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카페에 가끔 구조 미담이 올라오는 걸 봤다. 구조가 힘들 줄 알았는데, 막상 통덫을 설치하니 고양이가 알아서 들어가 앉아주더라는 거짓말같은 이야기. 구조 초심자라 그런지 그런 글만 보였다. 솔직히 선미가 '그래, 나도 많이 지쳤어 친구야' 라는 눈빛으로 스스로 통덫에 들어가주는 장면 한 열 번 넘게 상상해봤다. 나랑 선미는 좀 친하니까, 이런 장면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사건 일지였다
10월 12일(목) - 선미 구조 1일차
비장하게 통덫을 준비했건만 선미는 없었다. 한참 선미를 찾던 cocoa 기자가 신호를 보낸 곳은 회사 옆 고깃집 주방의 열린 창문 안쪽에 있었다. 충정로 고양이들에게 그 고깃집은 '가면 고기 주는 혜자로운 곳'으로 통한다. 선미가 고기 맛을 알아버렸다면 내가 통덫 안에 따둔 저 따위 캔 나부랭이가 뭔 소용일까 자괴감이 들었지만, 그때까지만해도 그날 당장 선미를 잡을 줄 알았기 때문에 미리 양해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너도 고기 먹으러 왔니...?
그리고 주방 구석 위에 선미가 있었다. 너무 태연하게 바라봐서 내가 선미네 집에 놀러온 거라 착각할 뻔했다. 가끔 고기를 줄 뿐 따로 돌보진 않는 상태였지만, 길 위에서 사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먹을 것과 쉴 곳을 주는 사람들만큼 자기에게 우호적인 인간들도 없을 거다. 그곳에서 선미는 나비라고 불렸다.
고깃집 사람들이 빌어준 행운 덕인지 곧 통덫 앞으로 불쑥 나타나줄 것만 같았는데, 바람대로 불쑥 나타난 건 선미의 동네 친구 ‘반달이 남친’이었다. 응 너 아니야.
2층 베란다에서 거긴 들어가면 안된다는 수신호를 조온나게 쐈는데도 배고픈 반달이 남친은 통덫 주변을 킁킁거리더니 발끝을 집어넣었고, 곧 머리까지 집어넣었다. 지체하면 당장이라도 안으로 달려갈 기세였다. 갇히는 걸 감수하고 먹겠다고 하니 굳이 말리지 않을 수도 있다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데 통덫에 갇히는 건 고양이에게 큰 트라우마가 될 것 같아 발빠른 cocoa 기자가 달려가 통덫 안의 음식을 꺼내주었다.
이 과정에서 cocoa 기자는 반달이 남친에게 냥냥펀치로 두 대를 맞았다. 우리는 안 때려도 음식을 줄 생각이었다는 걸 반달이 남친이 좀 알아줬음 좋겠다. 반달이 남친을 구하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냥냥펀치에 맞는 동안 정작 선미는 고깃집 환풍구 위에서 태연히 앉아있었다. 그렇게 그날이 저물었다.
cocoa 기자는 고양이와 싸웠다고 표현했지만, 일방적으로 맞고 먹을 거 줬으면 객관적으로 삥뜯겼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10월 13일(금) - 선미 구조 2일차
어제의 경험을 통해 통덫 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 동네 친구들에게 먹을 걸 헌납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문제는 동네 친구들도 이제 그걸 알게되었다는 것이지만…
본격 통덫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반달이와 반달이 남친을 배불리자 통덫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어제처럼 맞기 전에 주니 삥뜯기는 기분도 안나고 기부하는 것 같아서 기분도 좋고 눈물도 났다.
오전에 친구들에게 베푼 기부가 돌아오는 걸까. 드디어 선미가 나타났다. 그것도 통덫 입구 앞에 태연히 앉은채로. 통덫 입구 앞에 앉은 선미를 보자 이제 막 잡을 것처럼 손에 땀이 났다.
등 돌리고 앉은 선미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츄르(고양이에게는 마성의 간식)를 주었고 선미는 조금 쭈뼛거리며 한 발을 들여놓더니 짜놓은 츄르를 따라 조심스레 통덫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덩치 큰 선미가 들어가면 더는 움직일 곳 없는 작은 통덫이라 혹시라도 선미가 도망가버릴까봐 츄르를 한 걸음, 한 걸음 앞에 짤 때마다 심장을 짜는 것 같았다.
