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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년 전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 만든 회사가 핫했다. 회사명 “구두만드는 풍경”. 브랜드명 “아지오”. 대표는 시각 장애인, 직원은 청각 장애인.


언론은 전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 넘지 못해 무너진 회사, 라고. 


아무리 작은 조직도 역사가 있다. 밖에선 보이지 않는 희노애락이 있다. 헌데 그리 간단히 역사를 정리하기엔 찜찜함이 남았다. 


확인하고 싶었다. 기록하고 싶었다.


필요할 날 있을 것 같아.




1. 모든 창업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왜 가난한가


시간은, 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소는 경기도 장애인 생산품 판매시설. ‘유’는 구두만드는 풍경의 유석영 대표, ‘죽’은 죽지않는돌고래 본인이다. 함께 인터뷰 사전 자료를 정리한 코코아 기자와 동행했다.



/ 그냥 다 듣고 싶어 놀러 왔습니다. 제가 그냥 잘 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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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이 요란했을 뿐이지요. 그렇게 의미는 없어요.


겸손. 


/ 구두 만드는 풍경에 관한 과거 기사와 대표님 페이스북을 가입일부터 모두 봤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당시에 기사도 많이 나왔고 잘 됐더라구요.


/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인맥을 많이 동원했지요. 품질 좋은 제품 만들고 메이커시장 틈새에서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했습니다. 비즈니스를 좀 알고 시장 동향을 아는 사람 같으면 이런 짓 안 했을 거예요.


/ 대표님은 했지요(웃음).


/ 저는, 청각장애인들이 그렇게 힘든 삶을 사는지 몰랐습니다. 제가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으니 우리가 제일 불편하다 생각 했지요. 자존심 상하는 마음도 제일 잘 안다 생각했습니다.


/ 제일 잘 안다 생각했는데...?


/ 청각장애인 분들이랑 여름 캠프에 간 적이 있어요. 거기 통역하는 사람이랑 갔는데 잘들 놀았어요. 근데 잘 때 되니 시끄러워서 한숨도 못 잤어요(웃음).


/ 청각장애인 분들은 더 조용하지 않나요.


/ 귀가 안 들리니까 문도 세게 닫고(웃음). 걸음걸이도 그렇고. 제가 명색이 장애인 복지를 한다는 사람인데 문화가 다르니 몰랐던 거예요. 새벽엔 짜증이 났습니다. 대체 저 사람들 왜 저러나. 왜 잠도 안자고 저리 시끄럽게 소리를 내고 다니나.


돌아오는 길에 부끄러움이 남았습니다. 내가 장애인 복지를 오래 했지만 내 장애만 알았지 다른 사람 장애를 몰랐구나. 농문화는 몸짓 자체가 언어구나. 움직임 자체가 언어구나. 그분들은 얼굴 찡그리면 오해를 해요. 자기를 미워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소통의 방법이 다른 것이지요. 저는 그걸 모르고 내가 시끄러우니 속으로 짜증냈던 거예요.


장애인들끼리도 서로를 몰라 각자의 세계에서 살았음을 알았다 했다. 그게, 부끄러웠다.


그 뒤에 복지관 관장을 했습니다. 경기도 청각장애인 복지관이 없으니까 우리가 프로그램을 했어요. 청각장애인들을 위해서 운전면허도 가르치고 꽃꽂이도 가르치고 공부도 가르치고 했는데, 안 와요, 이분들이(웃음).


/ 파주시 장애인복지관 관장하실 때죠?


/ 네. 2008년부터 했는데 원인이 뭘까 고민했습니다.


/ 특별한 이유가...


/ 가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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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왜 가난할까, 직업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떡하면 좋을까 했더니 제가 86년부터 98년까지 CBS 방송을 좀 했어요. 당시 탁 떠오른 게 생산직에서 한 40%는 청각장애인이었거든요.


80년대 말, 90년대 초까지 구두 메이커 생산직 근로자들의 상황이다.


/ 근데 그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지금 대체 어디갔을까. 여기저기 브랜드에 물어봤더니 이제 대부분 공장을 직접 안 해요. 전부 하청을 주거나 아니면 외국에서 만들어요.


/ 중국으로 많이 갔죠.


/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 노임단가가 올라가니까. 그러면서 이분들 다 집으로 돌아간 거예요. 놀고 있는 거죠. 울컥 했어요. 저도 직업 없을 때 생각하면... 가난보다 마음이 상합니다. 자존심이 상합니다.




2. 왜 구두인가


/ 그래서 좋다. 그러면 구두공장을 만들면 어떻겠냐 그랬더니 그분들이 아주 좋아하더라구요.


/ 왜 구두였습니까?


/ 구두를 봤거든요. 제가 구두를 보고 그 구두는 청각장애인들과 연관이 있으니 잘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한 거에요.


/ 원래 했으니까 잘 할 거다?


맨땅에 헤딩이란 뜻.


/ 멋 모르고 한 거죠. 난 공장을 만들 테니 당신들은 사람을 모아주시오. 한 번 해봅시다, 라고.


/ 대표님 막무가내네요(웃음)


/ 이렇게 시작했으니 뭐가 잘 됐겠어요.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이었죠.


/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을 할(웃음) 멤버들은 도대체 어떻게 모이게 된 겁니까.


