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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의 얄타 회담, 그리고 1945년 7월의 포츠담 회담. 둘 다 연합국들의 전쟁지도부들이 모여 한 회의였지만, 이 5개월 동안 연합국들은 수많은 변화를 겪어야 했다. 가장 큰 변화는 연합국을 대표하는 세 거두가 바뀌었다는 부분이다.


루즈벨트가 4월에 죽었다. 그리고 처칠도 회담 중간에 교체됐다. 1945년 7월 25일 회담 중간에 처칠은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선거에서 노동당이 승리했고, 애틀리(Clement Richard Attlee)가 수상이 됐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유명한 캐치프레이즈 하나로 노동당은 정권을 잡는다. 더 이상 수상이 아닌 처칠은 회담에서 빠지게 됐고, 그 자리를 신임 수상 애틀리가 채우게 된다. 불과 5개월 사이 세 거두 중 두 명이 교체됐다. 문제는 교체 된 자들의 생각이다.


애틀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트루먼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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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은 소련의 대(對)일전 참전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스탈린은 얄타 회담에서 얻은 이권을 빨리 챙겨가고 싶어 했지만, 트루먼은 이게 못마땅했다. 만약 얄타 회담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만주의 이권은 소련에게 넘어가게 된다. 트루먼은 루즈벨트가 너무 많은 양보를 했고, 그 결과 전쟁 후 국제정세가 어려워 질 것이라 판단했다.


얄타회담을 무효화해야 했다. 그 전제 조건은,


“소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일본을 굴복시키는 것.”


이었다. 그러기 위한 전제 조건은,


“소련이 참전하기 전에 일본을 쓰러뜨려야 한다.”


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탈린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트루먼의 정반대였다.


“미국이 전쟁을 끝내기 전에 대(對)일전에 참전한다.”


였다. 이 당시 트루먼과 스탈린은 서로를 믿지 못했다. 스탈린은 어쨌든 얄타회담의 성과물을 얻어내야겠다고 작심한 상황이었고, 트루먼은 유럽에서 보여준 스탈린의 행보가 동아시아에서 고스란히 재현될 거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폴란드에서 소련이 하고 있는 짓을 보지 않았는가? 만약 만주를 소련에게 넘겨줬다간, 동아시아 전체가 소련의 영역이 될 수도 있다.”


트루먼의 급한 마음을 다독여졌던 건 ‘원자폭탄’이었다. 포츠담 회담에 들어가기 직전인 1945년 7월 16일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했다(포츠담 회담은 7월 17일 날 시작됐다).


재미난 건 폭탄 성공을 들은 다른 연합국 지도자의 반응이다. 트루먼에게 이 소식을 들은 처칠은 직접적으로,


“그렇다면, 소련은 더 이상 필요 없는 것 아닙니까?”


라는 반응을 보였다(당시 영국도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렇다면 스탈린은 어땠을까? 원자폭탄의 위력에 관한 보고서가 트루먼에게 전달된 것이 7월 21일. 그리고 이 사실은 스탈린에게 통보한 게 7월 24일이다. 이때 트루먼의 표현을 잘 살펴봐야 한다.


“보통이 아닌 파괴력을 가진 신무기(a new weapon of unusual destructive force) 개발에 성공했다.”


왜 ‘원자폭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이 당시 스탈린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이미, 실험 날짜까지 다 알고 있었던 스탈린이기에 이 ‘보통이 아닌 파괴력을 가진 신무기’의 위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대신,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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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과 트루먼은 각각 자신의 패 한 장씩을 꺼내 보이며, 회담 초반부터 탐색전을 벌이고 있었다. 트루먼은 ‘원자폭탄’이라는 패를 보여줬고, 스탈린은 회담 시작과 함께(7월 18일) 고노에 특사가 덴노의 친서를 들고 와 평화교섭을 요청했다는 걸 말했다.


이 역시도 트루먼은 알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 초기부터 미국은 일본의 무전 통신을 모두 도청했고, 암호 역시 모두 해독하고 있었다. 당시 스탈린은 덴노의 친서를 트루먼에게 보여주며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물었다. 트루먼은 간단히 무시했다.


“일본을 신용할 수는 없습니다.”


트루먼의 반응에 스탈린은 화답하듯 이렇게 답했다.


“일본으로 하여금 이 문제를 안고 잠들게 만들겠다(lull the Japanese to sleep).”


서로의 수를 다 알고 있으면서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서로를 떠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이들은 ‘공식적으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는 걸 선언한 상태였다. 당시 스탈린은 대(對)일전 참전을 위해 미국이 소련에게 ‘공식적으로’ 참전을 요청해달라고 제의했다. 그러나 트루먼은 이를 거부했다.


