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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나이에 고타 김나지움에 입학한 쇼펜하우어는 그야말로 폭주기관차처럼 공부에 매달렸다. 그가 특히 매진한 과목은 고전어, 즉 그리스어와 라틴어였다. 두 언어는 아버지 생전에는 감히 배울 수 없었다. 사어(死語)는 무역에 하등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으로 직행하는 고속도로였다.


쇼펜하우어는 반 년도 안 돼 두 언어를 대충은 하게 되는 경지에 올랐다. 이 속도는 고타 김나지움의 교사들을 충격에 빠트릴 정도였다. 학생의 천재성을 목격하자 교장선생님은 대어를 낚은 기분이었다. 그는 직접 나서서 쇼펜하우어를 과외해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입학 6개월 째, 이상한 시가 학생들 사이를 돌았다.


한 교사를 조롱하는 익명의 시였다. 범인은 뻔했다. 이만한 문장력을 발휘할 녀석은 언어 수재이자 여류문학가 요한나의 아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권위를 무시하고 허위를 적발해내던 쇼펜하우어에게 보수적인 독일 김나지움의 교사는 탐스러운 먹잇감이었다.


비행의 대가는 퇴학이었다. 쇼펜하우어는 그렇게 갈망하던 인문계 공부를 불과 6개월만 맛보고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는 바이마르에 오게 된다. 얼마나 절망적인 심정이었을지...


어머니 요한나는 바이마르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 살롱을 개업했다. 우리나라의 룸살롱이 이 단어에서 오긴 했지만 성격은 다르다. 유럽에서 살롱은 지식인들이 모여 교류하는 공간이었다. 부잣집의 사랑방과 최고급 기방의 중간 쯤 되었달까? 문화에 많은 기여를 한 업종(?)이지만 살롱이고, 거기다 주인이 마담이라면 아무래도 성적인 뉘앙스가 전혀 없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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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이 채널을 공유하는 곳이지만 남녀가 웃고 뻐기고 유혹하는 곳이기도 하다. 거기서 마담이 상복을 입고 침울하게 있을수도 없을 것이거니와, 요한나가 그럴 성격도 아니었다.


음울한 성격의 쇼펜하우어는 살롱의 (당연한) 밝은 분위기에 놀라게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는 대체 뭐가 저리 즐거운 거지?'


남자 손님들은 매력적인 문학가인 마담의 눈에 들기 위해 수작을 부렸다. 쇼펜하우어는 의심의 도마 위에 어머니를 올렸다. 혹시 어머니는 전혀 슬프지 않은 게 아닐까? 어쩌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아닐까?


사실 잘잘못을 따지면, 기껏 고등학교에 입학했더니 사고를 치고 잘린 아들이 잘못했다. 그러나 요한나와 쇼펜하우어의 성격은 극과 극이었다. 더우기 그에게는 아버지 생전의 조용하고 어두운 집 분위기가 체질에 맞았다. 그런데 그냥 밝은 분위기의 집도 아니고 무려 살롱이라니? 예민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무엇보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음에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살롱을 저주하고 어머니와 싸우면서, 그는 자기도 모른 채 마음 속에 탈출구를 파게 된다. 바로 아버지의 죽음은 이기적인 어머니 때문이라는 공상이었다. 공상이 믿음이 되자 어머니의 모든 행동이 부도덕하게 보였다. 어머니 뿐 아니라 모든 여자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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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의 비극은 쇼펜하우어를 악명 높은 '여혐' 철학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일단은 어머니에게 매달려 얻어낼 것이 있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였다. 쇼펜하우어는 이 대목에서 어머니의 덕을 많이 봤다. 쇼펜하우어는 어머니에게 배운 두 언어로 고전을 여행하며 사상의 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의심은 깊어만 갔다. 어머니의 삶은 천박하고 세속적이며, 남자들은 요한나에게 쓸데없이 아부만 해댔다. 여자보다 우월한 남자들이 그렇게 코가 꿰어 있는 이유는 태생적으로 비열하고 이기적인 동물인 여성이 딱 그런 기술 하나는 갖고 태어났다는 게 쇼펜하우어의 결론이었다(이런 배은망덕한...)