/ 당시에 파주시 농아인 협회가 있었어요. 협회장이 저랑 동갑인데 이 친구가 아주 신사입니다. 신동엽의 형도 청각장애인인데 저랑 셋이 친구에요. 동갑이고. 해서 그 친구가 자기도 역할을 할 테니 저한테 공장만 만들면 해보겠다고 했어요. 좋다. 하자. 까짓 거.


/ 너무 막 가시는 거 아닙니까. 공장이 만들자!, 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데(웃음).


/ 40대 중반이었으니까 날아다닐 때예요. 이게 이게 어리석은 거야(웃음). 좀 조사도 해보고 그래야 되는데 덜컥, 말로 이미 지른 거야. 복지관 하나를 경영하는 것도 굉장히 힘듭니다. 그 살림이 커요. 직원이 40명 넘으니까. 근데 또 일을 저질렀어요.


한국장애인개발원이라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기관이 있는데 거기서 공모를 해가지고 한 일억 펀딩 해왔어요. 직원도 모이고 기계를 샀는데 수제화를 하더라도 몇 개의 기계는 있어야 돼요. 조이고 이런 거 할 때.


/ 이제 만들어지는 거군요,


/ 그걸 하고 나니까... ... 재료 살 돈이 없어요. 집 얻을 돈도 없고(웃음).


/ 아니, 그럼 남은 돈은 어떻게?


/개인 돈을 털었습니다.


본격적인 시작이다.


/ 처음에는 멋있었어요. 투자도 받고. 사실 투자는 무슨 투자에요. 빌린 거지(웃음).




3. ‘선수’가 필요하다


/ 앞의 일보다 더 어려웠던 건 장인을 모셔오는 일이죠. 처음에 오신 분은 며칠 못 있다가 갔어요. 게다가 농아인들을 모집해서 보니까. 서로 상담을 하잖아요? 과거에 급여를 얼마 받았느냐. 400만원씩 받았대요. 농아인들이 막 옛날에 돈도 많이 받고 그랬으니까.


/ 저보다 훨씬 많은데요(웃음)!


/ 월급 책정을 위해서 자기 딴에는 이렇게 얘기를 한 거에요. 그래서 무슨 일을 했냐 물어봤습니다.


/ 월 400이면 큰 돈이죠. 경영자 입장에선 더 그럴 거고.


/ ‘우리는 시키면 무슨 일이든 했기에 가장 어려운 일을 했고, 막노동을 하더라도 가장 험한 일을 했다’고 그래요. 막상 이력서 내고 채용 근로계약서 쓰고 건강보험공단 해보니까 한사람도 건강보험에서 월급추적이 안 되는 거예요.


/ 이럴 땐 꼼꼼한 스타일이십니다(웃음)


/ 그래야죠. 왜냐면 회사를 운영해야 하니까. 장인 분도 돈을 많이 떼입니다. 구두공장에 어음주고 거래하는데 안 되면 문을 닫아 버리니까 떼이는 거예요. 그래도 그분들은 최소 삼, 사백은 받아요. 처음에 오신 분들은 지쳐 떠나셨습니다. 마지막에 모신 장인 분이 안승문 선생님인데 십고초려는 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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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기셨다

 


/ 십고초려 씩이나. 왜요?


/ 안 올려구 그래!(웃음) 우리 사정에 이백 만 원밖에 돈을 못 주겠다, 자기는 사백 만 원 받아야 한다.


/ 이백 만 원의 갭이 있군요(웃음). 메꿀 수 없는 갭인데.


/ 다섯 번째 갔을 때입니다. 제가 엄포를 놨어요. 당신, 내가 고발해 버리겠다.


/ 푸하하하. 아니, 왜 뜬금없이 고발입니까.


/ 그러니까요(웃음). 장인 분이 당신이 나를 무슨 근거로 고발하냐 했지. 당연히.


/ 사유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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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그 분 아버지가 청각장애인이셨던 걸 알았어요.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 아.


/ 그런 분이 안 하면 누가 하겠습니까.


전화 걸려와 휴식.


/ 그리고... 제가 뵈는 게 없어요(웃음).


시각장애인만 할 수 있는 드립으로 복귀.


/ 아, 저는 대표님 앞에서 칠 수 없는 드립이다(웃음)


/ 사람들이 저 놀릴 때, 뵈는 게 없으니 저 짓을 하지, 맨날 그래요. 이게요. 사실 떼 쓰는 무기로 안 쓰고 긍정을 만드는 무기로 쓰는 거, 이거 장애가 아주 으뜸이예요. 100% 달성하더라도 장애를 가진 사람이 100을 달성하면 아주 잘했다 하거든요. 무기죠.


장애가 무기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기까지의 삶은, 나로선 알 수 없다.


/ 남이 얼굴 찡그리는 거, 이런 거, 전 몰라요(웃음). 그냥 제 뜻을 관철시킬 때까지 계속 사정하는 거죠. 장인 분에겐 결국 제가 이겼어요. 와서 한 몇 개월은 그 양반이 투덜투덜댔죠. 집이 하남신데 우리공장은 파주고. 그 양반이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근데 그마저도 도움을 못 드렸습니다. 당신이 한번 들어올 때 들어왔어도 나갈 때는 못나간다. 그렇게 하고(웃음)


/ 악덕 사장님인데요!(웃음)


/ 절박했거든요. 참 절박했거든요. 그 과정이 힘들었지요. 저는 청각장애인들이 모두 구두를 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어깨너머로 배운 분들만 있고. 그래서 장인 분이 가르치면서 구두를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비로소, 갖추어졌다.




