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9일, 토요일 오키나와 나하 공항
오키나와 전설의 레전드 뮤지션이자 평화활동가(NPO)인 키나 쇼키치 선생을 만나기 위해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그의 11월 한국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다. 이미 베이스 연주자이자 매니저인 가네다 씨와 한 달여 간 메일로 의견을 주고받았었다.
"한국에서 메일이 온 이후로 키나 선생님이 불타고 있으니, 이럴 때 하루빨리 협의하러 오십시오!"
그의 꿀팁에 따라 최대한 빨리 오키나와땅을 밟고 싶었지만, 여름 휴가시즌과 겹쳐 호텔룸을 구하지 못해 겨우 8월 3주차 주말에야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키나 쇼키치 선생과 밴드 참푸르즈를 만나러 가는 우리(프로모터 여성왕(재일교포 3세)와 프로듀서 김지훈(한국인))는 나하 국제거리로 향하는 모노레일 속에서 선생과 협의해야 할 항목들을 챙겨보다, 어쩌다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처음 키나 쇼키치 선생 이름을 꺼낸 것은 여성왕 프로모터였다. <심야식당>의 오프닝곡으로 알려진 스즈키 츠네키치의 두 번째 내한 공연을 (비교적) 성황리에 마친 후 다음 공연을 찾던 그의 레이더에 이 노래가 걸렸다.
https://youtu.be/FlX8ms3eDgM
"이거 재밌지 않아?"
그것은 키나 쇼키치 & 참프루즈의 '하이사이 오지상'이었다.
김 프로듀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전통음악에 일본식 코미디가 섞인 것 같기도 하고 흥미롭긴 한데.. 한국에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10대에서 4~50대까지 폭넓은 팬층이 있었던 <심야식당>과 그 오프닝곡의 주인공 ‘스즈키 츠네키치’는 그 인지도에도 불구, 관객은 많이 들었으나 결과적으로 좀 적자를 보았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보다도 더 인지도가 있지 않은 키나 쇼키치의 공연을 어떻게 올리겠단 말인가?
김 프로듀서는 반대를 하고 싶었지만, 일반 반대할 명분을 찾기 위해 포털 검색을 해보았다. 아마도 "봐요, 네x버에서 아무것도 안 나오잖아요.."라고 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 읽으면 읽을수록 이상한 감정이 생겨났다.
키나가 중학생 때 만든 '하이사이 오지상'은 그 경쾌한 리듬과 달리 사연이 있는 곡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미국의 전쟁통 속에서 미쳐버려 자식을 잔인하게 살해한 옆집 아줌마와 그 사건으로 역시 정신이 이상해진 옆집 아저씨에게 이와모리(쌀로 만든 오키나와 전통주) 댓병을 받아다 주던 이가 바로 키나 자신이었다. 그는 그 기억을 토대로 경쾌한 리듬의 담담한 가사를 얹어 엄청난 풍자곡인 '하이사이 오지상'을 만들 게 된 것이다.
그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 했다. 매년 도쿄 통일마당에 출연해 동북아 유일의 휴전 국가인 남과 북의 평화 통일을 위해 아리랑을 반복해서 불러왔으며, '모든 무기를 모든 악기로!', '전쟁보다는 축제를!' 등의 캐치프레이즈로 일본 정부의 만료에도 불구, 과거 이라크 전쟁 발발 직전의 초긴장 지역을 거리 행진하며 평화 공연을 강행한 일. 일본인이라면 남녀노소 불구, 키나 쇼키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는 이야기까지.
새벽에 자료를 차장보던 김 프로듀서는 이상하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궁금했다. 한국인도 교포도 아닌 일본인, 그것도 아키나와 사람이 왜 남북의 평화 통일을 위해 아리랑을 불렀는지, 어떤 용기로 전쟁 지역에서 평화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건지. 왜 그렇게까지 해왔던 것인지. 직접 만나 물어보고 싶어졌다.
키나 쇼키치와 밴드가 직접 운영하는 라이브하우스 차크라의 입구에 붙혀진 이미지.
아틀랜타 올림픽 공식 셀럽 콘서트에 풀밴드로 초청되어 공연했지만,
일본의 전국방송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시간관계 상 통편집? 말도 안돼.
