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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출발은 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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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나라를 구해야 할 정도로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는데 부역한 이들이라면 반성해야 한다. 물론 반성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탐사 보도를 하는 기자들의 마이크를 뺏고, 인기 좋은 프로그램의 출연자를 쫓아내는 짓을 할 리가 없었겠지만.

 

9년간 가랑비에 옷 젖듯 익숙해져 잠시 잊었던 적폐 방송의 클라스는 아이러니하게도 MBC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후에 더 잘 보였다. 재방송으로 꾸려진 MBC 방송 중 내가 발견한 가장 굉장하게 기이한 예능이라면 아무래도 MBC every1에서 방영한 MBC의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 인도 편>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TV를 곧이곧대로 믿다가는 외국에서 조옷될 수 있다. 역시나 적폐가 버티면 손해 보는 것은 죄 없는 시청자들뿐이다.

 

아비쉐크 굽타(한국에선 럭키라고 알려져 있다)의 고민은 솔직히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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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도의 KOSPI 지수라고 할 수 있는 SENSEX 지수는 3만이 넘는다(11월 14일 현재 32,941.87이었다). 약 10년 전에 1만 돌파했다고 축하했었는데 벌써 3배가 넘게 뛴 것이다. 주식이 저렇게 뛰고 있으면 산업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삼성 모바일이 인도에서 꽤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무서운 속도로 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치고 올라가는 자국 브랜드들도 나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심하게 독자적인 사용자 환경을 구사한 메뉴 때문에 뭘 눌러야 뭐가 나오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물건들을 찍어냈는데, 요즘은 꽤 쓸만한 전화기도 만들어내고 있다. 이미 1960년대에 위성 쏘아 올리고 전투기를 자체 생산했던 나라답게 2014년엔 화성 탐사선이 화성 궤도에 진입하기도 했다.



그런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여전히 “갠지스강, 뱀을 부리는 사람들, 코끼리들” 정도라면 누구라도 짜증 날 만 하다.

 

고정관념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방송이 이런 고정관념들을 깨고, 어떻게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느냐다. 남의 나라 문화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는 이들이 개입하지 않고 의욕으로만 방송을 채우면 인도는 성장과 관계없이 늘 자아 자판기 도시일 수밖에 없다.


 

1. 방송불가 단어들의 방송

 

인도 경찰들은 지금도 여성이 단정한 옷을 입고 다니지 않으면 강간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한다.


 

He gestures to mean that women should cover their entire body, then carries on speaking… Girls should be covered from here to here... They wear skirts, blouses, that don't cover them fully. Don't wear a dupatta. They display themselves. A kid will naturally be attracted to her.

 

여자들이라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몸 전체를 감싸는 손짓을 하면서)를 모두 감싸야 해요. 근데 쟤네들이 입은 건 치마, 블라우스 같은 것들인데 몸을 완전히 감싸지 않잖아요. Dupatta같은 것은 안 입고. 쟤넨 지금 자기 몸을 전시하는 거라고. 남자애들이라면 아주 자연스럽게 쟤넬 공격하게 되지.


FIRSTPOST - From the Delhi police: Why women deserve to be raped(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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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한 옷 Dupatta란 이런 옷을 말한다.

 


여자란 겁나 조신해야 하고, 남자의 보호 없이 혼자 여행 같은 거 다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겁나 가부장적인 문화가 살아 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많이 서구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자가 조심해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은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40대 아재가 이렇게 폭발적으로 터진다는 건, 그게 상당히 성적인 코드가 있는 말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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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이렇게 반응하는데 힌디로 “주세요”가 그냥 “빨다”의 뜻이었겠냐

 


흡연 장면을 모두 쫓아낸 방송사에서 명백한 성적 코드를 그대로 방영하다니. MB 503 시절에 본지가 쌓아 올린 영역이 그리도 부러웠던 걸까.