4. 너의 이름은


/ 이름도 있어야 할 텐데, “구두 만드는 풍경”은 회사 이름. 브랜드명은 “아지오”입니다. 어떤 철학이 있는 건가요?


/ 청각장애인이다, 그러면 이름에서 주는 뉘앙스가 있어야겠다 했습니다. 공모를 했더니 다 상투적인 이름만 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지었어요. 구두는 들어가야 되는 거고.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움직임 자체가 풍경이니까.


/ 만드는 모습 보면 그렇겠네요. 고요함, 그 속에서, 작업.


/ 이제 우리 구두에 상표명을 한번 해보자 했는데, 그게 이태리 말이거든요. 우리 직원 동생이 아지오라는 말이 참 좋겠다, 했는데 편안할 락이라는 뜻이예요. 확 들어오더란 말이죠. 부르기 쉽고. 이름에서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고 굉장히 편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5. 거짓말 없는 조직의 탄생


사람이 있다. 공장이 있다. 이름이 있다. 헌데 조직은 그것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니, 돌아갈 수 있으나 통하지 않으면 사람은 떠난다. 헌데 이 조직은 정말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해서, 물었다.


/ 대표님은 시각장애인이고 일하시는 분들은 청각장애인입니다. CEO, 장인, 직원. 아무리 열과 성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어도 소통이 안 되면 좋은 조직이라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소통이 됩니까?


/ 청각장애인들이요. 재밌어요. 같이 회의를 하면 전 직원들 수화를 다 가르쳐서 직원들하고 같이 회의하는데 조금 불리한 건 못 봤다고 해요(웃음).


/ 대표님이 눈에 뵈는 게 없다,를 무기로 쓰듯 저쪽도 무기가 있네요. 일단 공평하다!(웃음)


/ 중요한 건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은 대화가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항상 통역사가 있어야 해요. 우리 직원들 수화시험도 보고 전체 복지관 직원들마저도 수화를 꼼꼼히 가르쳐서 수화를 노래로 가르치면서 했죠. 그러니까 되려 우리들 사이엔 신뢰가 두터워요.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


/ 서로 통역사가 옆에 있으니 항상 증인이 옆에 있는 셈이고.


/ 청각장애인 회장하고 저하고 놔두고 가잖아요, 10분이면 한 시간 가는 거 같아요. 말이 안 돼서 서로 비비고 장난을 하는데 사실 저 사람이 무슨 사람인지 모르죠. 필담을 쓰면 이 사람은 아는데 저는 필담도 잘 못 알아봐요. 제가 써도 못 알아본다 말이죠.


/ 근데 회의할 때는 항상 통역사 겸 증인이 있으니 절대 거짓말을 못한다(웃음).


/ 그렇죠. 저랑 얘기할 때, 상담할 때, 항상 수화통역사가 붙고 또 캠코더 가져다 놓을 때도 있고.


이 사람들이 어느 날 아침에 한 명도 출근을 안 했어요. 뭔가 했더니 옆집 이장이 보니까 애들이 건강하게 생겼거든요. 자기네 공장에 일할 사람이 없으니까 월급을 만원인가 더 준다고 했나봐요. 그러니까 거기로 다 가 버렸어요. 갔다가 갑갑하니까 다시 돌아와요. 일하다가도 휴대폰 고장나면 가야돼요. 윗사람한테 말하지도 않고 갔다 와요.


그게요. 기본적 성향으로 보기에는 잘못된 판단이지만 농아인들은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삶이 너무 깊었어요. 그러다 보니 메카니즘이 맞지 않을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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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할 수 있는 상황이다. 유 대표는 되려 눈물 나는 일이라 표현했다. 똑같은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 했다.


/ 월급날 되면 내 월급이 왜 이렇게 까였냐, 하는데 수습기간 동안에 까기로 했거든요.


/ 똑같이


/ 안 왔으면 안 준다. 도망갔으면 안 준다 했지요. 제가 그 공부를 했거든요. 반드시 처음 시작할 때, 그분들한테 인식을 시켜야 한다. 그런 과정들이 있었기에 소통이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그게 있어요. “말이 안 되면 눈치로 하자."


소통이 되기까지의 과정에 담긴 고난은 각자의 상상에.


/ 봤습니다. 예전 회사에 붙여 놓으신 거. 이 회사만의 독특한 문화는 거짓말이 불가능한 구조기도 하구요(웃음)


/ 제가 거짓말을 안 해서 안 했겠어요. 서로 직접적으로 말을 할 수 없으니 거짓말할 기회를 못 얻은 거죠(웃음).


/ 어느 직장이든 인간관계 때문에 큰 고생인데. 이해관계가 어그러지면 사장은 직원을 속이고 직원은 사장을 속이기 마련인데 여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네요.


/ 그렇죠. 결국 소통이 문제인데 우리 테마는 멋있었어요. “안 보이는 CEO, 안 들리는 기술자”.


그렇게, 거짓말 없는 조직이 탄생한다.




