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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는 진동이 좀 잠잠해졌다. 그래서 기억해 보려 한다.


나는 포항에 살고 있다. 15일 낮 2시 반 쯤. 포항시 양덕동의 한 아파트에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도서관에 가려고 가방에 짐을 쑤셔넣고 있을 때 엄청난 진동이 느껴졌다. 우르르르르. 지진이었다. 제대로 일어서기조차 힘든 지진.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방 책장에 쌓아 놓은 책들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졌고, 책상에 있는 물건들 역시 움직이면서 떨어졌다. 난 그 밑에 들어가 있을 생각은 애초부터 못 했고 일단 가방을 들고 방문을 뛰쳐 나갔는데 너무 흔들린 탓에 순간 균형을 잃고 집 복도의 벽에 부딪치고 넘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거실을 바라봤다. 올려 둔 물건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간당간당했다. 지진은 잠깐이 아니라 몇 초간 지속될 정도로 길었다. 그러다 멈췄다. 나는 "이게 뭐야. 이게 뭐야"를 중얼거리며 손을 덜덜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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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뭘 해야 할지 떠올라 바로 거실로 뛰었다. 먼저 깨질 위험이 있는 물건들을 모두 바닥에 내려놨다. 옮긴 후엔 바로 전원이 켜져 있는 물건들을 껐다. 애초에 켜 놓은 물건들은 얼마 없었기에 수월했지만, 그때 두꺼비집을 완전히 내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대신 가스 밸브를 잠그긴 했다. 당장 나가야겠다 싶어 현관문으로 뛰었을 때 전과 맞먹는 두 번째 지진이 찾아왔다. 무거운 오디오 스피커까지 방향이 돌아갔고, 집이 너무 흔들려서 균형을 잡고 서 있기가 힘들었다. 두어개 깨지는 소리도 들렸는데 그것까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승강기가 작동되긴 했어도 지진 중에 타면 고장 날까봐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 내려가던 중에 지진이 또 멈췄다. 1층에 내려왔을 때 아파트 입구 자동 유리문이 일부만 열리고 정지되어 있었다. 경황이 없어 손으로 잡고 힘을 줬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이미 사람들이 꽤 밖에 나와 있었는데 모두 발이 얼은 듯 자기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다급해진 나는 유리문을 발로 세게 찼다. 그제야 열리더라.


바깥 사람들은 모두 떨어져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한다고 바빴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다행히 다들 무사했다. 서실에 있었던 아버지는 건물 벽이 갈라지고 흔들려서 밖으로 피신했고, 동네 카페 안에 있었다는 어머니는 천장에서 콘크리트가 우수수 떨어졌다고 말했다. 수십대의 차들이 일제히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지하주차장에서 나오는 차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집으로부터 탈출하고 건물파편으로 인한 차의 파손을 피하려 내린 선택 같았다. 단지 밖에는 두려움을 느꼈는지 울고 있는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지진 났던 시각에 집 주변 양덕 초등학교 학생들이 하교를 시작할 때였다. 유독 다급했던 차가 무리해서 나오다가 앞차를 세게 들이받기도 했다. 그리고 몇 분 후, 갑자기 가만히 있던 어떤 점포의 강화유리가 요란하게 산산조각 났다. 주변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모두 단 몇 십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작년 경주지진과 달리 전화통화가 가능했고, 스마트폰으로 재난문자가 그나마 빨리 와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론 지진으로 경황이 없어서 폰 확인도 제대로 못했지만. 지진 최초 진원지는 흥해. 가까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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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들은 대부분 아파트 맞은편 공원에 모여 있었다. 난 1시간 정도 어수선하게 다른 곳에 서 있다가 더이상 지진이 느껴지지 않아서 집 정리를 하러 다시 들어갔다. 발로 차야 열렸던 출입구 자동문은 아예 활짝 열려 있었다. 한 택배 기사가 무심하게 카트를 끌고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와 같이 올라갔다. 별 이상 없었지만 계단으로 올라가는 게 덜 불안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다시 들어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방금 전 지진을 겪어서일까. 어째 좀 기울어 있다고 느껴졌다. 균열이라도 있을까 싶어 구석구석 확인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집안 물건들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지만 다행히 베일 위험이 있는 소재로 만든 물건들 중 깨진 것은 몇 개 없었다. 묵묵히 정리하고 있던 중 여진이 와서 집이 흔들렸다. 이후로도 여러 번 왔다. 당장 머리를 숙이고 피할 곳을 찾을 생각을 해야 정상인데, 그럴 때마다 난 그저 멍하니 있었다. 다른 데 였음 벌써 어디 깔리거나 무언가에 머릴 맞거나 했겠구만.


