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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나가는 배우였다.


정말 펑크 한번 내지 않고 잘 나갔던 보조출연 배우였다.



보조출연자


벌써 1년이 지났네요. 고향으로 내려온 지가. 음악한다고 서울 생활 7년 했는데 생각해 보면 음악을 하며 보낸 시간보다 월세, 생활비, 교육비를 벌러 다녔던 시간이 훨씬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알바의 시작인 카페부터 레스토랑, 갤러리 공방, 치킨집, 실내포차 등 여기저기 전전하며 돈을 벌러 다니던 중 유명한 무속인(?)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던 보조출연 알바 썰을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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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시급 - 현재 기준으로 최저임금의 시급으로 계산됩니다. 법이 바뀐 지 2년, 그러니까 제가 시작할 무렵에 바뀌는 바람에 나름 혜택아닌 혜택을 받았죠. 그 전에는 하루 일당 5만원, 7만원 식으로 정해진 출연료를 받았다더군요.


시급 계산의 첫 관문이자 일종의 출근 도장과도 같은 집합이 있습니다. 대체로 여의도역 3번 출구에서 모이죠. 새벽 6시 30분쯤 여의도역 3번 출구 및 5번 출구, 1번 출구에 보따리를 잔뜩 들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본다면 그들은 십중팔구 보조출연의 명을 받고 모인 사람들이죠.


3번출구 앞 만두집은 언제나 새하얀 김을 뿜어내며 새벽시간 출출함을 더욱 가속화 시킵니다. 먹어보지는 못했죠. 그렇게 모이면 부반장이라는 사람이 이름을 호명하고 명단 체크를 합니다. 그리고 보조출연 모집 업체에서 나눠준 종이 쪼가리에 이름과 주민번호, 전화번호, 주소를 적어서 내면 시급 계산의 스타트가 됩니다. 딱 그때 부터가 아니고 버스 타고 출발하는 시점이 약 7시 무렵이죠. 이건 회사마다 다른데 감독의 촬영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계산시키는 양아치 회사들도 있죠.


보조출연 업체에 대해 간략히 소개 하자면 한강예X, 태양X, 등 메이저가 있고 원래 몇 개 더 있는데 망하고 저 둘만 살아 남았죠(한강예X는 들은 바로 원래 사장이 돈 갖고 날라서 직원들이랑 반장들이 십시일반해서 다시 살렸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메이저 밑에 하청이 있습니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저 위에 두 메이저 말고는 안 가는 게 좋아요. 수수료를 엄청 떼죠. 그리고 하청에 또 하청이 있습니다. 역시 가면 안 돼요. 보통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찾다보면 하청의 하청의 하청 쓰리쿠션 맞고 들어온 일거리를 받게 됩니다. 그럼 수수료도 쓰리쿠션으로 삥뜯기죠.


일단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인터넷 알바X이나 사람X에서 보조출연을 검색하면 수많은 보조출연 모집 글이 떠요. 여기서 업체 명을 유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저 위에 두 개 회사가 아닌 것은 되도록 패스 하시구요.


연락을 하시면 며칠 몇시에 와라 합니다. 그날 가보면 4~5명과 함께 이쪽 일에 대해 간략히 소개를 받고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뭐... 일용직 계약이나 다름 없어요.


그리고 나면 수일 혹은 몇시간 안에 문자로 연락이 옵니다.


예 : [내일 시그널 형사 구급대원 남5 여3 가능 여부 확인바람] - 누가 봐도 단체문자. 그래서 빨리 콜을 안 넣어주면 금방 마감되서 일거리를 못 얻죠. 된다고 했을 시, [내일 여의도역 3번 검정바지 구두 점퍼 자켓2 면바지 운동화 6시 집합] 이라고 문자가 옵니다. 면바지라고 했는데 청바지 입고 가면 뒤지게 욕먹습니다.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청바지야 말로 가장 흔하디 흔한 일상복인데. 청바지는 절대 불가 의상입니다.


간혹 인원 전달이 잘못돼서 인원이 넘치면 몇명을 차출해서 집으로 가라고 합니다. 대체로 쿠션맞고 들어온 업체를 통해 오게 된 인원들 위주로 차출되죠. 그래서 꼭 메이저 회사에서 오다를 따야 합니다.