루즈벨트가 살아있을 때만 하더라도 소련에게 한 없이 부드러웠던 미국이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국은 소련이 참전하기 전에 전쟁을 끝내야 했고, 소련은 미국이 전쟁을 끝내기 전에 전쟁에 뛰어들어야 했다.


트루먼은 원자폭탄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믿었고, 스탈린도 원자폭탄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스탈린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참전하기 이전에 일본이 항복해선 안 된다!”


일본은 '다른 의미’로 미국과 소련에게 중요한 나라가 됐다. ‘일본’의 몸값이 뛰어올랐다. 미국과 소련이 일본의 항복을 놓고, 저마다의 협상(?)에 들어가게 됐다.




소련과 일본 ①


1945년 4월은 일본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달이었다. 필리핀은 미국 손에 떨어졌고, 오키나와에 미군이 상륙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수도 베를린을 사이에 두고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4월 5일. 일본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소련이 등을 돌렸다. 소련 외무상 몰로토프가 소련 주재 일본 대사인 사토 나오타케(佐藤 尚武)에게 일소중립조약의 폐기를 공식적으로 통고했다. 조약은 1941년 4월 25일에 비준됐고, 5년간 유효한 조약. 폐기 시에는 1년 전에 통고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에 충실한 절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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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사토는 몰로토프의 허를 찌르는 한 마디를 던진다.


“폐기 1년 전에 통보한다는 건 1946년 4월까지는 조약이 아직 유효하다는 의미인가?”


몰로토프는 당혹해 하면서도, 사토의 의견에 마지못해 동의했다. 이 대목은 꽤 중요한데, 외교적으로 몰로토프가 사기를 친 것이다. 이미 소련은 얄타 회담을 통해 대(對)일전 참전을 연합국과 약속했다.


몰로토프의 ‘대답’은 일본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 적어도 1년간 일소중립조약은 유지될 것이고, 그렇다면 소련 국경의 병력을 빼도 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결과 관동군(關東軍)의 전력 대부분을 태평양 전선(본토결전을 위해)으로 돌리게 된다.


솔직히 말해 이 당시 일본의 판단은 무지에 의해 저지른 실수가 아니라, ‘믿고 싶은 것만 믿겠다’라는 아집에서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몰로토프의 발언 이틀 후인 1945년 4월 7일 고이소(小磯國昭)내각이 무너졌고, 뒤이어 77세의 역대 최고령 총리대신이 취임한다. 바로 스즈키 칸타로(鈴木貫太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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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정부를 이끌었던 마지막 총리 스즈키 칸타로. 그의 총리 임명은 당시 일본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 바로미터였다.


원래 고이소 다음의 총리 지명에 있어, 육군 측은 하타 슌로쿠(畑 俊六)를 추천했다. 전임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도, 직전 총리였던 고이소 구니아키도 두 손 들어 하타를 밀었다. 반대로 고노에를 필두로 한 문관들과 해군들은 스즈키 칸타로를 밀었다.


이 당시 일본 정부의 입장은 크게 두 개로 나눠졌다. 문관(주로 외교)과 해군측은 ‘명예로운 화평’이란 이름의 종전을 원했고, 육군은 ‘본토결전’이었다. 당시 일본제국군 원수(元帥)였던, 하타 슌로쿠를 밀겠다는 건 본토결전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히로히토는 결국 스즈키 칸타로의 손을 들었다. 문제는 이 당시 스즈키의 나이였다. 77세. 최고령 총리대신 취임이란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훗날 스즈키 칸타로는 총리 취임 당시를 회상하며,


"이대로 전쟁을 계속하면 일본의 멸망이 진실로 확실해진다."


라고 믿었고, 4개월간의 짧은 총리 기간 동안 나름 ‘종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당시 스즈키는 나이 때문인지 무기력했고, 나름의 노력이란 것도 냉정한 사태 판단에 따른 결론이 아니라 ‘한 없이 절망에 가까운 희망’인 소련에 매달리는 거였다.


이 당시 ‘소련’은 본토결전을 외치는 육군에게도, 명예로운 화평을 말하는 해군과 외교관들에게도 ‘운명’을 거머쥔 존재였다.


영국과 미국을 상대하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소련까지 참전한다면, 육군의 본토결전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 해군과 외교관들도 소련의 중재가 있어야지만 연합국과 교섭을 할 수 있다는 다급함이 있었다. 소련은 전쟁을 위해서도, 교섭을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


1945년 5월 11일 일본은 최고전쟁지도회의(最高戰爭指導會議)에서 ‘일소교섭요령(日蘇交涉要領)’을 채택하게 된다. 그 내용은 크게 3가지였는데,


첫째, 소련의 참전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한다.

둘째, 소련을 ‘호의적 중립’으로 만든다.