턱-
이제 선미 몸의 60%나 들어왔을까. 통덫 문이 닫혀버렸다. 통덫 안에 있는 발판을 들키지 않으려고 박스 조각으로 살짝 덮어두었는데, 선미 무게로 누르니 발판이 너무 일찍 밟혀버린 거다. 이젠 틀렸구나. 이 통덫은 끝이구나 했다. 그때 선미는 소처럼 묵묵히 조금씩 통덫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반쯤 닫혀서 제 몸을 누르는 통덫 문을 등에 업고.
???????
기쁨과 함께 츄르를 짜내던 그때, 80%쯤 들어온 선미가 그 상태로 멈췄다. 더는 들어오지 않을 것 같으니 그 상태로 밀어 넣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따라 조심스럽게 통덫 뒤로 손을 가져갔을 때, 선미는 유유히 백스텝으로 도망갔다. 다친 다리를 생각하면 어차피 세게 밀어넣지도 못했을 텐데, 선미를 놓친 게 다 미천한 이 몸의 부덕함 때문인 것 같아 바닥에 머리를 세 번쯤 찧고 싶었다.
속상한 그날, 선미가 미처 맛도 못 본 통덫 속의 음식은, 동네 친구 반달이가 다 먹었다. 아무리 신문지로 티 안나게 가려놔도 이미 다 꿰뚫어 본 것처럼, 반달이는 정확하게 발판만 피해서 고기를 물고갔다. 반달이는 충정로 제일가는 똑순이다. 통덫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는 반달이를 보니 속이 더 쓰렸다.
10월 14일(토) - 선미구조 3일차
통덫에 갇힐 뻔했던 선미는 근처 지붕 위로 피신했다. 벙커1 주변의 오래된 건물 지붕은 위험해서 사람이 올라갈 수는 없다. 그것을 아는 듯 선미는 편히 앉아 다친 후에 제대로 하지 못한 일광욕과 그루밍을 즐겼다. 뭐랄까, 너무 즐겼다.
고양이에게는 중요한 일과인 그루밍을 할 기분이라도 나서 다행이다 하면서도,
이 포즈는 너무 큰 능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15일(일) – 선미구조 4일차
일요일도 능욕은 계속 되었다. 통덫을 완전히 알아차린 반달이와 선미는 아예 통덫 옆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여기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면 쟤네가 밥 준다'는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아 애써 모른척 했다.
그날 오후 늦게 겨우 선미를 만났다. 어제처럼 지붕 위에서 한참 쩍벌 능욕을 하던 선미는 고깃집 환풍구 안에 들어가 있었다. 고깃집도 주말엔 영업을 하지 않으니 들어갈 수가 없고, 이제 옥상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포획될뻔 한 후부터 옥상도 무서워하게 된 것같아 선미를 잡을뻔한 그날이 또 아쉬웠다.
배가 고픈지 절뚝이며 다가와 츄르를 조금 먹던 선미는 아무래도 불안한지 다시 환풍구로 기어 들어갔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선미가 통덫 사건 이후 완전히 마음을 돌리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철수했다.
물론, 혹시나 선미가 올까 놔둔 통덫에는 오늘도 반달이가 왔고, 역시나 삥을 뜯었다. 후...
10월 16일(월) – 선미 구조 5일차
날씨가 좋은 월요일, 선미가 다시 지붕에 나타났다. 도망갈 듯 했지만, 밥을 들고 올라가니 다가와 조심스레 먹었다. 고깃집도 문을 열지 않은 시간, 주말동안 굶었을 선미를 생각해 밥과 그간 주지 못한 물도 챙겨주었다. 다리 한쪽을 불편하게 들고 밥을 먹는 선미를 보며 꼭 이샛기를 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단, 통덫에 캔 하나 따두고 선미를 잡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오늘부터 고깃집은 다시 영업을 할테고, 혜자로운 그곳엔 고기가 많다. 주말엔 먹을 게 없어도 잠깐 굶으면 또 월요일에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거다. 고깃집에 드나드는 선미에게 먹을 것은 큰 매력이 없었다.
