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0만 원 짜리 선물
열흘간의 긴 추석연휴가 지난 후, 띄엄 띄엄 업뎃되는 딴지일보 편집장의 페이스북을 염탐해보니 인도네시아 우붓이라는 곳에서 원숭이들과 바나나를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망중한을 즐기다 온 듯 싶다.
법원은 이때다 싶어 복귀한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에게 납세고지서를 날렸다. 딴지일보 특성상, 기사와 관련된 고소, 고발이 빈번하다보니 죽돌 편집장은 이를 선물이라 미화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 떡하니 앞, 뒤로 흔들어 2000만원에서 쬐깨 모자란 금액의 과태료 처분 결정서가 도착해있었던 것.
서울서부지법에서 발송한 것이었다. 딴지 유저 한 분이 자유게시판으로 퍼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편집장은 속으로 고마워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1000만원짜리 한 장, 950만원짜리 한 장.
이유는 지난 2016년 4월 실시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기간 동안 정당이나 후보자 등에 관한 게시물 작성시 실명제로 작성하도록 조치하지 않은 이유였고, 다른 한 장은 지난 5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쉽게 말해 딴지에선 평소에도 익명으로 쓰던 거 그냥 익명으로 쓰셈! 이러고 공직선거법 제82조의 6 제1항, 제6항, 제7항의 법규정을 개무시한 것이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이 법조항이 위헌이라며 지난 2013년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으며, 2015년 7월 헌법재판소로부터 ‘그거 위헌 아니야!’라고 개무시 당한 바 있다. 당시 김 총수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최모 대표 그리고 네티즌 2인과 함께 위헌법률심판 청구 및 헌법소원을 제시했다.
2. 선거기간에 실명제 하라고? 조까!
인터넷언론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 총수와 최 모 대표는 이 법조항 때문에
1. 직업수행의 자유가 침해된다!
2. 인터넷언론사 이용자(주 : 경력직 네티즌)들의 게시물에 대해 사실상 사전검열을 받게 하는 것으로 헌법상 금지되고 있는 사전검열금지원칙에 위배된다! 또 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상인 ‘인터넷언론사’의 범위를 확정 할 수 없다!
3. ‘지지‧반대’가 대체 뭥미? 그 의미를 알기 어렵다! 그래서 명확성원칙에 위배된다!
4. 언론의 자유도 침해한다!
5. 네티즌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다!
... 라고 버틴 것이다. 그리고 친절도 하시지.
6. 외국에 있는 대한민국국민, 우리는 이를 재외국민이라고 한다! 재외국민은 그렇게 되면 선거기간 동안 자신의 실명을 인증할 방법이 없어, 게시물을 작성하고 싶어도 못 작성하기 때문에 차별하는 것이다!
라며 외국에 계신 재외국민 동포들이 느낄 소외감까지도 배려했다.
김 총수야 워낙에 딴지 걸기에 달인이고, 준법적인 의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라 ‘이 양반 또 헌법소원 청구했네!’라고 생각이 들만도 하지만, 이 분들의 이러한 주장은 듣고 보면 영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2008년과 2012년에 인터넷실명제를 규정하고 있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 44조의5 제1항 제2호와 시행령이 네티즌의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인터넷게시판 운영자(김 총수와 같은)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했다.
헌법재판소 논리는 이렇다.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이지만, 선거기간 실명제는 위헌이 아니라고 한 것. 김 총수 빡 돌만 했다. 님! 선거기간엔 왜 위헌이 아님?
헌재에서 돌아온 대답은 이 법에서 ‘인터넷언론사’란 개인 카페, 블로그를 말하는 게 아니라 딴지게시판 같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말하는 거다. 그리고 ‘지지‧반대’라는 건 후보자나 정당의 선거운동이라 할 수 있는 내용의 글이고, 대체적으로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은 알 수 있기 때문에 딴지일보가 주장한 것처럼 명확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딴지일보가 주장하는 기본권침해가 이뤄지는 건 맞지만, 선거기간 동안만이고, 이 기간 워낙 중요하지 않니?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사람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라고 하지 않니? 근데 만약에 가짜 뉴스 때문에 선거에서 떨어져봐! 얼마나 그 피해가 크니! 그러니까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를 위해서는 그 기간 동안 참아야해! 라면서 헌재가 딴지일보의 주장을 내쳐버렸다.
재판관 9명중 5명이 요래요래 대답했고, 이정미(헤어롤 두 개 머리에 말고 503 탄핵결정당일 출근하신 분), 김이수(국회에서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부결되고 국감장에서 자유당이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데도 의자에 앉아 1시간 30분 버틴 분), 이진성(이니가 새로 지명한 신임 헌법소장), 강일원(503 탄핵사건 주심 재판관) 재판관 4분은 딴지일보의 주장이 맞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이 네 분 반대의견을 보면 “익명표현이 무책임하고 악의적으로 행해지거나, 흑색선전에 악용되어 선거의 공정과 평온을 위협한다면 처벌 등 다른 수단으로 대처해야지 익명표현의 자유 자체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면서 “특히, 정치적 보복이나 차별의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전파해 권력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할 수 있으려면 익명이나 가명으로 하는 표현이 자유롭게 허용돼야 한다”고 대부분 김 총수 의 주장과 비슷한 말을 결정문에 써 놓았다.