쇼펜하우어는 예민한 사람이었지, 강인하지는 못했다. 성격이 비뚤어졌을 뿐 사악함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어머니 여성에게 떠넘기는 대신 노답 여혐을 얻었다. 한마디로 어머니도 다른 여자들도 된장녀, 김치녀였다.


어머니가 풍기는 공허한 매력(여자의 웃음이랄지, 흘리기랄지)에 휘둘리는 남자는 얼마나 불행한가? 독일 최고의 지성이라는 사람들이 그 앞에서 잔뜩 홀려 있다. 이후 쇼펜하우어는 주옥 같은 여혐 발언을 쏟아낸다.


"여자는 종족 번식의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연은 인간의 두 성별을 정 가운데에서 자르지 않았다."


"남녀의 권리를 동등하게 취급하려는 현재 유럽의 법리 해석 유행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여성은 어린아이와 성인 남성의 중간적 존재."


"완전한 인간이 아니다."


"여자는 결혼에 대해 매춘부처럼 접근한다."


그렇다, 쇼펜하우어는 어머니를 아버지의 생전 수입과 사후 유산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탕진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요한나의 살롱은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독일 최고의 문인들은 요한나의 살롱에서 일주일에 이틀을 보내는 '죽돌이'가 되었다. 그 유명한 그림 형제도 요한나 살롱의 멤버였다.


요한나를 어떻게 해 보려고 지치지 않고 수작을 보내는 남자가 하나 있었으니, 난봉꾼으로 유명했던 독일문학의 거성 괴테였다.


"살롱에서 빈둥거리는 저 청년은 뭐 하는 친구인가?


아 저기 저 친군 여기 살롱네 아들내미인데, 김나지움에서 사고 치고 잘리고 와서 책도 읽고 엄마한테 반항도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참 답없다(...) 괴테는 또래보다 유난히 표정이 찌그러진 청년 쇼펜하우어를 불러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괴테는 직감했다.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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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쇼펜하우어의 통찰력에 쾌감을 느꼈고 쇼펜하우어는 위대한 '남자'에게 지도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제 자식의 천재성도 모르는 여자와, 몇 마디 대화로 가능성을 알아보는 남자의 지성 차이는 얼마나 큰가!'


이런 쇼펜하우어의 생각은 너무했다. 요한나는 쇼펜하우어의 성공보다는 행복을 바랐다. 어머니로서 당연하다. 낙천적인 문학가였던 요한나에게 쇼펜하우어가 매달리는 철학은 아들을 우울한 어둠의 세계로 끌어당기는 독이었다.


괴테는 요한나에게 언젠가 우리 셋 중에서 가장 위대하게 될 이름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될 것이라 했다. 요한나도 나르시즘은 있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한 집안에 두 명의 천재는 나오지 않는 법이에요."


농반 진반의 가벼운 말이었으나, 쇼펜하우어는 어머니를 더욱 혐오하게 되었다. 그는 요한나에게 "이 못된 여편네"라는 막말까지 퍼부었다. 문제는 패드립을 친 장소가 계단 바로 위였다는 것이다. 요한나는 아들을 밀어서 계단 위에서 아래까지 구르는 데굴데굴 투어를 시켜주었다.


쇼펜하우어는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본격적인 악당이나 폐륜아가 될 사람은 못 됐다. 다만 심술쟁이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는 21살이 되면 살롱을 처분해버릴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요한나가 동네의 장삼이사 아지매는 아니었다.


"아들, 너한테 가는 건 유산의 1/3로 묶어놨단다. 잘 나가는 살롱 마담을 뭘로 보고...."


살롱에서 엄마와 하녀들을 실컷 괴롭히다가 21살이 된 쇼펜하우어는 괴팅겐 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했다. 요한나는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드디어 아들이 사람 우울증 걸리게 하는 철학을 때려치웠구나!