나하 국제거리에 있는 라이브홀 차크라(Chakra)에 들어서자, 밴드 베이시스트이자 매니저인 가네다 씨가 월컴티로 우롱차를 내어주며 반갑게 맞아줬다. 이미 10여 통 이상의 이메일을 주고받은 터라 마치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낯설지 않았다.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다부진 체구, 촉촉하며 내추럴한 헤어컬, 장년의 한 남자가 황급히 등장한다.
드디어! 키나 선생이다. 그는 라이브홀 안쪽 복도에 붙은 벽을 밀어 연습슬로 우리를 안내했다(비밀문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키나 선생은 자기소개도 없이 우리에게 대뜸 한국 정치 상황이 어떤지, 위안부 문제와 남북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한일 간 민감한 사안을 계속 물어봤다. 입가엔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나, 우리의 반응을 지켜보는 눈빛이 매서웠다.
차근차근 우리의 생각을 말하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른 질문이 날아오고, 또 날아왔다. 겨우 답을 끝내니 그가 입을 열었다.
"요시(됐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여기까지 찾아온 녀석들인지 좀 궁금했다. 이번 11월 공연은 진행하자. 사실 그것보다도 나한테 중요한 게 하나 있는데, 38선에서 공연을 한번 올려야겠으니 당신들이 좀 도와줘야 겠다. 바빠서 좀 잊고 있었는데 당신들에게 연락이 와서 다시 생각이 났다. 무조건 해야겠다."
난감한 표정의 여 프로모터. 김 프로듀서는 눈빛을 반짝인다.
"저희가 무조건 돕겠습니다. 한국 측 프로듀서는 무조건 푸도키코리아가 어레인지하겠습니다!"
즉흥적 선언이었다. 11월 공연 이야기를 시작도 하지 못하고, 다른 공연이라니.
그는 벌써 임진각 평화누리 야외공연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38선 평화콘서트라는 가칭까지 생각해놓고. 거기서 키나 선생과 조용필, 들국화, 산울림, 신중현, 한대수와 같은 한국 포크&락 음악의 산증인과 같은 선배님들을 모셔보겠다고, 반드시 기획서를 들고 찾아가겠다는 결심을 순식간에 했다고 한다.
"선생님! 선생님의 필모그래피를 읽으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동북아 평화 모토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습니다!"
김 프로는 이미 콘서트를 성황리에 끝낸 것처럼 격앙돼 있었다.
약 1초의 정적이 흐른 후, 키나 선생이 말했다.
"남한 사람도 북한 사람도 내가 아리랑을 불러주면 똑같이 눈물 흘리는데, 당신네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인가? 왜 서로 찾아가지도 못하게 해놓고 뭐하는 건가? 3·8선은 누구를 위해서 있는건가, 도대체가? 이렇게 나누어 놓은 것은 누구이며, 그래서 무슨 이익이 있는 것인지 그 의미를 알지 못하겠다."
"키나 선생님, 평화콘서트에서 노래할 때 출력 좋은 앰프를 산처럼 많이 쌓아서 크게 노래합시다 개성까지도 중국까지도 러시아까지도 들리게요",
" 무대에서 노래할 시간이니 들어보고 또 얘기 나누자."
그는 갑자기 자리를 떴고, 우리도 덩달아 공연장을 따라나섰다.
키나 쇼키치 & 참푸르즈의주말 차크라 라이브홀 공연.
핸드폰으로 급히 찍었더니, 주요 멤버의 얼굴 표정이 다 날아가 버렸다. 프로듀서 맞니?
하지만 실제 공연장면에서 그들은 번쩍거렸다. 그 어떤 OLED보다도.
