상황에서 이범호가 타석에 섰다. 한국시리즈에서 이범호는 누구보다도 부진했다. 타석에 선 이범호의 시리즈 타율은 8푼 3리(12타수 1안타)였다. 그나마 전날의 4차전에서 겨우 첫 안타를 기록한 상태였다. 두산의 선발 니퍼트가 초구를 던졌다. 이범호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아갔고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은 멀리 날아갔다.
기아 관중석의 함성이 폭발했다. 니퍼트는 공이 가는 곳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홈런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2000년에 한화에 입단해 2006년에 준우승만 한 차례 경험한, 이범호는 드디어 챔피언반지를 낄 수 있게 되었다. 시리즈를 치르는 동안 터지지 않는 방망이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겠지만, 결국 그는 만루홈런 한방으로 챔피언반지를 손에 낄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충분히.
7회말 최주환의 타석, 비디오 판독 - 7회말 7-5. 원아웃에 주자 1, 3루의 상황에서 뒤지고 있는 두산 최주환의 타석. 최주환이 친 공은 유격수 앞으로 향하는 느린 땅볼이었다. 기아의 유격수 김선빈이 빠르게 달려오며 공을 잡아 러닝 스로 자세로 1루수 김주찬에게 던졌다. 타자 최주환은 타격 후 죽어라 1루로 내달리다, 베이스를 향해 온 몸을 던지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
김선빈이 던진 공과 타자 최주환의 팔이 거의 같은 순간 1루에 도착했다. 심판은? 심판은 아웃을 선언했다. 두산측에서는 즉각 비디오판독을 요청했다. 비디오판독 결과... 판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 사이 3루 주자는 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투아웃에 2루가 되었고, 점수는 7-6이 되었다. 이 점수는 결국 바뀌지 않았다.
슬로비디오로 나오는 이 장면을 보고 또 보았다. 김선빈이 송구한 공을 1루수 김주찬이 점프하면서 잡았다. 그와 동시에 최주환이 1루로 들이닥쳤다. 각도에 따라 슬로비디오를 여러 번 보았지만, 내 눈에는 아웃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 상황이 세이프 판정을 받았다면 원아웃에 주자 1, 2루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만약 그랬다면... 아무리 보아도 두산의 팬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판정이었다.
9회말 양현종의 세이브 - 양현종이 등장하는 순간 잠실야구장은 몹시 소란스러워졌다. 어떤 기아 팬들은 환호를 보냈지만, 다른 어떤 팬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7-6의 한 점 차 리드. 원아웃 주자 1루의 상황. 두산의 조수행이 3루 방향으로 기습번트를 대고 1루를 향해 쏜살처럼 뛰어나갔다. 달려 들어오며 공을 잡은, 바뀐 3루수 김주형이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다.
오랜 세월의 만년 유망주 김주형은, 1루수와 한참 떨어진 곳으로 공을 던졌다. 결정적인 상황에서의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순식간에 원아웃 주자 2, 3루가 되었다. 기아의 덕아웃과 관중석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다음 타자 허경민을 양현종은 고의사구로 1루에 내보냈다. 어차피 1루를 비우고 수비를 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승부수를 던져야 했다. 이제 원아웃에 주자 만루. 외야플라이면 동점, 안타 한방이면 역전으로 경기가 끝날 상황이었다.
두산의 다음 타자 박세혁이 타석에 섰다. 양현종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공을 뿌렸다. 2구째에 박세혁이 친 공은 유격수 김선빈 앞으로 가는 짧은 플라이가 되었다. 심판은 인필드 플라이를 선언했다. 투아웃에 주자 만루. 기아의 행운이었다. 승부는 점점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다. 대타 김재호가 다음 타석에 들어섰다.
한국시리즈에서 아직 안타를 기록하지 못한 김재호는, 양현종의 초구에 배트를 힘껏 휘둘렀다. 공은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높이 솟아올랐다. 콜을 외치는 기아 포수 김민식의 글러브에 공이 들어가면서, 2017년의 한국시리즈가 끝났다. 기아 타이거즈는 8년만에 다시 그리고 열한 번째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MVP는 양현종이었다. 양현종이 자신의 손으로 팀과 자신의 한국시리즈의 첫승을 이루어냈고 또한 마지막을 지켜냈다. 그리고 기아 타이거즈의 영원한 유망주(?) 김주형을 구해냈다.
아직은투아웃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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