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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본에 사는 외국인은 임신 7개월 쯤 자신의 고국으로 가 출산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로도 100일 정도 머무른 뒤 일본에 돌아오곤 하는데, 나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일본에서 출산을 하였다.


우선 임신 중 몸이 좋지 않아서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탈 수가 없었고, 신생아와 일본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탄다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다. 남편과 6개월(임신 7개월~ 출산 후 100일 합친 기간)이나 떨어져있기도 싫었고, 무엇보다 친정에 가도 케어해 줄 사람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첫 아기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출산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에서의 출산


나는 일본의 한 시립병원에서 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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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에 비해 출산으로 인한 입원기간이 길다. 자연분만은 7일, 제왕절개는 8~9일 정도 입원하는데, 이 기간엔 케어 뿐만 아니라 조산사와 간호사에게 육아관련 지식도 배운다. 목욕하기 실습/모유수유/정신건강 강좌(멘탈케어)/기본 육아 강좌 등 한국에선 산후조리원에서 가르쳐줄 법할 것들을 병원에서 가르쳐준다.


긴 입원기간은 산모에게 도움이 된다. 일본 병실에선 보호자는 취침할 수 없으며 면회시간도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어(친척/친구들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도 안 된다) 산모는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되는데, 이게 나약해진 심신을 정비(?)하는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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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먹었던 밥. 철저한 저염, 채식 식단이라 살을 빼서 왔다...


출산에서 케어까지 해주지만 병원 출산에도 안 좋은 점은 있다. 시설이 많이 낙후됐다. 한국의 병원에 갔다가 최첨단 기계와 깨끗한 병원시설을 보고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을 정도로 일본의 산부인과는 시설 면에서 별로다. 입체 초음파를 하는 병원도 많지 않고 기형아 검사나 양수검사도 큰 이상이 있지 않은 한 해주지 않는다. 이 점이 불안해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손가락, 발가락부터 세어보았다. 물론 의료서비스라는 것이 시설만 보는 게 아니어서 대체로 만족하긴 했다.


비용과 지원금


(지방자치제라서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일본에선 출산하면 45만 엔 정도의 지원금을 준다. 다만 출산비용이 45만 엔 정도이므로 출산비용으로 다 나간다.


대신 그 이상의 비용이 거의 없다. 병원에서 출산한다고 하면 출산비용을 제외하고 개인이 내는 돈은 1~2만 엔 정도다(시립병원은 4인실이 무료이기도 하고). 나의 경우 실밥 푸는 비용, 진료비, 아기 케어비용을 포함해 4만 엔이 나왔는데, 이마저도 고액의료비로 처리되어 한 달 후 80% 이상을 돌려받았다.


일본의 높은 세금 덕분에 받는 혜택이다. 일본은 증세 있는 복지를 하는 나라라서 1년 주민세(후쿠시마 부흥기금까지 포함된!)로 약 100만 원을 낸다. 이것도 최소 소득 기준이고 차등을 주기 때문에 소득이 더 많으면 더 내야 한다. 그래도 이 돈이 누군가의 뒷주머니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다. 연말정산 땐 조금 눈물 나고 주민세 내는 날에 진짜로 운 적도 있긴 하지만... (잘못하면 세금폭탄 맞는 일도 왕왕 있으니 항상 정보에 민감해야 한다. 모든 것에 세금을 염두하자)



일본의 산후조리


1) 조산원과 산후케어센터


일본의 각 지역에는 ‘산후케어센터(産後ケアセンター)’라는 일반사단법인업체가 있다. 들어가서 아기를 낳고 며칠 있을 수 있는 센터다. 한국의 산후조리원과 비슷하지만, 아기는 병원에서 낳는 한국과 달리 일본의 산후케어센터는 아이까지 케어센터 안에 있는 조산원에서 낳는다. 어떻게 보면 산후케어센터는 조산원에 운영하는 숙박시설로, 형태도 가정 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다다미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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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조산원에서 운영하는 산후케어센터
출산을 하는 곳(왼쪽)과 숙박하는 곳(가운데, 오른쪽)
(출처 : 일본 아고라 조산원 홈페이지)


일본에는 한국 같은 산후조리원이 거의 없다. 최근 한국 산후조리원이 일본에 분점을 내었는데(한국에서 온 만큼 여러 면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수도권 전체에서 산후조리원 다운 산후조리원이 여기 하나뿐이다.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중상층 이상의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2) 사토가에리 출산(里帰り出産)


“사토가에리 출산(里帰り出産)”은 번역하면 “고향에 돌아가서 하는 출산” 정도로, 말 그대로 자신의 고향 혹은 부모님이 사는 근처에서 출산을 한다는 뜻이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출산 후에 몸조리를 할 수 있고, 아이와 자신에게 집중한다던가, 불안할 때도 상담 받을 수 있다는 등의 장점이 있다. 지인 한 명도 고향에 가서 출산한 뒤 부모님 집에서 한 달 가량 몸조리를 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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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은 부모님과 가까운 동네에 사는 경우가 많아서 사토가에리 출산을 하는 일 보다는 거꾸로 부모님이 오시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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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가의 도움


구청에선 산후조리 개념으로 집안 환경 및 산모의 멘탈케어와 카운슬링을 해준다. 애기가 태어난 지 50일 정도가 지나면 구청 직원이 약속을 잡고 찾아온다(집으로 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거절하면 아동학대를 의심하니 웬만하면 초대하는 게 좋다). 처음엔 불편해도 산후우울증을 방지하기 위해 독박육아를 하는 엄마들을 세심히 체크해준다.




일본의 육아 맛뵈기


일본에선 여성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아이를 보육원(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다. 지원금이 일체 없는 사설 보육원이 있긴 하지만 6만 엔 정도의 비싼 돈을 내야 한다. 이 돈을 내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경우는 금수저가 아닌 이상 힘들다. 엄마가 몸이 안 좋거나 둘째를 임신해서 힘들 경우에는 ‘일시보육’이라고 하여 일주일에 몇 번 정도 맡길 수 있긴 하지만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명서 및 각종 서류를 내야 한다. 보육원은 경쟁률이 세기 때문에 아이들이 많으면 대기도 해야 한다.


이런 복잡한 이유로 유치원에 가는 나이인 세 살까지는 지지고 볶으며 엄마가 아이를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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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가이드북과 함께^_ㅠ


일본 역시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지만 그건 결혼을 아예 안 하는 경우가 많아서일 뿐, 일본 사람들은 “일단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로 했다면” 대체로 두세 명씩은 낳는 것 같다. 체구가 작고 마른 일본 여성들이 유모차에 첫째를 태우고 뒤로 신생아를 매고 쇼핑을 하거나 외출을 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이를 많이 낳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1) 정부에서 육아지원금이 (많지는 않지만) 나오고,
2) 병원비가 무료다.
3) (개인주의 성향의 일환인지) 아이에게 욕심을 부리는 부모가 적다. 사교육도 있긴 있으나 한국보다는 덜해서 “아기를 키우는데 돈이 많이 든다.”라는 인식이 덜하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어머니들에게 “아이 둘 (혹은 이상) 키우기 힘드시죠?” 라고 물으면, “그냥 키우는 거죠”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하나 키우는 것도 버거운 내가 덜 성숙한 건가 반성을 할 때도 있다. 물론 안으로는 힘들고 짜증나도 겉으로는 많이 표현 안 하는 일본인들의 정서가 있겠지만, 대단하긴 대단한 것 같다.




바야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