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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패밀리 레스토랑(줄여서 ‘파미레스(ファミレス)’라고 함)이 많다. 한국처럼 비싸거나 거창하지 않고, 소박한 느낌에 가격도 저렴하다. 단품은 400~500엔이면 먹을 수 있고, 런치세트도 700~800엔이면 먹을 수 있다(1000엔이 넘는 메뉴도 있지만, 2000엔 넘는 메뉴는 드물다).


지방마다 다르긴 하지만 도쿄 기준으로 대표적인 패밀리 레스토랑엔


가스토(ガスト) / 데니즈(デニズ) / 조나산 (ジョナサン)


이 있다. 체인점이라 그런지 오래 있어도 별로 눈치를 주지 않아서, 이름만 ‘패밀리 레스토랑’이지 혼자 가기에도, 돈 없이 가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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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레스토랑 체인 중 하나인 '조나산(ジョナサン)'


한국식당과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이어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이하 '바이토')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가장 짧게 했던 바이토이긴 하지만 최대한 아는 한도 내에서 말하려고 한다.



패밀리 레스토랑 : 도쿄23구의 조용한 주택가 근처. 시급 950엔~1000엔


내가 일했던 곳은 도쿄의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집에서 전철역 가는 길에 있어 밥을 먹은 적도 있는 곳이었다. 어느 날 아르바이트 정보지에서 이 패밀리 레스토랑 구인광고를 보았고, 집에서 가까운 게 좋아서 고민하지 않고 지원했다. 할 말까지 종이에 적어놓을 정도로 두근반 세근반 전화를 했는데, 저쪽에서 당장 저녁에 면접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바로 오케이했다.


다른 레스토랑은 모르겠으나 내가 일한 곳은 면접 때 적성검사 같은 것을 보았다. A4 2장 분량의 검사였는데, 한자를 그렇게 잘 알지 못하던 당시에게 크게 어려울 거 없는 내용이었다. 사실 말이 적성검사지 당연한 질문들이었다. 예를 들면,


“남들과 협동해서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까?”


이라는 질문에,


좋다 / 조금 좋다 / 싫다 / 아주 싫다


를 체크하는 식이었다. 어째 의무적으로 하는 것 같은 느낌. 점장은 일손이 부족해서인지 집이 가까운 것이 맘에 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합격통보를 해주었다. 일주일 정도의 연수 뒤(돈은 따박따박 준다) 정식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131211902.jpg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 중 하나인 '사이제리야(サイゼリヤ)'


일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 계산(레지)


- 세팅: 테이블에 포크, 스푼을 놓는 것 뿐만 아니라 런치타임이 끝나면 메뉴판을 바꿔놓아야 한다. 기간한정메뉴 등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메뉴판은 보통 2~3종류.


- 기본 서빙


- 음료제조: 음료수는 컵에 얼음과 음료를 채워서 나가면 되고, 맥주는 기계에서 뽑으면 되므로 크게 어렵지 않다.


- 뒷정리: 손님이 나가면 그릇을 수거한 뒤 남은 음식은 음식쓰레기통에 넣고 빈 그릇은 주방에 준다. 유리컵은 주방에 있는 설거지 기계에 넣는다.


- 청소: 홀, 화장실, 음료수기계(+맥주기계) 청소를 해야 한다. 이 중 화장실은 시간마다 더러운지 안 더러운지, 휴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체크했다. 문제 없으면 체크하는 종이에 ‘확인’표시하는 건 필수


-정산: 지점마다 다른데 내가 일한 곳은 한문도 모르는 외국인에게도 정산을 시켰다. 기계가 알아서 하므로 돈만 잘 세면된다.



편의점보다는 하는 일은 적으나 움직이는 양은 많다. 주문 받으러 테이블 갔다가 알려주러 주방 갔다가 음료 갖다 주러 테이블 갔다가 음식 받으러 또 주방에 가는 등 엄청 움직이므로 자연스레 다이어트가 될 정도다.



패밀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의 특징

편의점보다 진상손님은 적은 편

- 혼자 혹은 연인, 가족이라 오는 곳이라 그런지 자기들끼리 먹고 자기들끼리 말하다가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바이토한테 별 관심이 없다). 편의점엔 돈 던지고 가는 사람, 앞에서 말 못하고 전화로 불평불만 토로하는 사람, 직원들이 굽신굽신하는 모습을 보고 스트레스 푸는 사람 등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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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들도 일한

- 한참 공부할 나이인 고등학생이 일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 너무 놀랐다. 당연히 대학생인 줄 알았는데 집에 갈 때 보니 교복이어서 눈을 의심했다. 한국보다 대학에 가는 비율이 낮아서 그런 건지 자립심을 키우기 위함인지 잘 모르겠으나 바이토하는 고등학생들이 많다. 밤 10시 이후에는 일할 수 없으므로 보통 하교 후인 오후 5시에서 밤 9시까지 일한다.


위생관리가 철저

- 매~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일하는 중간에 의무적으로 손 닦는 시간이 있고, 손님상에 음식을 가져가기 전에도 손을 소독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더러운 걸 만지고는 접시를 못 가져가게 하고 음료수 통이나 맥주도 매일 청소하는 등 위생관리에 철저하다. 일할 때 보고 한 게 있어서 아직도 믿고 먹는다.


복장관리도 철저하다.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건 혹은 빵모자를 착용해야 하며, 홀에 나가기 전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끔하게 했는지 점장이 체크한다. 내가 일한 곳은 두건 안으로 머리카락을 다 집어넣는 형태였다.