현대극과 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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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현대극과 사극(시대극)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극을 선호하죠. 그 이유는 의상과 촬영지에 있습니다. 현대극 의상은 말 그대로 현재 의상들. 즉 자신이 소유한 의상 중에 대충 어울릴 만한 옷을 들고 가면 되는 거죠. 단점은 3~4벌 갖고 오라고 하면 짐이 많아 진다는 것이죠. 엑스트라 업체에서 전날 의상 고지를 해줍니다. (역할 배정)


보통 지나가는 행인 역은 단정한 옷 위주로 가져가면 되는데 경찰이나 형사, 경호원, 수행비서, 의사, 검사, 변호사 뭐 그런 직업류는 검은 정장 바지에 하얀 셔츠, 넥타이를 기본 의상으로 합니다. 역할 배정이 가끔 짜증날 때는 형사 배정받고 다음 씬에 지나가는 행인, 또 다음 씬에 변호사, 이렇게 받으면 옷의 양이 그만큼 늘어나며 갈아입고 뭐 하고 그러면 새벽부터 나와서 피곤한데 그것도 달리는 버스에서 갈아입어야 하니 짜증 제대로 나죠.


나름 오랜 경험 끝에 4벌을 가져 오라고 하면, 기본 세팅을 셔츠 넥타이 검은 바지와 자켓을 입고 파카를 걸치고 여유바지 1벌, 셔츠 1벌, 구두 1켤레 자켓 1벌을 따로 챙기면 짐을 많이 줄일 수 있죠. 옷을 퍼즐 맞추듯이 서로 겹치지 않게 입는 꼼수를 부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테랑들도 현대극을 많이 선호 하는 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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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비너스>, 1초 나왔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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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렛 기사역. 저도 얼굴이 작은 편인데. 소지섭 씨는 레알 소두입니다. 인정. 얼굴이 작다라기 보다 머리(?)가 작아요. 그래서 키가 정말 커 보이더라구요.


여담인데 마세라티 한 10미터 운전해봤는데 기어조작이 특이 하더라구요. 해서 정차시키고 내려야 하는데 왜 빨리 안 내리냐고 반장이란 사람에게 쿠사리도 먹고. (그럼 님이 직접 해보시든가. 반장님아. 차가 에쿠스도 아니고 마세라티라고. 급정거 하고 완전히 서기도 전에 파킹으로 쎄려 넣다가 차 이상해지면 내가 다 독박 써야 할 텐데 재벌집 아들이 아닌 이상 막 다룰 수가 있겠냐고)


사실 연예인 보고 싶어서 엑스트라 하시는 분들도 많고 헛된 희망(?)을 품고 오시는 분들도 있는데 싸인이라든지 같이 사진 찍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이 일을 하면서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으며 그러지 말라고 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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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을 기피하는 이유는 촬영지가 산골 오지에 있어, 버스를 타야 해서 이동시간이 길어요. 그래서 집합 시간도 보통 1시간 더 빠른 5시30분쯤 모인답니다. 어쩔 땐 4시, 혹은 4시반. (어떤 분은 그날 새벽에 끝나서 바로 사극으로 두 탕 뛰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얼굴이 거의 반 송장이나 다름 없어 보였죠.)


그래도 사극은 버스타고 이동하는 시간+교통비 (지역에 따라 8000원~20000원 정도)가 추가 됩니다. 이동시간이 길기 때문에 버스에서 자면서 갈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그런 장점들을 한방에 무마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의상!!!!!!!


대체 얼마나 빨지 않은 것인지 옷이 꾸덕꾸덕 하고 냄새까지 쾌쾌하죠. 신발에서는 정말 썩은 내가 납니다. 촬영 끝나고 신발을 벗어보니 하얗던 양말은 브라운색으로 새롭게 태어나 있더군요. 그 찝찝함이 사극을 기피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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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화장실. 사극은 화장실을 못 가요. 정확하게는 화장실이 없어요. 버스 타고 가는 이동 시간도 긴데 배탈이라도 나면, 어휴.


특히 초짜들은 사극으로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사극 의상 입는 게 시간도 제법 걸릴 뿐더러 초짜들은 혼자서 절대 세팅 못합니다. 병사 갑옷 같은 건 묶고 여미고 끈 안 보이게 감춰야 하고, 아대도 차고 보호구도 차고 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도착하자 마자 갈아입게 합니다. 시간을 좀 많이 줘야 하는데 촬영 스탭들이 오기 전까지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합니다.