6. 영업은 힘들다, 언제나


/ 구두 만들기 셋팅은 끝인데, 영업은 우째 합니까. 대표님이 영업하셔야 하는데.


/ 그때 생각하면 참 복이구나, 합니다. 제가 복지관장을 하니까, 복지관장 회의 가서도 구두를 우리한테 사라!, 그랬죠, 만들어 놓지도 않고 이런 소리를 했죠.


/ 강매다(웃음).


/ 그렇죠. 판로가 중요하다는 거는 저도 알고 있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안 보이니까, 말로 할 수 있는 일은 영업이잖아요. 그래서 영업한다 했는데. 그 당시에 광명 장애인복지관 관장님이 수녀님이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자기가 찾고 있었다는 거예요. 구두 만드는 데를 찾고 있었는데 최소 300켤레고 최대가 500켤레를 주문한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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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하다말고 돌아왔습니다. 나 주문 받았어(웃음)! 최소가 300켤레란다! 이게 어딥니까. 공주가면 수리치라는데 수녀원이 있어요. 1월 추울 땐데 우리 직원들 모두 소풍가는 기분으로 갔어요.


/ 일단 한번 놀러 가셨군요. 으아, 기분 좋으셨겠다.


/ 수주도 받을 겸 얘기를 들으려고. 해준다고 했으니까 갔지요. 갓 수녀원에 입소하신 분들이 길에서 눈을 쓸고 있었어요. 맛있는 차를 주시면서 수녀님이 신발 5개를 갖고 와요. 저게 뭐지. 설명을 해주시는 거예요. 이거는 신발이 무거워요. 이거는 신발이 발하고 따로 놀구, 이거는 모양이 안 이쁘고. 한 다섯가지 단점을 내 놓으시는 거에요. 이거를 보완해서 신발을 만들어야 한다고.


/ 요구를 확실히 하는 분이셨군요.


/ 올 때 막 노래 부르면서 왔어요. 좋으니까. 알고 봤더니... 흠. 


/ 알고 봤더니...?


/ 구두업자들이 많이 지나갔더라구요. 만들다가 손들고 간 거였어요.


/ 수녀님 마음에 드는 구두를 못 만드니까.


/ 그분들이 워낙 강력한 조건으로 신발을 맞추려고 하시는데... 우선 직원들이 있으니 돈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생각 때문에 밀어 붙이려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조건을 들어보니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7. 계약은 더 힘들다, 언제나


/ 차에 오면서 모두에게, 제가 설득을 했어요. 미안하다. 난 수주를 받으면 쉽게 만들 줄 알았는데 안 되겠다. 우리가 정말 기술이 높아지면 다시 도전 해보자. 쉬운 거부터 찾아서 해보자.


/ 하긴 다들 배우면서 하는 처지인데...


/ 그랬더니 젊은 사회복지사 친구가 대뜸 ‘이거 못하면 구두공장 하지 말아야죠’, 하는 거예요.


/ 오.


/ 넌 구두도 안 만드는 놈이 뭘 안다고... 하니까. ‘아니, 안 만들어도 그렇죠. 구두는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줘야죠.’ 하는 거예요.


/ 틀린 말 아닌데요?(웃음).


/ 틀린 말은 아닌데 우리가 능력이 안 되는 걸 어떻게 합니까. 근데 ‘그러니까 해야죠!’ 라고 하는 거예요. 뭘 어떻게!, 라고 하니까 조사를 해서 만들어 가야죠, 하는 거예요. 감성적으로 덤빌 얘기가 아니다, 안 되면 안 된다고 해야 한다, 제가 그랬어요.


/ 마음이 안 좋으셨겠네요. 첫 수주인데. 누구보다 하고 싶은 사람인데.


/ 그렇죠. 첫 수주죠. 근데 자기가 하겠대요. 내가 어지간하면 다 해보라고 하겠는데 구두 자체도 모르는 친구가 어떻게 하려고?, 하니 성수동에 구두공장 많아요’, 합니다. 그쪽이랑 같이 해서, 장애인들하고 함께 만들어 보겠다고.


/ , 보통 이럴 땐 영화에서는 기적처럼 뭐가 되는데(웃음).

 

/ (수녀님에게) 퇴짜 맞았어요(웃음). 계속 가서 퇴짜 맞고 퇴짜 맞고 또 퇴짜 맞고. 열 번 넘게(웃음). 신어보면 안 편하다는 거죠. 근데 밥만 먹으면 그 짓을 하는 거예요. 그 친구들이. 멍하게 있는 거 보단 낫다만 저건 불가능한 일인데... 제가 감각으로 사니까 눈으로는 못 보고 이건 틀린 일이다, 그랬어요. 근데 이놈들이 계속 하더라구요.


/ 대표님은 포기했는데 직원들이 더 극성이었다.


/ 그 친구가 그랬어요. 그 놈이. 그때 대 여섯 번이라고 생각했는데 열두 번도 더 간 거예요. 저 모르게 계속 간 거죠. 열 번 넘을 때까지 퇴짜를 맞고 결국 OK사인이 났어요. 300켤레를 납품했어요. 그분들이 500켤레를 살려고 했는데 처음 만드는 거라 불안하니 300켤레만 산 거예요. 기분 좋았죠. 석달 만에 이 일이 일어났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수녀원에도 다 편지 보냈어요.