츄르도 마다하고 환풍구로 기어들어가던 어제를 떠올려 작전을 바꿨다. 통덫은 이제 영영 치우기로 했다. 대신 선미가 지금껏 늘 제집으로 여겼던 1층 옥상에 깨끗한 담요를 깐 박스를 두었다. cocoa 기자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보고, 사람들은 내가 선미를 포기한 줄 알았겠지만, 선미에게는 음식보다 쫓겨다니지 않을 쉴 곳이 더 매력적일거라 생각했다.
10월 17일(화) – 선미 구조 6일차
예상대로, 선미는 박스에 들어갔다. 고양이 집사라면 알겠지만, 고양이에게 박스는 필승 아이템이다. 나는 선미가 박스집의 아늑함에 더 심취해주길 바랐다. 선미가 박스집에 익숙해질수록 새 작전의 성공률은 높아진다.
그 사이 새로운 통덫을 빌렸다. 통덫같지 않은 통덫을 찾다가 겨우 발견한 새 통덫은 통덫이라기보다 가게에서 버린 플라스틱 박스를 닮았다. 흔한 통덫이 아니라 쓰는 곳이 적었지만, 감사하게도 노길사(노원 길위의 생명을 생각하는 사람들)에서 대여할 수 있었다. 차가운 철 대신 플라스틱과 아크릴 등을 쓴 새로운 통덫. 이걸로 무슨 고양이를 잡냐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통덫은 철로된 것인줄만 알던 충정로 고양이들에게 문화 충격을 보여줄 차례다. 결전의 그날을 기다리며 새 통덫 사용법을 익혔다.
10월 18일(수) – 선미 구조 7일차
선미가 박스에서 하루 종일 잤다. 그동안 숨어있던 곳에 가지 않고 자는 걸 보니 완전히 편하고 안전한 곳으로 인식한 것 같았다. 언제 잡는 거냐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완벽한 구조를 위해 딱 하루만 더 기다리기로 했다.
비를 맞을까 우산도 설치한 박스집
그래 어디 한 번 계속 적응해보렴...(씨익)
10월 19일(목) – 선미 구조 8일차
떨렸다.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선미 구조에 성공하는 날이다. 밥을 멀찌감치 놓아주고 선미가 밥을 먹는 동안 잽싸게 박스를 치우고 그 자리에 새 통덫을 놓아두었다. 박스에 깔았둬서 선미 냄새가 잔뜩 밴 담요는 통덫으로 옮겨주었다.
선미는 박스가 사라진 자리에 놓인 정체불명의 박스 비스므리한 물건을 조금 경계하며 우리를 살폈다. 박스에 달린 낚싯줄이 의심스러우면서도 박스를 보니 들어가고 싶은 내적 갈등 끝에 선미는 통덫 앞에 앉아 그루밍을 했다. 이와중에도 쩍벌 능욕을 잊지 않았지만 쩍벌리는 포즈도 오늘로 끝이다 낄낄낄낄…
바람에 날리는 낚싯줄을 박스에 달려있는 아주 얇은 낚싯줄이 왠지 기분나쁜 것 같았지만 선미는 아무래도 이렇게 생긴 게 덫일리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냄새를 몇 번 더 맡아보던 선미는 순순히 통덫 안으로 들어갔다. 이걸 2층에서 지켜보던 cocoa 기자와 나는 미친 사람처럼 달려내려갔고, 조심스레 낚싯줄을 당겼다. 낚싯줄 당기는 걸 몇 번이나 연습했는데 처음 해보는 것처럼 긴장됐다.
아크릴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선미를 잡았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입에서는 낄낄낄낄낄 소리가 났다. 정체불명으로 사지를 흔들며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막상 잡고나니 선미는 생각보다 아주 얌전했다. 그리고 조온나 무거웠다. 미리 알아봐 둔 병원은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지만, 도저히 혼자는 들고갈 수 없는 무게라 구조 도우미 cocoa 기자와 함께 병원을 향해 걸었다. 수술 후에 입원을 했을 경우 자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차로 1분 거리의 병원을 알아보았기 때문에 택시를 타긴 미안했다. 지금의 흥분상태라면 걸어서 약 10분 정도인 병원까지 걸어가는 게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쌀 가마니같은 선미의 무게가 자꾸만 이성을 되찾게 해준다는 건, 내 계산 밖의 일이었다.