촬영 준비 하라고 약 10분 정도 주면서 옷 갈아 입으라고 하면 짜증이 날까요 안 날까요. 가짜수염 붙일 땐 누가봐도 살이 썩지 않을까 하는 심한 냄새를 풍기는 뽄드를 맨살에다 덕지덕지 쳐발쳐발 해주고, 다 끝나면 솔벤트로 본드를 닦아내야 하죠. 남자들 수염나는 피부가 얼마나 민감한 곳인지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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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17회 - 정말 굉장하게 졸병답지 않고 마치 대장군 같은 포스로 칼을 겨눴었는데 손과 칼만 나왔지요. 어디에 서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 가물 합니다. 윗쪽 위치에 있을 확률이 유력합니다. 배에 노 잡고 있는 이가 유아인.


저 장면에서 병사들 칼 제대로 안 뽑는다고, 절도 있게 하라고, 무게감이 없다고, 달려 오는 게 좀비들 같다고. 얼마나 다시 찍었는지 욕이라는 욕은 반장에게 다 들었습니다. 저 때 반장이 웃겼던 게, 촬영팀 오기 전에 1시간 전부터 동선 짜고 위치 잡고, 누가 보면 반장이 감독인줄 알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해 준비했는데, 감독이 다시 짰습니다. 그리곤,


"먼저 와서 이런 거 하지 마세요. 아직 장소 협조도 안 된 곳인데, 마음대로 들어와서 소리 지르고 출연자들한테 욕하고, 반장님이 감독 하실래요? 왜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대요. 나대기는. 경고하는 거에요 마지막입니다!"


모두가 통쾌함을 드러냈던 표정이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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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전력을 다해 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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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힘들다는 사극 의상 두 번 갈아 입기. 병사 했다가 무도승 했다가. 수염을 너무 과하게 붙여서 뒷모습으로. 나름 병사놀이 같고 재미있는 게 사극입니다.


웃긴 건, 처음 엑스트라 시작하면 회사에서 사극으로 일거리를 줄 거에요. 왜냐면 위에 글을 잘 읽어 보셨다면 아실 거에요. 누가 사극을 가고 싶어 하겠어요. 하지만 사극이 재미는 있어요. 좀 더 역동적이고. 욕도 역동적으로 먹죠.



근무환경


보통 촬영이 7시에 시작된다면 8시간 후, 즉 4시까지 기본 시급으로 받고 그 이후 6시간, 즉 10시까지는 시급의 1.5배, 10시 이후엔 시급의 2배를 받습니다. - 이부분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아마 야근, 특근 시간 계산하는 거랑 같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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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촬영이 1시간 만에 끝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급 6,470원만 받아야 하는 걸까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1시간 만에 끝난다 해도 8시간 치 시급으로 정산됩니다. 1시간 만에 끝난 적은 없었어도 이동시간 포함, 대기시간 포함, 4시간 만에 끝난 적은 있었드랬죠. 딱 한 번. 참으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애매한 게 중간에서 시급 슈킹이 있습니다. 제작 쪽에서인지 보조출연 업체에서인지 현장 반장들인지 촬영에 투입된 시간을 임의대로 고쳐서 중간에서 빼먹는 거죠.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찍어야 할 분량은 많고 예산은 줄여야겠으니 힘 없는 보조출연자들 임금에서 빼먹는 거죠. 불합당한 짓이라는 건 알지만 대들었다가는, "너 이름이 뭐랬지? 내일부터 나오지 마." 이렇게 되니까 다들 그냥 참고만 있는 거죠.


보조출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조금... 뭐랄까,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사람들이 많아요. 회사생활 3개월 해보다가 안 맞다고 온 사람부터 저처럼 음악이라든지 배우지망생이라든지 그쪽 계통 사람들, 휴학하고 알바하러 온 학생들, 의외로 연세 많은 분들도 많아요.


특이한 케이스는 온 가족이 다 보조출연 일을 하더군요.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손자, 며느리까지 온 가족이 보조출연자를 직업으로 살아 가더라구요.


은근 큰 돈 됩니다.


저의 경우 풀로 꽉꽉 8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일했는데 약 23만원 들어오더라구요. 이렇게 3번 정도 나가니까 일주일만 일하고 쉬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매번 이런 연속 스케줄은 아니고 어쩌다 몇 번씩 생겨요. 업체에서도 계속 똑같은 사람 보내면 감독이 알아채고 반장이 혼나고 업체는 욕먹기 때문에 연타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답니다. 이유는 드라마 내용이 다른시간 다른 장소인데 혹시 같은 엑스트라가 장면마다 나타나 눈에 띌까봐 그렇다는데.... 시청자 입장에서 보조출연자 얼굴 한 명이라도 기억하시는 분 있나요? 보조출연자를 집중해서 보시는 분 있나요??)


