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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 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중2병. 초인. 가장 인간다운 인간. 니체를 이해한다고 착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 대체 어디까지가 니체의 후예이고 '안티니체'인가?


니체에 대한 평가는 전문적인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히 갈린다. 임마누엘 칸트라면 동의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그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되도록 존경하려고 한다. 니체는 그렇지 않다. 그에게 열광하지 않는 이들에게 니체는 곧잘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다. 그런 면에서 니체는 사변적이고 차분한 철학계에서 유일한 록스타라 불릴 만하다.


혼란스러운 철학자, 그러나 철학의 역사상 가장 인간적이고 천재적이었던 사람. 동시에 20세기 현대철학의 창시자이자 현대인, 즉 우리의 의식구조를 형성한 정신적 선조인 사람. 니체를 악마적 천재 혹은 천재적 악마라 해도 그가 천재라는 사실은 여전히 남는다.


니체는 우리의 원형이다.


우리의 이성을 위협하는 광기의 프로토타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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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10월 15일, 독일 프로이센 왕국 작센 주의 뢰켄이라는 마을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당시 독일 어디에나 그렇듯이 마을마다 개신교 교회가 하나씩 있었다. 교회에는 목사가 있고, 목사와 그의 가족은 살 곳이 필요하니 당연히 교회에 딸린 관사를 배정받는다.


이 관사에서 태어난 아기는 목사님 집안의 장남이었다. 마침 당시 프로이센 왕국의 군주인 빌헬름 4세의 본명이 프리드리히였다. 임금님과 생일이 같다니! 기념할 만한 일이다. 아기의 이름은 임금님을 따라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로 지어졌다.


목사는 근대 유럽의 개신교 지역에서 대표적인 부르주아 직업 중 하나다. 즉 철학자 니체는 꽤 먹고 살 만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근대 유럽의 개신교 지역에서 목사는 고소득 전문직이다. 한국의 목사가 일종의 기업가라면 말이다.


프리드리히 나이 두 살 때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태어났다. 그녀는 안 좋은 의미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게 된다. 부모님과 아들 딸, 니체의 네 가족은 뢰켄 마을 교회에 딸린 목사 관사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 그런데 프리드리히 나이 다섯 살 때,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시고 말았다. 사인은 뇌연화증, 다른 말로 뇌경색이었다.


의학자들은 뇌의 혈관 문제가 이 집안 남자들의 가족력이 아닌지 강력히 의심한다. 니체 담임목사님이 젊은 나이에 뇌기능을 잃었듯 아들인 철학자 니체 역시 훗날 두개골 안에서 안 좋은 사건이 일어난다.


목사 집안의 중심은 당연히 기독교였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어른들이 원하는 행동에 빠져든다. 칭찬받고 주목받는 일은 아이가 처음 느끼는 마약이다. 니체는 성경 구절과 찬송가를 기막히게 암송했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나이 몇에 천자문을 떼었느니, 얼마나 어린 나이에 처음 글귀를 적었느니 하는 종류의 이야기다. 어른들은 꼬마 니체의 암송을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여기서 조금, 덜그럭 걸린다.


아이의 머리가 좋은 게 눈물을 흘릴 일일까? 이것은 과몰입이다. 아마도 이 어린애를 빌어서 자신의 말씀을 하는 걸 보면 성령은 바로 여기 계시는 게 틀림없다고 믿은 모양이다. 아이가 신동이라는 사실에 신났다면 자연스럽다. 눈물은 이 집안의 지나친 엄숙주의를 암시한다. 그래도 니체는 최초의 별명을 얻었다. '꼬마 목사님'이다. 나중에 "신은 죽었다"고 외치며 '파괴하는 철학자'라는 별명을 얻은 인물치고는 꽤나 얄궂은 첫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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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고 나자 목사관(목사 관사)을 신임 목사 가족을 위해 비워주어야 했다. 가족은 꼬마 목사님의 할머니 집으로 이사갔다. 이곳에는 결혼하지 않은 두 명의 고모가 있었다. 집안의 유일한 남자였던 니체는 어머니, 할머니, 고모들, 여동생까지 온통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성장했다. 남동생 요제프는 병약하게 태어나 금방 죽었기 때문에 남자는 오직 니체뿐이었다.