자신감이 생겼다. 


/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수녀님들이 많이 살 줄 알았는데 안 샀어요. 생각처럼 한 번 팔렸다고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는 없지요. 좌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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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되는 건, 없었다. 하나도.




8. 빚이 쌓인다


/ 계속 실망했다가, 흥분했다가, 실망했다가, 의 연속이었습니다. 복지관에서 일하다가 또 공장가서 동태 살피고... 방법이 없었어요.


헌데요.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한 번은 여자 분이 오셨어요. 오시더니, 당시 수녀원에 납품하고 몇 켤레 놔뒀거든요, 이거 무슨 구두냐고, 수녀화인데 300켤레 팔고 놔두고 있다고 했어요. 신어보겠대요. 그러더니 안 신은 거 같다고. 왜냐하면 자기가 허리 아파서 수술했는데 단화도 못 신었대요. 그분이 보더니 진짜 좋은 구두다. 이거 효도화로 해서 어른들한테 팔아라,는 거예요. 그분이 효도화라고 해서 여성신발이 꽤 많이 팔렸지요. 추미애 의원도 사고 본인 어머님도 사주고.


/ 추미애 대표님도 신발 사고 사진 찍으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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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사진



/ 추미애 의원도 허리가 썩 좋진 않거든요. 그 고생고생들이 지금은 그냥 지나간 일이었지만 피가 마르는 일이었어요.


임금체불하려고 그 사람들 부른 것도 아니요, 월급 꿔서 주는 것도 한 두 번입니다. 여섯 명 규모는 월급이 작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막상 재료 사고 유지하고 하려면, 아주, 아주 쉽지 않아요.


제가 보이지 않으니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이 얼마나 찡그리는지 모릅니다. 목소리만 듣고 일이 안 풀리면 한숨 쉬고... 요정도만 하고 그러는데. 빚을 지기 시작하니 사람이 정신없어 지더라구요. 돌파구, 돌파구가 있어야 하는데.


/ 혹시 디자인 문제는 아닙니까.


/ 구두 처음 만들 때, 디자이너가 있고 이러면 모르는데, 그냥 남의 거 흉내냈어요. 몇 가지만 살짝 모양을 변형한 거지요.


/ 대표님, 언론에서 엄청 좋게 나가고 있는데!(웃음)


/ 남의 거 흉내내서 굽이 있는 구두, 아니면 단아한 구두, 이런 식으로 만들었는데 그것도 낑낑거리며 했어요.


/ 해서 해서 거기까지 간 거였군요.


/ 갔어요. 결국 팔려면 어떻게 파냐? 지인으로만 할 수 없잖아요. 매장이 있거나, 아니면 광고비가 있어서 광고해서 팔 거나.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방법이 없었어요.


돌파구, 보이지 않는다.




9. 측은지심은 안 된다 : 28살의 유석영, 31살의 유시민


/ 죄송한데 이쯤 되면 동정심을 자극하고 싶은 생각도 들 것 같습니다. 앞은 보이지 않고 직원들의 월급은 책임져야 하고. 대표님 글이나 방송을 쭈욱 봤는데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더군요. 장애인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질 낮은 제품을 강매하기도 한다, 그런 관행이 자립심을 더 줄여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유명 수제화와 떳떳하게 경쟁하겠다.


/ 그렇습니다. 아주 중요한 겁니다. 전쟁 직후엔 상이용사 분들이 관공서 같은데 가서 들이대요. 사실 지금도 그런 게 남아있어서 강매를 해요. 도장 케이스 같은 거, 이런 것들을 그냥 들이대는 거죠. 다음엔 팔 생각을 안 해요.


/ 이왕이면 편한 길, 아니, 말 그대로 앞이 보이지 않을 땐 그렇게라도 하는 게 사람 마음 아닙니까. 저도 삶이 막막한데 아무 방법이 없었다면 그랬을 것 같습니다.


/ 제가 예전에 가구를 팔 때 아주, 굉장히, 절절하게 느꼈어요. 그러면 안 됩니다.


유 대표는 구두공장 이전에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가구공장을 운영한 적이 있다. 성공적이었고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나왔다. 


/ 안 되다니요? 윤리적 측면에서 하시는 말씀인가요?


/ 다음이 없습니다.


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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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은 선심성으로 사줍니다. 강매 이전에 측은지심 때문에 사주는 사람도 있고. 그 측은지심이 작동하지 않으면 강매를 하는 거죠. 내가 비지니스를 몰라도 그건 아닌 거지요. 


/그렇다고 매장도 없고 광고비용도 없는데. 


/ 유시민 장관한테 전화했어요. 구두를 만들었는데 모델 해줘야겠다고, 아~ 그거 좋죠! 그러더라구요.


/ 대표님이 고민하다 먼저 전화를 하신 거였군요.


나는 주위 사람 대부분이, 측은지심에, 알아서 그를 ‘도왔다’ 생각했다. 부끄럽다.


/ 네. 전화했죠. 원체 잘 아는 사이니까. 대신에 모델료는 주겠다고.


/ 오, 모델료까지.