“전화하신 지가 일주일이 넘었죠? 그래도 어떻게 데리고 오셨네요.”
바쁘게 선미를 진찰한 의사 앞에 앉았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수술을 하자고 하겠지, 입원도 해야 한다고 할거고. 텀블벅(소액펀딩)으로 돈을 모아보는 것, 글로 할 수 있는 부업, 아니면 너무 지겨웠지만 그래도 10년이나 했으니까 과외를 뛸까. 머릿속으로는 그간 생각했던 치료비 충당 방법들을 생각하면서, 의사가 당장 비용을 알려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비용이 크면, 수술도 한다는 뜻이니까.
“지금 저 상태로는 수술이 어렵습니다. 골절된 부위의 뼈가 다 조각나 있어요.”
수의사는 선미가 조각난 뼈로 딛고 다니느라 고통이 심했을 거라고 했다. 어긋난 배열을 맞추고 깁스로 한동안 고정해서 지금의 통증을 줄여주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물론 그렇게 해도 평생 다리를 절게 될 거다. 병원에만 데려가면 비용 이외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재차 물었지만, 집에 반려견이 있을 때 경험했듯 동물을 돌보다 보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맞닥뜨릴 때가 많다.
잠든 선미를 들고 회사까지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훨씬 멀었다. 고양이가 스스로 내려오다가 떨어지는 걸로는 이 정도로 골절되지 않는다는 수의사의 말을 무한반복했다. 그토록 바라던 치료를 했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텀블벅(소액펀딩)을 할 수 있었다면, 차라리 기뻤을 것이다.
그래서 선미는 어떻게 되었냐면
선미를 구조한지 딱 3주가 지났다. 골절된 뼈가 붙을 때까지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 두 달 중 3주. 안정된 환경에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버텨야 하지만, 현실은 그다지 녹록치 않았다. 회사의 배려로 회사 안에 빈 사무실 한 칸을 얻어 일단 선미를 보호하고 있지만, 3주 동안 이사 위기와 실제 이사를 겪으며 일종의 메뚜기 생활을 하고 있다.
회사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3주는 꽤 길게 느껴졌다. 정제되지 않은 말과 누군가의 도움, 그게 뒤섞였지만 다행히 도움이 훨씬 많아 잘 버텼다.
선미는 몇 번 더 병원에 갔다. 아직 예방접종을 하는 중이고, 혹시 몰라 건강검진도 끝냈다. 오랜 길 생활에도 생각보다 멀쩡한 상태라 의사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추정 나이가 6~7살은 된다는 얘길하며 더 놀랐다.
이 형 사람 나이로 치면 최소 불혹...
이사를 하고 눈칫밥도 먹었지만, 임시보호 3주쯤이 된 지금 선미는 드디어 조금 방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런데 다시 이사를 가야 한다. 선미가 있는 방에 다음주면 새로운 사람들이 온다. 이제 회사에 선미를 보호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구석만 찾아다니던 선미가 마침내 안전한 곳이라고 인식하기까지 꼬박 12일이 걸렸는데, 이번엔 어떤 이유를 대며 이사를 준비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 이번엔 이사갈 곳이 없다는 걸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선미는 임시보호나 입양이 필요합니다.
수술을 할 수 있으면 회복 후 원래 살던 곳에 놔줄 계획이었지만,
선미가 살던 곳 환경이 달라져 지금 몸 상태로는 그곳에서 다시 살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선미는 덩치가 크지만 성격은 따스한 코리안숏헤어입니다.
몸무게 : 7.3kg / 나이 : 6~7세 추정 / 범백 음성
예방접종은 2차까지 끝냈고, 엑스레이와 혈액 검사를 포함한 기본 검진 마쳤습니다.
입양이나 임시보호가 가능하신 분은 연락 부탁드립니다.
ddanzi.ingeniou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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