오산이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기 위해 물리적으로 먼저 접근해보려고 의대에 진학했다. 그는 학교에서는 교수들의 약점을 잡아 논쟁을 걸어 논파시키기를 즐겼다. 기숙사 생활도 아니고 통학을 했는데, 그 이유는 아무리 엄마와 하녀들이 싫어도 여자들의 보살핌은 안락했기 때문이다. 밥, 청소, 빨래등등. 거기다 틈만 나면 말싸움도 즐길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집에서는 엄마를, 학교에서는 교수들을 괴롭혀댔다. 요한나는 아들에게 하소연한다.


"너는 항상 낮 시간에 나를 찾아와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다가 사라진다."


쇼펜하우어는 어머니에게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외로움에 떨고 계실 때 즐거움만을 찾아 헤맸고, 죽어가실 때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22살 때 참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가 2년 전 사망한 페르노의 전기를 출간한 것이다. 페르노는 유명한 예술비평가이자 고고학자였다. 일개 여인네가 위대한 생애를 살 다 간 남자의 이야기를 쓴다고? 여자가 남자의 생을 평가하고 기록하다니, 당시 유럽에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하필 저자가 자신의 어머니였다.


어머니 요한나는 신여성이었다. 그녀는 하층민 출신인 괴테의 아내에게 처음 문을 열어준 상류층 여성이다. 당시 보수적인 독일 사회에서는 센세이션이었다. 그래봐야 쇼펜하우어는 여자들끼리 잘 논다고 생각했지만.


쇼펜하우어의 기대와는 달리 페르노의 전기는 전 유럽의 주목을 받으며 요한나를 문학계의 스타로 만들었다. 쇼펜하우어는 역시 세상은 썩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며, 슬슬 철학에 완전히 몸을 담기로 결심했다. 이미 괴팅겐 대학 의학부 교수들은 만족감을 느낄 만큼 전멸시킨 후였다.


요한나는 살롱 죽돌이였던 독일 시인 빌란트에게 아들이 철학을 포기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빌란트는 쇼펜하우어를 설득하기는커녕 그의 통찰력에 감명받고 말았다.


"이 친구는 철학을 해야 한다."


이 와중에도 쇼펜하우어는 빌란트에게 굳이 이런 말을 한다.


"인생이란 불결한 것입니다."


당시 빌란트는 78세였다. 이쯤 되면 나이 먹고 봉변당한 수준이다.


베를린대학교에 편입한 쇼펜하우어는 열정과 재능으로 스펀지처럼 지식을 흡수했다. 마침내 완성한 박사학위 논문은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였다. 괴테는 찬사를 보냈으나, 요한나는 아들을 놀려주기로 했다.


"뿌리? 약 지을 때 넣는 약초 뿌리 말이니?"


그에 대한 보복이었을까? 쇼펜하우어는 괴테와 토론하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또다시 바이마르로 돌아와 어머니와 하녀들을 괴롭혀대는 생활을 재개했다. 견딜 수가 없어진 요한나는, 그래도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거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 살롱 옆에 독채를 마련해 거기에 쇼펜하우어를 넣어놓고 식사와 살림을 챙겨주었다. 그러나 한계가 왔다. 쇼펜하우어가 26세 때, 결국 두 모자는 의절하고 말았다. 편지 교류만 계속하자고 합의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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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818년 서른 살. 일생의 역작이자 주저, 서양사상사의 히트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발표했다. 요한나는 "네 책은 한 권도 팔리지 않을 거다"라고 디스했고, 쇼펜하우어는 "어머니의 책이 헛간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날이 오면 내 책은 고전이 되어 있을 것"이라 맞받아쳤다.


그러나 이 명저는 백 권도 팔리지 않았다. 반면, 다음 해 1819년에 나온 엄마 요한나의 장편 로맨스 소설 <가브리엘레>는 전 유럽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우리의 쇼펜하우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3부 <헤겔의 그늘>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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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에겐 어마어마한 친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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