 

그뿐만 아니다. 남아시아 방송이었다고 한다면 당연히 삐- 하는 경고음으로 처리했을 다른 언어들도 여과 없이 방송을 탔다. 직역하면 “미친” 정도지만 남아시아에서 영락없이 삐- 처리되는 “빠글”도 10월 19일 첫날 방송분에서 방송을 탔고, 우리말로 “ㅈ만한 ㅅㄲ”, 혹은 영어로 sister fucker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밴쫒”은 11월 2일 방송에서 꽤 여러 번 나왔다. 모조리 삐- 처리하거나 방송하지 말았어야 하는 장면들이다. 물론 이 정도 문제들만 있었으면 굳이 이런 글까지 쓰진 않았을 거다.

 


2. 과도한 차별화 의욕

 

사실 인도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들은 대부분 방송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카스트가 4단계로 정리되고, 아직도 카스트의 잔재가 아주 강하게 남아 있다는 이야기들.

 

본 기자, 영어로 밥 먹고, 스페인어와 네팔어는 대충 서바이벌 수준이다. 힌디랑 싱할리는 단어 몇 개 나열하는 수준밖엔 안 된다. 그럼에도 인도 다큐 보다가 출연자들의 대사와 한글 자막이 안 맞는 경우 숱하게 본다. 좀 이상해서 받들어 모시는 힌디와 네팔어 권위자분께 한국 다큐 내용을 확인해보면 거의 백발백중 틀림없다. 출연하고 있는 이들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돈을 못 벌어서 큰일이야”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카스트에 걸맞는 삶을 못 살고 있다”는 식으로 지나치게 의역한다.

 

인도에 처음 갔던 게 다큐 찍으러 갔다 보니 방송 제작이 저 모양인 거, 이해는 한다. 인도에서 촬영 허가를 받으려면 서류 세 장을 접수해야 한다. 한 장은 주한 인도 대사관에서, 또 한 장은 수도 델리에서, 마지막 한 장은 촬영하려는 지역의 담당자로부터 받아야 한다. 대략 1만 킬로미터를 움직여서 서류를 만든 다음에 그걸 또 갖고 비슷한 거리를 돌아야 촬영 허가가 떨어진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할 외주 제작사가 외부에서 협찬을 받아와도 방송사가 30%를 먹고 저작권 챙기는 것이 관대한 방송 제작 계약 관행인 세상에 제대로 방송 만들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아마 그러니 이런 대사도 나왔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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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먹어도 됩니다!! 를 말하고 싶었던 아비쉐크 굽타 씨

 


꽤 많이 이야기했지만, 2014년 한 정당이 압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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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양반들 상태가 좀 심각하게 메롱이다. 어느 정도냐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타지마할이 “힌두교 신 시바의 사원을 허물고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사발을 풀었을 정도다. 힌두 극단주의 양반들 덕분에 타지마할은 공교롭게도 인도 정부의 관광 안내서에서도 빠졌고, 주 정부의 문화재 보존 예산도 전액 삭감됐다.

 

이렇게 미쳐서 날뛰고 있는데 쇠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무슨 말씀을. 이젠 소 도축하면 무기징역 두들겨 맞는 주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판이다. 당연히 인도의 쇠고기 산업은 물론이고 가죽 산업도 극심한 타격을 받은 상태다.

 

인도 가서 쇠고기 찾다간 큰일 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쟤네는 왜 와서 먹냐고? 그건 인도에서 신성하게 받드는 소랑 우리가 먹는 소랑 DNA가 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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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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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우리가 아는 소


 

저 양반들이 신성하게 받드는 소는 등에 혹이 있다. 한우, 혹은 미국 소, 혹은 남미 소는 등에 혹이 없다. 형질이 다른 소들은 먹어도 된다. 물론 이것도 신앙심의 자장이 얼마만큼 크냐에 따라 달라서 신실한 분들의 경우에는 대체로 채식한다. 소냐 돼지냐, 양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고기 자체를 안 먹는다. 우유, 달걀도 안 먹는다. 그러니 인도에서 우리가 먹으려고 하는 소는 우리가 아는 소가 아니다.