니체는 몸이 좋지 못해 어린 시절 대부분을 누워서 보냈다. 집안 여자들은 니체를 보살피는 동시에 그를 독점하려고 암투를 벌였다. 두 고모는 걸핏하면 어머니를 구박했다. 고모들에게 어머니는 '우리 집 남자 죽인 여자'였다. 한국 막장드라마에 나올 법한 두 여성에게 니체는 '네 아들'이라기보다는 '내 조카'였다.


여동생 엘리자베스는 여자들이 남자 하나를 독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증오하는 왜곡된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녀에게 오빠는 무조건적인 스타였다. 그녀는 남성성, 힘, 권위와 같은 것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여성으로 자라난다. 이런 집안에서 성숙한 어른이 된다면 박수받을 일이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니체의 성장환경을 추적해보면 밝은 느낌이 없다. 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기도를, 안 좋은 일에는 회개기도를 올리는 종교적인 분위기. 신을 핑계로 서로를 감시하는 집안에는 엄숙함과 음울함이 뒤섞여 있다.


인간의 성장이란 무엇일까? 부모는 역할모델이기도 하지만 전복해야 할 체제이기도 하다. 성장이란 계승인 동시에 반란이다. 훗날 성인이 된 니체는 모든 종교적 가치를 뒤짚어 엎는 반란을 기획한다. 그의 반란은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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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니체라고 하면, 쇼펜하우어와 함께 '여성혐오 철학자'로 악명이 높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몸이 안 좋아 드러누은 성장기를 보내는 아이들은 뛰놀 수 없는 대신 관찰력을 키운다. 자연히 의심하고 회의하게 된다. 서양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가 그랬다. 몸이 좋지 않다면 성품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차분한 성격의 스피노자는 자신이 속한 네덜란드 유대인 커뮤니티를 냉혹하게 품평하면서 자랐다. 예민한 쇼펜하우어는 어머니를 괴롭혀대며 컸다.


니체는 뛰어난 두뇌와 예민한 문학적 감수성, 그리고 아픈 몸을 타고났으니 철학자가 될 최적의 조건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가 관찰한 어른이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니체 같은 조건의 아이는 어른을 관찰하고 헛점을 짚어내며 결국은 그들을 부정하는데, 그게 하필이면 '여자 어른'이었다. <어른은 왜 부조리할까?>라는 질문이 니체에게는 자동적으로 <여자는 왜 부조리할까?>로 번역된다.


니체의 여성혐오는 자기혐오와도 맞닿아 있다. 병약한 아이는 그 자체로 어쩔 수 없이 민폐다. 몸이 아파서 여성의 보살핌에 의존해야만 하는 자신의 모습도 아름답지는 않다. 니체는 '여성에게 의존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을 키웠다. 여성에게 의존적이지 않으려면 여혐을 해야 한다는 의식의 흐름이다.


"여자를 만나러 갈 때는 몽둥이를 잊지 마라."


니체의 유명한 이 말은 두말할 나위 없는 여성혐오지만, 여자를 몽둥이로 쫓아내서라도 스스로 자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적 의무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니체의 미소지니는 건전하기도 하다. 집안 여자들이 니체를 끼고 돈 것은 그가 아파서이기도 하지만 집안 유일의 남자이자 미래가 기대되는 신동이었기 때문이다. 장차 집안을 다시 일으킬 사람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렇기에 니체가 진정 혐오했던 것은 여성은 이래야 하고 남성은 저래야 한다는 식의 '성역할'이었다. 인간에게는 인습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니체는 극과 극의 철학자다.


신동 니체는 인문계 고등학교인 김나지움에 불과 열 살의 나이로 입학했다. 훗날의 사가들은 니체가 친구 없이 고독한 학교생활을 했다며 이때부터 그의 외로운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평한다.


나는 도무지 동의할 수가 없다. 열 살 짜리 꼬맹이가 어떻게 당시 기준으로 청년들과 어울릴 수 있는가? 그저 나이가 어렸을 뿐이다. 어울릴 또래가 없으니 니체는 혼자 놀았다. 확실히 천재는 천재였다. 그의 놀이는 작곡과 시 쓰기였다. 열 살 때부터 시작된 니체의 예술활동은 그를 철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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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편에서 계속





쇼펜하우어 편



쇼펜하우어의 삶1 : 아버지의 그늘

쇼펜하우어의 삶2 : 어머니의 그늘

쇼펜하우어의 삶3 : 헤겔의 그늘

쇼펜하우어의 삶4 : 무명의 그늘

쇼펜하우어의 삶5 : 강아지의 그늘

쇼펜하우어의 삶6 : 인간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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