/ 모델료는 구두 한 켤레(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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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돌베게 출판사에서 글 쓰고 계셨는데. 배한성 선생이 방송 선배니까 그 양반한테도 부탁하고. 조문식은 친구니까 거기도 했지요. 변상욱 선배까지. 당신들이 매장이다, 라고. 카탈로그도 사진작가를 못 구하니까 자원봉사 받아가지고 찍어서 행상하러 다닌 거죠.


/ 그렇게 편히 전화하실 정도면 서로 계속 왕래가 있으셨던 거고.


/ 30년 됐어요.


/ 구체적으로 어떤 인연입니까?


/ 유시민 작가가 참 따뜻한 분이예요. 제가 방송 새내기, 그러니까 리포터 하던 시절이었어요. 이 양반이 이해찬 의원 보좌관으로 있었잖아요. 그때 보좌관실에서 전화가 왔다는데 어느 장애인 한 사람에게 계속 편지오고 전화가 와서 참 어렵다고, 이 분야 전문가가 없으니까 찾는다고, 저를 찾은 거예요. 그래서 무슨 얘긴지 갔어요. 의원실로 갔더니.


/ 그때 몇 살이셨나요?


/ 89년이니까, 유시민 작가님이 저보다 3살 더 많아요.


유석영 대표는 62년생이다. 28살 유 대표와 31살 유 작가의 첫 만남이다.


/ 졸업하면 갈 데가 없는 친구가 있는데 어떡하면 좋겠냐고 했어요. 같이 가보자고 하더라구요. 광명시로 갔어요. 이름이 OO이에요. 윤OO인데 집이 괜찮게 살아요. 뇌성마비인데 ‘너 집이 이렇게 부자인데 왜 그래’, 그랬더니, ‘이건 아버지 거지. 자기 거 아니다’, 라는 거예요. 졸업하면 갈 데 없다고.


그때 당시 유시민 보좌관이 고민해서 그 친구가 컴퓨터로 일할 수 있도록 했어요. 꽤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와는 그리 된 인연입니다. 이해찬 의원 지역구가 난곡 그쪽이었는데 쪽방촌 많은 곳이예요. 산꼭대기 올라가서 둘이 얘길 했어요. 자기는 정치로 세상이 좀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했지요.


쪽방촌 산꼭대기에서 정치로 세상이 좋아지길 바랬던 31살 청년, 유시민. 그 이후 인생은 다들 아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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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아지오 구두의 모델이 되었답니다. 응?



/ 30년 흐른 게 지금이네요.


/ 그분은 보신대로 그렇게 살아오셨고. 저는 방송을 오래하고 장애인이니까 후배들 위해서 살아 보고 싶다, 해서 이렇게 됐고. 그렇게 드문드문 인연이 있었던 거지요.


/ 그때 유시민 작가 모습이 궁금하네요. 정치할 땐 안티들한테 막 싸가지 없다고 오만 욕을 다 드셨는데(웃음)


/ 그 양반, 말씀하시는 거 봐서는 안 따뜻할 거 같지만 되게 따뜻해요. OO이는 오랫동안 유시민 작가가 뒤에서 도와줬어요. 제가 어려울 때도 유 장관은 남모르게 도와주던 사람이었습니다.




10. 은인


/ 대표님 말씀 들어보니까 몰랐던 미담을 듣게 되는데 혹시 구두 만드는 풍경 하실 때 유시민 작가 외에 딱 한 사람 꼽아서 제일 기억에 남는 정치인 있습니까. 개인적인 궁금증입니다만 나중에 유권자들에게도 도움되지 않을까 해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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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도 신세를 여러 사람에게 져 가지고... 한 사람을 꼽으라면 윤후덕 의원이 저를 되게 많이 도와줬죠. 그 양반이 2012년 대선 때 비서실장을 하셨거든요. 문재인 대통령 대선후보 비서실장을. 첫 등원할 때 재수하고 떨어졌다 다시 되셨었는데. 국회의원 뱃지도 제 손으로 달아드렸어요. 


자기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복지관 직원들 조촐하게 모아달라고 했어요. 뱃지를 여기서 달고 가겠다고. 의원님, 그런 일을 왜 저한테 말합니까?, 했더니 그래야 내 마음이 안변할 거 같다고, 하셨어요. 그 양반이 동네 설거지는 다 하고 다녔거든. 그 양반은 정말 몸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좋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해서 등원하는 날. 뱃지를 그분에게 달아 드렸습니다.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줬고 쭈욱 그렇게 하셨기에 지금도 생각하면 뭉클해요. 그분이 저에게 은인입니다. 제가 어려움 당했을 때도 항상 챙겨주시고. 구두 팔 때 보면, 그분 블로그 가보면, 구두 막 들고 댕기면서 팔고 그랬어요. 지금도 그래요.


말에 절절함이 있다. 


/ 정말 은인입니다. 누가 뭐래도. 제가 구두공장 다시 할까요, 그럴 때 하지 말래요. 자기 고생 시킨다고(웃음). 근데 그분이 정치할 성격이 아니예요. 권모술수 그런 걸 못해서...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하고... 


걍, 참고하시길.




11. 절박해도 망한다


/ 대표님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고. 많은 분들의 도움도 받았다 하시고. 게다가 거의 하자마자 신세계 몰에 입점된 걸로 알고 있는데 저는 망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 당시에 여러 가지 곡절이 있었는데 신세계에서는 이슈를 찾고 있었어요. 저희 구두를 가져다 분해하고 본 다음에 콜이 왔습니다. 우리 패턴이 20개 밖에 안 되니 오프라인으로 매장 해봐야 팔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쇼핑몰에 실어 줄테니 오라고. 전 마케팅은 그렇게 하는구나, 했지요.