3. 국회의원들이 못해도, 딴지는 계속 개긴다!
사실 이 법조항에 대해서는 딴지일보와 같은 의견이 많아 지난 총선 직전에 폐기될 뻔 했으나 소리 소문 없이 좌절됐다. 지난 2015년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실명제를 폐지하는 법개정안을 발의했고, 그해 8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여야 의원이 이를 통과시키기로 합의까지 했었다. 당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여야가 합의했으니 소위만 통과하면 본회의 통과는 무리 없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떵떵 쳐댔다. 2015년 7월 31일 뉴시스가 이를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 링크).
그런데 그 다음날 동아일보가 사설로 “헌재에서 합헌결정난 법안을 왜 없애려고 하냐! 국회의원 당신들 약속지켜라!”고 광광됐다(관련기사 - 링크). 이게 원인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나, 며칠 뒤 해당 법안은 국회 정개특위 소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어찌된 영문인지 국회의안정보시스템 회의록을 살펴봐도(2015년 8월 18일자), 당시 새누리당 여상규 의원이 헌재 결정이 합헌으로 났으니 이를 좀 고려하라 정도의 미약한 발언만 있을 뿐, 어떻다! 저떻다! 라는 말이 정말 쏙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선거보조금 지급, 여론조사 공표 같은 문제만 오지게 토론한 것.
이에 기자가 10월이 가기 전 진선미 의원실에 전화를 넣어 물어보니 “여야 의원들 모두 이 법은 있는 게 낫다. 없으면 날뛰는 애들이 많다고 해 대안반영 후 개정안은 폐기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국회의원 모두가 법안의 당사자들이다 보니 익명 뒤에 숨어서 선거기간 가해지는 흑색선전, 가짜 뉴스로 인한 피해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 후로 두 번의 선거가 치러졌고, 이 기간에 헌재에서 결정나도 우린 못 받아들여! 라면서 계속 개긴 딴지일보는 결국 이번에도 2천만원이 쪼금 안 되는 과태료를 때려 맞게 된 것이다.
전공이기도 하거니와 본 사안에 매우 관심이 많아 확인해 보니 과태료 처분 고지서를 받은 죽돌 편짱은 ‘최대한 더 개기겠다’는 해맑은 자세로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고 한다(딴지는 맨날 가오 챙기지말고 이런 거 티 좀 더 팍팍 냈으면 한다. 그래서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기도 하지만).
이의신청서 내용은,
우리는 아직도 인터넷실명제가 위헌이라는 헌재 판결을 믿는다. 그럼 언론사에서 선거기간 후보자와 정당 같은 선거 관련 사설 내보내는 것은 실명제 조치 위반 아니냐? 언론사 사설은 되고 우리 게시판 댓글은 왜 꼭 실명제 해야 하는데? 그리고 가짜뉴스가 문제되는 게 실명제를 안 해서냐? 지난 번 대선 때 보니 가짜뉴스 대응은 네티즌들이 팩트 체크해서 다 하던데? 그러니까 사상의 자유 시장 이론을 적용해야 하는 거 아냐? 국정원 댓글 부대 작전수행이 문제지, 네티즌 의견 때문에 문제냐?
실명제 해도 작정하는 애들은 다른 사람 이름 도용하거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다는 것이다. 당신들 돈 안 드는 선거 하자며? 그럼 돈 안 드는 인터넷 통해서 홍보하고, 캔디고처럼 우리 아버지는 안돼요! 라고 옆집 살던 사람, 뒷집 살던 사람, 갑질에 당한 사람들 익명으로라도 나와서 알리게 해야지! 실명으로 해봐라! 솔직히 안 쫄리나. 그리고 그거 로그인 하려면 귀찮아서 누가 아는 척 댓글 달겠니? 안 하고 말지.
그리고 족벌기업을 지향하는 딴지그룹 같은 인터넷매체 말고 대부분은 기자 서너 명 두고 운영하고, 수익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매 번 천만 원씩 과태료 물라는 건 차라리 선거기간 동안 댓글창이랑 자유게시판 아주 막으라는 거 아니야? 그 벌금 너무 쎄. 한번 때려 맞으면 언론사 문 닫아야 한다고! 솔직히 쫄린다!
라고 구구절절 작성해 제출했다.
이의신청이 안 먹히면, 위헌제청신청도 하고 이게 또 기각되면 또 다시 헌법 소원도 불사할 듯 보인다. 그간의 경험상 김 총수도 죽돌 편집장을 말릴 거 같지 않아 보인다. 말린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지만.
벌금 낼 때 내더라도 아주아주 늦게 내겠다는 죽돌 편집장의 의도가 확연히 보인다. 뭐 죽돌 편집장이 낸 이의신청서 내용이 아주 틀린 말이나 엄살은 아니다. 대부분의 국내 헌법학자들이 논문을 통해 이러한 견해를 밝히며 합헌결정을 낸 헌법재판관 5명의 의견을 세게 비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결국 딴게이 경력직 네티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미국의 유명한 연방대법원 홈츠 판사는 Abrams v. United States 사건에서 “진실에 대한 최고의 덕목은 사상의 경쟁을 통해 받아들여진 사상 그 자체의 힘이다”라고 설시했다.
쫄지마! 시바!
헤르매스 아이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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