일을 하는 시간의 2/3는 서 있고, 추위에 떨고 있으며 배고픔에 지쳐 있습니다. 그렇게 번 돈 23만원이 어떤 사람들은 제가 겪은 힘듦 치고는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합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거저 벌었다고, 이 일을 쉽게 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참아야 할 인격적 모독과 사람으로서 느낀 상대적 박탈감과 맞바꾼 돈이기에 그 돈이 벌기 쉬웠다, 혹은 어려웠다 말하기가 괴롭고 자괴감이 듭니다.


이 일에 보람을 느끼냐구요?


보람이기 보다는 자기 만족? 그것도 잠시에요. 처음에야 자신이 나온 장면 캡쳐해서 보곤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내가 가려는 길과 이 길은 다르다 생각했기에 보람보다는 빨리 월세랑 생활비 벌어놓고 음악하자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제가 했던 작품은, [시대극] - 육룡이 나르샤 , 아침 드라마였는데 기억이 안 남. [현대극] - 마담 앙트완 , 오 마이 비너스, 피리부는 사나이, 한번 더 해피엔딩, 가화만사성, 동네의 영웅, 천상의 약속 , 시그널 그 외 다수. [예능] - SNL코리아


컴이 랜섬웨어에 걸리는 바람에 사진은 다 날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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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날 진짜 추웠는데... 난로도 없이


SNL은 아마 궁금한 분 많으실 겁니다. 거의 드라마만 했었는데 뜬금없이 SNL 가래요. 때마침 신선함이 필요할 때여서 기쁜마음으로 갔는데 이거 웬걸, 드라마보다 더 빡세. 아침부터 새벽까지 찍었는데 실제 방송에서 10분? 아니 5분쯤 나왔나... 오죽했으면 출연 메인 배우가 "그만 좀 찍자고. 찍으면 뭐하냐고. 나오질 않는데 도대체 찍는 건 다 어디다 쓰는 거야"라며 투덜대기까지 할까. 한 4시간에 걸쳐 찍은 장면은 통편집. 배우로서는 짜증날 만도 할 것 같습니다.


참! 식비 5천원인가 6천원이 따로 나와요. 아니면 촬영팀에서 점심을 주거든요. 보통은 돈으로 나중에 합쳐서 주는데 저 날 김밥 한 줄. 천국김밥. 그리고 점심 챙겨줬다고 하라고. 저 날 새벽 3시 30분에 끝났는데 저녁비는 안 준다고 했습니다. ㅜㅜ 밥은 먹여가면서 합시다 좀!


예능의 장점은 현장에서 재밌다는 거에요. 방송에선 안 나온 드립 같은 거. 저 때 권혁수 씨 큰 인기 없을 때였는데 어떻게 하면 더 웃길까, 어떻게 해야 더 쌈마이로 보일까라고 하면서 연구를 엄청 많이 하더라구요. 재밌는 사람이에요.


러닝맨 갔다 온 어떤 보조출연자는 진짜 진짜 재밌었다고 합니다. 유재석 씨가 그렇게 착하더라고. 보조출연자들과 한 명 한 명 다 사진찍어주고 끝나도 가지 않고 수다를 떨고 있다고. 보조출연자들 하고도 잡담 스스럼 없이 해줬다고 칭찬 일색. 저도 그날 배정 받았는데, 갑자기 다른 드라마로 배정 바꿔버린 복부장!!!! 저주하겠어.



촬영장의 반장


이 일을 그만 두게 된 것은...


반장들의 갑질과 업체의 횡포. 그리고 촬영이 펑크나면 펑크났다고 제때 알려주지 않아 종로에서 여의도역까지 수십 번을 똥개 훈련하게 한 이름은 밝힐 수 없는 "복 부장 너 때문이다." 


반장들의 인성은 그야말로 극과 극인데 대체로 개 같습니다. 개처럼 으르렁 대기 일쑤이며 욕은 기본으로 물고 다닙니다. 아! 감독들 앞에선 꼬랑지 살살 흔드는 바둑이였죠.


보조출연자들의 동선은 반장이 짭니다.


반장 : 너 이리와봐, 그래 너 임마 여기서 이쪽으로 지나가라, 너는 저쪽으로 지나가고, 야 니네들은 여기 모여서 쑥덕대고.


감독 : 가겠습니다! 큐!!! 컷! 지나가시는 분들이 너무 로보트 같다. 자연스럽게 행동도 해주면서 걸어가요.