정리도 끝냈고, 깨질 위험이 있는 물건들도 다 찾았다고 생각했다. 잠잠해졌으니 주변에 대피소가 있는지, 아파트 지하주차장 쪽은 어떤지 보려고 나가봤다. 지하주차장은 천장에 있던 건물 조각들이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별 이상은 없었다. 다만 텅 빈 지하를 밝히는 전등이 계속 깜빡깜빡 거려서 보기에 살짝 그로테스크 했다. 대피소는 대구에 오래 있다가 몇 개월 전에야 포항으로 돌아온 터라, 옥외대피소 한 곳만 알고 있었다. 양덕초등학교 운동장. 그런데 학교에 가 보니 건물에 접근을 금지하는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학교 건물 밑의 보도블록들이 일제히 올라와 있었고, 외벽에는 가로세로로 균열이 가 있었다. 여기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곳을 찾아 걸어내려 가는 동안 쉴새없이 움직이는 차들을 봤다. 일부는 주변에 건물이 없는 동네 축구장, 혹은 양덕동 가까이에 있는 환호동 쪽으로. 그리고 아예 포항에서 벗어나겠다는 듯 하염없이 멀어져가는 차도 있었다. 주변에 물어보니 환호동 대도중학교가 실내 임시대피소로도 이용된다고 했다. 그러나 축구장 주변에 있는 도로들은 아예 땅이 갈라져 있었다. 대도중학교 주변에는 역시 전부터 있었던 빌라 외벽과 담장이 산사태 겪은 마냥 모조리 무너져 있었다. 언론을 통해 피해상황이 잘 알려진 한동대학교와 비슷한 방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피난에 대한 생각은 싹 사라졌다. 부근에 있던 빌라가 그 꼴이 났고, 살고 있는 집보다 더 오래된 학교에 있는 것이 더 위험해 보여서였다. 다시 터덜터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스마트폰을 보며 수능시험장으로 이용될 예정이었던 포항고등학교에 균열났다는 소식을 봤다. 어째 학교 건물들이 죄다 위험해 보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피해가 더 심한 쪽은 진원지였다. 일본에서 살다 온 지인이 뉴스를 보고 바로 안부를 물어왔다. 진도가 5.5 라고 얘기하자, 그는 순간적으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 건물들이 그 정도 진도조차 못 견딘다고? 그는 일본은 진도가 7~8 대가 아닌 이상 대단한 게 아니며, 조금 흔들리다 만 정도로 생각한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날씨가 쌀쌀했는데, 말을 듣고는 조금 다른 의미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말 마따나 고작 5.5의 진도일 뿐인데. 그런데 진원지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오래됐다 싶은 주변 건물들이 박살나서 무너지고 길바닥에 구멍이 뚫렸으며 갈라지는 모습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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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 진도조차 견디지 못하느냐는 질문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포항 지진은 수치에 비해 피해가 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포항시 지형이 약 1,000만 년 전까지만 해도 동해에 잠겨 있다가 이후 퇴적지층이 융기하면서 생긴 탓에, 퇴적지층을 지나면서 지진파가 증폭되어 5.5짜리 진도지만 실제 체감 충격은 7.4에 육박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 날 일을 겪음으로써 무언가가 잘 보이는 듯 했다. 포항에 5.5 그 이상의 진도가 찾아온다면 어떻게 될지를.


지진을 겪은 첫 날 밤. 집 부엌에서 뭘 꺼내려고 찬장 문을 열었다. 여는 순간 안에 있던 가재도구가 모조리 쏟아져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어머니는 비명을 질렀다. 나도 깜짝 놀랐다. 집이 괜찮은지 다 확인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제서야 못 본 곳이 아직 많이 있음을 깨달았다. 유리로 만들어진 또 다른 물건들이 다른 찬장문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던 모습도 그제서야 보였다. 가족 전체가 신경이 곤두 서 있었다.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는 동안 다섯 여섯 번 집이 흔들리는 여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후 며칠이 지났지만 걸어다닐 때마다 집과 거리가 묘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당분간 뭔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트라우마처럼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3.


