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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리영희의 <대화>를 읽었다. 사실 한국 지식인들의 책은 그리 많이 읽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일부러 피한 감도 없지 않다. 현대 한국의 부조리에 충분히 일조한 사람들이 비겁하게 안전한 곳에서 논평을 한다고 생각했다. 선입견은 일반대중들에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던 분들의 감추려던 이면을 볼 때마다 확고해졌다.


삶에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은 드물다. 리영희는 드문 사람 중에 한 사람인 것 같았다. 다른 글들을 읽다보면 리영희의 삶과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리영희에 대해 적어놓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 앞에 붙은 리라는 성에서 느껴지는 이질감과 고집스러움은 여전히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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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나라에 뿌리 깊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깊게 얽힌 사람이 적다. 그래서인지 김훈의 남한산성에서 가장 동질감을 느낀 인물은 보리쌀이라도 주면 청군을 안내한다고 칼 찬 양반 앞에서 냉소적으로 시위하듯 말하던 뱃사공이었다. 일재 저래 막다른 골목에 몰려 니네가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든 것 아니냐는 심사를 그렇게 풀어놓는 것 같았다. 죽은 사공은 외환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남발한 신용카드로 신용불량자가 되고 음독자살한 사람들을 생각하게 했다.


무의식 중에 남아 있는 인텔리에 대한 거부감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영희의 대화를 집어들은 건 이제 예의상이라도 그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마음에 그만한 여유는 생겼다. 지난 시절 목적을 갖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글을 쓰는 것 말고는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 때, 지지와 응원의 뜻으로 트위터에 꼬박 꼬박 글을 링크해 주시던 분이 존경하는 분이라고 했다.


막막할 때 함께 분노하고 욕해주는 타인이 있다는 게 참 고마운 일이었다. 고마운 마음이 들면, 다른 마음도 움직이기 마련이다. 무분별한 전도를 하는 종교인들에게 포교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말로만 하는 옳은 소리는 상대방을 움직이지 못한다. 종국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상대를 비난하게 된다. 책표지에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라고 적혀있다. 평범한 사람의 삶과 사상도 충분히 무게감이 있다. 읽어보니 짧게 감상을 쓸 글은 아니다. 그래도 글로 남기는 건 나름의 답례다.


대화를 나누는 사람 둘이 다 인텔리다 보니 그들의 언어를 쓴다. 계급별, 직군별, 연령별, 지역별로 미묘하게 구분되는 언어가 있다. 방언이나 은어 혹은 신조어로 그룹의 차별성을 드러낸다. 식물이 움트는 곳마다 새로이 가지를 뻗는 것이나 학문이 분화되는 과정이나 언어가 갈라지는 과정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외부와의 차이는 내집단을 단단히 결속시킨다. 처음에는 점잖은 인텔리들의 대화가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꼬장꼬장하고 꺾이지 않은 자존감과 자신이 추구한 삶에 대한 자부심은 유홍준 교수의 일본문화 유산 답사기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대화를 따라가며 이해하는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다.


꺾여 보지 않은 사람만이 버텨낼 수 있는 그런 시련들이 삶에 존재하는 듯하다. 역으로 꺾이지 않아서 시련이 커질 수도 있다. 자신의 꺾이지 않음으로 고통을 받은 가족들에 대한 회한이 보였다. 세상과 조금씩 타협하다가 임계점을 넘으면 사람들은 변한다. 바람에 흔들리듯 조금씩 변해가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사람이 불편할 법 하다.


강준만의 현대사 산책을 리영희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느낌도 있다. 한 때 자신이 빨치산이었고 소설 지리산을 지은 이병주는 박정희 정권의 파편이 주는 부를 영위하면서도 그의 독재를 고발하고자 자료를 모았다. 어느 순간 박정희의 자서전을 집필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오공삼이 왜 뜬금없이 지리산을 읽었다고 하는지 깨달았다. 여전히 아버지의 그늘을 살고 있다. 어금니 아빠의 딸이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제 아비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존하는 것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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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되지 못하는 태생적 인텔리의 삶을 통해 인텔리가 되지 못하는 노동자의 삶을 본다. 책을 구하기 힘든 시절 그의 독서는 주로 외국어로 이뤄졌다. 일어, 영어, 프랑스어, 그리고 한자. 확실히 예전엔 지식과 독서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았다. 그 장벽이 신분을 가르기도 했다. 마을마다 세워진 도서관을 보면서 세상이 진보하는 방향성을 느낀다. 얼마 전에 읽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감옥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으로 거론 되었다. 일방향이지만 책은 시간을 연결한다.


그의 독서편람을 보면서 지식인들의 독서는 탑을 세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하면 체계 없이 한글만으로 이루어진 나의 독서는 툭툭 던져놓은 고갯마루의 돌무더기들 같다. 빈틈이 많고 생각의 짜임이 엉성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한 시대에 사상의 은사라고 불리던 사람이다. 그런 분들 덕분에 한국어를 사용하는 문화의 역량이 그만큼 자랐다. 노동계층의 사람이 당대의 지식인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진보의 증거다.


