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7835686.jpg



쇼펜하우어에게 참으로 강력한 그늘이었던 어머니 요한나는 그가 50세였을 때 72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성별을 떠나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삶이다. 그녀는 남편의 재부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렸으며, 스스로의 능력도 입증했다. 자신의 문학적 재능으로 각광받았고 미모와 매력으로 살롱을 운영하며 사교계의 중심이었다.


요한나는 대중소설가였고 살롱도 유행을 따른다. 그녀의 문학도 유행의 물결에 의해 동시대성을 잃었다. 살롱은 멤버들이 하나하나 노환으로 죽으면서 더 이상 '힙'한 공간이 되질 못했다.


요한나는 남편의 유산을 시원하게 다 쓰고 1년간 귀족의 후원을 받은 후 사망했다. 이걸 두고 '아들의 철학적 재능을 몰라본 속물적인 여자의 비참한 최후'라고 굳이 폄하하는 작가들이 있다. 공정하지도 않고 사실과도 다르다. 거꾸로 말하면 요한나는 그 나이가 돼서도 귀족의 후원을 얻어낼 네임밸류가 있었다. 다만 때가 지나면 잊혀지는 일은 대중문학가의 숙명일 뿐이다. 재산도 살롱도 문학도, 질 때가 되어서 졌을 뿐이다.


쇼펜하우어는 평생 어머니를 증오하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성공한 이유는 어머니 요한나에게 물려받은 문학적 재능 덕이었다.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쇼펜하우어는 63세에 이르러 전 유럽의 주목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 이미 알음알음 밑간은 되어 있었으나, 63세에 폭발적으로 성공했다. 이유는 부록 때문이다.


그렇다. 부록이다. 쇼펜하우어는 노년에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개정판을 내면서 초판과 재판의 격차를 설명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부록집을 따로 냈다. 이 책의 이름이 <여록과 보유>다. 그는 젊은이들을 독자로 설정해 이 책을 썼다. <여록과 보유>는 지극히 문학적이며, 경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순문학으로 봐도 기가 막힌 작품이었다.


<여록과 보유>는 전 유럽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뿐 아니라 드디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양지에 올려놓았다. 헤겔이 받았던 존경과 찬사를 이제 쇼펜하우어도 누리게 되었다.


parerga und paralipomena2.jpg


우리의 쇼펜하우어, 세상은 쓰레기이며 시도 때도 없이 '인간 따위가...'를 읊조리던 자칭 인간 해부학자. 그러나 염세주의가 컨셉인 이 노학자는 성공하고 나자 그만 몹시 낙천적인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쇼펜하우어가 얼마나 타인을 의심했냐 하면, 그는 이발사에게 면도를 맡기는 것도 불안해했다. 면도칼로 무슨 짓을 할 지 누가 안단 말인가? 잘 때는 베개맡에 장전된 권총을 준비해 놓았다. 당시엔 당연히 파이프 담배를 피웠는데, 파이프부터 가루담배, 불을 놓는 기구까지가 한 세트다. 상자에 보관해 들고 다니는데, 쇼펜하우어는 이 상자에 항상 자물쇠를 채웠다.


자신을 좋아해주는 건 애견 푸들뿐일 줄 알았건만, 모든 유럽인들이 그를 칭송하니 이거 참...


너무 좋아... ㅠㅠ


결국 그토록 바라던 관심과 존경을 보다 일찍 받기 위해서는 괴테가 생전에 해 주었던 조언을 따라야 했는지도 모른다.


"너는 세상을 증오하면서도 세상에 사랑받기를 원한다. 세상에 사랑받으려면 네가 세상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


이제는 순서가 거꾸로 돼서, 세상의 사랑을 받고 나서야 쇼펜하우어는 기분 좋은 노인네가 되었다. 이때는 처음 키웠던 푸들이 죽고 다른 푸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이름은 '부츠'였다. 쇼펜하우어와 부츠의 산책은 프랑크푸르트를 상징하는 명물이 되었다. 주민들은 위대한 철학자와 이웃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다.