반장 : 야! 다 모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병X 마냥 아무 생각없는 사람처럼 걸어가! 핸드폰도 좀 쳐다봐 주고 걷다가 뒤도 돌아보고 전화받는 척도 좀 하고. 그리고 너 야이 썅 XX같은 새끼야 걷는 게 무슨 장애인처럼 걸어. 똑바로 못 걸어? 아 씨X 오늘은 다 병X신들만 왔나.


엑스트라들 : 쑥덕쑥덕. '씨발로미 지가 그냥 이쪽 저쪽으로 걸어 가라며. 제대로 알려 주던가, 왜 욕은 하고 지랄이야...


감독 : 레디~ 액션! ...컷!!!! 지나가시는 분들 그냥 자연스럽게 걸어가세요. 멈추지 말고 핸드폰 보지 말고 화면에서 튑니다. 반장님 배우 분들 좀 더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해주세요.


반장 : 아이 병X새끼들 말 졸라 못 알아 먹네. 자연스럽게! 자연스러운 게 뭔지 몰라? 오늘 처음 나왔어? 이런 XXXXX XXX XX새끼들아,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게 그렇게 어려워? 핸드폰은 뭘 그렇게 오래 쳐다보고 있어! 애인이 벗은 사진이라도 보냈냐?"


늘 대부분 이런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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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은 대부분 엑스트라 일을 하다가 업체를 통해, 혹은 친분을 통해 반장의 임무를 맡습니다. 혹은 업체 간부(?)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떤 반장은 자기를 이사님이라고 부르랬죠. 반장이라고 불렀다가는 "누가 반장이야! 난 이사야! 이사라고 불러!" 라고 혼나기도 합니다.


웃긴 건, 감독이 지나가는데 어떤 보조출연자가 반장 보고 "이사님 식사 하셨습니까?"라고 하니까 감독이 "이사? 누가 이사죠?"라는 말에 반장은 화들짝 놀라며, "야 임마, 우리끼리 있을 때만 이사님 이라고 해. 나머지는 그냥 반장님이라고 불러" 그날의 그 반장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입에 쓰레기를 물고 다닌 그 이사 반장.


드라마 제작 제일 밑바닥에 있는 보조출연자이지만 기본적인 인간으로서 대접을 바란다는 것은 그쪽 세계에겐 사치일 뿐일까요. 연세 지긋한 어른 한테도 "야! 너 임마. 씨발 꺼져. 집에 가"는 기본으로 시전해 줍니다. 근데 웃긴 건 좀 예쁘장하게 생긴 아가씨들이나 여학생들 앞에선 온갖 멋있는 척, 쎈 척, 근엄한 척, 유머러스한 척, 별 척은 다 합니다. 


이런 척척동자 같으니라고.


실화 1

좀 앳되 보이는 여학생이 처음 일하러 왔다는 날 "끝나면 집에 가냐, 나도 같이 가자, 라면 끓여줄까? 소주 한 잔 하고 갈까? 내일 좋은 배역 하나 있는데 하나도 안 힘들어 그거 너 줄께, 내가 송중기 번호도 안다 통화 시켜줄까? 연예인 번호 많이 알고 있다" 등등


그 다음날 그 어린 여자애랑 술 먹고 술병 나서 그날 담당 반장이 못 나오고 대타 반장이 나왔다는 식으로 얘기는 들었지만 제가 질문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는지라 그냥 듣고만 있었죠. 그 자리에 있었다는 다른 보조출연자는 반장이 자기를 불러서 갔더니 아까 왔던 여자 보조출연자랑 반장들이 술 먹고 있었는데 술 진탕 먹여서 어떻게 해볼라고 하더라, 그래서 자기는 대충 술 먹고 들어왔는데 그 이후는 자기도 모르겠다고 했다. 여자애가 많이 취해 있었더라, 뭐 그런 얘기를 하는데 보조출연 아줌마들이 요즘에 그러면 큰 일 난다고 뭐, 그런 내용을 그냥 잠자코 듣고 있었죠.


실화 2

여자엑스트라 배우가 좀 글래머스 했는데 유니폼 같은 의상을 입어야 하는 상황에 "어휴 쟤는 가슴이 왜 저렇게 크냐. 옷이 안 맞네. 옷이 다 터질려고 한다. 몸은 말랐는데 가슴만 크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정말 생각없이 내뱉은, 그 말은 당사자도 아닌 저도 모멸감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결국 배역은 교체됐고 남은 건 성희롱뿐.