즐겁고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3명만 초청해 소규모 크로스오버로 진행하려 했던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풀밴드 8명에 무대 아래 양측에서 오키나와 전통복식을 하고 춤추며 분위기를 띄우는 할아버지와 소녀까지 모두 함께해야, 수십 년간 공연의 아우라를 온전히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70년대 발표해 공전의 히트곡이 된 '하시아이 오지상'은 중반부의 하이라이트였다. 마무리 곡은 언제나처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발병이노 난다~"
키나 선생이 하나(花)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 눈물이 핑 돌았던 여 프로모터가 눈물을 참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 김 프로는 이미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만 69세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키나는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오키나와 전통악기 샥신 속주 후에도 숨찬 기색조차 없다. 크고 작은 수많은 공연 기획과 참여, 본인 소유의 라이브 하우스에서 수십년 간 합주해 온 내공들로 단단히 트레이닝 되어왔기 때문이리라. 심지어 그는,
"내일 저녁 7시에 여기 라이브 하우스 차크라로 다시 오라. 내일 만나자."
라 말해, 새벽 2시에 녹초가 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날, 다시 차크라를 찾아갔다.
키나 선생은 언론에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해왔었다. 손수 틀어준 아카이브 영상 속에서는 광주에서, 평양에서 하나 아리랑을 소리높혀 부른 녹화분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동북아 평화를 위한 종교 포럼에 초청돼 성공회교회에서 공연을 했던 사진도 보여줬다. 밴드 키보디스트이자 프로듀스를 맡고 있는 이시오카 씨는 당시 초청 연락을 담당했던 정무수석의 명함 복사본을 보여주며, 키나 밴드가 한국에 가면 꼭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그 정무수석은 현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김성재 이사장이었다)
키나쇼키치&참푸르즈. 동북아시아평화포럼 성공회교회에서 열린 포럼&공연.
93년 대전엑스포 축하공연 참여 시절.
하단 좌측에서 4번째 장발에 수염 흰슈트 꽃을 든 젊은 시절의 키나.
키나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김 프로의 가슴은 더욱더 뜨거워졌다. 한국인으로서 평화와 통일에 무심했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야심차게 준비한 공연 기획안과 타임 테이블을 키나 선생과 밴드원들에게 보여줬다.
보통은 엑셀에 얌전히 타임테이블을 그려오지만.. 너무 지겨워서 용모양 이미지를 따서 테이블을 짠 것이다.
혹시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하며 맴버들의 반응을 살폈는데, 의외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어리둥절한 우리를 앞에 둔 키나 선생이 말했다.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항상 용의 이미지와 인연이 있어 왔다. 처음 데뷔를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밴드를 결성하려고 공고를 내었는데, 그 때 자이니치(교포) 두사람이 찾아 왔는데 그들의 이름 속에는 백룡과 흑룡의 의미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다른 곳에서 또 그들만의 길을 가고 있긴 하지만,) 그들 덕에 한동안 즐겁고 신나게 음악을 하며 어려운 시절을 돌파했으니, 나의 은인들기도 하다. 또 용꿈을 꾸고 대운을 얻은 적이 있었는데 그 용은 녹색이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용은 역시 ‘그린 드래곤, 미도리 류’이다. 그런데 어제 김 상이 기획안을 나에게 보여 줄때 미도리 류가 나왔다."
의외의 반응에 어깨가 으쓱했다. 일이 잘 되려는 징조일까.
일정 합의가 끝나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선생님께서 직접 "약속이행을 하지 못한다면 다시는 오키나와에 발을 들일 생각을 하지마."라고 말하시진 않았지만, 꼭 그렇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1차 사전 미팅이 끝났다. 이제 기획안을 보강하고 홍보를 시작해야 한다. 스폰을 해줄 기업도 찾아야 하기에 바쁘다. 2차 미팅은 9월로 잡았다. 그때 예산과 출연료, 게스트 등 세부사항을 논의하게 될 것 같다. 부디 이 공연을 무사히 잘 끝마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키나 선생이 평생 일군 노력이 조명받고, 우리도 오키나와에 다시 갈 수 있으니.
P.S.
키나 쇼키치 선생이 운영하는 클럽하우스 차크라는 라이브 클럽인 동시에 지역 커뮤니티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중요한 일을 논의할 때 이곳을 찾기 때문이다. 매주 2차례 정도 지역 NPO(평화활동가) 멤버들이 모여 오키나와 상황을 논의하기도 한다. 가끔은 동북아 국제 뉴스에 대한 포럼도 열린다고. 한국의 계처럼 매달 돈을 모아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역할까지 한다고 한다. 여러모로 멋진 곳이다.
김지훈
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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