민중의 힘이 분출하는 세계사적 에너지가 분출하는 시대를 관찰하며 사고하고 살았던 삶은 행복했을까. 불합리와 모순과 억압을 실감하게 하는 지식은 불행했을까. 대화에서는 긍정적인 시각과 더불어 간간히 쓴웃음 같은 냉소가 느껴진다. 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선한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을 많이 겪었던 탓이리라.


역사 앞에서 특출난 개인은 고통스러운 역할을 스스로 선택한다. 어떤 상황에서건 누구나 옳은 선택을 할 기회는 주어지지만 더 특별한 사람들이 있는 건 확실하다. 그 사람들은 일개미의 탐색본능을 죽이고 천정에 거꾸로 매달리는 꿀단지 개미처럼 고통스러운 선택을 한다.


뉴스를 만드는 사람의 삶이라서 개인의 삶과 사상을 읽는 것만으로도 현대사의 한 측면을 이해하게 된다. 지식이 특별한 계층에게만 주어지던 시대와 달리 손가락 하나로 다른 지식에 접속하는 시대에 산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진보가 이루어지리라 믿었던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다. 책이 시간을 연결한다면 네트워크는 공간을 연결한다.


전쟁위협이 고조되었을 때 기억에 남는 뉴스가 생각났다. 미국과 소련의 군사 인공위성은 한반도에서 농구공만한 크기의 이동을 감지할 수 있다고 세상이 시끄러웠던 뉴스였다. 그때 공중파 뉴스에서 인터뷰하던 분이 이분이었구나. 미국 신문에 실린 결혼식 기사를 보고 추론하고 확인한 이야기다.


자기 집 앞마당에서 결혼식을 할 사람이 민간 위성업자에게 촬영을 의뢰한다는 기사를 보고, 군사위성의 성능을 추론한 뒤, 군사 연구소에 확인했다. 여전히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책임과 권한이 없기에 서슴없이 전쟁을 이야기하는 지도 모른다.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을 기자 자질이 가장 부족했다고 평하는 걸 보고 웃어버렸다. 김대중 주필은 어쩌면 저 평가를 핑계로 지배층이 원하는 논조의 기사를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훌륭한 기자의 청사진이 달랐을 수도 있지만 공개적으로 부정적인 인물평을 해버리면 덜 성숙한 사람은 악감정을 품기 마련이다. 또 자신을 키워 상대와 견주기보다는 상대를 쓰러뜨려 자신과 눈 높이를 맞추는 방법을 선호한다.


지금은 국립묘지에 안장된 황장엽에 대한 평도 인상적이다. 자기 상실에 빠져 일방적인 변명을 하던 사람이란다. 권력의 수혜를 누리다 눈밖에 나와 망명하고 말을 바꾼 사람이 선생의 눈에 온전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대단한 지식인이며 사상가로 존중하던 조갑제씨의 평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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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말미에 거주하는 곳 산본과 수리산이라는 지명을 읽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수리산에는 딱 한번 가 본적이 있다. 염색공장에서 일을 할 때였다. 일 년에 한 번 회사 행사인 야유회가 수리산으로 잡혔다. 야간조 일을 마치고 멍한 기분으로 산에 끌려갔다. 봄인지 가을인지 계절이 분명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산중턱에서 산행을 하기 전 기념사진을 찍고 행사 실무자의 일정계획을 듣고 있을 때였다. 완만하게 산을 두르는 임도를 타고 노부부가 다가왔다. 몸이 성치 못해 힘겹게 걸어 오던 남자는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에게 물었다. 여자는 웃는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이분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서 젊은 사람들만 보면 좋아서 말을 거신다. 한동안 몸이 안 좋으셨다가 요즘 회복 되셔서 이렇게 조금씩 산책을 하신단다.


젊은이들이 이렇게 건강하고 밝으니 앞으로 이 나라가 잘 될 거라는 덕담을 들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좋은 소리를 들었으니 꾸벅 인사를 하고 산을 올랐다. 돌아보니 줄에 메여 다가가지는 못하고 강아지들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는 어미개의 눈빛이었다. 뭘 저렇게 따듯한 눈으로 바라보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2000년도 초반에 그렇게 한 번 만났었다. 책을 덮을 무렵에야 그때 눈빛과 미소가 기억났다.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던 사람일 것 같았는데 그렇게 접점이 있었다. 십년도 훨씬 지나 그분이 들려주던 덕담의 의미를 곰씹는다. 표정을 보면 그래도 행복하셨던 것 같다. 아내 분 표정도 그렇고, 세상 미워하고만 살지 못하게 하는 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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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