실화 3

생긴 건 한국인인데 러시아 국적인, 일제시대 때 러시아로 끌려간 한국인의 후손 청년이 일을 하러 왔는데 한국말이 약간 서툴렀습니다. 말을 잘 못 알아 들으니까 "X발 넌 꺼져. 버스로 가 있어", 의상을 양복 한 벌 입고 왔는데 3벌 가져오라고 못 들었냐고 하니 3벌 가져 오래서, 바지, 자켓, 잠바 이렇게 입고 왔다고. 다시 한 번 반장의 신랄한 욕이 시전 됐습니다.


휴식시간에 러시아에서 왔다고 하니까 반장의 역사교육 시간이 시작 됐습니다. 어줍잖은 지식과 논리로 그 청년을 매국자의 후손이라고 정의 내리고, 대놓고 일제시대 때 러시아로 간 사람들을 욕하더군요. 분명 일본군으로 활동했을 거라며 근거없는 인격 모독과 허위사실 유포를 시전했습니다.


반장, 그들에 대해선 뭐라 할 말이... 그냥 좀 돌+I 같았습니다.


이 바닥에서 오래 일한 보조출연자들은 반장과도 친분이 두터워서 좀 더 수월한 배역, 혹은 나름 비중있는 배역을 줍니다. (대사 몇 마디 있는) 그렇다고 페이가 플러스 되는 건 아니지만 배우의 꿈을 갖고 있는 사람한텐 큰 희망이 되겠죠.


저 같은 경우는 육룡이 나르샤 할적에 캐스팅(?)을 당한 적이 있는데, 보조출연자는 한강예X, 태양X, 한국예X 같은 일용직 소개업체가 있고 그 외에 일반 보조출연자 윗등급, 예를 들면 육룡이 나르샤에 얼굴 많이 나오고 대사도 많은 무도승들처럼 반장이 직접 고용, 섭외해서 데리고 다니는 보조출연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버스가 아닌 전용 승합차를 타고 다니며 일반 보조출연자들에 비해 대우가 훨씬 좋으며, 촬영시간에 맞춰 나타나고 먼저 사라지는, 일종의 주연급 보조출연자이죠.


반장이 저에게 같이 일해보자고 했지만 단박에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반장의 입이 거칠었고, 그쪽엔 꿈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반장은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한텐 참 잘 해주더군요. '해 본다고 했어야 했나'라는 후회가 5% 정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조출연자 백 날 해 봐야 완전 단역 밖에 못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완전 단역이라도 해야, 연줄이 없는 사람들에게 5%의 희망이라도 생긴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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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최저시급 조정도 되고 언제든지 하고싶을 때 하고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 둘 수 있는 보조출연자도 해볼 만한 직업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때는 좀 더 보조출연자의 처후가 좋아지기를 바랍니다.


아, 이쪽 일을 오래하다 보면 보조출연자 사이에 커넥션이 생겨서 업체를 통하지 않고서 소일거리 (CF, 영화, 서프라이즈TV 같은 재연 프로그램에도 갈 수 있습니다. 요즘 종편채널에서 이상한 재연 프로그램 많잖아요. 그런 프로그램 재연배우 같은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연재물로 만들어 볼까 했는데 다음회까지 기다리는 초조함과 궁금함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아 한 번에 많은 내용을 때려 박으려다 보니 내용이 산으로 가지는 않았나 하는 걱정도 드네요.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었길 바래 봅니다.


직접 현장에서 본 배우들의 인성에 대해서도 서술해보려 했지만 위험한 시도인 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물론 대체적으로 좋은 쪽으로요. 하지만 역시 그만 두는 게 좋겠죠..


본 글은 1년간 꾸준히 펑크 한 번 없이 보조출연자를 하면서 격었던 개인적인 사건들을 바탕으로 써 본 글이며, 때론 주관적인 감정이 섞여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시간들을 한 번에 기억해 내기엔 내용이 방대하고 중복되는 일들이 많아, 또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기에 완벽한 요약에는 실패한 감이 있습니다만 최대한 내용 전달에 혼선만은 막아보려 혼신을 다해 써 보았습니다.


사진이 있다면 좀 더 재미있게 쓸 수 있었는데 그놈의 윈도우 디펜더만 믿는 바람에 랜섬웨어에 걸려 10여년간의 추억이 송두리째 날아가 지난 날의 추억을 기억에만 의존해야 하는 저의 심정을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날씨가 추워집니다. 옷 따숩게 입고 추억은 항상 백업해 두시는 습관을 갖도록 합시다.


꾸벅.






욕망의펜촉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