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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여자보다 개가 좋다."


강아지가 좋으면 좋은 거지, 굳이 '여자보다'를 전제해 깨알같이 여성 혐오를 완성하는 그의 집념에 박수라도 쳐야 하는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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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에게는 다스베이더나 다름없는 헤겔은 중국의 전족 문화를 전해 듣고 대경실색했다. 헤겔은 "중국은 공간만 있지 시간은 없는 곳"이라며 동아시아 문명을 강력 디스했다. 역사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헤겔이 지금 동아시아에서 인기 철학자이며, 중국은 '거꾸로 선 헤겔' 맑스가 뿌린 씨앗으로 공산주의 국가가 돼 있다는 사실은 재미있다.


쇼펜하우어는 유럽의 오만과 착각을 가장 먼저 간파한 유럽인이다. 19세기의 유럽인들에게 유럽 바깥의 세계는 정복과 착취의 대상이었다. 유럽인들은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함과 동시에 정당화했다. 유럽인이 더 이성적인, 진짜 인간이니까.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답한다.


 "착취와 폭력이 이성의 결과이면 인간성이란 대체 무엇인가?"


 "힘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우월해야 진정한 승리 아닌가?"


그렇다면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그는 윤리학에 있어 새로운, 마치 21세기의 과학자같은 너무나 세련된 개념을 제시했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유지시키는가? 무엇이 이 정글같은 세상을, 비록 정글이지만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만은 막아내는가?


동정심이다.


쇼펜하우어의 동정은 요새 말하는 '공감능력'에 정확히 대입된다. 인간은 의지와 표상에 갇혀 뿌연 안개 속에 헤매지만 바로 그 의지와 표상에 의해 위대해지기도 한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이다. 삶은 필연적으로 고독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이 도전인 것이다. 이러한 선택의 단 한 순간을 밝에 비추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다.


쇼펜하우어는 예술가들의 영웅이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웅장하고 반성적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지점에서 한없이 치졸해진다. 중국을 향한 헤겔의 오만을 지적하는 건 좋다. 그런데 그 근거가...


 "전족이란 걸 생각해내다니 역시 중국 남자들이 뭘 좀 아는구먼!"


하는 식이다.


노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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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쇼펜하우어도 본인의 나약함을 잘 알았다. 그래서 자신의 철학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때는 자제했다. 그래도 방언이 터지는 순간은 많았으니, 우리는 그 치졸함을 <쇼펜하우어 수상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40대는 고독하고 우울했다. 그의 친구는 오로지 푸들 뿐이었다. 그런데 칸트를 존경했던 그는 칸트를 흉내 내고 싶었다.


임마누엘 칸트가 누군가. 인간 시계 아닌가! 쾨니히스베르크 주민들은 칸트 선생님이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시간을 알았다지 않는가. 꽤나 악성 관종이었던 쇼펜하우어는 자기도 칸트처럼 정확한 시간에 특정 장소에 나타나는 걸로 프랑크푸르트의 존경받는 명물이 되고 싶었다. 인간아...


그런데 문제가 있었으니, 쇼펜하우어는 칸트처럼 아침형 인간도 못 됐다. 늦잠을 이겨내지 못한 그는 남들 다 일하는 오후가 돼서야 칸트 흉내를 낼 수 있었다. 더군다나 40대 중반쯤 되면,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푸들을 데리고 산책하기 시작한다. 


 "저 양반 저거 맛이 좀 간 거 아녀...?"


맛이 가기는. 쇼펜하우어가 중얼거린 건 자신의 철학이었다. 듣고 알아봐 주길 원한 거였다. 사람들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알아모시는 대신 어머니 요한나에게 연락했다.


 "저기... 아드님 상태가 안 좋은 거 같아요."


아들이 걱정된 요한나는 의절이고 뭐고 편지를 써서 안부를 물었다. 마침 모성애가 고팠던 우리의 쇼펜하우어, 자기가 먼저 편지를 쓰지 않았으니 이겼다는 쾌감과 함께 다시 어머니와 편지 교류를 시작했다.


쇼펜하우어는 프랑크푸르트의 칸트가 되는 데 실패했다. 대신 그의 푸들이 '작은 쇼펜하우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기분 나빠도 할 말은 없었다. 개에 철학자(헤겔)의 이름을 붙인 건 자신이 먼저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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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구에 습기가 절로 차는 외로운 관종의 삶이지만 이제 쇼펜하우어의 철학도 주목받을 때가 되었다. 19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던 유럽은 결국 프랑스혁명이 실패한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한편 경제적으로는 고도성장에 의해 물질적 풍요를 누림고 동시에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언제나 이럴 때 허무주의와 비관론, 그리고 자기반성이 새로운 시대적 유행이 된다.


50대가 되면 쇼펜하우어는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한다. 프랑크푸르트 주민들도 '저기 지나가는 저 분이 알고 보니 꽤 내공이 있는 철학자 선생이시라더라' 정도는 알게 되었단 말씀. 우리의 쇼펜하우어도 산책의 묘미를 슬슬 알아갈 무렵.


50대의 쇼펜하우어는 법조인들에게 큰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 법이란 시대정신의 산물, 인류 진보가 만들어낸 거대한 질서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법조인들이 잘 안다. 내 판결로 피의자의 운명이 갈린다. 칸트는 마음속에 반짝이는 도덕률의 별빛을 느껴보라고 속삭이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인간은 안개 속을 헤매는 고독한 늑대이며, 법조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이 세상이 정글일지언정 지옥은 아니게 하기 위해 타인의 운명을 다룬다. 그래서 그들은 늑대이되 횃불을 든 늑대다. 다만 차가운 금속질의 권위자가 아니라 똑같이 상처받고 후회하는 나약한 인간이다. 이만큼 위로와 용기를 주는 철학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법조인들을 혼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 철학에 감동만 받지 말고 쇼펜하우어가 최고라는 칼럼을 좀 쓰란 말야! 법조계 바깥에서도 읽게...


하지만 법조인들은 변호하고 판결하느라 바빴다.


결국 쇼펜하우어는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한다. 60대가 되고 나서였다.




지난 기사


쇼펜하우어의 삶1 : 아버지의 그늘

쇼펜하우어의 삶2 : 어머니의 그늘

쇼펜하우어의 삶3 : 헤겔의 그늘

쇼펜하우어의 삶4 : 무명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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