지진은 어느새 온라인에서 유머 소재로 쓰이고 있다. 현 정부가 수능을 1주일 연기하자고 초유의 결정을 내린 부분과 더불어서 거론되다 보니 이해는 간다. 사실 직접 겪는 일이 아닌 이상,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말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에 가깝다. 그 이상을 바라는 태도는 욕심일지도 모른다. 최소한 웃기기라도 하니까 양반이다. 내가 본 몇몇 다른 글들에 비하면. 조선일보가 쓴 '포항 생각하면 수능 연기 맞는데... 59만 수험생 대혼란' 이란 기사. 류여해 자유한국당 의원의 발언인 "포항 지진은 문재인에게 내리는 하늘의 엄중한 경고". 영암삼호교회 이형만 목사의 발언인 "종교계 과세하니까 포항에서 지진났다", 그리고 이명박과 박근혜를 뽑은 벌, 혹은 이명박도 뽑았으면서 뭐가 무서워서 지진에 도망가느냐는 식의 SNS 글과 댓글들이었다. 이명박 운운하며 지진지역과 이재민들을 조롱하는 글은 모두 이명박 정권이 벌인 악행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지식이 포함된 글이거나 당사자가 그만큼의 관련지식을 갖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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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 종교가 썩어빠졌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 놀랍지도 않다. 포항이 이명박의 정치적 고향 (일본 오사카 태생이므로 출생의 의미로서의 고향은 아니지만)을 자처한 점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기사와 글들을 보고 있으면 윤리와 공감 없이 축적된 지식 프로세스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곤 한다. 수험생들이라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겠다. 수능 전날이라고 책 갖다 버린 건 어쩔 수 없을지라도, 오직 시험만 보고 달려온 학생들에게 연기는 큰 충격일 수밖에 없다. 허탈한 마음이 크겠지. 그러나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사람들이 위에서 언급한 글을 쓰고 발언을 했다고 생각하면 여러모로 착잡해진다.


조선일보는 수능 연기 결정을 내린 현 정부에 대한 비난을 우선으로 했겠지만, 그들의 글에서는 마치 서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결코 없다는 착각에 빠진 것 같다. 이명박을 내세우며 지진 피해자를 향해 조롱하는 글도 비슷해 보인다. 심각한 안전불감증이다. 한국에서 내진 설계 건물은 2000년이 되어서야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이후 지어지는 모든 건물들이 건설 기준을 엄격하게 지켰다고 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현재 포항 장량동의 한 건물 기둥 사진을 통해 많이 거론되는 필로티 건축방식의 건물을 활발하게 짓게 했던 이명박이 '대통령' 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 보인다. 이명박이 포항 대통령도 아니고 한국 대통령이었는데, 과연 필로티 건물을 포항에만 짓게 했을까. 그리고 건설업자들이 안전불감증에 고질적으로 시달려 온 국가에서 규정 잘 지켜가며 건축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현재 여기서 벌어지는 상황과 국가적 조치. 모두 다른 지역에서 겪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포항보다 피해가 적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명박이 처벌받아야 할 놈인 것과는 별개로, 지진은 지역과 빈부를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 지식 뽐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온라인 상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의 말 역시 어딘가 화풀이 할 대상을 찾아 이죽거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지진을 계기 삼아 정치적 올바름을 가르쳐 줬으며, 깨인 사람으로서 좋을 일을 했다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당장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 중, 사는 데 지장없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가르침일까 위로일까.


진원지 쪽을 비롯해 살던 곳에서 붕괴의 위험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겪을 불안감.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첫 날만 해도 이미 꽤 많은 이재민과 열댓명이 넘는 부상자가 집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진은 여전히 발생 중이다. 발생빈도와 진도가 많이 줄다가도 17일에는 다시 높아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진도가 조금 높아진 지진이 밤마다 찾아오고 있다. 현 정부가 대처를 아주 잘 해주고 있지만, 지진은 사람의 노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 아닌가. 길면 몇 개월이라도 다시 여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앞으로도 그저 무사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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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호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