/ 조선일보에서도 기사를 봤습니다. 2011년 자로.


/ 장애인 사회적 기업이 백화점을 뚫었다, 이렇게 그걸 내주더란 말이죠. 


/ 홍보 효과를 생각해서 그렇게 기사가 나갔나 보네요. 게다가 국회에서 한 때 80여명이 그 신발을 신었다고 봤는데 잘 된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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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국회의원회관 신관 1층 로비.

윤후덕 의원, 문재인 대통령, 유석영 대표. 



/ 두 번째 판 게 80몇 개, 첫 번째는 110개 팔았어요. 오죽 장사가 안 되면 국회에 팔을 벌려 국회의원들 들볶아 가지고(웃음), 아닌 말로 구두를 팔 수 있는 특별한 날이 없는데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하는데 딱 떠오르더라구요. 9월 2일, 월일 두 개 합치면 구두 아니냐. 오늘은 구두데이 행사로 해서 국회로 간다. 그런 거예요.


/ 18대, 19대 때 하셨던데 그걸 어떻게 성공시킨 겁니까?


/ 18대에는 장애인 의원이 있어서 들이댔죠. 구두 못 팔면 거리에 나앉게 생기고 복지관장이 남한테 임금체불하고 악덕업주 된다고(웃음).


/ 정말 절박하셨군요(웃음).


/ 어쩔 수 없었어요. 그래서 구두판을 열었더니 좋더라구요. 많이 팔고 일단은 실적이 생기더라구요. 국회에서 우리 구두를 신는다, 이런 테마도 거기에 숨어있었죠. 만약에 우리가 잘 되고 있었고 환경이 좋았으면 그렇게 못 했을 거예요.


/ 아니, 도대체 왜 망한 건가요? 역시나 아직 망할 이유를 못 찾겠어요(웃음).


/ 만들어서 재료 사야죠, 급여 줘야죠. 이건 당연히 기본인 거고. 우리가 망할 징조가 있었던 게 뭐냐 하면... 신제품 개발을 계속 못한 거예요. 계속 신제품을 했었어야 돼요. 정말 경쟁력 있으려면 계속 새로운 상품을 보이면서 소비자를 유인했어야 되는 일인데 엄두를 못 냈어요. 그걸 갖고 계속 유지하면서 떼만 쓰고 다녔으니 빚은 조금씩 갚아 갔지만 지속 가능할 여지는 없었던 거죠.


/ 지속 가능성이 없으면 망한다. 냉정한 판단이네요.


/ 언론밥을 먹은 사람이라 많은 사람들을 아니까 언론에서 주목 해준 것도 있지요. 커진 사이즈에 비해 우리 소프트웨어가 너무 적었어요. 계속 지치다가 결국은 부담스러우니 제가 복지관장 내려놓을 때 같이 내려놓은 겁니다.


제가 복지관장을 완전히 내려놓고 거기에 전념했더라면 모르는데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겁니다. 망할 수밖에 없었다, 라는 부분보다 계속 못 갔던 거죠. 지속성이 없었고 버틸 힘이 없었어요.


/ 어쩌면 너무 튼튼하게 만드신 거 아닌가요. 너무 오래 신을 수 있게(웃음). 그렇게 많이 돌아다니신 문재인 대통령이 5년 넘게 신으신 걸 보면. 게다가 평생 AS한다고 하셨는데.


/ 지금도 구두를 갖고 있는 분이 되게 많으세요. 그때 우리가 미련한 짓을 한 거죠. 평생 AS를 한다고. 객기를 부리는, 그런 바보같은 짓을, 진짜 바보같은 짓을 한 거죠. 많이 갈아 줬어요. 그런 요인들도 장사를 안 해 본 사람이니까. 넉넉한 사람들이 무슨 개업 몇 주년 해가지고 그런 짓을 하면 몰라도 처음부터 그런 호기를 부렸으니 뭐.


/ 대표님 설마 제가 잘못 이해한 건가요? 평생 AS라는 말은 그 AS가 평생 무료라는 말입니까?


/ 그랬었어요.


/ 으아.


/ 그런 미련한 짓을 한 거죠. 그 뒤에 중간에 스톱했어요.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무모한 방법을 쓰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배웠죠. 사업이라는 걸 스케치 할 때는 누구든지 뭘 못하겠어요. 저도 세상 유명한 사람한테 달라붙어서 누구든 만났는데... 절박하면 사람이 그렇게 됩니다.


제품엔 참 자부심이 있었는데... 문 닫아 놓고 그 다음해부터 신발 싸이클이 돌아왔어요. 제품이 낡으면 재구매율이 막 오는데. 문 닫고 많이 울었는데... 전 화 한 통 한통 올 때마다 가슴이 올올이 찢어졌습니다.


이걸 못 참았구나.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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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의 잘못이 80%는 넘어요. 근데 세상 탓을 한 20% 해볼래요(웃음).




