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art_14790089949805.jpg


10년쯤 전 일입니다. 후배 녀석 하나가 부탁을 해 왔습니다. 좀 괴상해 보이는 대체의학자를 취재해 달라는 것이었죠. 자기는 이미 말기 암 환자로 위장해서 그 대체의학자의 근거지를 들락거리고 있어서 정면 취재가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낮은포복으로 임해야 할 잠입취재도 아니고 위험한 일도 아닐진대 선배 생색은 이럴 때 내는 거죠. 저는 신분증까지 당당하게 목에 내걸고 '취재 차' 문제의 대체의학자를 찾았습니다. 그는 중국풍의 옷을 근사하게 차려입고서 한의사까지 망라한 지지자들과 암 환자들에 둘러싸여서 인터뷰에 응했지요.

그에 따르면 암은 이미 자신의 치료법에 의해 정복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완치시켰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열 명도 넘게 적어 주더군요. 그리 유창한 편은 못 되는 장광설을 졸음 참아내며 들어주다 보니 획기적인(?) 주장이 귀를 파 댑니다.

그에 따르면 암은 인체의 장기 곳곳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층에 그 뿌리를 두고 장기를 파고들어간다고 합니다. 즉 엄밀히 말해어 '위암'이나 '간암'이나 '폐암'이 아니라 위나 간이나 폐 위의 피부에서 발생한다는 겁니다. 그 암의 '뿌리'를, 아마존 강에서 캐내온 '고양이 발톱'같은 약초 등 수십 가지를 혼합하여 자신의 비방으로 만들어낸 환약과 약침 (주사 비슷한)을 통해 치료한다는군요.

황당한 표정을 박박 지우려 애쓰는 저 앞에서 이 대체의학자 더욱 더 파격적인 면모를 발휘하십니다. "가끔 약 때문에 열이 오르고 머리가 아플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이런 침 가지고 말이야..." 라는 말을 하기가 무섭게 별안간 침을 들어 자기의 벗겨진 이마 정수리를 마구 찔러댑니다. 원한 맺힌 허수아비 방자하듯 말입니다. 이내 그의 머리에는 피가 뭉글뭉글 배어나왔지요.

"괘... 괜찮으십니까?"

"머리뼈가 튼튼하기 때문에 괜찮아요"

"이걸 집에서 일반인이 하란 말씀인가요."

"나 봐요. 안죽잖아..."

"... ..."

그가 약초 사마귀풀이라고 내민 걸 조사해 보니 대학 캠퍼스 곳곳에 지천으로 널린 땅빈대였고 그의 책에서 그의 치료를 받아 완치된 고마움을 대통령에까지 써서 보냈다는 환자는 그런 글을 쓴 적이 전혀 없다고 손사래를 쳤으며 약침 주사액에서는 진통제, 환약에서는 마취제의 성분이 검출되는 가운데 잡다하지만 별로 신기할 것 없어 뵈는 재료들의 집합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가 내밀었던 명함은 태반이 가짜이거나 유령 기관의 직함으로 채워져 있었으며 원래 모 대학 노문과 출신이라는 그가 의학을 배웠던 것이라고는 친구의 아버지 약국에서 약 팔았던 경력이 전부였지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는 더 이상 엉성할 수 없는 사이비였습니다.

775ijo4c6y062u17k9c6.jpg

그런데 그곳에서 저와 담당 PD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사람으로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이 문제의 대체의학자에게 약을 타 먹고 있었지요. 항암치료보다야 싸다지만 어쨌건 한 달에 기백만원의 돈을 바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의학자의 사이비성에 대해 침이 말라 혀가 거북이등처럼 갈라지도록 설명해도 그는 오불관언 우이독경이었습니다.

"어쨌든 이 사람 약 먹고 안 아팠어. 이놈 저놈 말 다 들어 봤는데 결국 사이비든 뭐든 나 안 아프게 하면 되는 거야. 그냥 난 이 사람 믿어 볼라우."

진찰 결과 암덩어리는 소멸은 커녕 더 큼직하게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눈앞에 보고서도 그는 "암덩어리가 없어졌다고는 말 안했어요 뿌리를 죽여서 암세포를 퍼뜨리지 않는다고 했지." 라면서 대체의학자의 입장을 애써 두둔하시더군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된 말기 암 환자의 심경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의 믿음은 지나치게 강고했고 촛농이 되어 고막을 틀어막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토대는 역설적이게도 자포자기였습니다.

지금까지 암 치료를 받으면서 의사들로부터 느꼈던 서운함에 항암치료가 주었던 뼈에 사무치는 고통의 기억이 담기고 그 아픔을 겪으면서도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는 않고 점점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서는 공포가 버무려졌던 거지요.

결국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다 필요 없어. 사이비든 뭐든 나 안 아프게만 하고, 나 낫게만 해." 하는 자포자기에 이르렀고 마취제와 진통제 성분의 환약과 약침을 수십 알씩, 수십 방씩 섭취하면서 고통이 잦아드는 느낌이 들자 이내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이라면 누구라도 혀를 차면서 손가락을 머리 옆에서 돌릴 사이비를 21세기에 환생한 화타로 굳게 믿는 지경에 이른 겁니다.

그 분이 병원 치료를 거부한 채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그림을 편집하면서 안스러운 표정으로 혀를 차던 저는 화들짝 쯧쯧 소리를 멈추고 머리를 긁고 말았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마 사기꾼이라도 괜찮아. 어쨌든 난 이쪽에 올인"을 부르짖는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게 제 뇌리와 시야와 귓전을 뒤덮어 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알에서 화제가 된 사진 속 사람 역시 저는 10년 전 마주한 '대체 의학자' 이상의 돌팔이이라고 확신합니다. 도무지 21세기를 사는 사람으로서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를 터무니없이 하되, 그를 믿고 싶은 사람들 사이에서 믿음을 획득하고 상호 전파되며, 누가 그를 공격하면 오히려 그 믿음은 강화되고, 또 한 번 오히려 그 믿음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감화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는 경로 또한 똑같구요.

23658721_805433712978079_3997879994426607054_n.jpg

부처님 가르치신 얘기 중에 이런 게 있다지요. 한 남자가 더할 나위없이 아름답고 현숙하고 경제력도 있는 아내와 결혼했는데 어느날 웬 사납기 그지없고 곰보 내려앉은 얼굴의 여자가 나타나 자기도 이 집에 함께 살아야 한다고 우기길래 내쫓아 버립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아내는 파랗게 질려 남편에게 말합니다. "제 이름은 행복이고 그 여자 이름은 불행인데, 제 언니입니다. 우리는 같이 살 수 밖에 없는데 당신이 언니를 쫓았으니 나도 나갈 수 밖에 없어요."

저는 여기에 '믿음'과 '의심'을 대입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믿음이든 그 믿음의 강고함을 자랑하려면 그만큼 날선 의심을 해 보아야 합니다. 의심없는 믿음은 맹목이고 믿음에 이르지 못하는 의심은 공허하다고나 할까요. (칸트 선생 죄송합니다) 비단 한의학이나 대체의학의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이념이든 특정인물이든 역사적 팩트든 섣부른 믿음은 맨손으로 칼날을 잡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날은 손바닥을 파고 들 수 밖에 없다는 거지요.





산하

편집 : 꾸물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