교육 철저

- 체인점이라서 그런지 피곤할 정도로 교육이 많았다. 손님에게 하는 대사를 로봇처럼 외워야 하는 것은 물론 홀에 들어가기 전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도 한다. 외국인 바이토나 일본인나 똑같다. “손님에게는 무조건 죄송하다고 말하라”고 강조한다.



패밀리 레스토랑 바이토는 쓸데없는 일을 안 시켜서 좋다. 매뉴얼대로만 딱딱 움직여주면 무리한 요구나 부탁을 하지 않는다. 돈을 떼어먹거나 덜 주는 일도 제로에 가깝다. 일본사회에선 신용이 깨지는 걸 매우 치명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이토의 권리를 해치는 등의 위법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권리를 보장해주는 만큼 ‘바이토의 의무’를 강조한다. 시간 남는다고 근무 중에 수다를 떨거나 해서는 안 되고, 손님이 없으면 일을 만들어서라도 해야 한다(차라리 손님이 있을 때가 마음 편하다). 가끔 유도리 없을 정도로 매뉴얼대로 돌아가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실수가 적다. 


힘든 건 메뉴가 정말 많다는 것 정도. 기간한정 메뉴, 이번 달 메뉴, 특선메뉴 등 기본메뉴말고도 많은데다가 옵션도 많다(당연히 외우고 있어야 한다). 그나마 ‘연수중’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으면 어버버해도 손님들이 이해해주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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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레스토랑 체인 중 하나인 '코코스(ココス)'의 메뉴

햄버그 스테이크만 요리방식 / 사이드 / 소스 등 고를 수 있는 옵션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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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레스토랑 체인 중 하나인 '코코스(ココス)'의 메뉴2

아침메뉴, 시즌메뉴, 런치메뉴, 키즈메뉴...


바이토에게 밥을 공짜로 주는 경우는 반반이다. 체인점에는 식사제공에도 매뉴얼이 있는데, 내가 일했던 곳엔 ‘아르바이트생 할인’이 있었다. 800엔짜리 스파게티를 400엔에 먹게 해주는 제도였다. 계열사가 큰 곳은 한 달에 한번 할인쿠폰 묶음을 주기도 한다(계열사의 다른 체인점이나 가게에서 싸게 물건을 구입하거나 먹을 수 있다). ‘마카나이 있음(まかない有)’이라고 쓰여 있으면 식사를 준다는 말이니 참고하시길.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바이토)의 이미지


일본엔 정직원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버는 사람도 많지만, 바이토로 먹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프리터). 노동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바이토 하는 것과 바이토 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기도 해서 학생들은 물론 주부들도 많이들 바이토를 한다. 형편상 하는 경우가 가장 많겠지만, 갖고 싶은 게 있거나 심심해서, 혹은 자기계발을 하기 위해(제빵사가 되고 싶어서 빵집에서 바이토를 한다던가) 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학원에서 만난 H군은 도쿄 메구로구(도쿄의 부촌)의 3층짜리 주택에 사는 친구였다. 아버지가 잡지에도 나오는 꽤 유명한 건축가였다. 일본에 머문지 오래되지 않은 때여서 저런 애라면 바이토 같은 건 한 번도 안 해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H군은 일주일에 2~3번은 편의점에서 바이토를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20살 이후부터는 용돈을 넉넉하게 받은 적도 없고, 자신도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선 대부분의 부모가 아이가 성인이 되면 아예 용돈을 주지 않거나 최소한의 용돈만 준다고 한다. “이제 네가 알아서 해라.”라는 식의 미국식 마인드라 아이들도 일찌감치 독립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나중에 자식을 결혼시킬 때 돈을 얼마를 해주느냐로 이어지지만, 나중에 얘기하는 걸로...


그 일이 좋아서 바이토를 하던 친구도 있었다. 한 친구는 말 그대로 디즈니덕후였는데, 집이 도쿄 디즈니랜드와 가깝기도 하고, 디즈니랜드를 너무 좋아해서 주말마다 그곳에서 바이토를 했다. 서핑을 좋아하던 다른 친구는 해변가 레스토랑에서 서빙 바이토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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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에게 인기 있는 바이토는 레스토랑, 콜센터, 사무, 어시스턴트 등이다.


앞서 말했드 주부들도 바이토를 많이 한다. 바이토하다가 알게 된 중학생 아이를 둔 아주머니는 딱 점심시간 2시간만 일하셨다.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는데 왜 알바를 할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사장님과 손님과 주인으로 만나 친해졌고, 여가시간이 무료해 나온다고 했다. 하루에 두 시간씩 일하면 한 달에 2~3만 엔(한화 20~30만 원) 정도 벌 수 있는데 이 돈으로는 자신의 물건을 산다고 했다.


주부 바이토가 활성화되다 보니 ‘아주머니 택배사원’도 있다. 대부분 파트타임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에서 가까운 물품배급소에서 가벼운 물건을 받아서 배달해주는 일을 한다.



프리터처럼 생계를 위해 바이토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지만 아닌 사람도 이렇게나 많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바이토를 하고 있으니, 유학생들도 공부하며 일하기 힘들다며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나도 한 때 공부하면서 바이토까지 해야 하는 것에 우울해 하곤 했는데 그래봤자 나만 속상해질 뿐이다. 어차피 일본에서는 다들 하는 바이토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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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학 준비와 어학원

2. 유학생활과 절약, 친구 사귀기

3. 일본에서의 아르바이트, 한국식당과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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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