12. 아지오, 시즌2 


그의 가족은 모두 시력이 나빴다. 그렇다. 가족력이다. 중학교 때부터 이상하더니 20대 되니 정신없이 나빠졌다. 사람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니 동네사람에게 오해받는 일도 많았다.


방황이 따랐다. 공부는 몇 번을 때려쳤는지 모른다. 이른 노숙도 했다. 눈이 나빠진 걸 눈치 챈 동네 아저씨가 얼굴도 괜찮고 말 잘하니 아나운서가 돼보라 했다. 물론, 모두 안 된다 했다. 시력을 잃어가는 사람에게 아나운서라니, 그 순간만 놓고 보면 주위 사람들이야말로 현명하다. 희망이야말로 사람을 죽이니까. 다만, 그는 꿈이 생긴 순간으로 기억한다. 방황하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 꿈 하나 가지고 갔다. 


굳은 일과 방황 사이에서 지내다 정신 차리니 자원봉사 단체에 소속돼 있었다. 여름캠프 가려는데 장애인들과 함께 하니 자원봉사자가 필요했다. 방송사에 전화했다. CBS에서 연락이 왔다. 누가 와서 한 번 말해달라. 4시부터 방송이니 3시까지 오라. 


보이지 않으니 종로 5가를 헤맸다. 한참이나. 3시 45분에 도착하니 PD가 준비한 자료를 달라했다. 그는 머릿 속에 있다 했다. PD는 말한다.


‘아니, 이 사람아. 자료가 있어야 방송을 하는데. 

이거 어떻게 할 거냐’


방송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쌍방이 최소한의 내용을 숙지해야 하는데, 10분 남기고 사고가 터진 게다. 3시까지 갔으면 다른 게스트를 불렀겠으나 곧 방송 시작. 다행히 윤형주 MC와 합을 잘 맞춰 방송은 무사종료. 스튜디오 문을 여니 PD는 말한다. 


'방송 잘하는데. 우리 리포터 없는데 한번 해볼래?'


방송 입문의 시작이다. 88장애인 올림픽 취재, 르뽀 작가 등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다른 방송사도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


기반이 생기자 그는 재능 있는 장애인을 발굴한다. 장애인의 자립에 관한 일을 한다. 지금 하는 일도 연장선이다. 이유는, 고통이다. 정밀히 하면 ‘고통을 알기에’라 답했다. 가난해 배고픈 것도 힘드나 자존심과 외로움이야말로 고통, 이라고. 


장애인이 겪는 냉혹은 누군가와 떨어져 있음을 느끼는 상황이다. 같이 앉아 있으나 본인들 끼리만 이야기하는, 나만 홀로 있는 느낌. 세상에서 나만 떨어진 기분. 누군가에겐 때때로지만 장애인은 평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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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가 화제됐을 때, 그는 실검 1위에 올랐다. 언론이 앞 다투어 그를 찾았다. 부담스러웠다, 했다. 30대였으면 '사람이 애드벌룬처럼 되어 병들었을 거', 라 했다. 사회에 책임져야 할 나이인데, 행여 다시 시작한다면, 많은 사람 설득하고, 많은 생계 책임져야 하는데, 더없이 신중해야겠다 생각했다. 


이 인터뷰는 당시, 그가 화제의 중심에 있을 때, 다른 방송출연을 거절하고 오랜 시간을 내준 것이다. 다만, 나 또한 생각했다. 그가 다시 시작하지 않는다면, 이 인터뷰는 의미가 있을까. 주목되고 곧 잊혀질 이야기 하나는, 서로에게 공허함 더 하지 않을까. 그의 말마따나 언론이 주목해 '사람이 애드벌룬처럼 되어버려' 망가진 사례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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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전, 그러니까 11월 14일, 코코아 기자와 함께 성남으로 갔다. 반년 만에 유석영 대표와 만났다. 아지오 시즌 2, 다시 시작하는 "구두만드는 풍경"의 창립총회 날이다.


그는 다시 시작한다. 아니, 그들은 다시 시작한다. 목표 펀딩 금액 5억. 개인이 넣을 수 있는 최대 금액 50만원. 그 돈 모아 함께 키워, 빌려준 돈은 은행 보통 금리 적용해 2018년 10월 31일에 갚는다.


아무리 좋은 말도 행동을 이기진 못하니 이제, 이 인터뷰를 내도 될 듯하다. 대표님께, 반년간 의심해서 미안하다. 다만, 그 사이 활동하시는 건 열심히 지켜보았습니다.  


나 또한 아지오 구두 신을 날 고대하며,  


오늘은 이쯤에서.  





*추신1: 펀딩 혹은 구두 구매에 관심 있으신 분은 다음 까페 "구두만드는 풍경"을 검색하시길. 까페 주소는 여기(링크).


*추신2 : 사진 기자는 필름 카메라로 최소의 컷만 찍는 요상한 친구인지라 사진 상태가 좀 특이하다. 잘생긴 유석영 대표님이 이해해주시라. 









사진/ 고려명

이너뷰 전, 함께 자료 정리한/ 코코아


이너뷰어 및 기사/ 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

kimchangkyu1201@gmail.com

Profile
딴지일보 편집장. 홍석동 납치사건, 김규열 선장사건, 도박 묵시록 등을 취재했습니다. 밤낮없이 시달린 필진들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가족과 함께 북극(혹은 남극)에 사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