작고할 때까지 중2병을 못 버린 쇼펜하우어는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하는 동시에 어려워하길 바랐지만... 사실 프랑크푸르트 주민들은 그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푸들은 너무나 똥꼬발랄하고 낙천적이었다. 털 상태도 너무 좋고... 나쁜 사람이라면 개가 이렇게 흥겨울 수는 없잖은가? 결국 컨셉은 실패했다.


사실 개의 입장에서 쇼펜하우어는 이상적인 주인이었다. 예뻐해 주지, 좋은 거 사 먹이지, 하루종일 같이 있지, 칸트 흉내를 내야 하니 산책도 넘치게 하지, 그리고 자기만 챙겨주지 않는가?


쇼펜하우어에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괴팅겐 대학교 의학부에서 두개골을 열어보고 결론을 내렸다. <이성은 본능이며 뇌에 있고, 뇌는 그저 신체 일부다.> 이성은 우주적 질서의 산물이 아니다. 인간이 비빌 언덕이란 것도 없다.


불완전한 인간은 불완전한 선택을 하며 숙명에 맞서고 숙명에 스러지기도 한다. 그것을 노래하는 게 예술이며, 그것에 빛을 비추고 상찬하는 게 또한 예술이다. 쇼펜하우어는 예술가들의 예수 그리스도다.


다운로드.png


당대에는 음악가 바그너가 쇼펜하우어에게 푹 빠졌다. 그는 대표작 중 하나인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를 쇼펜하우어에게 바쳤으며, 악보를 편지로 보내기도 했다. 평소에 악당 노릇을 하고 싶던 쇼펜하우어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는 즐겁게 투덜거리는 답장을 써 보냈다.


"예끼 이놈아, 이것도 음악이라고..."


바그너의 반응은?


"날 봐 주셨어!"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쇼펜하우어의 훈계에 대한 쇤네의 답장이라며 발표했다. "제가 더 잘하겠습니다 선생님!"


세상이 이러고 있으니, 기분이 너무나 좋은 쇼펜하우어는 산책을 하면서 행인들에게 우울한 표정을 보여주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했다.


쇼펜하우어의 70세 생일. 유럽 각국에서 외교문서의 형태로 축전이 날아들었다. 생신축하연에는 명사들이 모여들어 그에게 찬사를 바쳤다. 아마 입꼬리가 귀에 걸리는 걸 참느라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베를린 왕립 학술원에 추대되었을 때는 이 좋은 자리를 쿨하게 외면하는 '나님' 쇼펜하우어의 스웩을 만끽하며 거절했다.


1860년 9월 21일, 72세의 쇼펜하우어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급성 폐렴 증상을 겪으며 쓰러진다. 그리고 그 날 푸들 부츠를 남기고 사망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나이와 같다.


유언을 통해 전 재산을 애견 부츠에게 남겼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정확하지가 않다. 부츠도 케어를 받았지만 재산의 대부분은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쇼펜하우어는 마지막에 이르러 '동정심' 즉 공감능력이라는 자기 철학의 인간성을 증명했던 것일까?


쇼펜하우어에게 인간은 필연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그 자신이 그랬다. 인간은 혐오해야 마땅한 한심한 존재지만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겠는가? 그 채로 삶의 관문에 부딪혀 간다. 다음 단계의 미래를 향해 더듬거리며, 절뚝이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도망갈 곳은 없다. 직면해야 한다.


고개를 똑바로 들고 알 수 없는 미래를 응시하는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비극이며, 비극 속에서 비로소 인간성은 태어난다. 따뜻한 인간애와 예술의 숭고함이 바로 거기에 있다.


세상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가 살다 간 바 있다. 아디오스.


98121112112821(0).JPG



지난 기사



쇼펜하우어의 삶1 : 아버지의 그늘

쇼펜하우어의 삶2 : 어머니의 그늘

쇼펜하우어의 삶3 : 헤겔의 그늘

쇼펜하우어의 삶4 : 무명의 그늘

쇼펜하우어의 삶5 : 강아지의 그늘






필자가 진행하는 방송


126677493.jpg


팟빵 : https://t.co/lIoFGpcyHW 

아이튠즈 : https://t.co/NnqYgf5443


트위터 : @namyegi



필자의 신간


185155653.jpg


이미지를 누르면 굉장한 곳으로 이동합니다.







필독

트위터 @field_dog

페이스북 daesun.hong.58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