셋째,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소련을 움직여 일본에 유리한 중개자가 되도록 유도한다.


이 정도면 ‘망상’을 넘어섰다고 해야 할까? 1945년 5월 11일이라면, 이미 독일이 연합국에 항복한 상황이다. 소련이 뭐가 아쉬워 일본의 손을 들어줄까? 외교라는 건 협상의 ‘재료’가 있어야 성립되는 건데, 이 당시 일본에게는 협상의 재료가 없었다. 아, 일본이 재료라고 준비한 건 있었다.


일소교섭요령을 정리하면서 일본은 소련을 움직이기 위해 ‘상당한’ 수준의 외교적 양보를 붙여줬다고 생각했다. 그 외교적 양보의 수준을 보자면, 포츠머스 조약(러일전쟁을 끝내기 위해 맺은 조약)을 폐기하고, 만주의 철도 이권과 뤼순반도의 권리를 양도하겠다는 거였다. 여기에는 단서가 하나 따라붙었는데, 다 양보해도 조선은 계속 지배하겠다고 확실히 명기했다. 겨우 이 정도를 가지고 소련과 협상을 하겠다? 당시 일본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유아기적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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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일본의 소련에 대한 믿음과 집착은 꼭 1년 전에도 있었다. 1944년 5월 도조 내각은 소련주재 일본대사였던 사토에게 전문 하나를 보낸다.


“소련의 협력을 얻어 중일 전쟁을 끝낼 수 있도록 하라.”


이 당시 일본은 태평양 전선뿐만 아니라 중국 전선에서도 밀리고 있었다. 이미 중국은 국공합작(國共合作)으로 일본을 몰아붙이고 있었고, 미국 하나만도 벅찬 상황에서 중국 전선을 조기에 수습하고, 이를 발판으로 종전으로 가겠다는 계획을 구상 중이었다.


이를 주도했던 게 시게미츠 마모루(重光葵) 외상이었다(윤봉길 의사에게 다리 하나가 박살난 그 인물이다). 시게미츠의 전문을 받아 본 사토 대사는 현실성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지만, 일본 본토의 사람들 생각은 달랐다. 도조 내각이 물러나고 들어선 고이소 내각 역시 소련을 통한 종전공작이 현실성이 있다며 이를 국가의 공식적인 정책으로 내놓았다.


이 정도면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외교의 개념 자체를 이해 못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본의 소련 짝사랑은 1945년 8월 9일까지 계속 이어진다.






1부 

[러일전쟁]


2부

드레드노트의 탄생

1차 세계대전, 뒤바뀐 국제정치의 주도권

일본의 데모크라시(デモクラシー)

최악의 대통령, 최고의 조약을 성사시키다

각자의 계산1

8년 의 회, 던 축 

일본은 어떻게 실패했나2

만주국, 어떻게 탄생했나



외전

군사 역사상 가장 멍청한 짓

2차대전의 불씨

그리고, 히틀러

실패한 외교, 히틀러를 완성시키다

국제정치의 본질



3부

태평양 전쟁의 씨앗1

태평양 전쟁의 씨앗2

도조 히데키, 그리고 또 하나의 괴물

일본을 늪에 빠트린 4명의 '미친놈'

대륙의 각성완료, 다급해진 일본

대동아(大東亞)의 환상에 눈 먼 일본

일본,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렸다 1

일본,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렸다 2

일본의 패배

일소중립조약이 파기되던 순간 1

일소중립조약이 파기되던 순간 2

천조국, 움직이다



4부

왜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하려고 했을까

신성불가침으로 만들어진 권력, 덴노(天皇)

일본의 반인반신, 덴노(天皇)의 오판과 태평양 전쟁

미국과 일본의 외교와 태평양 전쟁

정신력으로 전쟁을 결정한 일본

미국의 최후통첩, 헐노트(Hull Note)

진주만 공습, 두고두고 욕먹는 이유

인류 역사상 가장 병신같은 선전포고

미국, 2차대전에 뛰어들다

전통이란 이름의 살인, '무사도(武士道)'

맥아더의 오만, 태평양전쟁 필리핀 전장

일본, 필리핀의 물가를 100배로 만들다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을 이용한 방식

전쟁은 돈으로 하는 것이다

자살특공대 가미카제(神風)의 등장

일본의 비명이 종말을 재촉했다



5부

B-29, 지옥이 시작된 일본

불의 도시, 파국으로 향하는 일본

본토결전

세계 질서를 정리한 회의

덴노를 보호하라

침몰 직전, 일본이 선택한 공허한 명예

원자폭탄 그리고 소련

원자폭탄에 대한 미국 나름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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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가 디비주는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괴물로 변해가는 일본

조약, 테이블 위의 전쟁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펜더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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