 


방송에서 다룬 클럽도 마찬가지다. 5성급 호텔의 클럽은 눈 튀어나올 정도로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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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중 한 명이 운영한다는 클럽에 가려면 그 호텔급에서 숙박하면서 호텔이 제공하는 차를 타고 다닐 수 있어야 한다. 하룻밤에 돈 백만 원 정도는 우습게 쓰실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재력 가진 분들이 얼마나 된다고. 대부분의 한국인 관광객들은 델리역 앞에 있는 여행자 거리인 빠하르간즈 어디에 있는 클럽이나 찾기 마련이다. 문젠 거기가 그다지 안전한 곳이 아니라 남자랑 같이 가도 성추행 정도는 다반사로 일어나는 곳이라는 점.

 


3. 애초에 문제는

 

아마 인도에 대해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줬던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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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

 


예능 프로그램의 농담 갖고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예능이 이렇게 놀았으면 다른 프로그램들이 더 많은, 진지한 이야기들을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이 있었다.

 

비틀즈의 멤버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의 추모 콘서트, Concert for George (2002년 11월 29일, 조지 헤리슨 1주기에 거행된 콘서트)에서 갓 스물인 영국 출신의 시타르 연주자가 거의 호스트급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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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분, 아누슈카 샹카르(Anoushka Shankar)

 


에릭 클랩튼이 음악 감독을 맡고, 비틀스 맴버들인 링고 스타와 폴 메카트니 등등의 쟁쟁한 당대의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콘서트에서 어떻게 젊은 시타르 연주자가 호스트 역할을 했을까.

 

그건 1960년대 비틀즈 최전성기 시절 살인적인 스케줄과 혹독한 유명세에 지쳤던 조지 해리슨이 인도로 튀었던 것에서 출발한다. 갠지스 강에 있다는 자아 자판기를 그도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인도에서 요가를 배우면서 동시에 인도 시타르 연주의 전설인 라비 샹카르(Ravi Shankar)를 만난다. 두 거장이 만나면서 서구에선 본격적으로 인도 붐이 일기 시작했고, 라비 샹카르는 미국에서 그래미도 받고 애인도 만난다. 아누슈카 샹카르는 이 영감님이 예순하고도 두 살에 얻은 딸이다. 엄마가 다른 이 분의 언니가 한국에도 많은 팬이 있는 노라 존스(Norah Jones)다.

 

그러니까 아버지 친구 추모 콘서트에 연로하신(이때 라비 샹카르가 83세였다) 아버지를 대신해 막내딸이 연주했다. 살아생전에 아버지 사랑은 인도 전통 음악을 하는 아누슈카 샹카르에 집중되었다고 한다.

 

윤상, 이적, 유희열이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행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우리랑도 관련이 있는 인도의 예술인 한 분 정도 끼우는 것도 재미있을 게다. 우리에겐 동방의 횃불이라는 시 하나로만 알려진 라빈드라 타고르(Rabindranath Tagore)가 산티니케탄(Santiniketan)에 세운 비스와 바라티(Visva-Bharati) 대학은 인도 예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 식민지 시절에 우리에게 약간의 용기를 전해줬던 분이 인도의 현대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짝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인도에는 자아 자판기 말고 예술이란 게 있으니까.

 

언젠가부터 외국인들이 나오는 예능, 특히 외국인들이 한국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살고 있는 외국인이 우리 문화에 좀 익숙해진 것을 가지고 “어이구~ 한국 사람 다 됐네?” 같은 소리나 늘어놓는, 고립된 세계를 강화하는 형태의 이야기들은 굳이 더 만들어낼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더 필요한 시점 아닌가. 태국 북부에 물난리가 나면 전세계에 하드디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나 SSD가 보급형 가격으로 떨어지는, 지구상의 모든 것이 연결된 시대가 우리가 사는 지금이다.

 

이제 가장 크고 급한 똥을 치운 MBC다. 모쪼록 MBC 분들은 지난 시절 뒤로 달렸던 것들을 복구해주시기 바란다. 마봉춘이라는 별명을 찾는 건 마봉춘 같은 콘텐츠를 만드는 그때다.






Samuel Seong

트위터 : @ravenclaw69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